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미래를 위해 음악 산업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만 애플의 캠페인에는 동참합니다.


- 록 밴드 U2의 드러머 래리 뮬런, December 23, 2004 <The Irish Times>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30)


세상은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과 이미 창조된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기업,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마치 창조주처럼 생태계를 통치하며 세금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기업이라는 먹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다. 애플의 역사를 볼 때 놀라운 것은 혼자서 모든 것을 독식한다는 회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생태계를 창조하기 위해 탁월한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애플2 컴퓨터 이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만으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초의 스프트레드시트 프로그램인 비지칼크의 등장 덕분이었다. 비지칼크가 애플2로 처음 등장한 배경은 댄 필스트라에게 스티브 잡스가 할인가로 애플2 컴퓨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하던 댄 브리클린은 컴퓨터를 이용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는, 댄 필스트라에게 애플2 컴퓨터를 빌린다. 그리고 스티브 워즈니악이 작성한 베이직으로 비지칼크의 데모를 만든 후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한다. 나중에는 애플의 마이크 마큘라가 여러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개발된 비지칼크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지칼크 이후 애플2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확실한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 애플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게 한다는 절대불변의 교훈을 얻게 된다.


하지만 리사를 개발할 때 애플은 소프트웨어마저도 혼자서 독식하려는 야망을 가졌다. 애플 내의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소프트웨어가 시스템을 판다.’는 표어까지 만들면서 열심히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외부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응용프로그램 을 만들어서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리사의 끔찍한 실수에는 비싼 가격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소프트웨어의 부재 역시 한몫을 했다.


이런 경험을 한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협력을 얻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업체와 상생해야만 매킨토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개발사를 방문해서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적극 설득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애플이 만들어 놓은 애플2 컴퓨터를 통해 많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했고, 덕분에 높은 수익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직접 찾아갔을 때만 해도 여전히 애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벤처회사에 불과했다. 스티브 잡스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매킨토시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합의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도움으로 개발력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많이 돈을 번 플랫폼이 매킨토시였을 만큼 두 회사는 서로 윈윈하며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와 전자출판의 강자 쿽(Quark) 같은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도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서 급성장을 이룬 회사들이다.



애플은 매킨토시 출시 이후 아예 에반젤리스트(Evangelist)를 두고서 개발사들을 적극적으로 자사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에반젤리스트는 회사의 정책과 기술을 외부에 알리는 전도사들을 뜻하는데, 이들은 일반 대중에게 애플 브랜드를 알리는 일도 했지만 개발사들과의 관계증진을 위해서 힘을 쏟았다. 에반젤리스트는 직접 개발사를 방문해서 매킨토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설득하였고, 나중에는 회사의 개발정보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공유하였다. 매년 6월 새로운 아이폰을 공개해서 더욱 유명해진 WWDC도 사실은 World Wide Developers Conference의 약자로 전 세계 개발자들을 모아서 서로의 기술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애플이 1983년부터 개최한 이벤트다.


1995년 애플 내부에는 외부 개발자 관리팀이 있었는데 300명의 조직이 7,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전 세계에 퍼진 12,000개의 독립적인 개발자들을 서포트해 주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 판매량이 급락하자 개발사들 역시 애플을 외면한다. 결국 애플은 소프트웨어가 없으니 하드웨어가 더욱 팔리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와서 한 일 역시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관계회복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의 창업자 존 워녹과 쿽의 최고기술책임자인 톰 길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하면 애플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었고,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결국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가 좌우하는 시장이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게 하는 만큼 애플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을 쓴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애플이 자체적으로 몇 개의 응용프로그램은 만들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충족시킬 정도의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창조해서 소프트웨어 업체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애플이 생태계를 창조하여 성장시키는 모습은 아이폰의 앱스토어에서 극대화된다. 애플이 공개한 개발도구를 이용하면 누구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으며, 유통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전 세계인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팔 수 있다는 성공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앱스토어는 개발자들에게 꿈의 엘도라도가 되었다. 그래서 서부개척 시대처럼 개발자들의 골드러시 열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부자들이 탄생했다.


에단 니콜라스라는 30살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두 아이를 가진 가장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야 했다. 그는 출근하기 전과 퇴근 후에 아이슛(ishoot)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앱스토어에 올리자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한 달 동안 60만 달러를 벌었고, 어느 날은 다운로드 수가 17,000회에 이르면서 하루 만에 37,000달러까지 벌었다. 그는 아예 다니고 있던 직장인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그만두고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애플 앱스토어의 성공에 대해서 가장 놀란 사람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개발자 자신이다. 페이크 콜은 회의라든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에서 가짜로 전화가 온 것처럼 꾸며 그 자리를 피하게 만들어주는 단순한 프로그램이다. 이 간단한 프로그램을 앱스토어에 등록했는데 무려 25만 건의 다운로드가 기록되었고, 개발자는 173,200달러의 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듯 기대도 못한 높은 수입에 개발자도 놀라는 공간이 바로 앱스토어다.


앱스토어의 위대함은 이른바 연약한 포유류도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PC시장은 공룡들의 각축전이고, 개인의 능력보다는 회사의 기득권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제 뛰어난 기술과 제품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아니라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회사의 영향력 아래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 나는 상태라는 말이다. 게임만 해도 EA나 액티비전 같은 회사가 다 장악하였고, 사무용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공룡이 존재하는 이상 소규모 회사들이 설 땅은 없다. 개발자의 삶도 결국 자신이 소속한 회사에 의해서 결정 난다. 개발자로서 뭔가를 새롭게 만들고 싶어도 그런 모험마저 허용되지 않는 게 PC시장이다. 이미 공룡들만의 생태계가 된 PC시장과는 다르게 앱스토어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연약한 포유류가 억대의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애플은 아이팟과 뮤직스토어를 통해 음악 생태계를 구축했고,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패드를 통해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 등을 한곳에 모아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인 언론 미디어들은 IT기업들에게 일종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영광스런 날들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말을 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IT기업들은 언론사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 쉽고, 협력을 얻기가 힘들다.


아이패드는 달랐다. IT기업을 마땅찮게 여기는 인물로 세계적인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은 아이패드는 뉴스를 위한 최고의 플랫폼이라며 극찬했다.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구세주로 아이패드를 서슴없이 지목하였고, 개발단계부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는 애플이 아이팟으로 음반사를, 그리고 아이폰으로 컴퓨터 개발자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듯이 아이패드가 자신들을 위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이에 화답하듯 전통적 미디어업체들에게 직접 아이패드에 대해 설명하고, 유료화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아이패드는 등장한 지 3개월도 안 되어서 앱스토어처럼 온갖 성공신화를 탄생시키고 있다


미국의 유명 IT 전문잡지인 <와이어드>20106월호를 아이패드용으로 발행했는데, 4달러 99센트의 유료임에도 10만 부나 판매되었다. 종이잡지가 74,000부 판매된 것을 감안하면 잡지사로서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한 셈이다. 또한 Theodore W. Gray는 자신이 운영하는 periodictable.com의 자료들을 모아서 <The Element>라는 전자책을 아이패드로 발행했다. 앱스토어에 <The Element>를 발행한 지 단 하루 만에 periodictable.com을 운영하면서 5년 동안 구글 광고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기업 역시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과 이미 존재하는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기업 말이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바다처럼 커질 것이지만 생태계를 창조하지 못하면서 덩치만 큰 공룡 같은 기업은 서서히 멸종할 것이다. 생태계를 새로 만들기는 정말 어렵지만, 생태계를 구축해서 규모의 경제를 이끌 수 있다면 그 생태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태계 안에서라면 신처럼 권력을 부리면서 각종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앱스토어에 올려진 프로그램이 판매될 때마다 애플은 세금처럼 30%씩 수익을 가져가게 된다. 애플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태계 안에서 벌어진 경제행위에 대해서 수수료를 부과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으니, 그 어떤 기업보다도 탄탄한 자금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윈도우라는 생태계를 창조했고, 그 세금으로 돈을 버는 회사다. 델과 HP 같은 컴퓨터 회사에 윈도우 라이선스를 넘기면 델과 HP의 컴퓨터가 한 대씩 팔릴 때마다 자동으로 돈을 버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르게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만 광고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소니가 구글 TV로 협력하고 있고, 수많은 휴대폰 제조사들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생태계 창조자는 생태계의 지배자가 되어서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경제행위에 대해서 일종의 세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생태계 안의 기업이 커질수록 자연히 생태계 창조자는 더욱 거대해지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순히 공룡처럼 커지는 것이 아니라 바다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로 커지게 된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제국이 될 수 있지만, 생태계가 없는 기업은 제국의 지배를 받는 소왕국에 불과할 뿐이다. 애플에게 경쟁을 외칠 수 있는 회사란 뮤직스토어나 앱스토어 같은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할 수 있는 회사에게나 겨우 허락된 일이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그리고 저의 밥줄인 모바일 게임 러브아이돌 주식회사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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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27 11:30



1. 증평의 딸  박보영




박보영은 1990년 2월 증평군에서 태어났다. 사실 증평군에 대해서 아는 분들은 잘 아실거다. 거기에 특전사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박보영은 직업군인인 아버지 밑에서 3녀중 차녀로 태어난다.  그리고 직업의 특성상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게 박보영을 가르쳤는데 덕분에 박보영은 시간 관념이 투철하며  10시 통금시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별명은 뽀블리로 불리우며 특이사항으로는 커피를 먹으면 심장이 뛰어서 잘 마시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에 물을 잔뜩섞어서 희석된 커피를 최대한 조금씩 마시면서 먹는다고 한다.



