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년은 저녁의 노을 빛으로 물들어 있는 놀이터의 작은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언제부터인가 한자리에 흐느끼고 있는 소년을 지켜 봐왔다. 소년은 며칠 동안의 울음으로 드디어 눈물 샘이 말랐는지 오늘은 우는 대신 한없이 쓸쓸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소녀는 아직 아이였지만 소년이 슬픈 생각 속으로 가라 앉아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소녀의 시각은 소년이 그저 울보쟁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그랬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며칠이 지날 때까지 소녀는 어느새 소년을 동정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소녀는 소년이 슬픈 일은 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소녀는 소년이 더 이상 울지 않고 항상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어렸지만 슬픈 추억은 그것을 잊을 때까지는 사람을 괴롭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녀는 소년에게 도움이 된다면, 위로해 주고 싶었다. 아니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놀이터는 어느덧 점점 어두워져 아이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녀는 마침내 결심한 듯 소년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소년을 불렀다.
"…..얘?????"
소년은 쓸쓸한 표정, 흐릿한 눈동자로 허공만을 응시할 뿐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소녀는 소년이 간단히 자신의 존재를 무시해버리자 얼굴을 붉혔다. 소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을 불끈지어 보이며 다시 용기를 내었다.
".....얘?"
소녀의 얼굴은 어느새 굳어져 있었다. 소녀는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지만 소년이 자신의 친절을 짓밟아버리자 울컥해버렸다.
"넌 남자라면서 칠칠치 못하게 왜 맨날 우니? 창피하지도 않니?"
소녀는 소년이 자신의 도발에도 여전히 없는 사람취급을 하자 아미를 상큼하게 찡그리며
손을 허리에 집고 날카롭게 째려봤다. 소녀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쉬고 소년을 뒤로 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말없이 있던 소년은 흐릿해진 눈동자로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어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셨어…."
"…...나만 남겨두고, 돌아가셨어…..."
소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소녀는 소년의 말에 고개만 돌려 소년을 쳐다봤다 소년의 눈동자에 여전히 힘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소녀는 어느새인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소녀는 어렸기 때문에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알지 못했지만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왈칵 흘러내리고 있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소녀는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그것을 무마시키기 위해 흔히쓰는 방법을 쓰듯 그렇게 울고 있었다.
소년은 흐릿한 눈동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조그맣게 말을 꺼냈다.
"…... 넌….. 왜 울지?"
소녀는 눈물이 떨어지는 얼굴을 손으로 쓱쓱 비비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 나.. 난 울지 않았어"
소년은 소녀의 눈물을 가만히 지켜보다 귀찮 다는듯 간단히 마무리를 지어버렸다.
"... 그래?"
소녀는 소년의 냉정한 반응에 이상하게도 더욱 코끝이 찡해 오더니 눈물 방울이 더욱 굵어져 쏟아졌다. 닦아도 닦아도 넘쳐나는 눈물에 당황하는 소녀의 존재를 무시한채 소년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며 쓸쓸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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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는 전화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진우의 뺨에는 눈물 자국이 말라 있었다. 진우는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선 유진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흘러나와다.
"응 나 유진인데 오늘 시간 있니?"
진우는 유진의 목소리를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은 있는 게 아니라 공존한다고 하는 거야…... 시간이라면 많이 공존하지……"
유진은 진우의 어설픈 철학이 담긴 대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호, 그래…….. 많이 공존한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시간은 왜?"
"응 공짜 영화 표가 생겼는데 같이 보러 가자고……"
진우는 웃으며 말했다.
"어라? 혹시 지금 나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거니?"
"데…...데이트는.... 무슨…... 태우 오빠한테 먼저 같이 보자고 했는데 태우 오빠가 바쁘다고 해서…... 그래서.... 싫으니?"
진우는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일이 대타가 되버리자 씁쓸하게 웃었다.
"설마….. 싫을 리가 없잖아….. 어디로 가면 되는데?"
"영화 시작이 5시니깐 4시쯤 어때? 장소는 바그다드 카페 알지 거기서 만나자"
"오케이 4시 바그다드 카페"
………………
…………………
………………………
진우는 거울을 보고 자신이 3일이나 머리를 감지 않았다 는걸 실감할 수가 있었다. 진우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유진과의 약속인데 모자로써 커버하기에는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머리를 감았다. 진우는 드라이기를 써서 머리를 올려 봤지만 머리가 뜨기만 하고 자신이 생각 하는 스타일로 만들어지지 않자 그냥 앞으로 빗어서 왼쪽으로 살짝 넘겼다. 진우는 거울을 보고 중얼거렸다.
"짜식 멋있는데……"
진우는 3시에 집에서 나와 바그다드 카페로 향했다. 진우의 집에선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마음이 설레어서 미리 약속 장소에 나가 있기로 했다. 진우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사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는걸 확인하고 건너려는데 반대편에서 츄리닝을 입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사람이 태우라는 걸 확인하고 인사를 했다.
"태우 선배 안녕하세요??"
태우는 진우를 확인하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응 그래….."
진우는 유진이 태우에게 영화를 보자고 했다가 태우가 바쁘다고 거절했던 통화 내용을 기억하고 말했다.
"태우 선배 여기서 뭐해요?"
"보면 모르냐 신호등 건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바쁜 일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무슨 헛소리야 집에서 잠자다 배가 고파서 도시락 사러 잠깐 나온 건데….."
태우는 도시락을 담은 봉지를 들어 보였다. 진우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한 듯 물었다
"유진이 말로는 같이 영화를....."
진우는 말을 하다 말고 신호등이 깜빡 거리는 걸 보고는 급하게 자신이 가려던 길로 뛰었고 태우 역시 진우와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태우는 진우에게 특별한 용무가 없던 터라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고는 자신의 가던 길로 가버렸다. 진우 역시 뭔가 이상했지만 태우를 붙잡아 가면서까지 묻고 싶을 만큼 궁금하지는 않았고 태우의 경우 잠자는 것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바그다드 카페로 향했다.
진우가 바그다드에 도착하니 시계는 3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우가 자리를 잡자 종업원이 주문을 받았다. 진우는 콜라를 시키고는 유진을 기다렸다. 유진은 3시 40분에 이르러서하얀색 원피스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유진은 진우에게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머~ 일찍 나왔네?"
"당연하지~~~ 누구와의 약속인데……"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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