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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극도로 흥분한 듯 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을 더듬었다. 주현은 고모를 한번 쳐다보고는 겁에 질려 울먹거리는 유리를 가볍게 안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만 하세요…… 어머니! 유리가 잘못 말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꼬마아이도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함부로 해선 안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머닌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진우는 고아가 아니고. 나와 내 아내의 아이란 말입니다. 내 아이와 아내를 그런식으로 모욕하시는건 나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밖에 받아 들일수가 없습니다……"

"그래 이놈아~! 내 진작 부터 너를 호적에서 지워버렸어야 했다. 이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여자 때문에 집을 버리고 나가더니 이제는 지 애미를 훈계 하려 들어?"

주현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듯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우와 유리를 끌어안고 몸을 돌렸다.

"주현아 네가 참아! 여기까지 왔는데 아버지는 보고 가야 할 것 아니야? 앞으로는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얼굴이나 한번 보여드려ㅍ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너를 낳아준 아버지 핏줄 아니니? 진우하고 유리는 내가 데리고 내려가 있을 테니깐
아버지 일어나시면 얼굴이나 보여드리고 내려와 알았지?"

고모는 주현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진우와 유리에게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잠깐 나가서 기다릴까?"

진우가 주현의 동의를 구하듯 바라보자 주현은 여전히 상기된 붉그락한 얼굴을 자그맣게 끄덕여 보였다. 고모는 정원 좌측 끝에 위치한 하얀색의 작은 벤치에 진우와 유리를 데리고 나왔다. 고모는 이들을 친척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곳으로 데려 갔다간 분명히 안 좋은 일이 꼬일것만 같아서 일부러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고모는 진우와 유리에게 이것저것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다가 주현과 노인의 사이가 못내 걱정이 되는 듯 2층 건물쪽을 힐끔 거렸다.

"금방 올테니깐 여기서 잠시만 놀고 있거라……"

고모는 빙긋 웃으며 말을 하고는 집안으로 사라졌다. 고모가 사라지자 한없이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우를 유리가 위로했다.

"오빠 너무 신경 쓰지마 아빠가 여기 오기 전에 당부했었잖아, 성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니깐 무슨 말을 듣더라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라고…… 괜히 신경 쓰지 말어 오빠, 오빠가 기분 상하면 우리 손해고 우리가 지는 거잖아, 그냥 웃어넘기자 오빠 응? 응? 오빠?"

유리는 진우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몸을 간질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응? 응? 이래도 대답안할꺼야 응? 오빠아!"

"됐어…… 알았으니깐 그만해.. ……"

진우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진우의 웃음은 입만이 웃고 있을 뿐 표정은 안쓰러울 정도로 어두웠다. 유리는 슬픈 생각 속으로 가라앉아 있는 진우의 모습에 자신의 기분도 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진우보다 두어 살 많아 보이는 제법 귀공자 스타일의 두 녀석이 나타나 말을 주고받았다.

"삼촌도 참... 용케도 고아를 맡아 기를 생각을 다했네. 고아원에 맡겨버리면 그만인데 말이야……"

"내말이 그말이라니깐……"

진우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한 녀석은 턱시도 차림에 덩치가 컸으며 다른 한 녀석은 진우와 몸짓이 비슷했고,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나 있었다. 진우는 고아라는 소리에 증오의 눈빛으로 바뀌어 쳐다보았지만 또 다시 자격지심으로 인한 우울함 속에 빠져들었다. 한편으론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 사라져 버리고만 싶었다. 녀석들은 진우의 눈빛을 받으며 흠칫 했지만 수의 우월을 믿는지 여전히 나불거렸다.

"저 애는 자신의 처한 처지도 잘 모르나보지 삼촌이 너무 기를 살려줘서 자기도 이 집안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멍청하게... 키워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할 것이지 건방지게 째려 보는것 좀 봐 저 눈빛 진짜 재수 없다. 아침에 먹은 밥이 다 넘어올 지경이야……"

진우가 힘 없이 고개를 다시 떨구자 보다못한 유리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무슨 짓들이야? 너희들 말이면 단줄 알아?"

두 녀석중 여드름이 많이 난 녀석이 유리의 귀여운 모습에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귀엽게 생겼는데 성질 하번 고약하군, 촌수로 난 너의 아저씨 뻘이란 말이지…… 존대말을 쓰는 게 좋을걸?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저씨된 입장에서 네 버릇을 고쳐주지 않을수 없지……"

"난 너희들과 촌수 따지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어서 썩 사라져버려……"

여드름이 많은 녀석이 아니꼽다는 듯 코방귀를 끼며 말했다.

"쳇…… 여긴 우리집이라고 꺼질려면 너희들이나 꺼지는게 어때?"

"안 그래도 아빠가 나오면 무릎 끓고 붙잡아도 갈테니깐 신경끄시지, 누가 너희들을 상대 해주기나 할 것 같어? 이런 지저분한 집에는 더 있으라고 해도 있기 싫다네……"

두 녀석은 얼굴을 찌푸리며 서로 쳐다보더니 유리를 밀쳤다.

"뭐야~~~~~ 이 기집애가 좀 귀엽게 생겨서 봐주니깐 못하는 말이 없네……"

유리는 녀석들이 미는 힘에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찌으며 넘어졌다. 두 녀석은 넘어진 유리를 내려다 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때 갑자기 진우는 덩치큰 녀석을 주먹으로 힘껏 때리며 넘어뜨리고는 말에 올라타듯이 올라타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퍼억! 퍽~!"