2.  박보영이 첫번째 맡은 역할은 인형 그런데 캐스팅된 이유가?





박보영은 학교 동아리에서 제작한 단편 영화 이퀄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하지만 박보영이 원했던 출연은 아니라고 한다.  영화를 찍던 선배들은 돈이 없는 관계로 영화에 필요한 인형 대신 사람을 출연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당시 중학생 1학년이었던 박보영을 키가 작다는 이유로 캐스팅을 해서 인형역할을 시킨다.  하기 싫은 역할을 억지로 하게 된 박보영에게 맡겨진 특명은 눈을 뜨고 감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자연적인 특성상 눈을 감지 않으려고 부릅뜨면 뜰수록 눈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자 이번에는 그냥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해서 박보영은 서러움이 폭발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퀄은 서울 국제 청소년영화에서 현실도전상을 수상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얻었고 박보영 역시 연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서울을 오가며 연기공부와 오디션에 매진하게 된다.



3.  박보영 과속스캔들에 캐스팅 된 이유는?





학생 시절 박보영은 캐스팅 복은 확실히 있었다.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을 시작으로 이민호 문채원과 함께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에 출연하였고 김수로와 함께 울학교 ET까지 찍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각 흥행과 시청률면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19살에 아역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박보영에게 운명같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바로 과속 스캔들이었다. 과속 스캔들의 마지막 오디션은 노래방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실력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보영은 이때 발라드, 락, 트로트, 댄스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원래 과속스캔들속 황정남은 노래실력이 필요한 역할이었는데 감독은 박보영의 노래실력에 깜짝놀라며 박보영을 캐스팅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박보영에 대한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박보영을 고집하였고 과속스캔들은 8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음으로써 박보영은 단숨에 대한민국 영화계의 샛별이 된다.  한편 과속 스캔들속에서 차태현과 박보영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며 싸우는 장면이 있다. 원래 감독은 이 장면의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디션에서 박보영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상황만 던져주고 즉흥연기를 요구하게 된다. 울분이 쌓여서 아버지인 차태현에게 폭발하는 장면에서 박보영이 즉석으로 내뱉는 대사가 너무나 마음에 든 감독은 이를 대부분 영화에 반영했다고 한다.


4. 박보영이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박보영 커리어중 가장 화려했던 순간은 과속스캔들이다. 그녀 스스로 과속스캔들이 정점이고 그 이후에 내리막을 걷고 있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앞으로도 과속스캔들때처럼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할것이라고 말하는게 박보영이다. 그토록 화려했던 과속스캔들이지만 박보영은 이후에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을 겪게 된다. 바로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2년이 넘는 동안 공백기를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소속사는 얼음의 소리라는 피겨 스케이팅 소재의 영화에 출연을 강요했지만 몸상태와 건강상의 이유로 출연을 거부하자 소속사와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에 연매협의 중재로 전속계약 분쟁은 해결되고 차태현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소속사와 일하게 된다. 박보영은 이때 은퇴를 고려할정도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박보영은 시골로 내려갈 준비까지 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보영은 대학도 연극 영화과에 진학했고 연기이외에 할줄 아는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팬들의 팬레터 역시 좌절했던 그 순간에 큰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5. 더욱 단단해진 박보영의 멘탈 관리법은?





소속사와의 분쟁은 박보영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지만 더욱 단단해진 계기였으며 일에 대해 감사하고 매사에 침착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박보영은 예의 바르고 특히 멘탈이 좋은 배우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줄 아는 그녀의 멘탈 관리법은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매일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레고다.  마음이 복잡할때 레고를 조립하면 잡생각이 안들고 좋다고 한다. 세번째는 서점이다. 서점에서 책과 DVD등 이것저것을 구경하는게 그렇게 좋다고 한다.



6. 박보영의 피부관리법은?





나는 박보영하면 깨끗한 피부가 떠오르는데 정작 박보영은 좋은것은 아니지만 노력중이라면서 겸손해 한다. 하여튼 피부를 위해 노력하는(?) 박보영은 사과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요구르트와 함께 갈아서 먹는다고 한다. 



7. 박보영이 영화가 개봉하면 반드시 찾아가는 그곳은?





박보영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가 끝날 즈음에 영화관의 화장실을 꼭 찾아간다고 한다. 화장실  칸에 앉아서 사람들의 적나라하고 거침없는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8. 할 말은 하는 여자 박보영




박보영이 어리고 순수해보이는 이미지때문에 할말도 못하는 답답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실 그녀는 스스로 오지랖이 넓어서 할말은 해야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녀의 그런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중학교 시절 박보영이 다닌 학교의 교칙은 엄격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얀색 양말만 신어야 했는데 박보영과 학교친구들은 이것이 너무나 괴로웠다고 한다.  학생들은 긴 양말이 아니라 좀 짧은 양말을 신을 수 있도록 학교에 건의하기로 약속을하고 학교선생님을 찾아갔다. 하지만 막상 아무말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박보영이 나서서 한마디한다.  박보영은 발복 짧은 양말이 가격도 저렴하고 풍기문란죄도 아니라면서 이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말과 동시에 박보영은 교무실로 끌려가고 두달동안 반성문을 써야 했다고 한다.




9.  박보영 이상형






박보영은 정신이 바른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보영을 좋아하는 사람은 박보영의 이상형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바로 박보영 스스로 원빈님이라고 말하는 원빈이 있다. 여기에 멜로 연기를 하고 싶은 배우로  여진구를 뽑아서 화제가 되었다.



10.  박보영의 추천곡




박보영이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첫번째 노래는 김광진의 편지이다.  박보영은 기업의 행사 현장에서 회사원이 부른 편지를 처음듣게 된다. 노래에 감동을 했던지 박보영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 노래 제목이 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90년생이었던 박보영이 편지를 처음듣는 순간이었다. 휴대폰에 노래제목을 메모해두고 음악을 찾아들었다고 한다. 박보영에 의하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노래가 존재 했나 싶을정도로 너무나 좋았다고 한다.  박보영은 지금도 기분이 좋은날이나 감정신을 촬영할때는 김광진의 편지를 듣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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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저는 돈이 제 인생을 망치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제 주된 생각은 돈이 좀 우스꽝스럽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난 10년 동안 가장 통찰력 있고 가치 있는 존재로 다가온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돈은 제가 나이가 좀 든 사람처럼 만듭니다. 대학캠퍼스에서 강연을 했을 때 학생들이 경외심을 갖는 부분은 제가 백만장자라는 사실이더군요.


STEVEN JOBS: PLAYBOY INTERVIEW , DAVID SHEFF , the February 1985


 




23. 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애플에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전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25세  때 재산이 약 1억 달러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이 내 인생을 망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무도 그 돈 전부를 쓸 수 없을 겁니다. 부가 제 지성을 증명해주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Apple’s One-Dollar-a-Year Man , FORTUNE ,24 January 2000


 





24. 애플을 창업한 후 2년 사이에 우리는 애플을 포기하고 회사를 매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랬다면 애플은 세상에서 없어졌겠지요. 보람 있는 일은 단지 회사를 창업해서 주식시장에 상장시키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되면 출산의 경험이 하나의 기적이긴 해도, 진정한 보람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가 잘 성장하도록 보살펴 주는 데 있지요. 


Apple’s One-Dollar-a-Year Man , FORTUNE ,24 January 2000





25. 사람들에게 최고로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은, 어떤 일에 당신의 가슴과 영혼을 모두 쏟아 부어서 진짜로 정말 열심히 일을 할 때, 고객들이 그것을 진실로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Channel NewsAsia , Mar 13 1999


 




26. 최고의 부자가 되어서 무덤에 묻히는 것은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우리는 놀라운 일을 해냈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제게 중요한 것입니다.


The Wall Street Journal May 25, 1993


 




27. 저는 직원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자극받는 회사, 오래가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열정을 쏟았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익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요. 그 이익금으로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동기는 이윤이 아닌 제품이었습니다. 존 스컬리(애플의 전 CEO)는 이런 우선순위를 뒤집었습니다. 목표가 돈을 버는 데 있었죠. 미묘한 차이였지만, 결국 모든 것을 뒤바꾸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고용할지, 누가 승진이 될지, 회의에서 무엇을 논의할지가 모두 달라졌습니다. 


