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6)


기술업계 회사일지라도 제품 지향 문화가 필요합니다. 많은 회사들이 훌륭한 엔지니어와 똑똑한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로 묶는 힘이 필요합니다.

‐ 스티브 잡스, 2004년 <비즈니스위크> 인터뷰 중에서 




애플은 남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소비자가 선택해 주는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애플의 모든 전략은 결국 ‘위대한 제품 만들기’라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 가장 잘하는 일은 소수의 팀을 구성해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힐 만큼 그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회계장부도 읽지 못하는 그가 애플의 CEO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제품 만들기에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만들기야말로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개발자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를 보면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사업부에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외부의 각종 압력으로부터 개발자들을 보호해 주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경영진과 좋지 않은 사이가 되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지만 그에게는 오직 제품 개발이 중요할 뿐이었다.


제품 개발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스티브 잡스는 아무리 훌륭한 엔지니어와 똑똑한 사람이 있어도 회사에 제품 개발 지향적인 문화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고 이끄는 사람 역시 제품 개발자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밀어내려고 했던 것은 스컬리가 개발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존 스컬리 밑에서 애플이 몰락의 길을 걸은 것도 스컬리가 개발자가 아니라 영업맨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위대한 회사가 서서히 과거의 마법을 잃어버리는 것도 결국 개발자 중심의 회사가 영업맨 중심의 회사가 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개발자들이 원동력이 되는 회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영업맨이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제품 개발 지향 문화가 사라지면서 제품 개발보다는 독점을 이용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개발자보다는 영업맨이 득세하게 되는데, 어느 날 독점이 끝나고 나면 이미 회사 안에는 개발자들이 떠나 있거나 발언권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회사는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존 스컬리가 이끌던 애플이었고, 영업맨이었던 존 에이커스가 이끌었던 IBM의 모습이었다. 존 에이커스는 빌 게이츠에게 설득당해서 OS/2 개발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맡기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를 존 스컬리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발머는 존 스컬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스티브 발머는 개발자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마이크소프트에 취직하기 전에 P&G에서 일했다. P&G는 샴푸와 비누, 기저귀 같은 생활용품부터 과자나 커피까지 판매할 정도로 폭넓은 사업 분야를 가진 회사다. P&G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브랜드 관리를 창안해서 이를 마케팅에 접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P&G의 마케팅 능력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며, P&G는 ‘마케팅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마케팅에 관해서는 매우 특별한 회사다. 


마케팅 전문가인 존 스컬리처럼 스티브 발머 역시 P&G에서의 경험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이 된 후 마케팅 부분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빌 게이츠의 요청으로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처음 합류했을 때가 1980년인데 마침 그는 스탠퍼드대학원에서 MBA를 공부 중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27명의 직원으로 1,25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회사운영은 그야말로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다. 빌 게이츠는 회사를 제대로 된 법인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경영전문가인 스티브 발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평소 빌 게이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던 스티브 발머는 그와 함께 일하는 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합류하게 된다. 그의 첫 직책은 사장 비서였다. 그의 일은 한 마디로 빌 게이츠가 잘 하지 못하는 회계와 법률 같은 부분을 보완해 주는 것이었다. 둘은 완벽히 대조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 주는 사이였다. 


빌 게이츠는 철저히 기술 중심적 사고를 가진 데 비해 스티브 발머는 영업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기술 지향적 성격을 가진 빌 게이츠의 사람들은 대부분 기술 전문가이며, 스티브 발머의 사람들은 뼛속까지 영업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빌 게이츠가 그만 두고 스티브 발머가 CEO가 된 이후 둔 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인력도 개발자 중심에서 영업맨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개발자보다는 영업이나 MBA학위 소유자들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같은 개발 지향 문화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애플과 IBM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영업맨 중심의 회사가 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말 과거처럼 압도적인 느낌이 사라졌다. 스티브 발머가 CEO가 된 2000년 이후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면 빌 게이츠 시대에 구축해 놓은 윈도우와 오피스로 세계시장을 여전히 독점하고 있지만 단지 그것뿐 아무런 발전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애플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세계에 연속적으로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 


주식 시장은 이런 마이크로소프트의 상황을 더욱 냉혹하게 평가하고 있다. 2010년 5월 27일을 기준으로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은 지난 10년 동안 18%나 감소된 것에 비해 애플의 주식은 열배 이상 뛰어올랐다. 이는 제품 개발 지향적인 스티브 잡스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업맨인 스티브 발머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오직 제품 만들기에 매진했고 실제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위대한 제품으로 성공을 이끌었다. 스티브 발머는 스티브 잡스와는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2010년 2월 <뉴욕타임스>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현재는 비록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혁신의 부족과 내분의 영향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전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딕 브라스(Dick Brass)의 칼럼을 기재했다. 그에 의하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아이패드와 같은 스타일의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지만 오피스를 담당하던 부사장이 태블릿 컴퓨터 사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체 협력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태블릿 컴퓨터에는 오피스를 사용할 수 없었고, 나중에는 아예 태블릿 사업부 자체가 폐쇄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태블릿에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투자한 애플과는 비교되는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거짓소문을 퍼뜨리면서까지 다른 사업부를 견제하는 사내 정치에 진저리를 치면서 글을 끝마쳤다. 