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내 동생 건드는 녀석은 그 누구도 용서 못해~""내 동생 건드는 녀석은 그 누구도 용서 못해~……"

여드름이 많은 녀석은 진우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며 말리거나 도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허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유리는 그들에게 밀려 엉덩방아를 찧기자 왠지 서러운 마음에 울먹거리고 있다가 진우가 갑자기 나타나 한 녀석을 때려 눕히자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진우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멈칫거리던 녀석이 정신을 차렸는지, 진우를 떠 밀치고는 진우에게 주먹을 날렸다.

진우는 그 힘에 튕겨 나가듯 굴러서 옆으로 넘어지자 두 녀석이 나란히 덮치며 주먹을 날렸다. 진우는 비록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힘이 쌘 편이었지만 2, 3살이 많은 그것도 두명이 한꺼번에 덤비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들의 주먹은 진우의 주먹보다도 크기도 파괴력도 월등했다. 진우의 입술은 금새 터져 피가 흐리기 시작했고 코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유리는 갑작스럽게 전세가 역전이 되어 진우가 불리해지자 깜짝 놀라며 그들에게 매달렸다. 유리는 진우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보고는 너무 겁이나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때 유리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외침이 집안에 있던 어른들에게도 들렸는지 어른들이 서둘러 달려 나왔다. 진우에게 맞은 녀석은 분한 듯 사람들이 달려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주먹과 발을 날렸다.

진우는 머리를 감싸고 몸을 보호하며 움츠렸다. 어른들은 진우와 녀석들의 사이를 서둘러 벌려 놓고는 씩씩거리고 있는 이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진우에게 맞은 녀석은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듯 말리는 어른들을 뿌리치며 달려나가려 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힘을 당해내지는 못해 허공에다 대고 주먹과 발길질을 할 될 뿐이었다. 진우에게 맞은 녀석의 어머니는 녀석의 터진 입술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는 진우를 날카롭게 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이 녀석이 어디서 폭력이야 폭력이, 애미애비 없다는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대체 생각이 있는 녀석이냐~!?……"

녀석의 어머니는 진우에게 다가와 뺨을 때리고는 머리를 툭툭 밀어되며 온갖 심한 욕설을 퍼부어 됐다. 진우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고여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 녀석들에게 맞아서 흐르는 눈물은 아니었다. 옆에서 울먹이며 진우가 맞는 것을 지켜보던 유리가 갑자기 울부 짖으며 달려 들었다. 녀석의 어머니는 유리의 행동에 어이 없다는 듯 쳐다보며 이내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꾸어 쳐다봤다. 그제야 주현과 지숙도 부랴부랴 2층에서 내려왔다. 주현은 만신창이가된 진우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지숙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가 흐르고 있는 진우의 터진 입술에 갖다 되었다. 주현이 분노하여 그들을 노려보자 덩치큰 녀석이 훔칫하며 선수를 쳤다.

"저 녀석이 먼저 주먹질을 해왔다구요, 우리는 정당방위를 했을뿐이에요……"

"맞아요 저 녀석이 먼저 때렸어요, 아빠 엄마가 죽어서 정신이 어떻게 됐나봐요"

덩치큰 녀석의 아버지도 앞으로 나서며 거들었다.

"형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벌써부터 주먹질이에요 주먹질이?"

덩치 큰 녀석의 아버지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자식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내 귀한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다니…… 괘씸한것……"

주현은 여전히 식지 않는 눈빛으로 덩치 큰 녀석의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얼굴엔 엉망진창된 진우의 얼굴은 보이지 않느냐? ……"

덩치 큰 녀석의 아버지는 얼굴을 찌푸렸다.

"형, 입양해서 기르는 고아하고 친자식하고 같아요? 그 애는 형하고도 피한 방을 안 섞인 남남이지만 이애는 형과 피가 섞인 4촌이라구요 따지고 보면 만석이가 형하고 더 가까운 사이란 말이에요……"

주현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덩치큰 녀석의 아버지 멱살을 힘껏 쥐며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너, 이자식 말이면 단줄 알아? 내가 진짜 주먹질이 어떤 건지 보여줄까?"

"퍼어억~!……"

주현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주먹을 크게 휘둘러 동생의 얼굴을 내리쳤다. 덩치큰 녀석의 아버지는 주현의 주먹에서 나오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저만큼 나가 떨어졌다. 주현은 다시 그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한번 더 주둥이 그따위로 놀려 보시지! ……"

"그만, 그만해라 그만!! 이게 대체 무슨 짓들이냐!! 형제들끼리 주먹질을 하다니 꼴 좋다 꼴 좋아~!"

주현은 몸을 뒤로 제끼며 다시 한 대 치려 하다가 고모의 호통소리에 입술을 꽉 물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멱살잡은 손을 풀어주었다. 상대는 멱살이 풀리자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주현은 주위를 둘러싼채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집에 더 있다간 우리도 오염될까 겁난다…… 우리모 그만 가자꾸나……"

…………………………
…………………………
…………………………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속에서 잠을 깼다.

‘아직도 이런 꿈을 꾸고 있다니…… 진우야…… 너 좀더 강해져야 겠다. 이런것쯤은 이제 잊어도 되잖냐! ……’

그때 거실에 있는 전화기가 울려되자 유리가 반가운 듯 소리치며 전화를 받기위해 거실로 뛰어갔다.

"엄마다!!!!!!"

<다음회에 계속>

본래 이 소설의 분위기와 저번회와 이번회가 약간 어두웠습니다. 그런의미로 빨리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하여 다음연재분은 금요일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런 의미로다가 여러분들의 추천과 리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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