Steve Jobs, Isaacson, Walter, Simon&Schuster  2011.11.21





28. 저는 애플을 소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애플에 있어서 완벽한 제품과 완벽한 전략에 이상이라는 것 외에는 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겠지요.


Fortune, Sept. 18, 1995



 

29. 당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결과가 좋다고 생각된다면 오랫동안 만족해하기보다 환상적인 또다른 무엇인가를 찾아서 떠나야 합니다. 다음에 할일을 바로 찾아내야 하는 겁니다.


"Jobs: Iconoclast and salesman", Brian Williams,  MSNBC ,25 May 2006 






30. 엔지니어에게 아이맥 디자인을 들고 가니 그들은 38가지 이유를 들면서 만들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것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엔지니어들이 왜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애플의 CEO이고 이것은 반드시 해야만한다고 강조했죠. 엔지니어들은 마지못해서 겨우 아이맥을 만들었지만 아시다시피 아이맥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How Apple Does It, LEV GROSSMAN ,TIME, Oct. 16, 2005



<해설> 이 명언을 이번 장의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는 것 때문이다. 하물며 애플 내에 절대 권력자였다는 스티브 잡스였지만 직원들의 무수한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전자 출판 혁명을 일으킨 레이저라이터 역시 이사회와 직원들로부터 반대가 있던 것은 작은 사례일 뿐이다. 


거의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주변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했다. 앞서의 명언에 소개했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에서 플로피디스크를 들고 나오자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애플 I 컴퓨터를 들고 아타리를 찾아가자 단번에 거절당했고, HP로부터는 “대학도 나오지 않은 당신은 필요없다”라는 이야기까지 들어야만 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 돈 밸런타인을 찾아가자 이단아 취급을 받았고, 매킨토시가 나올 때에는 마우스를 비웃으며 손이 세 개 필요한 컴퓨터라는 냉소를 받았다. 5년 만에 연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하며, 소매점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애플 스토어 역시 처음부터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비즈니스위크>는 “2년 안에 애플이 값비싼 대가를 치러 큰 고통을 당할 것”이고 말하였다. 음악 산업을 변화시킨 아이팟이 처음소개 되자 와이어드의 기자 루카스 하우저는 “아이팟을 부수자!(Smash the iPod)”라는 칼럼을 통해서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인터넷에는 아이팟의 철자를 따라해서 “나는 디스크를 가지는 게 더 좋아(I prefer Owing Discs)”, “멍청이가 우리의 기기에 가격을 매겼다(Idiots Price Our Devices)”, “나는 다른 기기가 더 좋아요(I Prefer Other Device)”같은 비아냥거림이 떠돌았다. 아이폰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자 매튜 린 (Matthew Lynn)과, 존 드보락(John Dvrak), 칼럼니스트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노키아의 마케팅 부사장이었던 엔시 벤조키, 팜의 CEO였던 에드 콜리건은 애플이 고전할 것이라 단언했다. 최근의 아이패드 역시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나서서 애플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8개월 만에 천만 대가 넘게 판매되는 기염을 토한다. 


원래 사람은 보수적인 동물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로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는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제품을 들고 나올 때 사람들이 비아냥거렸던 까닭은, 과거에 그와 같은 제품이 성공한 적이 없으니 실패할 것이라고 고정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퍼뜨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은 남의 생각과 시선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되고, 누구보다도 신념이 강해야 한다. 그래서 열정을 강조하는 스티브 잡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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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24 07:00



1. 대전의 딸 조보아


 



조보아는 1991년 8월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키는 165CM 2녀중 장녀이다. 조보아의 본명은 조보윤이다. 그녀는 초중고를 모두 대전에서 다닌 대전의 딸이다. 조보아 데뷔는 송중기가 사회를 봤다는 그 어떤 전설적인 오디션 프로그램 메이드인 유이다. 하지만 출연도중에 닥치고 꽃미남 밴드에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중도하차하게 된다.  조보아가 좋아하는 음식은 맛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좋은 고구마이며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는 팬이기도한 한예슬과 유승호이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다음과 같다.


https://www.instagram.com/xxadoraa/


 

  

2. 조보아의 터닝 포인트 가시






조보아는 처음부터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녀의 데뷔작인 닥치고 꽃미남 밴드에서 여주인공역할을 맡았고 대형사극인 마의에서 꽤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보아는 엄청난 발연기를 선보이면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마의 이후에 조보아는 캐스팅에 애를 먹게 된다.  스스로 더 이상 작품을 찍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고 있을때 바로 250: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과 7번의 오디션을 뚫고 영화 가시에 여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다.  우연히 케이블에서 가시를 보게 된 필자는 사실 조보아의 연기 그것을 하나 보고서 끝까지 봤던 경험이 있다.아시다시피 가시는 흥행에 실패를 했는데 그래도 조보아는 분명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실제로 조보아는 가시 이후의 작품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연기자로 거듭나게 되고 발연기라는 꼬리표 역시 떼게 된다. 참고적으로 말하면 감독은 조보아를 캐스팅한 이유가 오디션을 볼 때 멍하고 나사가 풀린 모습을 보고 결정했다고 한다.



3. 처음으로 칭찬받은 작품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에서 부잣집 외동딸 장채리 역할을 맡은 조보아는 제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것처럼 꽤 괜찮은 연기를 해내고 처음으로 칭찬받았다면서 조보아 스스로 대견스러워 한다. 이렇게 조보아가 연기에서 호평을 들을정도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성격이 조보아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티파니의아침, 로마의 휴일속 오드립 햅번의 연기를 연구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조보아가 얼마나 드라마의 성공에 기뻐하는지는 그녀의 일화가 증명한다. 22층에 사는 조보아는 그 높은 곳에서 엄마를 부탁해를 보는 사람들을 일일이 체크를 했어다니 말이다.



4. 한때 스튜어디를 꿈꾸었던 조보아





조보아는 한서대 항공운항과에 입학하여 한때 스튜어디스를 꿈꾸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꿈이 커져 가면서 배우를 꿈꾸게 되었고 무작정 오디션을 보러다녔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에 반대하였다. 특히 어머니는 조보아가 스튜어디스가 되기를 바랬기 때문에 연기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이 대학에 연기로 입학하면 허락해주기로 약속을하자  조보아는 독학을 통해서 성균관대 연기 예술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지금도 부모님이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는것은 아닌것 같다. 최근 인터뷰에 의하면 부모님이 졸업을 해야한다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였고 이에 조보아는 악착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5. 성형수술 의혹을 한방에 보내버리다.





조보아는 설리, 수애, 한예슬같은 유명 연예인들과 닮은꼴로 화제였다. 이렇게 유명인과 닮은 신인배우들은 성형수술 의혹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조보아 역시 성형수술 의혹에 시달렸고 과거 사진을 공개하면서 한방에 논란을 잠재우게 된다.



6. 그녀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한강을 보러 간답니다. 이게 끝이냐구요? 예 끝입니다.  열개를 채운다는게 쉬운게 아닙니다.



7. 조보아의 피부 관리법 광채 주스




조보아는 피부를 위해서는 몸속부터 관리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이른바 광채 주스를 매일 마신다고 한다. 조보아의 광채주스는 탄산수에 레몬즙과 사과, 깻잎, 당근, 청경채 같은 야채에 샐러리를 갈아서 얼음으로 얼려서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8. 조보아 정글의 법칙 비하인드 스토리




조보아는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면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전혜빈 이후 최고의 게스트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조보아가 이렇게 정글의 법칙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조보아가 정글의 법칙을 좋아했고 직접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언론을 통해서 밝혔기 때문이다. 기사를 본 PD가 직접 조보아를 섭외했지만 스케쥴때문에 번번히 좌절되었지만 정글의법칙 수마트라편을 통해서 시청자와 만날수 있게 되었다.



9. 조보아의 이상형





정글의 법칙에 출연한 조보아는 지상렬이 이상형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조보아는 자신의 이상형을 세세하게 밝힌 적이 있다. 그녀의 이상형은 다정다감하면서 외모적으로 보면 쌍꺼풀이 없고 남자다운 남자가 좋다고 한다.  나쁜 남자보다는 착한남자가 좋고 세심하고 배려심 깊고 좋아하는 마음 다 표현해주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밝힌다. 이걸 보고서 지상렬도 해당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예 그럴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글을 읽어보시죠.




10. 조보아가 좋아하는 노래는?




