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사실 애플을 뛰어넘는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뉴요커>에 스티브 잡스가 영웅이라고 밝혔다. 넷스케이프의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기업가들에게 첫 번째 제품을 내놓을 때쯤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라고 조언을 한다. ‘스티브라면 어떻게 했을까?’



- 2009년 <포춘> The decade of Steve 중에서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 진출을 선언할 때 이미 시장의 판도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IBM은 컴퓨터 시장 전체를 장악했고, IBM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면 그건 곧 표준을 의미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 개인용 컴퓨터 업체 중 선두를 달리던 애플의 매출액이 1억 4,0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IBM은 이미 252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두 회사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애플이 컴퓨터 시장에 혁명을 불러일으키면서 포드 이후 가장 성공한 회사라는 극찬을 듣고 있었지만 IBM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IBM과의 경쟁에 긴장할 만도 한데 오히려 애플은 IBM의 시장 진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그런데 광고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애플을 홍보하기 위해서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진 문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글은 35년 전 컴퓨터 혁명이 시작된 이래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시장에 IBM이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로 시작된다. 



그 다음 개인용 컴퓨터가 사람의 일과 생각 그리고 배움과 커뮤니케이션 등 전반적인 생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도구임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는 읽기나 쓰기처럼 필수적인 능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발명한 것은 애플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애플이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발명했을 때 전 세계 1억 4,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구입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면서, 애플이 시장의 창조자이자 선지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니 함께 책임 있는 경쟁을 펼치자고 다짐하는 한편 다시 한 번 IBM의 시장진출을 환영한다는 문장으로 광고는 마무리 되어 있다. 결국 타이틀은 IBM을 환영한다는 이야기지만 글을 잘 살펴보면 IBM이라는 거대기업에 맞서서 싸우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혁명가 애플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드러낸 광고였다. 더불어 당시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업체가 50여 개 있었는데, IBM과 경쟁하는 애플을 강조함으로써 애플은 자연스럽게 IBM을 뺀 다른 업체 중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81년 초만 해도 애플은 미국인들 중 10%만 아는 브랜드였지만 연말에는 80%로 급상승하였다. IBM PC는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 대로 시장에 진출한 직후부터 승승장구하더니 곧 시장을 장악한다. 애플은 IBM을 환영한다는 광고를 내보낼 때의 여유와 달리 갈수록 위기감이 커져갔다. 그리고 결국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최강자라는 자리를 빼앗을 즈음에 애플은 IBM과의 경쟁을 단순히 기업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선과 악의 대결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IBM이라는 악당이 있는데, 이를 물리치는 영웅으로서의 애플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이는 다른 업체와는 확실히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미국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는 업체가 1위 업체와 비교 광고를 하는 것은 자연스런 광고 방식이다.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을 때 뒤를 쫓던 코모도어는 끊임없이 애플과 비교했다. 특히 코모도어는 가격적인 면에서 많이 비교했는데 코모도어 64를 광고할 때는 사과를 한 입씩 베어 먹는 장면이 나오면서 애플을 노골적으로 비아냥대었다.


 하지만 IBM에 의해서 시장 주도권을 잃어가던 애플은 코모도어와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단순히 선두업체를 비아냥대고 씹는 것이 아니라 악과 싸우는 애플을 고귀한 영웅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브랜드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코모도어처럼 후발업체가 선두업체를 무작정 비교하면 오히려 선두업체의 인지도만 상승시켜준다. 기업이 광고를 할 때는 당연히 자사에게 유리하고, 경쟁자에 불리한 면을 강조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아무리 비교 광고로 1등 기업을 씹어봐야 결국 사람들은 그 말을 다 믿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시장의 지배자만 대중들에게 각인시켜줄 뿐이다. 결국 코모도어의 비교 광고는 애플을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격이었다. 이는 아이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같이 다른 여러 스마트폰이 나오고 있지만 그런 기사와 광고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아이폰의 지배력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뿐이다. 물론 애플도 선두자리에서 밀려났을 때는 1위 기업과 비교 광고를 함으로써 자사의 우위성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애플의 광고는 전문용어로 뒤범벅된 기술과 기능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이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1984년에 방영된 매킨토시 광고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광고는 조지오웰의 소설인 <1984>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설 <1984>는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자 빅 브라더가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완전 통제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매킨토시 광고는 소설 속의 모습을 그대로 영상으로 담아내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빅 브라더가 끊임없이 윽박지르면서 소리를 지르면 넋이 나가 보이는 사람들은 이를 힘없이 지켜본다.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과 의지도 없이 그냥 빅 브라더의 지배를 받고 복종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때 망치를 든 여인이 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을 따돌리고 달려와서는 도끼를 던져서 대형 스크린을 파괴한다. 


