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뒤에 형편없는 목재를 쓰진 않습니다.

- 스티브 잡스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1)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는 감성 지향적이고, 빌 게이츠는 이성 지향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디자인을 바라보는 견해에도 큰 차이를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만들 때부터 디자인이 제품의 중요한 차별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봤다. 애플에 돌아온 그는 디자인이 애플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맥을 탄생시켰다. 빌 게이츠는 아이맥의 독특함은 색깔밖에 없다면서 아이맥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봤지만 아이맥은 빌 게이츠의 발언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가격이 내려가면 시장은 활성화되고, 디자인과 패션은 더욱더 중요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손목시계가 단순히 시간이 정확해서가 아니라 디자인 때문에 팔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신념은 아이팟 시대가 도래하면서 확실한 보상을 받게 된다. 사실 아이팟은 기능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격도 비쌌지만 MP3 플레이어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애플이 아이팟에 ‘디자인과 패션’이라는 요소를 접목시킨 덕분이었다. 아이팟 이전에도 분명히 애플 컴퓨터의 디자인들은 뛰어났다. 그러나 컴퓨터는 집에서만 사용하는 기기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도 매우 한정적이다. 패션과 디자인은 자기만족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과시할 수 있을 때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휴대용 기기는 항상 착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즉시 자랑할 수 있다. 특히 아이팟은 목걸이나 반지 같은 패션 아이템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명품업체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구찌, 버버리, 루이비통 같은 명품 패션업체들이 아이팟을 위해서 가죽 케이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새로운 시장이 창조되었다. 아이팟을 통해서 애플의 뛰어난 브랜드 파워와 훌륭한 디자인 감각이 폭발하였고 이는 MP3 플레이어 시장을 독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아이폰은 아이팟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이폰은 애플의 브랜드 파워 덕분에 명품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모임에서 누군가 명품백을 들고 나오면 사람들이 명품백에 주목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듯이 최신 아이폰을 들고 모임에 참석하면, 똑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 2010년 WWDC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에게 온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카페에서 한 남자가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자 한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아이패드는 마법 같은 기기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듯 휴대용 기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취향과 특성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인 만큼 옷을 잘 입는 것만큼이나 이성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애플은 디자인에 대해서도 확고한 철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단순한 것이 곧 최고’라는 사고방식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조직과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제품 개발을 할 때도 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순함에 대한 집착은 디자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 휴대용 기기는 배터리가 일체화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불만을 표해도 애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애플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것을 디자인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받아들인다. 착탈식 배터리를 채용하게 되면 디자인에 이음새가 생기는데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 디자인팀이 이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이음새뿐만 아니라 애플은 나사에 대해서도 참지 못한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에게 새로 개발하는 맥에는 나사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제품 하단에 나사가 하나 있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나사를 발견한 스티브 잡스는 즉시 디자이너를 해고했다. 


나사 하나도 싫어하는 애플이 제품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허용할 리 없다. 그러나 전자제품은 필수적으로 몇 가지 제품에 대한 정보를 표시해야 하고, 애플은 고육지책으로 레이저를 이용해 필수 정보들을 새겨 버렸을 정도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은 리모컨을 만들 때 역시 다르다. 2005년 10월 스티브 잡스는 스페셜 이벤트에서 컴퓨터를 조종할 수 있는 리모컨을 발표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리모컨을 애플 스타일로 만들었다면서 버튼이 여섯 개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섯 개의 버튼으로도 고객이 원하는 동작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음을 보여준 스티브 잡스는 경쟁 회사에서 만든 PC용 리모컨의 버튼이 40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비교하면서 여섯 개의 버튼밖에 없는 리모컨만큼 애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의 일화는 아이맥 G4를 만들 때 잘 드러난다. 신형 아이맥이 마음에 안 들었던 스티브 잡스가 집으로 조너선 아이브를 초대했다. 스티브 잡스는 부인이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던 텃밭 주변을 그와 함께 산책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정원에 있는 꽃을 보여 주면서 모든 요소는 그 자체로 작동해야 한다면서 불필요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단순한 디자인을 요구했다. 마침 옆에는 해바라기 꽃이 있었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조너선 아이브는 해바라기 모양의 뉴 아이맥을 디자인하게 된다. 