사실 위에 잔뜩 그녀의 이상형을 소개하였지만 조보아 인생 최고의 이상형은 박효신이다. 중학교시절부터 팬으로 콘서트장도 직접찾아가고 박효신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정도로 박효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가 있다.  그래서 조보아가 좋아하는 박효신의 노래가 뭔지를 찾아봤지만 검색으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팬이라면 뭐 특별히 한곡을 뽑기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어차피 박효신의 모든것을 좋아하는 팬이 아니던가? 이럴때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곡 올리면서 끝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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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인 제품이 나오면 모든 것을 뒤바꿔 버립니다. 애플은 이런 일을 잘 해왔죠. 만약에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하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행운아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애플은 운이 좋았습니다. 애플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제품을 여러 번 소개할 수 있었거든요.


‐ 스티브 잡스, 2007년 맥 월드 연설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9)


애플은 이른바 우리가 정석 혹은 상식이라고까지 생각하던 게임의 법칙들을 바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실제로 애플의 행보를 보면 이른바 비즈니스의 정석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애플 부사장인 팀 쿡은 애플이 ‘안티 비즈니스 스쿨’이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다. 이를 테면 ‘선택과 집중’은 기업경영의 금과옥조처럼 통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기업은 하나의 전문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것이 비즈니스의 정석으로 통했다. 


과거 인텔은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 두 가지 사업을 병행했다. 일본 기업의 대공세에 의해서 인텔이 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경영진은 메모리 사업을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올인한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인텔은 그 후 기업경영의 선택과 집중의 좋은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게임이라는 우물만 파는 닌텐도와 휴대폰 사업에 전념하는 노키아 역시 기업은 잘하는 한 가지 분야에만 주력해야 한다는 성공 모델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소프트웨어 사업에 전력을 쏟아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애플과 IBM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이 두 개의 사업 분야를 병행하고 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오직 소프트웨어 사업만으로 승부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통합된 개념으로 이해되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서 오직 소프트웨어 경쟁력 향상에 매진하여 애플과 IBM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등극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게임의 규칙을 바꿀 줄 아는 게임 체인저다. 


애플은 아이팟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쓰고 있다. 아이팟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튠스와 같은 음악 서비스까지 결합한 신개념 모델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무모한 사업모델이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아이팟은 과거 매킨토시의 재현이 될 것이라면서 곧 무너질 것처럼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2005년 5월 애플의 성공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매킨토시도 초반에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며, 아이팟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얘기했다. 



MP3 플레이어 시장에 본격 진출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PC 분야에서 펼쳤던 전략을 그대로 사용했다. 여러 하드웨어 업체들이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MP3를 만들게 했다. 또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서비스와 대항하기 위해서 다른 음악 서비스 업체와도 제휴하였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터넷 뮤직 서비스를 혼자서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각 전문 분야별로 여러 회사와 연합군을 구성한 것이다. 제휴업체를 늘리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세가 급격히 불어나자 아이팟이 매킨토시처럼 될 것이라는 예측도 늘어났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야말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다. 그러자 기존의 연합군을 해체하더니 직접 준(Zune)을 제작했다. 회사 이름에 소프트가 들어갈 정도로 소프트웨어 중심임을 표명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웨어를 직접 제작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이는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한 우물만 파는 모델이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결국 애플식의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애플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일거에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줄 아는 회사다. 게임 체인저인 애플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혁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애플이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마다 항상 부정적인 의견이 뒤따랐다. 현재를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미래에도 계속 적용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승리한 게임의 법칙이라도, 다음날에는 게임 체인저에 의해 일거에 뒤집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애플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의 성공을 만들어내면 세상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또 그만큼 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아이폰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정식으로 출시되자 아이폰 판매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고작 10만 대에서 20만 대 정도 판매될 것이라 예상할 정도였다. 실패의 근거는 스마트폰 시장이 1%밖에 안 되고, 국산 휴대폰 점유율은 90%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외국산 휴대폰의 무덤이며, 스마트폰 시장은 너무 작으니 아이폰 역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애플의 역량을 무시한 것이었다. 아이폰은 한국에서 출시된 후 40만 대를 판매하더니 6개월 만에 70만 대를 돌파했다. 아이폰이 처음 잘 팔릴 때는 대기수요가 한 번에 몰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판매는 곧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아이폰이 대세라고 보고 있다. 


아이폰의 성공과 함께 한국의 휴대폰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1%밖에 안 되는 시장 점유율로 찬밥신세였던 스마트폰 시장에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회사의 사운을 걸고 전력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무선랜은 이동통신업체로서는 반갑지 않은 기능이다. 무선랜으로 인터넷을 하면 이동통신업체의 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통신요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무선랜 기능을 정작 휴대폰 모델이 발매될 때는 제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이제는 일반 폰에도 와이파이가 달릴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이동통신업체는 회사의 사활이 와이파이에 있다는 생각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와이파이 확충을 위한 경쟁에 돌입할 정도로 무선랜에 대한 태도 자체가 돌변했다.


아이폰은 단순히 이동통신 산업만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인터넷 업체들은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언론, 출판, 금융, 유통업체들도 아이폰이 변화시킨 환경에 적응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아이폰은 단순히 휴대폰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라이프스타일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가 외국에서도 신기했는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The iPhoning of Korea’라는 이름으로 아이폰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는지를 보도할 정도였다. 


게임 체인저로서 아이폰이 만들어낸 가장 놀라운 모습은 액티브 엑스(Active X) 일색인 한국 인터넷의 변화다. 액티브 엑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적인 기술로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는 호환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웹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에서만 완벽하게 작동된다. 한국은 윈도우가 시장을 장악한 영향도 있지만 유독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높다. 익스플로러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62.7%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97%나 된다. 한국에서 유독 시장점유율이 높은 것은 액티브 엑스 덕분이다. 한국에서 액티브 엑스 없이 인터넷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액티브 엑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차원에서 전자상거래에 필수적인 공인인증서를 법으로 규정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브 엑스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였다는 점이다. 


국가가 이렇게 특정기업의 기술을 강제로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은 세계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 때문에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가 아니면 아예 인터넷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다양한 기술로 무장한 플랫폼이 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폰이 실패할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액티브 엑스였다. 액티브 엑스 없이 온전한 웹 서핑이 어려운 한국에서 아이폰에 탑재된 브라우저인 사파리로는 인터넷을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폰이 등장하자 인터넷서비스업체들이 모바일 전용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아이폰으로도 편안하게 웹을 서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도 액티브 엑스 없이 아이폰에서도 인터넷 상거래가 가능하도록 공인인증서 제도를 바꾸기로 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시 게임 체인저로서의 아이폰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애플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게임의 법칙을 바꾸기도 한다. 애플은 처음부터 아이폰을 서비스할 이동통신업체를 직접 선택하려 했다. 이는 당시로는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업체의 관계는 슈퍼갑과 을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휴대폰 판매량은 이동통신업체가 밀어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이었다. 그래서 휴대폰 업체들은 이동통신업체가 요구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이런 관계 때문에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업체를 농노로 표현하는 언론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동통신업체가 원하는 휴대폰이란 위대한 제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동통신업체와 2년 정도 약정을 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정도의 무난한 휴대폰이면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이동통신업체에서 보조금을 받고 소비자에게 무료로 팔 수 있는 정도의 그저 그런 수준의 휴대폰이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동통신업체의 입김을 배제하고, 철저히 애플의 생각으로 아이폰을 개발하려고 했다. 이동통신업체와 협의 없이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도 당시로는 놀라운 발상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이동통신업체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팔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휴대폰을 만드는 업체가 이동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콘텐츠를 직접 판매하겠다는 이런 계획 역시 당시에는 전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동통신사는 통신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휴대폰의 기능에서부터 판매와 서비스 방식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던 현실에서 애플의 계획은 그야말로 무모함, 그 자체였다. 


실제로 미국 1위의 이동통신업체인 버라이존에 아이폰을 제안하자 그 즉시 거절당했다. 하지만 애플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 했다. 만약 이동통신사로부터 자신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직접 이동통신사를 세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AT&T는 5년 동안 아이폰 독점판매권을 갖는 대신 그 이외의 모든 통제권을 애플이 가져가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AT&T가 버라이존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회사의 고객을 뺏어 와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AT&T는 애플의 아이폰이라면 다른 업체의 고객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사실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동통신업체의 절대권력 중 상당 부분이 휴대폰 업체에게 이양된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이후 이동통신업체는 자신들의 권력을 나누어 주면서까지 위대한 휴대폰을 모셔 오기 위한 경쟁을 펼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야말로 게임의 법칙이 완전히 바뀌었고, 혁명의 시작에는 역시 애플이 있었다. 


