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처럼 창조한다는 것(3)



이와타 사토루 덕분에 HAL 연구소는 기술 하나는 최고인 회사로 명성을 드높였다. 회사도 도쿄 번화가 맨션을 벗어나 있는 야마나시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후지산으로 유명한 야마나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했는데 도심보다는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이곳으로 회사를 옮긴 것이다. 1983년 일본에서는 닌텐도의 첫 번째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콤이 발매되어 단 6개월만에 50만대가 판매될 정도로 큰 선풍을 일으킨다. 이와타 사토루는 패미컴이 발매 되기 전부터 닌텐도를 주목했다.  닌텐도야 말로 HAL 연구소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패미컴을 1만5천엔 짜리 값싼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패미컴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리고 패미컴에 대한 자신이 붙자 주변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패미컴의 개발사인 닌텐도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일부러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평소 입지도 않은 양복까지 찾아 입은 이와타 사토루는 닌텐도 본사가 있는 교토로 찾아가서 다짜고짜 패미컴용으로 게임을 개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시 닌텐도는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하기로 유명했다.  닌텐도는 소프트웨어 제작사가 게임을 개발하면 무조건 발매 시켜 주는 게 아니라 닌텐도가 정한 기준에 부합되는지 검토를 한 후에  합격한 게임만 패미컴으로 발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허가 받은 소프트웨어 제작사의 경우 일년에 단 세 개만 발매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조항까지 마련했다. 그래서 패미컴용으로 게임을 발매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대신 한번 패미컴으로 발매되는 게임은 소수정예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았고 덕분에 한번 게임이 발매만 되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를 찾아간 것도 HAL 연구소가 패미컴으로 게임을 발매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24살의 어린 나이었던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가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자 처음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결국 닌텐도는 정식으로 허가 받은 소프트웨어 업체 즉 서드파티가 아니라  외주방식으로 게임을 대신 제작해주기로 했다. 

닌텐도 내부에서는 수많은 게임들이 기획을 하고 있었지만 기술상의 문제로 포기한 게임들이 많았다. 닌텐도는 이런 고난이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게임들을 이와타 사토루에게 한번 속는셈 치고 맡겼던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가 맡긴 일들을 이와타 사토루가 척척 해내자 닌텐도에서 그의 명성도 덩달아 쌓여갔다. 그래서 게임업계에서는 아이디어의 닌텐도 기술의 HAL연구소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서 직원들에게 스타 취급을 받게 되는 계기는 프로그래밍 실력이 아니라 컴퓨터 키보드를 빨리 치는 타이핑 속도 덕분이었다.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키보드를 안보고 치는 블라인드 타이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를 방문하는 날이면  순전히 그의 블라인드 타이핑을 구경하기 위해서 회사의 각 부서사람들이 모여들 정도였다. 당시 이와타 사토루는 마치 진기 명기에 나오는 기인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햔편 이와타 사토루는 HAL 연구소 내에서도 직원들의 신망이 무척 두터웠다. 왜냐하면 그는 프로그래머로써 절대 노라고 말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원래 기획자들은 작품에 대한 원대한 소망을 꿈꾸기 마련이다. 남들이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는 것을 실제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면 종종 기술의 한계를 고려치 않은 기획안을 만든다. 그럴 경우 일반적인 프로그래머는 기술도 파악 못하고 기획을 했다면서 타박하기 마련이다.  이는 게임뿐만 아니라 IT 업계 그리고 모든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과 그 아이디어를 실행 해야 하는 사람간에 분명한 입장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이상적이고 개발자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에는 일종의 주도권 싸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애초에 이와타 사토루는 기획자의 아이디어에 노라고 말을 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존중을 해주었다.  물론 이와타 사토루 자체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그의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가 “노”라고 하는 순간 기획자의 아이디어는 거기서 멈추어 버려서 더 이상 발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를 수도꼭지론으로 설명한다. 프로그래머는 수도꼭지와 같은 존재인데 꼭지를 닫아 놓으면 수도관의 물의 흐를 수 없듯이 프로그래머가 노라고 하면 그 어떤 좋은 아이디어와 그림도 무용지물이 되므로 프로그래머는 꼭지가 열려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술상의 제약으로 기획자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때는 모든 가능성을 한번에 일축 해버리는 “No”가 아니라 기획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이와타 사토루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기획자가 제시하는 황당한 아이디어까지도 가급적이면 들어주려는 이와타 사토루의 철학이 자신을 더 노력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최고의 프로그래머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이와타 사토루는 “다음에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자”라는 모토를 가진 사람으로써 일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닌텐도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매킨토시 개발과 존 스컬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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