칼럼이 보도된 이후 <베타뉴스>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일화가 공개되었다. 20년 이상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한 한 간부에 의하면 사내정치에 의해서 정말 획기적인 제품이 없어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한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의 장점은 작은 팀에 권한을 주는 것이었는데, 작은 팀들을 모두 큰 팀에 흡수시킴으로써 사내에 정치적 대립이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조직개편이 빈번하게 일어남에 따라 관리직들이 팀보다 자신의 경력에만 힘을 쓰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이 사내정치에 휘말리고 있다고 증언한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고된 또 다른 직원은 과거 6단계의 계층이 있었다면 지금은 10단계로 복잡해졌는데, 이렇게 늘어난 관리자들이 회사보다는 자신의 정치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13년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20명이었던 팀이 정리해고 되었는데 회사에 남은 사람은 관리자 4명뿐이었다고 한다.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대권을 잡은 이후 영업맨 출신의 간부들이 회사를 장악하면서 회사 전체가 개발자보다는 관리자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개발력까지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발머 이후 심각한 문제는 돈을 아무리 투자해도 이렇다 할 상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지난 4년간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46억 달러이다. 그동안 영업 수입은 250달러에서 430억 달러로 증가했다. 이에 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7배가 넘는 310억 달러나 연구개발에 사용했다. 이 부분이야말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발머의 근본적인 역량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가 원하는 위대한 제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제품 개발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마이크로소프트보다도 훨씬 적은 돈으로도 멋진 제품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에 비해서 스티브 발머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하는 방법은 알고 있으나 스티브 잡스처럼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은 한참 뒤떨어진다. 


빌 게이츠 시대는 ‘컴퓨터광의, 컴퓨터광에 의한, 컴퓨터광을 위한 개발자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는 그런 개발 중심 문화에서 영업 지향의 문화로 회사를 변화시켰고, 결국은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제품 개발 지향적 문화를 가지게 된 애플의 연구 효율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도 천재는 수두룩하다. 그리고 연구개발 비용도 애플보다 몇 배나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결국 CEO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스티브 발머는 분명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훌륭한 경영자다. 하지만 그의 경쟁상대가 세계 역사에 기록될 개발자 스티브 잡스라는 것이 문제다. CEO 성향의 차이로 인해서 애플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극도의 효율성을 가지게 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과거의 애플이나 IBM은 영업맨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가 독점이 끝나자 생사의 기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될 지 한 번 지켜볼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개발자를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사례는 많다.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는 자존심이 강해서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직원들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함부로 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들지 못하게 할 정도로 독선적인 면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 날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모임에 가려던 스티브 잡스를 가로막았다. 빌 앳킨슨은 자신이 리사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했다면서 큰소리로 항의했다. 모임이 급했던 스티브 잡스는 빌 앳킨슨이 막아서자 짜증이 난 나머지 불같이 화를 냈다. 결국 둘은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서로를 몰아세우며 논쟁을 벌였다. 그런 식으로 스티브 잡스와 싸운 사람이라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주에 스티브 잡스가 먼저 엔지니어인 빌 앳킨슨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빌 앳킨슨이 애플 펠로우(Apple Fellow)로 임명되도록 도움을 주었다. 애플 펠로우는 최고 기술자에게 주는 직위로, 그전까지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로드 홀트 단 두 명에게만 수여된 최고의 명예직이었다.


개발자들 앞에서라면 스티브 잡스의 엄격한 규율들도 종종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을 때 애플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애플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했다. 회사에는 각종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회사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해고를 당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스티브 잡스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을 때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해고를 통보받는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개발자는 예외였다. 만약에 스티브 잡스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을 때 엔지니어라고 하면 해고당할 확률이 낮았다고 한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회사의 정보가 밖으로 줄줄 새는 것은 회사 재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엄격한 비밀주의를 채택했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 광고 캠페인을 축하하며 직원들과 함께 야외파티를 열었다.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를 소개하며 이것이 얼마나 멋진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직원들에게 알렸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에 감동한 한 여직원이 이를 친구에게 메일로 보냈다. 


문제는 메일을 받은 친구가 <데이브넷>이라는 메일 매거진의 관계자였다는 점이다. <데이브넷>은 빌 게이츠 같은 컴퓨터 기업의 유명 인사들에게 업계의 각종 정보를 수집해서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 회사였다. 결국 직원이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에게 보낸 메일이 <데이브넷>의 메일 매거진 서비스를 통해서 하루아침에 업계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스티브 잡스는 회사의 비전과 전략이 외부로 흘러나갔다는 사실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메일을 유출시킨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사무실로 불러들여 따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여직원은 해고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무사히 회사를 잘 다녔다. 보통의 스티브 잡스라면 절대 용서하기 힘든 사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은 그녀가 퀵타임이라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자라는 사실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마치 영화사와 같다. 영화사가 계속해서 영화를 선보이듯이 애플 역시 연속적으로 제품을 선보인다. 관객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영화사가 어려워지듯이 애플 역시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바로 타격을 입는다. 애플은 오직 제품으로만 승부하는 회사다. 제품은 결국 개발자가 만든다.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자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에 제품 개발 지향적인 문화가 퍼져 있어야 하며, 개발자가 실제로 회사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기 전의 회사는 영업맨 중심의 회사였고, 스티브 잡스가 돌아온 후의 회사는 개발자 중심의 회사다. 물론 회사는 사정에 따라서 영업맨 혹은 개발자의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의 부활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개발자가 원동력이 되는 제품 지향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로의 변화였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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