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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는 2학기에 교양 과목으로 일본어를 선택하여 수강하고 있었다.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수는 자국 말 못지 않게 한국말을 잘하는 일본 사람이었고 수업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다정하고 농담도 잘하는 다정다감한 교수였지만 수업시간에 있어서 만큼은 조금의 양보와 타협도 없던 사람었다. 수업시간중에 조금이라도 떠든다던가 졸거나 할 때는 강의실 밖으로 쫓아내는 건 당연지사였고, 5분 이상 지각한 학생들에 대해서도 아예 강의실 안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을 뿐더러 학점도 웬만해선 B이상을 주지 않기로 학교전체에 소문난 학점짠 교수로 유명했다.

진우가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교양 과목으로 일본어를 선택한 건 유키가 이 강의를 듣는다는 정보를 중희에게서 입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우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게임 만드는 기술을 존경했고, 기회가 생긴다면 슈퍼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로 유명한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와 직접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일을 같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키는 중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고 워낙 적응력이 강한 아이었는지라, 일본어를 한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유키는 바쁜 방송활동으로 학점 따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잘하는 일본어로 학점을 만회하려는 것 같았지만 유키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유키와 진우가 신청한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수는 결석 3번 이상한 학생에겐 시험을 아무리 잘 친다 한들 절대 D이상은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키는 연예계 생활을 하느라 학교에 자주 나오질 못했다. 교수는 일본어의 한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한자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중국어지만 일본어를 공부할 때는 중국이란 나라를 잊어야만 한다. 일본어의 문장은 지난번에도 이미 배웠다 싶이 히라가나와 한자를 섞어 쓰며 간혹 히라가나, 한자, 가타카나를 섞어서 쓰기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에.....또..... 그리고……"

교수가 한창 열이 올라 설명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진우를 부르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다행히 진우는 공포의 눈동자라고 불리는 교수의 눈과 마주치는걸 두려워 했던 터라 강의실 맨 끝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서 교수에게까지는 진우를 부르는 소리가 닫질 않았다. 진우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 뒷문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누군가 문을 살짝 열고 한쪽 눈만 내놓은 상태로 낮은 포복의 자세로 눕다시피 하고 있었다. 진우는 한쪽 눈에서 풍겨오는 애처로움을 보고 그것이 단번에 중희 라는걸 알아볼 수 있었다. 중희는 진우와 눈이 마주치자 교수에게 혹시라도 들릴 까봐 겁먹은 듯 작은 소리로 소근거렸다.

"야 진우야 출석 불렀냐?"

진우는 교수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 아직 수업끝날쯔음에 하려나봐…."

"음…… 그것 참 다행이군…. 이번에는 내가 부탁좀 할게……."

진우는 중희의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도 단번에 무엇을 부탁하는지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검지와 중지를 활짝펴 브이자를 만들어 보였다. 중희는 진우의 브이자에 피식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바로 중희는 건투를 빌기라도 하듯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자신감을 나타내 보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진우는 중희의 엄지손가락을 보며 갑자기 인상을 바꿔 이마를 찡그린 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다시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강하게 나타냈다. 중희는 진우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강조하자 심각한 표정으로 인상을 더욱 찡그렸다. 중희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쓸어 만지며 짧은 생각에 잠겼다. 중희는 고민 끝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내 포기한 듯 브이자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진우는 그때서야 만족스럽게 웃으며 두꺼운 책 한권과 필기도구를 꺼내 비어있는 옆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남들이 본다면 이들이 주고받는 사인이 중희가 지각처리 없이 강의실로 무사히 들어오는 것을 놓고 건투를 빈다는 모션으로 봤을 테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진우는 자신의 도움의 대가로 손가락 두 개를 펴 점심 두끼를 제안 한 것이었고, 중희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운 모션으로 두끼는 무리라며, 한끼로 합의를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브이자를 강조하여 뜻을 굽히지 않았고 궁지에 몰린 중희는 어쩔 수 없이 브이자를 추켜세워 진우와 극적 타협을 본 것이었다.

진우가 책상 위에 책들과 필기도구를 얹어놓자 중희는 기다렸다는 듯 낮은 포복 자세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처럼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갈려는 찰나 누군가 중희의 어깨를 잡으며 활달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혹시 지금 일본어 수업 끝났나요?"