그리고 자막을 통해 애플에서는 1984년 매킨토시를 소개한다면서 왜 소설의 1984와 현실의 1984가 다른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이 광고는 전국에 단 한 번 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각종 광고 관련상을 휩쓸었고, 지금까지도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으로 남아 있다. 1984 광고는 일체의 상품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IBM은 거대한 악당이 되었고, 애플은 이를 물리치는 영웅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약자인 다윗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애플은 바로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였다. 


사실 영웅과 악당 구도를 1984처럼 추상적이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쿨한 애플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었을 테지만 1984 광고는 광고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면서, 젊고 도발적인 애플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었다. 1984 광고에는 애플의 절박함과 스티브 잡스의 비장함이 들어 있었다. 1981년 IBM이 시장에 진출한 이후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회사들이 어려움에 처했고 IBM이 곧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1984년 1월 24일 처음으로 대중에게 매킨토시를 공개하던 날 스티브 잡스는 IBM을 환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두려움을 느끼고 다시 애플로 돌아오고 있다면서 애플을 IBM의 통제로부터 미래를 구할 영웅으로 부각시킨다. 애플은 단순히 IBM과 경쟁하는 기업이 아니라 독재에 대해 항거하는 숭고한 회사로 격상되어 버린 것이다. 영웅 브랜드로서의 애플은 드라마나 영화 속의 간접광고에도 자주 이용되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톰크루즈는 애플의 제품을 이용했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외계인의 우주선을 무력화시킬 때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 역시 애플 제품이었다. 영웅들이 등장하는 인기 드라마인 <히어로즈>, <24>,  에서도 주인공들은 애플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간접광고 덕분에 ‘영웅은 맥을 쓰고, 악당은 PC를 쓴다.’는 농담이 생길 정도다. 영웅으로서의 애플 브랜드는 결국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완성된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영웅 스토리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영화와 소설속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살아온 스티브 잡스지만 삶 자체가 너무나 기가 막혀서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창작된 스토리라고 하면 허무맹랑하다는 비난을 들을 만한 게 바로 스티브 잡스의 인생이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부터 잘사는 부모님을 만나서 실패의 경험 없이 승승장구했다면 지금처럼 열광적인 마니아들을 거느릴 수 없을 것이다.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했고, 그것도 여러 번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으며 벌떼처럼 달려드는 비평가들의 혹평을 이겨내고 성공했기에 스티브 잡스에 대한 영웅 이미지가 더욱 극대화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영웅적인 삶과 이미지들이 그대로 애플 브랜드와 결합되면서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스티브 잡스는 곧 애플이고, 애플을 통해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를 본다.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은 IT 세상에서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 거액의 돈을 들여서 슈퍼스타에게 휴대폰 광고를 맡겨봐야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연설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 자체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이기 때문이다. 그가 출연하는 키노트 연설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서 공짜로 대서특필되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제품을 알릴 수 있다. 스티브 잡스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영웅적인 삶이 회사의 브랜드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보다 더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은 사람이 더욱 활기차고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그 같은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4번이나 전체 산업계를 뒤바꿨다는 화려한 이력이 있기에 그의 한 마디에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것이고, 그가 말하는 미래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애플의 브랜드 파워에 있어 스티브 잡스라는 한 개인의 삶이 절대적인 공헌을 하고 있는 만큼 애플의 불안 요인도 그에게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절대로 대체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애플의 최대 불안 요인은 스티브 잡스의 부재이다. 스티브 잡스의 건강 이상설이 퍼지면 애플의 주가는 요동을 친다. 스티브 잡스라는 한 개인의 브랜드가 회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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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