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방문은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 헨리 블로젯, 2010년 <비즈니스 인사이더> How I Ended My Affair With BlackBerry And Eloped With The iPhone 기사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7)



사람들이 애플의 힘을 평가할 때 가장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애플스토어다. 애플이 곧 망할 것이라면서 애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사람들이 정작 애플의 가장 훌륭한 자산인 애플스토어라는 존재는 쏙 빼놓는다. 애플은 소비자 가전업체로 항상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면서 물건 파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보다 나은 애플만의 노하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HP나 델컴퓨터에게 라이선스를 넘긴다. 엄격히 말하면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을 고객으로 상대한다. 구글 역시 광고주와 거래를 하는 것이지 소비자로부터 돈을 벌지는 않는다. 하지만 애플은 소비자에게 직접 돈을 받고, 물건을 판다. 그래서 애플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소비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이런 노하우가 애플스토어에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는 유통점의 영향력이 우리 생각 이상으로 크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물건들의 수에 비해 제품의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통업체는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팔릴 물건과 그렇지 않을 물건을 선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대형 유통점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제품을 어느 위치에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판매량이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정도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상점의 구석자리에 전시되어 있다면 팔리기 힘들다. 당연히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회사 간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애플이 직접 소매점을 운영할 생각을 한 것도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유통점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고육지책이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애플2 컴퓨터는 인기 상품이었고, 유통업체는 애플의 까다로운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까지 애플 제품을 공급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IBM PC가 등장하자 상황은 돌변했다. IBM PC가 매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고, 애플 제품은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점원의 권유를 뿌리치기 힘든데, 매장 점원은 IBM PC에 익숙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객을 IBM PC가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매킨토시가 팔리지 않자 매장은 더욱 애플 제품을 홀대했고,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설치해 놓지 않아서 작동도 되지 않는 매킨토시가 먼지만 잔뜩 낀 채 구석에 방치되었다. 오죽하면 그 광경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열혈 애플 마니아들이 매장에 전시된 매킨토시를 직접 깨끗이 닦고, 꺼져 있는 전원을 켜서 손수 소프트웨어를 작동시켰을까.


매장에서 찬밥대우를 받게 되자 스티브 잡스는 뭔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만 했다. 특히 구석에 손상된 채 방치되어 있는 매킨토시는 그 자체로 애플의 브랜드에 악영향을 주었다. 구겨진 애플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가만히 앉아서 희생자가 되느니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심 끝에 직접 소매점을 운영하기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가 이 어려운 도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선택한 인물은 의류업체 갭(GAP)의 CEO였던 미키 드렉슬러(Mikey Drexler)였다. 그는 하나의 매장 안에서 여러 의류 브랜드 상품을 팔던 당시의 관행을 깨고, 갭 제품만 판매하는 소매점을 운영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3년 5억 달러가 되지 않았던 갭의 매출은 그의 전략 덕분에 2000년에는 137억 달러로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마케팅과 소매점에 대한 노하우를 얻고자 애플의 이사회로 초대했고, 미키 드렉슬러는 컴퓨터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기꺼이 애플 이사회의 일원이 되어 주었다. 


또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 사업을 책임지고 실행해줄 인물로 론 존슨을 스카우트했다. 론 존슨은 타깃(Target)이라는 유통업체에서 근무했었다. 타깃은 월마트와 같은 할인마트 지점 방식을 추구했지만 회사 전체의 규모는 군소업체에 불과했다. 그는 갭의 직영점 운영전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타깃에 적용하였다. 패션업체가 디자이너의 명성을 이용하는 것처럼 론 존슨은 산업계에 유명한 디자이너를 끌어들여서 주전자와 같은 가정용품을 만든 후 타깃 브랜드로 상품을 판매했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타깃의 브랜드, 그리고 유통망이 합쳐져서 론 존슨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둔다. 


스티브 잡스는 론 존슨을 소매점 책임자로 임명하고 함께 애플스토어 전략을 세워갔다. 애플스토어가 실현하고자 하는 핵심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전략은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매장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하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의 다른 상점들은 고객이 제품을 쉽게 찾아서 빨리 계산을 하고 매장을 빠져 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애플은 좀 더 크게 생각해야 한다고 봤다. 두 번째 전략은 애플스토어를 통해서 고객이 주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는 바로 그 순간 상점과 고객 사이의 관계도 끝난다. 그러나 애플은 고객이 제품을 구입하는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간주하고, 계속해서 고객의 디지털 라이프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직영점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은 애플에서 제품을 만드는 방법과 똑같았다. 수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가면서 제품을 개발하듯이 본사 근처에 실험적으로 매장을 직접 만들었다. 몇 개월간의 노력 끝에 실험 매장이 거의 완성됐을 무렵 론 존슨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론 존슨은 애플스토어가 물건 파는 곳이 아니라 미래의 디지털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런 의견을 듣자마자 스티브 잡스는 크게 화를 내며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모두 포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고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단단히 화가 난 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론 존슨을 찾아온다.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말투로 론 존슨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론 존슨은 고객이 원하는 물건보다는 회사가 생각하는 제품별로 분류되어 있다는 문제를 깨닫고 있었다. 이는 고객 체험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에 위배되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와 론 존슨은 처음부터 다시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6개월에서 9개월이 더 걸려서야 애플스토어의 실내 디자인을 끝마칠 수 있었다. 애플스토어에서 제품과 관련된 공간은 4분의 1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고객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구성됐다. 이런 노력 끝에 애플스토어는 겨우 완성되었고, 정식으로 개장을 하게 된다. 


