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어 게임 시리즈의 기획자 스즈키 유!

게임 2008/12/07 13:24 Posted by 멀티라이터

             




"오늘 실패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실패했다고 해서 내일도 모레도 계속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게임 개발이라는 것은 대부분 실패의 연속입니다. 실패가 거듭되다가 포기하기 직전 성공하는 것이죠.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붑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스즈키 유는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로 일약 세계적인 게임 크리에이터로 도약했다. 하지만 세계최초의 아케이드 게임인 “행온”을 1985년에 발표하면서 이미 세가 내에서는 최고의 게임 크리에이터로 인정받고 있었다. 행온은 그가 1983년에 세가에 입사해서 단 2년 만에 이루어놓은 성과이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행온에서 그는 프로그래밍과 기획을 같이 담당하여 게임의 개발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다.  그는 기획자로써도 대단하지만 프로그래밍 능력도 매우 훌륭해서 프로그래밍팀이 문제가 있어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할 때는 그가 몇 시간 만에 그 해결책을 찾아주기로 유명하였다. 이러한 프로그래밍능력과 기획능력은 세가 내에서 최고의 앨리트 집단으로 불리 우는 AM2 연구소를 최고의 팀웍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쉽을 발휘하는데 강력한 발판이 된다.



원래 최고의 천재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팀을 이루게 되면 자기 잘난 맛에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팀웍에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AM2연구소를 세계최고의 게임 크리에이터 집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AM2 연구소는 명실공히 세계에서 최고의 게임 테크놀로지를 구현한 팀으로 이 팀의 구심점인 그는 단지 히트한 게임이 아니라 AM2 연구소의 존재만으로도 그를 충분히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이다.


또한 그가 게임계에 끼친 최고의 업적을 뽑으라고 하면 아케이드 게임기의 하드웨어의 발전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것이다. 다른 게임 개발자들이 이미 시장에 나온 플랫폼을 기반으로 게임을 개발한다면 그는 애초에 하드웨어의 제작에도 직접 관여하였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다른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이미 만들어진 기계의 성능을 극한으로까지 이끌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면 그는 게임기계를 만드는 데서부터 이미 그의 능력이 발휘되어 빛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기계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던 그는 자신이 게임을 만들 때는 세계최고의 하드웨어 성능을 자랑하는 아케이드 기판을 먼저 제작하고서 나중에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서 제작비가 상승하여 예산을 초과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세가의 경영진과 그 사이에는 항상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회사의 예산에 대해서 고민하라고 하면 그는 자기의 월급을 깎으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회사의 경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세계최고의 아케이드 머쉰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성공적이었다. 아웃런과 스페이스 헤리어 그리고 애프터 버너를 연속적으로 빅 히트시키면서 세가가 세계 최고의 아케이드 게임 회사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명성 덕분에 세가는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게 되는 상황이 된다. 그것이 나중에는 세가를 옥죄게 되었지만 적어도 세가가 세계최고의 게임회사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그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비행기와 전투기로 유명한 우주항공 업체인 록히드 마틴사와의 제휴는 그가 얼마나 하드웨어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기존 게임에서 사용되는 컴퓨터 하드웨어가 아니라 비행기 시뮬레이션에 사용되는 수 천 만원짜리 컴퓨터 기계를 아케이드 게임기에 접목함으로써 세가는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었다. 록히드 마틴이 비행사들의 교육을 위해서 사용되는 가상 시뮬레이션 기술을 세가에 제공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모델1이다.  모델 1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동시 발색수 1600만색에 1초당 18만 폴리곤을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3D 아케이드 게임 기판이었다. 가격만도 수천 만원을 호가했던 이 기계로 그는 역시 세계 최초의 3D 레이싱 게임 버추어레이싱과 과 세계 최초의 격투 아케이드 게임 버추어파이터등을 발매하면서 명성을 쌓아간다.  이 덕분에 세가는 일본내에서 아케이드 게임시장 점유율 70%를 기록하면서 명실공히 일본 최고의 업체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공로들이 높이 평가 받아서 스즈키 유는 2003년 미국 인터랙티브 아츠앤 사이언스 학회(The Academy of Interactive Arts and Sciences)에서 선정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세계최고의 기술을 자랑했던 AM2 연구소