중희는 마음에 준비를 하고 강의실로 들어 갈려는 찰나 누군가의 의해서 저지 당하자 짜증스럽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중희는 무겁게 고개를 돌려 상대를 쳐다보며 깜짝 놀랐다. 유키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다급한 듯 초조하게 서있었던 것이었다. 중희는 유키의 아리따운 모습에 짜증스러움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중희는 금새 표정을 바꿔 간신처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오~~ 유키구나?"

유키는 처음 보는 사람이 존칭 없이 말을 놓으며 아는척 말을 건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희는 유키의 태도에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 중희는 풀이 죽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야... 나…. 중희라고 얼마 전에 미팅에서 만났었잖아~~~~"

유키는 바쁜 스케줄로 인해서 2학기 개강을 하고서도 3주가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일본어 첫 수업을 듣기 위해 온 것이었기 때문에 같은 일본어 수업을 들었지만 미팅 이후에 중희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유키는 중희의 설명을 듣고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살며시 흔들었다.

"아…… 그때 그……미팅에서 말이 많던….. 중희였구나 미안 너무 갑작이라.... 그런데 여기서 뭐해?"

"나도 지금 막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작전을 협의중에 있었지"

"작전?"

"응 아직 출석은 부르지 않았지만 지금 들어가 봐야 출석 체크도 안 해주고…… 오히려 교수님에게 찍힐 뿐이니깐...... 이럴때 일수록 치밀한 작전이 필요하거든….."


중희는 거만하게 웃으며 걱정 없다는 듯 열린 문틈 사이로 진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진우 옆에 책하고 필기도구들이 놓여있는 빈자리 보이지?"

유키는 진우 얘기가 나오자 반가운 듯 웃었다. 유키는 진우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아….. 저기 구석에 있는 자리 말이지?... 근데 진우도 일본어 수업 듣나봐?"

중희는 유키가 단번에 진우를 알아보자 섭섭한 마음에 앞서 부러움을 강하게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키는 중희의 한숨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재촉하여 물었다.

"근데 빈자리는 왜?"

중희는 점수 딸 기회라 생각했는지 거만하게 웃으며 자신 있게 설명했다.

"위장이지 위장~~~~ 저렇게 빈 자리에 실제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 처럼 만들어 놓은 다음에 그냥 자연스럽게 강의실에 들어가면 교수님은 잠시 수업 중에 화장실에 다녀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을꺼란 얘기지, 뭐 혹시나 의심나서 뭐라 지껄여도 옆에서 진우가 한마디 거들어 줄 테니 만세 오케이 아니겠어~~~~~~"

중희는 사실 모든 일에 최소의 노력의 최대의 결과를 뽑아 내는데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면이 있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도 소스의 용량은 최소로 하면서 성능은 최고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새롭게 개발하는 정석에서는 약했지만 이미 완성된 프로그램의 속도개선을 위한 변칙적인 프로래밍에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었는데 역시 학교 생활에서도 그런 성향은 여실이 드러난다.

원래 중희는 학교 수업에 각종 지각과 결석을 하면서도 학교성적은 좋은 편이었는데 이는 교수님의 눈을 피해서 마치 수업은 확실하게 출석한것처럼 보이는 각종 편법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희는 개강이 시작된 첫번째 주와 둘째주는 마음 편안하게 결석을 하였다. 강의 초기에는 강의선택을 변경할 수 있는 기간이라서 교수들 대부분이 어차피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강의 첫 번째 주에는 출석부는 임시이고 강의 진짜 출석부는 수강신청변경기간이 지난 다음에 나오기 때문이다. 교수가 출석을 부른다고 해도 원래 수강신청을 변경하려 했지만 인원초과로 변경못했다고 핑계를 되면 교수도 다 이해를 해준다는 걸 중희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포트에 있었서도 이미 선배가 과거에 써놓았던 족보를 입수해서 단 30분만에 약간의 수정을 거치고서 A플러스를 받아낼 정도로 꾀를 잘내고 영악한 면이 있었다.

유키는 이러한 편법의 달인 중희의 설명에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는지 손바닥을 치며 감탄했다.