게임의 법칙을 애플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모습은 최근 벌어지는 플래시와의 전쟁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플은 플래시가 자원을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플래시의 제작사 어도비가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이를 비난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장문의 글을 통해서 애플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밝혀야 했다. 그는 “플래시는 PC와 마우스 시대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바일 시대에 필요한 저전력과 터치 인터페이스 그리고 개방형 웹 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애플은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기술업계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플래시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다. 플래시는 윈도우 PC와 매킨토시에서 동시에 돌아가는 멀티 플랫폼을 지원한다. 그러나 사실 윈도우 PC에서 훨씬 잘 돌아간다. 이 때문에 아이폰에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자 매킨토시 사용자들은 오히려 잘 됐다고 환영할 정도였다. 그동안 매킨토시 이용자들은 윈도우 PC에 비해 형편없이 돌아가는 플래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도비는 시장 점유율 90%가 넘는 윈도우 PC에 전력을 쏟았고, 점유율 5% 내외에 불과한 매킨토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애플에게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윈도우 PC에서 쌩쌩 잘 돌아가는 플래시가 매킨토시에서 잘 돌아가지 않으면, 애플의 컴퓨터 기술력이 떨어져서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악몽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MS 워드의 경우 윈도우에서 문서 파일을 불러오면 즉시 열렸지만 매킨토시에서는 30초나 걸렸다. 매킨토시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매킨토시 성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야말로 애플의 암흑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완전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는 MS 오피스가 아예 매킨토시용으로는 나오지도 않았었다.) 결국 애플이 너무 많은 부분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의존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도 스티브 발머는 온전한 MS 오피스를 쓰고 싶다면 매킨토시가 아니라 윈도우를 쓰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그런데 플래시가 같은 악몽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매킨토시에서 일어나는 충돌 문제의 가장 빈번한 원인은 플래시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어도비에 지적했지만 별다른 대처를 해주지 않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정작 어도비는 스티브 잡스의 불만에 대해 애플로서는 가장 치욕스러우면서도 절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답변을 내놓았다. 어도비 CEO인 산타누 나라옌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매킨토시에서 플래시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플래시가 매킨토시 운영체제인 맥 OSX의 문제라고 밝혔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정말 치명적인 일이다. 이는 맥 OSX가 윈도우보다 떨어진다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도비는 10여 년 전부터 매킨토시 플랫폼에 소홀해 왔다. 어도비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 해도 맥 OSX 버전이 윈도우보다 열등하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도움 덕분에 성공시대를 연 어도비가 정작 애플을 외면하자 스티브 잡스는 충격을 받았고, 그가 소프트웨어에 전력을 쏟는 계기가 될 정도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애플이 플래시를 거부하는 이유가 사실은 과거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어도비는 매킨토시보다 윈도우에 정성을 쏟아왔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이 월등히 많은 곳에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애플이 그런 사정까지는 봐줄 필요가 있을까? 애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보호해야 한다. 플래시는 애플의 명성에 타격을 주고 있으며, 플래시의 인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어도비는 윈도우에 주력하는 회사이며, 이는 제품의 질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만약에 플래시를 기준으로 해서 윈도우와 맥 OSX을 평가하게 된다면 맥 OSX가 완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입장에서 보면 플래시가 플랫폼을 선택하는 기준은커녕 평가 대상도 될 수 없도록 플래시의 입지를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공개 메일을 보면 애플의 이런 의도가 잘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여섯 가지 이유를 들어서 플래시 거부 사유를 밝혔는데, 마지막 여섯 번째에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했다. 여섯 번째 항목에서 스티브 잡스는 외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툴을 만들 경우 플랫폼의 기술과 성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플랫폼을 향상시켜도,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이를 적용하여 업그레이드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어도비의 플래시는 윈도우와 맥 OSX 두 개의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멀티 플랫폼이지만, 맥 OSX의 최신 기술이 등장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이를 접목할 정도로 맥 OSX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도비의 플래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는 소프트웨어가 된다면 애플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 자명하다. 고로 애플의 입장에서는 플랫폼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플래시를 견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애플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으면 애플에 대한 비난 여론이 흐를 수밖에 없고, 어도비 역시 애플이 벽을 만들고 있다면서 폐쇄성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시장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싸움이라도 거기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특히 IT업계에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애플은 표준 기술인 HTML5를 들고 나오며 오히려 플래시가 폐쇄적이라고 역공격을 펼치고 있다. 어도비 입장에서는 자사의 기술을 애플에서 지원해 주지 않으니 애플이 폐쇄적이라고 하는데, 정작 애플은 웹이 특정회사의 기술로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플래시야말로 폐쇄형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웹은 주인이 없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업체 간 합의를 통한 공개 표준이 중요한 곳이다. 플래시가 편리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모든 기술을 어도비 혼자서 통제하는 폐쇄형 기술인 것도 사실이다. 


애플은 플래시를 교체하기 위한 기술로 공개개방형 표준기술인 HTML5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HTML5가 아직 확정된 기술이 아니며, 언제 대중화될지 모르는 미완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HTML5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애플이 HTML5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나서자 어느덧 IT업계의 화두는 HTML5가 되었고, IT기업이 너도나도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2010년 6월 스트리밍 미디어(Streaming Media)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1,147개의 미디어 사이트 중 49%에 이르는 업체가 앞으로 HTML5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HTML5를 지원하는 것은 아이패드의 성공 덕분이다. 아이패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플래시가 아니라 HTML5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HTML5 기술도 더 빨리 보급될 것이다. 


애플은 자사의 홈페이지에 HTML5 기술을 이용하면 얼마나 멋진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쇼 케이스까지 만들어 HTML5 기술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들이 게임의 법칙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잘 알 수 있다.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 한편 경쟁업체에게는 폐쇄적이라는 격렬한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이런 논란 속에 HTML5라는 표준기술을 제시하면서 업계 전체를 애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HTML5의 보급은 그 자체로 인터넷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일이다. 업계의 방향을 자사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애플의 능력, 그것이 바로 애플이 혁신을 넘어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그리고 저의 밥줄인 모바일 게임 러브아이돌 주식회사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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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 낸 규칙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결론에 맞춰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해서 여러분 내면의 소리를 죽이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은 이미 당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해설> 이렇게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남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온 힘을 쏟는 사람이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그런 면이 있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서 재기하고 세상을 바꾸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위에 소개된 명언과 어록들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도 인간이었다. 사실 스티브 잡스도 주변에서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면 거기에 신경을 썼다.






12. 지난 24시간동안 800여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메일은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내용입니다. USB코드가 없다! 이게 없다. 저게 없다. 그것들 중에는 “제길! 어떻게 당신이 이럴 수가 있지?”같은 것도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답장을 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이러는 걸 알면 부모님이 참 자랑스러워 하시겠군요” 어떤 사람은 아이패드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듭답니다. 우울한 날입니다. 조금 힘이 빠집니다.


Steve Jobs, Isaacson, Walter, Simon&Schuster  2011.11.21



<해설> 아이패드를 처음 발표한 날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전기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한 월터 아이작슨과 식사를 하면서 위의 말을 했다. 아무리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일에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쏟는다고 하더라도 주변사람의 반응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사실 그가 일을 할 때도 100% 확신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도 항상 불안감을 가졌다.  


 






13. 솔직히 말하면 내가 관여한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우연이 아니라 이성을 바탕으로 돌아간다고 믿습니다. 


STEVE'S JOB: RESTART APPLE, CATHY BOOTH;DAVID S. JACKSON/SAN FRANCISCO AND VALERIE MARCHANT/NEW YORK,TIME, Aug. 18, 1997


 




14. 맥을 위한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일은 한달에 하루만 작동하는 나침반으로 정글을 탐험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이 강인지 산인지 혹은 뱀의 소굴인지도 알지 못한 상태로 말이죠. 결국 노다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이 가짜 금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Screen Wars, NEWSWEEK, Steven Levy, 2001







15. 우리가 내부적으로 기계들을 시험 삼아 사용해보고, 또 몇 년 동안 작업을 벌이지만 신제품을 발표하기 전날 밤, 혹은 한 주 전에는 여전히 너무도 긴장이 됩니다. 제품이 고객의 손에 들어갈 때까지, 고객들이 제품 평을 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iPhone 4.0 발표를 위한 애플 이벤트에서 2010년


 




16. 우리가 신제품을 만들 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고객의 의견을 반영하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함께 넣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맛나게 신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나면 실제로 당신이 그 제품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지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신제품을 발표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만큼 사람들도 당신의 제품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때에는, 정말 흥분되고 구원받은 느낌이 듭니다.