스즈키 유의 AM2 연구소는 가정용 게임이 아니라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세계최고의 기술력으로 세계최고의 게임을 개발한다는 그들의 좌우명 되로 AM2 연구소는 버추어 파이터 이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최고의 게임 개발팀으로 공인 받게 된다. 세가가 AM 연구소의 이러한 명성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부진했던 세가의 경영진은 AM2연구소에 가정용 게임기인 드림캐스트 전용으로 게임을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AM2 연구소는 이로써 첫 번째 가정용 콘솔 게임 전용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사실 이것 때문에 AM2 연구소에서는 여러 가지 논쟁을 벌여야 했다. AM2 연구소가 콘솔 전용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는 것은 하드웨어의 제약 없이 무조건 세계 최고 기술로 세계최고의 게임을 만든다는 기본 철학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즈키 유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지원해줄 것이라는 말에 세가 본사의 제안을 받아 들이게 된다.



세가는 소니와의 게임기 전쟁에서 새턴이 플레이 스테이션이 밀린 것은 파이널 판타지7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500만대까지 판매량이 비슷했지만 롤플레잉 게임 대작 파이널 판타지7 이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이널 판타지 7을 능가하는 드래곤 퀘스트7은 새턴으로 개발 중 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소니에게 빼앗기고 결국 세가는 새로운 차세대 게임기 개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다른 회사보다 먼저 차세대 게임기인 드림캐스트를 개발하는 것 자체가 세가는 게임기 전쟁에서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었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놓은 최후의 카드였다. 드림캐스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작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데 다른 게임개발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결국 세가 경영진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 연구팀인 AM2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세가는 파이널 판타지를 능가하는 게임을 개발해달라고 스즈키 유에게 간청하였다. 결국 그는 세가경영진의 요청을 받아 들여서 드림캐스트 전용 게임을 프로젝트 버클리라고 명명 하면서 비밀스럽게 게임 개발을 진행한다. 처음 세가 경영진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그가 버추어 파이터의 캐릭터를 활용한 버추어 파이터 RPG를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의미에서 그 말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 버클리는 버추어 파이터를 개발하면서 생각했던 게임이기 때문이다. 93년도에 스즈키 유는 실감나는 격투 액션 게임 개발을 위해서 실제 무술을 체험하고 수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에 갔었다. 그는 버추어 파이터처럼 무술 그 자체에 비중을 둔 것 이외에 스토리가 있는 무술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있는 버추어 파이터가 초석이 되어서 발전한 것이 바로 프로젝트 버클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 버클리는 기존의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장르의 게임으로 기획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기획한 게임을 팀원에게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심지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동영상까지 제작해서 팀원간에 의견을 조율해 갔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프로젝트 버클리는 쉔무로 게임 타이틀을 정하게 되고 장르는 F.R.E.E라고 하였다. F.R.E.E는 Full Reactive Eyes Entertainment의 약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반응하는 완전한 엔터테인먼트 게임이라는 뜻이었다. 게임 장르를 F.R.E.E로 정한 것은 게임 역사상 최고의 자유도를 선보이겠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쉔무는 이를 위해서 현실세계와 똑같은 세계를 게임속에 창조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모델링했으며 NPC(Non Player Character)만 해도 천명이 넘었다. 쉔문의 NPC는 단순히 정해진 길만 왔다갔다하면서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쉔무의 NPC는 모두 인공지능으로 구현된 자신만의 삶과 스케쥴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기본 게임 스토리만 있을 뿐 게임 내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였다. 심지어 게임에 등장하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할 수도 있고 도박장에 들어가서는 도박도 할 수 있다. 또한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과 아이템들은 실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결국 쉔무라는 게임 안에 우리의 실 세계를 그대로 구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세가는 무려 700억 원 이나 되는 돈을 투입하여 제작했다. 쉔무는 그전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게임이었다. 매주 공개되는 스크린샷의 그래픽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그래픽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쉔무에 열광하였다. 버추어 파이터로 세계적인 게임 크리에이터로 명성을 쌓은 그가 자신 있게 내놓는 작품이니 사람들의 기대치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다. 어떤 사람도 쉔무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감 속에서 쉔무가 1999년 12월에 전격적으로 발매된다. 하지만 쉔무의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일본에서 40만장 해외에서는 6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 실패를 기록하고 만 것이었다. 이 결과는 세가로써는 치명적이었다. 드림캐스트의 최고 킬러 소프트로 평가받던 쉔무의 몰락은 가정용 게임기 시장 철수라는 극단의 사태로까지 몰고 갔다.