"와~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정말 기발한 생각이다..~~~"

유키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빙긋 웃으며 자신이 매고 왔던 가방을 중희에게 건네며 사과했다.

"정말 고마워 중희야~~~"

중희는 유키가 밑도 끝도 없이 사과를 하며 가방을 건네주자 의아해 하며 눈을 깜빡 였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유키의 행동에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유키는 문을 드르륵 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 진우가 마련해 놓은 자리에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앉으며 연기자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교수는 칠판에 무엇인가를 끄적이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힐끗 쳐다보고는 유키의 당당한 태도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중희의 의도대로 화장실 다녀온 학생 정도라 생각하고 있는듯 아무런 테클도 걸지 않고 계속하여 수업하는 데만 열중하기 시작했다. 중희는 유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손에 들린 유키의 가방과 유키가 앉아있는 자리를 번갈아 멍하니 쳐다봤다. 진우는 자신이 마련해 놓은 옆자리에 중희가 아닌 유키가 들어와 앉아버리자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중희에 대한 걱정 보다도 오랜만에 보는 유키의 얼굴에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기 때문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 유키…. 오랜만이네?"

유키도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 최근에 많이 바빠서 학교 나오기가 좀 어려웠어… 일본어 수업시간에 만나다니 좀 의외네…. 진우도 일본어에 관심이 있나봐?"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냥 조금….. 배워두면 나중에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

진우와 유키는 교수가 눈치 채지 않을 정도로 소곤거리며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중희는 강의실 밖 문틈 사이로 이들의 미소를 짓고 다정하게 대화 나누는걸 지켜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중희는 이들 사이에서 흐르는 다정한 기류가 부러운 한편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중희는 무슨일이 있어도 그들의 기류속에 자신도 끼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필사적으로 손발을 저어가며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 주길 바랬지만, 진우와 유키는 어느덧 중희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은 듯 자신들의 대화 속에만 빠져있었다. 중희는 20분 여간 손짓 발짓을 하다 이내 지쳐버린 듯 풀이 죽어 자신이 속해 있는 게임 동아리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진우와 유키는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웠지만 진우의 농담 어린 말들에 유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는 바람에 교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몇 번인가 눈치를 줬다. 이들은 더 이상 게기지를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수업을 열중하여 듣기 시작했다. 한참 수업에 열이 올라 있을 무렵 갑자기 어디선가 핸드폰이 소리가 울려되며 열변을 토하는 교수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진우는 유키를 비롯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쏠리자 즉시 핸드폰을 꺼내 폴더를 열었다 닫아 전화를 끊고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진우는 모범생 인양 칠판에 적힌 모든 것을 노트에 옮기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때 교수는 "학생" 이란 말로 진우를 불렀지만 진우는 못들은 척 오로지 필기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유키는 진우의 의연한 태도를 넘은 능청스러움에 웃음이 나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키득거렸다. 교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더욱 큰소리로 "학생, 학생" 이라고 반복해 진우를 불러 주의를 준뒤 강의실 밖으로 매몰차게 내쫓았다. 진우는 끝까지 버티려고 했지만 교수의 성격을 아는 터라 책과 필기 도구들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유키는 진우가 책들을 하나하나 챙기는걸 지켜보다가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진우야……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수업 끝날 때쯤 꼭 일로 다시 와 봐……"

진우는 유키가 가방 없이 강의실로 들어왔던 터라 지금 유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책과 필기도구를 챙겨서 갖고 나갈 수가 없었다. 진우는 책과 필기 도구를 돌려 받기 위해서라도 다시 돌아와야 했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그래, 이따 보자……."

진우는 교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진우는 오랜만에 유키를 만나 기분이 좋았지만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휴~ 이제 수업을 3번째 들은 건데 벌써 두 번째 쫓겨났군 이제 남은 건 3번인가?"

진우는 일본어 강의가 끝나려면 아직 1시간여가 더 남았고 현재는 가입된 동아리도 없었기 때문에 마땅히 시간 때울 곳이 없었다. 진우는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게임 프로그래밍이나….기획 관련 책 이나 찾아서 읽어야 겠다….."

진우는 10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을 때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진우는 핸드폰 소리가 3번 울릴 때를 기다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나야~~ 오빠 동생 유리…"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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