Interview Transcript: Steve Jobs,CNBC, September 05, 2007


 



17. 물론 저 역시 실패를 원하지 않습니다. 애플이 얼마나 나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제대로 모른 상황에서 복귀를 승낙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제 가족과 저의 명성 그리고 픽사에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에 대해서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이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를 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The Three Faces Of Steve In this exclusive, personal conversation, Apple's CEO reflects on the turnaround, and on how a wunderkind became an old pro,Brent Schlender; Steve Jobs, Fortune ,November 9, 1998


<해설> 스티브 잡스 역시 자신의 일에 확신보다는 불안감을 가졌지만 결국 최선을 다하며, 우직하게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가 이렇게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사랑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8. 신념을 잃지 마십시오. 제가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유일한 힘은 바로 제가 사랑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찾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 인생의 큰 부분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겁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십시오. 안주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게 되면 마음으로 하는 모든 일들이 늘 그렇듯이 여러분 스스로가 확실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관계가 모두 그렇듯, 일과 여러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좋아질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계속 찾아 보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19.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은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입니다.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 보통 이성적인 사람은 포기하게 됩니다. 일이라는 것은 정말 힘든 법인데 그것을 한동안 지속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그 일을 즐기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곧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어납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살펴본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어려운 순간이 닥쳐와도 버텨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을 사랑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해버렸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누가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일을 위해서 인내하고 참아냅니까? 사업은  매우 힘든 일이고 계속 고민과 걱정거리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만약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D5 Conference: All Things Digital, May 30, 2007



 

<해설> 스티브 잡스는 일에 있어서 열정도 강조하지만, 동기도 중요시 여긴다. 동기에 따라서 그 사람이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지고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돈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해야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 제 나이 2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24세에는 천만장자가, 25세에는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돈을 위해 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BS: Triumph of the Nerd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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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17 07:30




1. 연예계의 대표 의리녀 손예진




본명은 손언진 1982년 1월 대구 출생으로 키는 161CM 2녀중 둘째다. 손예진하면 여성스럽고 청순함의 대명사인데 정작 손예진은 스스로 아들 같은 딸이라고 한다. 영화제작비가 부족하다고 하자 10억을 내놓는 것을 보면 드라마속 이미지와 다르게 대장부 같은 당찬 면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손예진은 의리녀로도 유명하다.  손예진은 19살 때 고등학교 시절 연기를 하고 싶어서 서울에 상경했는데 처음으로 계약한 회사가 바로 바른손엔터테인먼트이다.  현재는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로 회사명이 변경되어 있는데 손예진은 고등학생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소속사를 옳기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2. 박해일이 감탄한 손예진의 연기 비법





손예진은 작업에 들어가면 작품과 어울리는 음악들을 모아두고서 촬영직전까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감정에 몰입한다. 박해일은 손예진의 모습을 보고서 좋은 노하우라고 생각하고 손예진처럼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손예진은 박해일이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지 궁금해서 살짝 들어봤더니 이미자의 노래였다고.. 참고적으로 덕혜옹주를 촬영할 때 손예진은 나윤선 버전의 사의찬미를 들었다고 한다.



3. 알고 보면 스포츠 우먼




손예진은 현장에서 최적의 몸 상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소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는다. 이 밖에도 수영, 요가, 조깅을 꾸준히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몸의 긴장을 풀고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필라테스를 매일 한다고 한다.



4. 알고 보면 푼수? 손예진?





손예진하면 왠지 까탈 스러 울 것 같고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이 난다. 절친 공효진에 의하면 손예진이 엉뚱 발랄하고 푼수 끼가 있다고 한다. 식당에 가서도 큰 소리로 주문도 잘하고 물건도 잘 깎는다고 증언하였다.  손예진은 자신이 남을 웃기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서 공효진의 푼수발언에 대해서 일정부분 인정을 하게 된다. 


5. 손예진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손예진은 작품이 끝나거나 스스로 스트레스로 자신을 혹사했다고 생각하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외국에 가면 작품에 대한 고민 없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6. 손예진의 별명 소예진을 아시나요?




손예진처럼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열심히 현장에서 악착같이 일하는 진정한 배우로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소예진은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손예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손예진은 이에 대해 어감은 별로지만 별명자체는 참 마음에 든다고 화답하였다.


7. 손예진 알고보면 다큐멘터리 매니아?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에 반복되는 것에 지친 그녀는 판타지에 대한 로망도 물론 있지만 리얼한 이야기 갈증이 있다고 말한다.


8. 손예진 피부 관리법




손예진은 물에 레몬을 담가두었다가 세수를 하는데 그러면 비타민 C덕분에 피부트러블을 없애고 피부 진정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를 다 믿을 수 는 없겠죠?? 전 솔직히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걸 적었냐구요? 솔직히 10개 채우는 게 쉬운게 아닙니다. ^^;;


9. 손예진 이상형




손예진은 나이가 들면서 성격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대화가 통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같은 분야보다는 다른 분야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참고적으로 손예진은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딱 꼬집어서 이야기한적이 있습니다.


10. 손예진의 애창곡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입니다. 함께 들으시고 가시죠?



11. 손예진의 따귀에 김주혁이 서운해한 이유는?




오 정리를 하다보니 한가지가 더 있네요. 그래서 추가합니다.  비밀은 없다 촬영할 때 손예진이 김주혁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배역에 몰입한 손예진은 정말 강하고 쌔게 김주혁의 따귀를 때렸다고 한다.  사실 김주혁은 이때까지 서운함이 폭발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자마자 김주혁은 내팽개치고 모든 스탭들이 오히려 김주혁을 때린 손예진을 걱정하면서 다가가자 홀로 남겨진 김주혁은 결국 서러움이 폭발하고야 말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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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 사업에는 분명한 후광 효과가 있었습니다. 애플 제품을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아이팟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이팟을 사용하고는 이렇게 말해요. “와우! 애플의 다른 제품들은 어떨까?” 그들은 애플이 만든 제품에 훨씬 호의적으로 변하는 거죠. 나는 후광 효과가 아이폰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구입하는 애플 제품이 아이폰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 스티브 잡스, 2007년 <월스트리트 저널>





시장조사 전문 업체인 Frurry는 2009년 11월 매우 흥미로운 보고서를 하나 공개한다. 2009년 9월을 기준으로 iOS 기기들의 총판매량은 5,800만 대인데, 이중 아이팟 터치의 비중이 40%가 넘어선다는 것이었다. 흔히 iOS라고 하면 아이폰만 떠올리는데 휴대폰 기능이 빠진 아이팟 터치 역시 아이폰과 동일한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Frurry는 아이팟 터치가 애플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제품 라인업을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맥도날드가 장난감을 선물하는 해피밀 마케팅을 통해 아이들을 매장으로 유인한 후 아예 맥도날드의 고객으로 만든 것처럼 아이팟 터치가 상대적으로 어린 고객들을 애플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팟 터치를 구입한 어린 고객들은 애플의 인터넷 서비스인 아이튠스 계정을 만들게 되고, 그 후 음악과 애플리케이션을 구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팟 터치의 운영체제 iOS에 익숙해지는데, 그들이 자라서 스마트폰을 선택할 때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아이폰을 구입하게 된다는 것이 Frurry의 주장이다. 또 애플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iOS를 탑재한 아이폰의 전체 플랫폼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과 경쟁하는 업체들은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팟 터치를 사용한 10대 초중반의 아이가 자라서, 휴대폰을 구입할 나이가 되면 아이폰을 선택하게 된다는 Frurry의 이론을 전 세대별 마케팅에 적용해 본다면 애플은 매우 치밀하게 제품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객들은 나중에 맥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iOS는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즉 아이폰을 구입한 사람은 맥 OS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옮겨간다. 한국의 경우 2009년 1분기의 맥 판매량에 비해서, 아이폰이 발매된 2010년 1분기의 맥 판매량이 200%나 늘어났다고 한다. 2010년 2분기의 맥 판매량은 역대 최고기록인 347만 대였는데 이는 작년 동기 대비 33%나 증가한 수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애플 노트북이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트북은 아무래도 밖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성능과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선택 요소가 된다. 디자인이 뛰어난 애플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애플은 1,000달러가 넘는 프리미엄 노트북 시장에서는 9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애플 노트북은 대학생들에게 특히 인기 있다. 애플은 이미 2007년 미국 고등교육 노트북 시장에서 델을 누르고, 1위를 기록하였다. 애플과 델은 각각 33%와 32%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8년 시장조사기관인 스튜던트 모니터(Student Monitor)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1년 안에 사고 싶은 노트북으로 애플 제품을 선택한 사람이 무려 43%로 1위를 기록했는데, 2위인 델이 22%임을 고려하면 대학생들 사이에서 애플 노트북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2007년 조사에서는 애플 노트북을 구입하고 싶다는 응답이 17%였다. 2007년에 발매된 아이폰의 인기가 노트북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애플의 또 다른 핵심제품인 데스크톱 기반의 맥은 전통적으로 디자이너와 개발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제품이다. 



이제 애플의 제품 라인업을 세대별로 구성해 보자. 10대 초중반의 소비자를 아이팟 터치를 통해 애플의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애플의 운영체제와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진 고객이 전화를 가질 나이가 될 때면 자연스럽게 아이폰으로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이 고객이 대학에 가면 애플의 맥 노트북을 쓰고, 직업을 가지게 되면 데스크톱 기반의 맥으로 유인할 수 있는 라인업이다. 