 
쉔무의 실패는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우리가 사는 실 세계를 그대로 게임 속에서 한번 구현해보겠다는 무리한 과욕이 불러온 것이었다. 현실과 똑 같은 세계를 게임에 구현했다고 누가 그것을 좋아하겠는가? 우리는 항상 실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뭐 하러 실 세계와 똑 같은 세상을 게임 안에 구현했다고 해서 누가 게임을 구매 하겠는가? 쉔무는 확실히 기존의 게임과는 확실히 다른 대작이었지만 문제는 재미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은 게임이었다.  궁극의 자유도를 가지는 윌 라이트(심즈의 개발자)의 게임도 항상 게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게임제작의 제 1원칙으로 재미를 항상 염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즈키 유는 게임의 세계관과 시스템에 매달리면서 게임의 재미를 잠시 잊은 것이 아닌가 싶다. 게임유저가 게임을 실행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이 결국 게임성 자체를 감소시켰던 것이었다.  결국 쉔무의 실패로 회사자체가 엄청난 위기에 빠져들었지만 스즈키 유 본인도 큰 고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AM2연구소와의 결별이었다. 그것은 그가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세가의 가장 유력한 차기 사장 후보 중 하나였던 그는 결국 강제로 쫓겨나다 시피하여 디지털 렉스라는 회사로 분사가 되어 좌천당하고 말았다. 세가의 자회사이지만 디지털 렉스의 자본금 10억원도 스즈키 유 본인이 부담해야 할 정도로 세가로부터 찬밥 신세를 받게 된 것이었다.


 이런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 것은 2003년도 미국 인터랙티브 아츠앤 사이언스 학회이다. 그는 동양인으로는 세 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면서 그 동안의 구겨진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다.

스즈키유의 게임 개발 철학

스즈키유는 게임 크리에이터 중에서 가장 다재 다능한 사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미술 전시회를 열 정도로 수준급의 그림실력을 보여준다. 이미 AM2연구소에서부터 프로그래밍 실력은 최고로 인정 받았다. 그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속도를 즐기는 스피드 광이기도 하다. 세가에서 페라리라는 말이 나오면 스즈키 유를 연상할 정도로 동급의 이미지로 취급 받을 정도이다. 모터 스포츠외에 그가 즐기는 취미는 와인과 당구이다. 이미 당구는 쉔무에서 게임으로 구현했고 그는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게임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농담 삼아 말한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가꾼 훌륭한 가장 중에 하나다. 그는 집에서 아이들과 하는 게임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일로써 게임을 해야 할 때가 괴롭다고 말 할 정도다. 그가 생각하는 게임이란 하나의 놀이자 취미이고 문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오히려 게임을 하는 것보다 게임을 만드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게임이 영화와 같은 길을 걸으리라고 생각한다. 영화계가 초기에는 자본과 배우 그리고 연출가에서부터 모든 스탭들을 자기 회사에 소속시킨 후에 기획단계에서 제작 그리고 유통까지 모든 것을 담당했던 점을 상기해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배우나 연출가 그리고 스탭들은 영화에 따라서 자유롭게 헤쳐 모이기를 하고 있다. 또한 영화사는 현재 유통만 담당하고 기획사와 제작사도 분리되었다. 게임도 결국 작품에 따라서 헤쳐 모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스즈키 유는 영화 DVD만 300개가 넘을 정도로 광적인 영화팬인데 영화와 게임의 미디어 믹스를 통해서 새로운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가 탄생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가 게임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 몰입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게임을 개발하는 좋은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가 생기면 그림으로 그려서 생각을 표현한다. 아이디어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림을 그리면서 그것을 구체화 한다고 한다. 그는 게임을 개발하는 후배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말한다. 또한 게임 개발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선 게임을 개발하는 자기 자신이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하다고 충고한다.



안녕하세요. 작가김정남입니다. ^^;; 저의 블로그에서는 게임계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세계최고의 게임크리에이터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래 지금까지 제 블로그에 연재한 세계최고의 게임크리에이터들의 연재목록을 링크하오니 참고하시구요. 앞으로 자주 놀러오세요. 저는 멀티라이터 김정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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