애플스토어에 대한 고객 평가를 조사하던 중 론 존슨은 한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애플스토어에 초대된 다양한 부류의 고객들에게 지금까지 받았던 최고의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물어봤더니 18명 중 16명이 호텔이라고 말했다. 호텔은 고객에게 아무런 물건을 팔지 않고 오직 고객에게 경험을 서비스하는 곳이다.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하자는 애플스토어의 전략은 호텔의 역할과도 여러 가지로 맞아떨어졌다. 론 존슨은 다시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애플스토어에서 호텔과 같은 친절한 느낌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고객들은 애플스토어 안에 바를 설치하라고 답해 주었다. 론 존슨은 이를 바탕으로 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지니어스 바(genius bar)’를 선보이게 된다.


지니어스 바는 고객의 삶을 풍족하게 한다는 애플스토어의 당초 취지를 완벽하게 구현한 장소이다. 기존의 컴퓨터 업계에서 고객상담은 전화로만 이루어졌다. 고객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의 이상증세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그런 컴퓨터 초보자가 전화로만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기존의 컴퓨터 업체들은 비용을 줄이고자 인도에 외주를 줄 정도로 고객상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애플은 고객과 얼굴을 맞대고 친절하게 상담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해낸 것이다.


 지니어스 바에서는 ‘지니어스’라고 불리는 컴퓨터 전문가에게 누구나 무료로 컴퓨터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지니어스 바는 단순히 애프터서비스를 받는 공간이 아니라 컴퓨터 전반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 론 존슨에 의하면 요즘 지니어스 바는 마치 스튜디오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애플의 맥용 소프트웨어인 아이 무비에 음악 넣는 방법을 배우거나 친구 결혼식에서 맥을 이용해서 DJ를 하는 방법을 상담받으면서 분위기가 마치 크리에이티브한 스튜디오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지니어스 바는 친절하게 애프터서비스를 받는 공간에서 어느덧 고객의 경험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곳으로 진화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를 오픈하면서 한 가지 위험한 도박을 한다. 대도시 지역에서, 그것도 누구나 한 번 가보면 금방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노른자위 땅 위에 매장이 들어서도록 했다. 땅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이는 초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도박은 결국 큰 성공으로 돌아왔다.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과감한 선택을 한 이유는 애플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애플스토어를 한 번 정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에 매장이 있다면 특별한 애정이 있지 않는 한 방문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 중심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애플스토어에 들어와서 매장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애플 제품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철저한 계산 아래 디자인된 만큼 막상 매장에 들어오면 애플에 호의적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Sillicon Alley Insider>의 기자인 헨리 블로젯(Henry Blodet)은 애플스토어에 처음 들어서자 마치 새로운 신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호의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스토어는 애플이 만들면 매장도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애플이 직영점을 연 시기는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가 대세였기 때문에 애플의 선택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다. 직영점을 운영하던 컴퓨터 회사 게이트웨이는 매장사업을 그만두려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더욱 애플을 부정적으로 봤다. 애플의 제품에 언제나 그랬듯이 <비즈니스위크> 같은 언론에서는 실패할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애플은 기존의 상식을 깨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집단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2001년 오픈한 애플스토어의 매출은 3년 만에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06년에는 분기당 매출이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8년에는 각 매장당 매출액이 2,800만 달러 정도를 기록했으며 제곱미터당 수익은 4,700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미국의 모든 소매점 중 가장 장사를 잘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2009년 애플의 전체 매출은 299억 달러였는데, 당시 애플스토어 매출이 66억 달러였을 정도다.


애플스토어에는 수치로만 드러나지 않는 다른 여러 장점들이 있다. 우선 애플스토어 자체가 애플의 광고판 역할을 한다. 애플을 전혀 모르던 사람도 아름답게 꾸며진 매장을 지나가면서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호감을 갖게 된다. 또한 애플스토어의 지니어스 바 덕분에 컴퓨터와 가전업체 중에서 서비스가 최고인 회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충성도 높은 애플 마니아들은 마치 성지를 순례하듯이 애플스토어를 방문해서 애플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고 마니아들끼리의 사교 공간으로 활용한다. 또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소비자들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제품개발 단계에서는 시장조사를 별로 하지 않는다. 대신 시장에 출시한 후에는 고객들의 반응을 세밀하게 체크해서 차세대 제품에 이를 반영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애플의 제품은 그 어떤 기업의 제품보다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 2009년 미국 소비자 만족도 조사(American Customer Satisfaction Index, ACSI)에서 애플 컴퓨터는 PC 분야 1위를 기록했는데, 델컴퓨터와는 9점, HP와는 10점이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JD파워가 발표한 스마트폰 만족도에서도 810점으로 1위를 기록했는데, 경쟁사들이 700점대 초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엄청난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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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