잘 살펴보면 10대 이전과 50대 이후의 중장년층에 맞는 제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애플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이패드의 탄생이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팟 터치나 아이폰 같은 기기는 화면이 작기 때문에 미취학 아동이나 시력이 좋지 않은 중장년층이 사용하기는 어렵다. 화면이 더 커서 조작하기 쉽고, 눈으로 보기에도 편한 새로운 기기가 필요했고, 결국 아이패드가 추가됨으로써 애플은 전 세대와 연령대를 아우르는 완벽한 제품 라인업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에서 화면만 커진 기기’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긴 했지만 화면이 커짐으로써 아이패드는 기존의 애플 제품이 유인하지 못한 고객들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실제로 아이패드는 미취학 아동에게 장난감과 교육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를 보면 아이패드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동영상들이 넘쳐난다. 특히 19개월 된 마키가 아이패드를 가지고 노는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유아들이 아이패드의 애플리케이션을 조작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인상적인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한 번 익숙해진 인터페이스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아이패드로 IT기기를 배운 아이가 자라서도 애플의 제품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실현가능한 시나리오다. 아이패드는 4~5살 아이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도 공략할 수 있는 상품이다. IT전문 블로그 테크 크런치는 아이패드를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는 컴퓨터로 규정하면서, 엄마들의 컴퓨터도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쉬워서 기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패드가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고객층을 고려하면 애플은 아이팟 터치, 아이폰, 맥 노트북, 맥 데스크톱을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완벽한 라인업을 구축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제품들은 서로의 후광 효과를 통해서 상품판매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다. 사실 후광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잘 나가는 아이팟과 아이폰에 비해 맥은 아직까지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판매량을 보면 확실히 후광 효과는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이패드는 발매된 지 단 58일 만에 200만 대가 넘게 판매됐다. 아이폰이 100만 대를 판매하는 데 74일이 걸렸음을 고려하면, 초기 판매 속도는 두 배나 빠르다. 이에 비해 아이팟은 2년이 넘게 걸려서야 200만 대가 판매되었다. 아이패드 판매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매진으로 인해 실제 수요보다 공급이 못 따라가는 상황에서 얻은 소득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는 소비자 가전제품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10억 달러 매출을 기록한 제품이 되었다. 



아이팟에서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판매기록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아이팟의 후광 효과 덕분에 아이폰의 판매량을 끌어올렸음을 가정할 수 있다. 아이팟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아이폰이 그렇게 화제 속에서 발매되지도 않았을 테고, 74일 만에 100만 대를 판매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이팟으로 휴대용 기기 시장의 강자가 되었고, 이런 기대감이 아이폰의 판매량을 끌어올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 아이폰에서의 활약이 지금은 고스란히 아이패드의 판매량으로 끌어올려져 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은 현재 아이폰에 대한 높은 수요가 아이패드의 판매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과의 스마트폰 경쟁을 단순히 휴대폰 하나 더 팔기 위한 것으로 본다면 전체 그림을 잘못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의 힘은 단순히 판매량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아이팟 터치와 아이패드를 같이 고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세 제품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제품들이 각 연령대를 공략하면서, 하나의 제품이 잘 팔리면 다른 제품의 판매를 견인하는 후광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애플의 치밀한 제품 라인업은 애플스토어를 통해서 최종 완성된다. 최고 매출을 기록한다는 애플스토어에서 이들 제품을 유기적으로 전시 판매함으로써 또다시 후광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아이팟을 사기 위해 애플스토어를 방문한 고객에게 애플의 다양한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광 효과라는 면에서 보면 애플의 제품 라인업과 애플스토어는 그야말로 매우 정교하다. 



애플 주식이 지난 10년 동안 10배 상승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을 괜히 넘어선 것이 아니다. 지금의 애플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제품 라인업을 유기적으로 구축했고, 이들 제품을 한곳에 모아서 효과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유통망을 환상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플 마케팅 신화의 비밀


* 감성을 불어넣어라

애플은 기술 중심의 IT제품에 감성을 불어넣어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영웅이 되라

애플은 경쟁 기업이라는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되어서 브랜드 가치를 더욱 상승시켰다.


*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제품 라인업을 만들어라

애플의 제품 라인업은 서로의 판매량을 견인하는 강력한 후광 효과를 가지고 있다.


* 마니아들을 잡아라

인터넷의 발전으로 마니아들의 입소문 마케팅이 강력해지고 있기 때문에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 이야기를 제공해라

마니아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제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 소재를 제공해야 한다.


* 최고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라

애플은 직영점 사업을 시작하면서 의류업체 갭의 CEO였던 미키 드렉슬러를 영입해서 도움을 받았다.


*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팔아라

애플에서 물건을 사는 순간, 애플과 고객의 관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고객의 삶에 도움을 주고,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은 매주 연재됩니다. 그리고 모바일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러브 아이돌 주식회사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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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14 08:00



1. 정소민의 간단한 프로필




1989년 서울 출생으로 키 163cm 1남 1녀 중 장녀로 2010년 SBS 드라마 나쁜 남자로 데뷔하였다. 사실 데뷔한지는 오래되었지만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필자도 이광수와 출연한 마음의 소리를 통해서 팬이 되었고 그 후 관련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아직까지 많은 자료를 찾을 수가 없어서 글을 작성하는데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심으로 똘똘 뭉쳐서 정소민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을 작성하는데 완성을 하였습니다. 그나저나 키 163CM는 정말 믿기지가 않네요. 저는 무조건 168CM이상으로 봤거든요.



2. 정소민이 골든벨에 출연한 이유는?







정소민은 어린시절 발레를 배우다가 고등학교때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극심한 반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정소민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골든벨에 출연하였고 여기에서 기악천무라는 무용을 선보여서 아버지를 감동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적으로 골든벨에서 30번 문제까지 풀면서 연예계 대표 뇌섹녀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뭐 그런 기사도 있다. 무용을 했지만 악바리 성격이 있는 그녀는 학교공부도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인다.



3. 한국 예술 종합원 수석 입학한 정소민




무용을 위해 아버지를 어렵게 설득한 정소민이지만 갑자기 어느 날 그녀의 꿈이 뒤바뀌게 된다. 감정연기와 표현력에 도움을 받기 위해 연기를 공부하게 되는데 강의를 처음 듣는 날 그는 무용이 아닌 연기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게 된다. 이미 수시를 통해서 무용관련학과에 대학교 합격까지 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정소민은 아버지 몰래 한국예술 종합원에 연기전공으로 시험을 보게 되고 결국 수석입학을 하게 된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갑작스런 정소민의 진로변경에 화가난 아버지는 정소민의 연기를 인정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4. 정소민의 피부 건강 관리법




촉촉한 수분관리 크림 하루 한끼 한식을 챙겨 먹는다. 뭐 그렇다고 하네요


5. 정소민이 뜨개질에 빠진 이유는?





그녀가 어린시절에 빠진건 무용뿐만이 아니다. 중학생 때부터 정소민은 뜨개질을 해왔다고 한다. 실력도 보통이 아니라서 목도리, 모자, 장갑 등을 뜨개질로 만들 수 있는 스킬을 보유했다고 하는데 정소민이 이렇게 뜨개질에 빠진 이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 주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것을 보면 정소민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지 않을까요?


6. 그녀의 독특한 잠버릇





한때 가위를 많이 눌린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피곤해서 잠을 자면 잠꼬대를 하는데 어떨 때는 크게 말하면서 혼자 깰 때도 있다고 한다.


7. 정소민이 사실은 예명이었다? 






제가 정소민 한테 두 번째로 놀란 것이었습니다. 첫번 째는 키가 놀라웠고 두번째는 정소민이 본명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본명은 이윤지인데 예명을 이름에 연을 붙여서 윤지연으로 생각했다가 나중에 결국 정소민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8.  밤에 잠자기 싫은 올 빼미형 인간 정소민




정소민이 가지고 싶은 버릇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다.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밤이 되면 자기가 싫어진다고 한다. 조용한 그 시간이 온전히 자기의 시간처럼 느껴져서 그시간에 가만히 있거나 대본을 읽는다고 한다.


9. 정소민 이상형




잘난척 하고 거친 사람은 별로고 훤칠한 사람보다는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인성을 가진 남자라고 하네요.