이렇게 애플은 단순함을 추구하고 단순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애플이 추구하는 단순함은 이미 복잡함의 과정을 거치고 여러 심사숙고 끝에 내려진 일종의 해결책을 뜻한다. 조너선 아이브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소비자들이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성은 복잡성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 결국 애플의 디자인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복잡함에서 누구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단순함을 얻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 디자인의 또 다른 한쪽에는 디테일이 자리 잡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집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보드가 예쁘지 않다며 불평했다. 개발자들은 누가 컴퓨터 보드 모양 따위에 관심이 있겠냐면서 스티브 잡스의 말에 반박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목수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밑에 형편없는 나무를 쓰지 않는다며 오히려 큰소리쳤다. 이때 팀의 베테랑이었던 버렐 스미스는 컴퓨터 보드의 배선이 복잡한 것은 기술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순순히 수긍할 사람이 아니었다. 보드를 깔끔하게 만들도록 새롭게 기판을 디자인하되 그래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되면 그때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5천 달러나 들여서 새롭게 기판을 만들었지만 작동되지 않아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야 했다. 컴퓨터 내부의 디자인까지 신경 쓰는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는 여전히 애플의 디자인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은 조너선 아이브에 의해서 현실이 되었다. 조너선 아이브의 책임 아래 나오는 애플의 매킨토시 내부는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애플은 박물관에 노트북을 전시할 때 일부러 내부를 분해해서 공개했다. 이때 조너선 아이브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몰두하는 자신들의 노력을 이야기하면서, 애플에서 일하는 가장 전형적인 작업 방식은 극도로 세밀한 부분을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남들이 보지 않는 컴퓨터 내부까지 신경 쓰는 애플의 세세함은 제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애플은 포장 디자인에서부터 세심하게 고객을 배려한다. 아이맥을 예로 들면 배달된 상자를 열면 안에 스티로폼 조각이 보인다. 이를 꺼내면 아이맥의 상단부가 드러나면서 바로 손잡이가 보인다. 박스에서 컴퓨터를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디자이너들이 세심히 배려한 부분이다. 컴퓨터를 꺼내고 나면 이제 소비자는 자신이 다음으로 할 일이 액세서리 박스를 꺼내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액세서리 박스를 열면 세 개의 선이 보인다. 각각 전기, 인터넷, 키보드에 연결시켜야 하는 케이블인데 한눈에 봐도 어떤 케이블이 어디에 꽂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쉽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컴맹이라도 이 세 개의 선만 연결하면 바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아이맥의 패키지 디자인은 고객을 생각하는 디테일한 구성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애플 컴퓨터는 사람들이 보는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쓴다. 특히 노트북의 경우 테이블에 놓고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일반적으로 바닥 부분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애플은 바닥 부분도 철저하게 신경 쓰기로 유명하다. 사용할 때 보이진 않지만 노트북을 들고 다닐 때를 생각해 정성스럽게 디자인한다. 애플스토어도 애플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아이맥이 인쇄된 광고지에서와 똑같이 보이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명을 직접 테스트해서 선택할 정도였다. 뉴욕 5번가에 있는 철제 볼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스티브 잡스가 직접 볼트 전체를 교체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아이팟의 경우 이어폰을 뺄 때 나는 소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로운 잭으로 교체하라고 명령한 스티브 잡스가 운영하는 회사답게, 애플의 디테일은 정말 대단하다. 약간의 디테일을 개선하기 위해서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애플은 휴대용 기기의 경우 사람들이 실제 들었을 때의 무게를 중요시 여기는데 어느 한쪽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기 위해 부품 배치마저도 새로 할 정도다.



애플 디자인의 철학은 지금까지 설명하였듯이 ‘단순함과 디테일’ 두 가지로 요약된다. 단순함과 디테일은 별개의 철학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양 날개와 같은 것이다. 애플이 오직 단순함만을 추구한다면 애플의 디자인이 지금처럼 특별할 수 없다. 단순하지만 그 내부에 극도의 디테일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단순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담지 않는 대신 디자인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는 최고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애플 특유의 디테일이 가능한 것은 애플이 단순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애플이 화려함과 다양함을 쫓는 회사라면 애초에 디테일에는 한계가 있다. 회사는 자기만족을 위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특히 IT업계의 경우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기 때문에 발매시기를 놓치면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디테일까지 생각한다면 제작기간이 한없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곧 돈이 되는 IT세상에서는 경쟁기업보다도 가능한 빨리 제품을 완성해서 발매해야만 한다. 


결국 애플이 단순함을 선택한 것은 욕심을 버리고 최선의 밸런스를 찾은 결과다. 애플에게는 제작 일정이 있고, 이를 맞추려면 무엇인가를 버려야만 한다. 그래서 애플은 무엇인가를 더하는 플러스 디자인이 아니라 무엇을 빼는 마이너스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다. 더 이상 뺄 것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대신 남아 있는 최소한의 것에 대해서는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 애플의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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