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가 계속될수록, 각종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는 아이폰의 인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폰이 과거 매킨토시처럼 추락할 것이라는 말도 많이 듣게 된다. 아이폰이 매킨토시처럼 고난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의미는 폐쇄적인 매킨토시가 개방적인 윈도우에 밀렸듯이 아이폰 역시 안드로이드와 같은 개방적인 플랫폼에 의해서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필자도 언젠가는 아이폰의 점유율이 세계의 여러 회사들이 연합한 안드로이드에 의해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과거처럼 몰락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거 애플이 몰락한 것은 위대한 상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지 지금처럼 폐쇄적이라서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90년대의 애플은 문제 기업이었다
사실 19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면 애플은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당시 애플의 최고 인기 상품은 파워북이라는 노트북 컴퓨터였다. 그런데 제조 공정에 문제가 생겨서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연이어 터졌고 나중에 공장자체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또한 물류와 재고관리에서도 업계최악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었다. 애플에게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연구개발 부분까지 형편없었다는 점이다. 회사 내 예산과 인력은 계속 들어가는데 결과물은 전혀 내놓지 못하는 ‘좀비 프로젝트’가 수두룩했다. 특히 애플에게 문제가 됐던 것은 코플랜드(copland)라고 이름 붙여진 차세대 운영체제 개발이었다. 90년대 초반부터 코플랜드 프로젝트가 시작됐으나 어떠한 성과도 내놓지 못하고 표류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95를 내놓고 애플의 시장을 잠식해갔지만 애플은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속절없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시장을 내주게 된다. 결국 애플의 CEO였던 길 아멜리오는 코플랜드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외부에서 운영체제를 사오기로 결정한다. 애플2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하고 매킨토시2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시장을 열었던 애플이 외부 운영체제를 라이선스 받겠다는 것은 매우 굴욕적인 행동이었지만 당시 애플로써는 대안이 없었다. 이미 내부의 개발력은 붕괴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때 길 아멜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등 여러 회사와 접촉해서 운영체제를 공급받으려고 했다. 마침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넥스트에서는 애플이 원하던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애플은 스티브 잡스에게 4억 달러가 넘는 거액을 주고서야 넥스트 개발진을 회사로 흡수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엉망이었던 소프트웨어 개발력과 하드웨어 제조능력은 스티브 잡스의 복귀 이후 완전히 장점으로 변모했다. 넥스트에서 합류한 개발자들이 만든 운영체제가 바로 맥 OS X인데 이 기술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탄생에 중요한 초석이 될 정도로 애플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또한 ARM 리서치에서 애플의 공급망 관리를 3년 연속 1위로 뽑을 정도로 애플의 생산관리 능력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골탈태하였다.
개방이든 폐쇄든 소비자는 좋은 제품을 선택
IT 기업을 보면 폐쇄성이 개방성을 이기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싸이월드와 비슷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 북은 훨씬 개방적인 마이스페이스를 제쳤으며 닌텐도 역시 개방적이었던 아타리보다 폐쇄적이었지만 시장의 승자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개방적인 구글보다 폐쇄적인 네이버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개방성이 폐쇄성을 이긴다면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운영체제인 리눅스의 시장 점유율이 1%밖에 안된다는 건 설명이 안된다. 아이팟 역시 다른 플랫폼보다 훨씬 폐쇄적인 모델이었지만 점유율이 70%를 넘을 정도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과거 애플이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여러 기회를 놓쳤던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 애플의 몰락을 단순히 폐쇄성 하나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애플은 자신보다 200배나 컸던 IBM과 경쟁을 해야 했고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난 이후에는 신제품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정도로 형편없던 개발능력이 폐쇄성 보다는 더 큰 이유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을 통해서 얻어야 할 교훈은 개방성이 폐쇄성을 이긴다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개방적이든 폐쇄적이든 결국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애초에 자신이 구입하는 상품이 개방적인지 혹은 폐쇄적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소비자는 오직 좀 더 좋은 제품을 선택할 뿐이다. 애플이 과거처럼 몰락한다면 폐쇄적이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상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법칙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법칙이라는 것은 이미 결과가 나온 상태에서 이런 저런 의미를 찾다가 나온 몇 가지 특성일 뿐이지 과거의 성공 법칙이 미래에도 통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과거의 성공법칙에 연연하다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개방성이든 폐쇄성이든 어느 방향을 선택하든 그것은 위대한 제품개발에 도움을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지 마치 개방성이 절대진리라고 생각해서 폐쇄성을 일부러 배제할 필요는 없다.
결국 위대한 제품을 내놓는 기업이 승리
지금 잘나가는 애플, 닌텐도, 페이스북은 그 어떤 기업보다도 폐쇄적인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기업은 이미 개방적인 모델을 가지고 있던 선두업체를 물리치고 시장을 차지한 기업들이다. 결국 개방성이 폐쇄성을 이긴다는 법칙 따위는 하나의 잘못된 미신에 불과하다. 개방성이 폐쇄성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제품이 그렇지 못한 제품을 이길 뿐이다.
결국 애플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도 위대한 제품을 만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렸을 뿐이지 단순히 아이폰이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과거 매킨토시처럼 망할 것이라고 미래를 예측한다면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IT 기업 중에서 시가총액 1위에 오른 이유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애플이 폐쇄적이기는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작정 폐쇄적이라서 애플이 망한다고 하면 그들의 성공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폐쇄성이니 개방성이니 하는 문제는 부수적인 사항이다.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건 오직 그들이 위대한 제품을 가지고 있느냐 앞으로도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IGM에 기고한 글입니다. 정말 기가막힌 타이밍에 작성한 글이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