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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켓몬스터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는 유명한 게임 오타쿠였다.




포켓몬스트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는 중학생시절부터 게임광으로 유명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면서 게임의 세계에 빠져버린 그는 학원을 선택할때도 오락실이 가장 가까운곳으로 다닐정도였다. 워낙 뛰어난 게임실력덕분에 오락실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임에 대한 사랑덕분에 그는 세가에서 진행하는 게임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으며 GAME FREAK라는 잡지도 만들었다. 이 잡지는 일종의 동인지로 원고를 복사한다음에 타지리 사토시가 직접 후지케스로 찍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형편없었지만 게임 공략은 매우 훌륭해서 300엔에 팔았던 잡지가 만권씩 팔린적도 있다.


2. 프로그래밍에 문외한이었던 타지리 사토시 게임을 위해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다.

 





타지리 사토시의 부모님들은 그가 공부를 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기를 바랬지만 게임에 빠져든 타지리 사토시는 학업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전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프리랜서로 각종 게임 잡지에 원고를 기고한다.  그러면서 그는 재미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구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고 직접 게임을 개발할 생각을 하게 된다. 프로그래밍을 전혀 몰랐던 그는 2년동안 공부한 끝에 게임을 만들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인맥을 총동원해서 1년간의 제작끝에 쿠인티라는 게임을 만든다. 남코에서 발매된 쿠인티는 20만개가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는 5천만엔이나 벌게 되고 이돈으로 타지리 사토시는 GAME Freak을 창업한다.

 
 

3. 포켓몬스터는 어린시절 곤충 채집에 대한 추억의 산물이다.
 




1989년 닌텐도에서 발매된 게임보이는 테트리스덕분에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테트리스의 매력은 통신케이블을 연결해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타지리 사토시는 이에 착안해서 통신케이블을 이용한 게임을 구상하는데 마침 어린 시절 동네 주변의 주차장과 숲속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채집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곤충을 채집해서 곤충의 습성을 연구한덕분에 친구들로부터 곤충박사로까지 불리었다. 그는 이때 친구들과 곤충이야기를 하며 더욱 친해질수 있었다. 하지만 동네가 급속히 도시화가 되면서 곤충을 채집하는 아이들이 없어졌는데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즐거웠던 추억을 되살려주고자 새로운 게임을 기획하는데 그 게임이 바로 포켓몬스터이다.


4. 포켓 몬스터의 원래 이름은 캡슐 몬스터 였다.
 

포켓 몬스터의 원래 이름은 캡슐 몬스터였다. 이는 통신 케이블을 이용해서 캐릭터와 아이템을 교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5. 포켓몬스터는 1991년에 완성될 작품이었지만 1995년에 완성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큐멘터리 프로듀셔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에게 알려준다.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게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타지리 사토시를 알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각종 게임 기판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타지리 사토시의 도움을 받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후에도 함께 교류하면서 지낸다.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마침 일본의 광고천재인 이토이 시게사토와 친분이있었는데 그는 닌텐도의 투자를 받고 에이프를 운영중이었다. 이런 관계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의 아이디어는 닌텐도에까지 흘러가게 되고 제작비를 지원해주게 된다. 당초계약은 1991년까지 게임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는 새로운 개념의 게임으로 스케일도 컸기 때문에 제작은 난항을 거듭한다. 이에 닌텐도는 자사의 캐릭터를 이용한 게임을 개발하도록 도움을 주게 된다.  이때 요시와 마리오 와리오 같은 게임을 제작하게 되는데 요시가 해외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회사는 풍부한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타지리 사토시는 다시 포켓몬스터에 전념을 해서 1995년 겨우 게임을 완성하게 된다.

 
6. 포켓몬스터의 초기 판매량은 기대치 이하였다.




닌텐도에서는 전국에 텔레비전 광고를 집중적으로 방영할 정도로 포켓몬스터에 대한 기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당초의 기대와 달리 단 7만 5천장의 주문을 받을정도로 부진하였다. 하지만 포켓몬스터의 인기는 코로코로 코믹스에 연재되면서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코로코로 코믹스는 180만부나 발행되는 잡지로 코로코로 코믹스는 아이들의 유행을 선도하는 만화잡지였다. 
 
 
7. 포켓몬스터의 인기에 가속도를 붙인 것은 버그덕분이었다.
 





포켓몬스터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는 계기는 제작자도 생각하지 못한 버그덕분이었다. 포켓몬스터는 원래 150마리의 몬스터를 수집하는게 최종목표였다. 그런데 게임 마니아들사이에서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가 151마리라는 소문이 돌게 된다. 처음에는 회사도 이 소문의 진위여부를 몰랐으나 회사의 프로그래머가 테스트를 위해서 몰래 넣어둔 몬스터라는 것을 알게 된다. 151번째의 몬스터는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절대로 등장할 수 없지만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등장하였다. 게임 유저들은 151번째의 몬스터를 획득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포켓몬스터를 연재했던 코로코로 코믹스는 151번째의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독자들의 빗발치는 문의덕분에 알게 된다. 이때 코로코로 코믹스의 부편집장인 쿠모 마사카즈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코로코로 코믹스에 엽서를 보내준 사람들중에 100명을 선정해서 151번째 몬스터인 뮤를 선물해주는 이벤트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코로코로코믹스의 독자들이 엽서를 보내는데 무려 78000명이 참여하게 된다.  뮤를 선물해주는 이벤트는 포켓몬스터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시켰으며 포켓몬스터의 인기는 어느덧 신드롬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8. 미국 관계자들은 포켓몬스터라는 이름을 이상하게 여겼다.
 



닌텐도는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게임보다는 우선 만화로 포켓몬스터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였다. 그래서 만화에니메이션의 총책임자인  쿠보마사카즈 미국을 직접 방문해서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조율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포켓몬스터라는 제목자체를 이상하게 여겼다. 몬스터라고하면 뭔가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느낌이 나는데 비해서 정작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쪽 관계자들은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 캐릭터들의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닌텐도는 포켓몬스터의 몬스터 이름들이 제각각이 되면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전세계적인 커뮤니티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고수하게 된다.


9. 2010년까지 포켓몬스터시리즈의 총 판매량은 2억개가 넘는다.
 



포켓몬스터는 2010년까지 2억개가 넘게 판매되었다. 철저한 원소스멀티유스 전략을 택한 포켓몬스터는 인형,카드,만화,에니메이션,음반등 다양한 관련 상품들이 쏟아졌는데 관련제품의 일본 매출은 1조엔 그리고 해외 매출은 2조엔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 포켓몬스터에는 미야모토 시게루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있다.

 



타지리 사토시는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을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를 존경하였고 그를 자신의 롤 모델로 여겼다. 포켓몬스터가 제작에 어려움을 겪을때 미야모토 시게루는 멘토가 되어서 용기를 복돋워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존경을 담아 포켓몬스터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이벌이름을  시게루라고 정하였다. 참고적으로 만화속 주인공의 이름은 자신과 같은 사토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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