10. 정소민이 추천하는 노래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 이다.  정소민은 이 노래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드라이브를 할때 이 음악을 듣는게 아니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르 타거나 드라이브를 하고 싶게 만드는 음악이라고 하네요. ^^;;  얘기를 들어보니 뭔가 집밖으로 나가는것보다 집안에 있는걸 좋아하는것 같지 않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밖에 나가는건 또 더럽게 싫어하면서 컴퓨터로 바깥 풍경사진 보는건 엄청 좋아하거든요. 딱 그런 느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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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세대의 바이블 같은<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이 서적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멜론파크에 살던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 시적인 느낌을 담아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톱 출판이 이루어지기 전인 1960년대 후반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 책은 모두 타자기, 가위, 폴라이드 카메라를 이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구글이 등장하기 전이었던 35년 전, 종이책으로 된 구글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도구와 기발한 개념들로 넘쳐난 이상적인 책이었지요.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Whole Earth Catalog>를 몇 회 발간한 후, 책의 역할이 끝나갈 즈음에 최종호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였을 때지요. 마지막 호의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여러분이 모험심이 강하다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어 할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Stay Hungry(끝없이 갈망하라). Stay Foolish(한없이 바보처럼)” 이것이 바로 그들이 남겨준 작별의 메시지였습니다. “끝없이 갈망하라. 한없이 바보처럼” 저는 항상 그러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졸업을 하고 새로운 날들이 펼쳐질 여러분들에게 제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2. 우리에게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정말로 훌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생은 짧고 결국에는 모두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으로 선택한 일입니다. 우리는 일본 어딘가의 절에 앉아서 수행을 하거나 항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골프를 치러갈 수도 있겠죠. 그들은 회사를 경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니 좀더 가치가 있게 일을 매우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Steve Jobs speaks out, Fortune,  MARCH 07 2008





3. 이 산업과 함께 성장한 저는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사업 초창기에 저는 거의 모든 일을 담당했습니다.  제품출하, 영업, 부품구입 및 공급, 바닥 청소, 감자칩 구매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나는 내 양손으로 직접 컴퓨터를 나르기도 했습니다. 산업이 커져가는 동안에도 저는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The Seed of Apple's Innovation, BUSINESSWEEK, OCTOBER 12, 2004






4. 픽사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헌신적이었고 토이 스토리와 캐릭터를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새로 만드는 영화를 너무나 좋아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회복하는 데 1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었어요.

다큐멘터리 The Pixar Story, 2007년





5. 많은 사람들이 픽사는 하룻밤 사이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하룻밤사이에 이루어진 성공도 오랫동안에 걸쳐서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ocumentary Pixar Story  2007년





6. 리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뭔가 훌륭한 것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맥을 만드는 사람들은 미치도록 훌륭한 제품을 원했다.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Apple confidential 2.0, Owen W. Linzmayer,No Starch Press, 2004





7.  사람들은 결과로 당신을 평가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결과물에 집중해야 합니다. 품질의 척도가 되세요. 어떤 사람들은 탁월함이 기대되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Steve Jobs: the journey is the reward,Jeffrey S. Young ,Scott, Foresman, 1988






8. 인터넷 창업 열풍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회사를 창업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끈기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몰론 이해는 합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절망스럽고 고통스런 순간이 너무나 많거든요. 사람을 해고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취소해야 하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여러분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회사를 팔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지만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속여야 합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었던 것을 포기한 채로 말이죠. 절망과 고통의 순간 없이는 절대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새롭게 쌓아올린 부를 지켜낼 방법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Apple’s One-Dollar-a-Year Man , Fortune ,24 January 2000





9. 우리는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대중화시켰고, 최초의 아이맥에서는 플로피 디스크를 제거했습니다. 우리는 직렬과 병렬포트를 없애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이맥에서 USB를 처음 보았을 겁니다. 우리는 맥북에어에서 옵티컬 드라이브를 최초로 버렸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때 사람들은 우리가 미쳤다고 합니다.




<해설>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 부어도 문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열심히 파고든다고 해도 주변에서 냉소적이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절대로 그런 시선에 흔들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D8 - AllThingsD(via Engadget Steve Jobs live from D8)  1 Jun 2010 11. 




10. 


여기 미치광이들이 있다.

사회부적응자, 반항아, 말썽쟁이

네모난 구멍 속에 쑤셔 넣은 둥근 못같은 사람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를 존중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자유지만 단 한 가지, 당신은 그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이끌고 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미치광이로 보겠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천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참여한 Think Different의 광고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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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12 08:00



1. 서현진의 롤모델은 메릴 스트립





1985년 서울 출생으로 키는 생각보다 큰 167cm, 몸무게는 생각한대로 45kg이다. 동덕여자 대학교에서 실용음악과를 전공하였고 종교는 천주교이다. 그녀의 가장 이색적이면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경력으로는 서현진의 나이 17살때 데뷔한 아이돌 그룹 밀크 출신이는 점이다.  그녀의 히트곡은 2004년 부른 이누야사 4기 오프닝곡이다. 가장 친한 친구로는 구혜선과 박희본이 있다.  덕분에 서현진은 구혜선이 연출한 영화 대부분에 출연하였고 밀크의 멤버였던 박희본이 결혼할 때는 오해영 촬영으로 바쁠때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참석하였고 바보처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서현진은 롤모델로 메릴스트립을 지목하였는데 얼굴의 눈코입보다 표정으로 설렘을 느끼게 만드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그녀의 특기는 무용! 부러운 사람은 한예리





서현진은 4살때 부터 무용을 해서 국립국악 중학교 한국 무용과를 거쳐 국립국악 고등학교 한국무용과를 다녔다.  그녀가 가장 후회하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무용을 포기했던거라고 밝힐 만큼 여전히 무용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무용을 좋아하는 것은 그녀가 연기를 좋아하는 이유 그대로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그 느낌이 좋아서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부러운 사람중 한명이 바로 한예리라고 한다.  한예리와는 함께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인데 한예리는 연기도 하고 여전히 무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서현진 에게 가장 값졌던 7년간의 공백기






서현진이 밀크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도 정작 그녀가 아이돌로 활동한것은 단 1년에 불과하다.  팀원의 탈퇴와 회사의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서 서현진은 사실상 강제 은퇴상태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은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만난 세계는 사실은 밀크 2집의 타이틀곡으로 예정되어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여튼 아이돌 생활을 그만 둔  그녀는 대학생활을 집중적으로 즐겼다고 한다. 친구들과 밤샘 합주를 하고 돗자리를 깔고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강의를 들을 정도로 푹빠져 있었다고 한다. 서현진은 엄마의 친구가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가끔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닮은 사람이라면서 능청스럽게 넘어갔다고 한다. 




4. 서현진을 구원해준 뮤지컬






서현진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친다. 거기에다가 연기도 잘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뮤지컬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녀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통해서 다시 새롭게 연예계로 복귀하면서 연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모든것이 낯설고 처음하는 것이라 그런지 너무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연습을 하고 휴식시간이 될때마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릴정도였다고 말할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2015년 까지만 해도 스스로 배우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배우는 캐스팅이 안되면 그만둬야 하는데 서현진은 섭외가 안되면 아쉬울것 없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 신데렐라를 출연하면서 직업란에 배우를 쓰게 될 정도로 직업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5. 서현진의 피부와 몸매 그리고 건강 비결





서현진의 피부비법은 피부과를 정규적으로 다니면 생활속에서 늘 가습기를 켜놓고 마스크팩을 수시로 붙인다. 그녀는 몸매 관리를 위해서 필라테스를 그리고 체력이 필요할 때는 홍삼으로 버틴다고 한다.



6. 서현진은 단 한번도 술먹고 울어 본적이 없다.





서현진은 자신이 FM적인 면이 있어서 술먹고 울어보거나 길거리를 헤맨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왜 흥미로운 사실일까?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연기중 일품은 또 오해영에서 보듯이 술먹고 술주정 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술취한 연기가 너무 좋다고 한다. 서현진의 말로는 평소에 못해본걸 마음껏 할 수 있어서라고 한다.




7. 좋아하는 노래가 칠갑산?





서현진의 노래방 18번은 칠갑산, 강원도 아리랑, 대전블루스라고 한다.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고등학교 때 작성한 프로필에 당당히 적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고등학생의 서현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 목록이다. 한마디로 트롯트필 나는 음악들인데 과연 그녀가 부르는 칠갑산, 강원도 아리랑, 대전블루스가 궁금해진다.




8.  서현진은 오지 여행 전문가??





서현진의 의외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여행 그것도 남들에게 잘 알려진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오지여행이다.  오지를 좋아하는 것은 태초의 땅에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9.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서현진





한마음 한몸 운동본부의 홍보대사인 서현진은 이미 무명시절부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2005년에 몽골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고 2008년에는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갔다. 1년동안은 일주일에 한번씩  보육원에 가서  봉사하였고 노숙자들을 위한 밥차에서도 봉사활동을 하였다. 



10. 서현진의 이상형





이쯤 읽게 되면 서현진이 참으로 매력적이면서도 훌륭한 여성(?)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자분들이라면 그녀의 이상형에 궁금해지기 마련일 것이다. 사실 연예인들의 이상형은 언제든 그때 그때 변하기 마련이다. 가장 최신 버전의 서현진 이상형은 바람을 피지 않는 남자라고 한다. 2010년대 초반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 남을 행복하게 만들줄 알고 행복이 뭔지 깊이 생각해본 남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밀크 시절에는 남자답고 주관이 뚜렷해서 자기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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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11 08:00



 

1. 트와이스 나연의 일반적인 프로필로 말씀 드리면 1995 9 22일 강동구 상일동출생에, 162CM, 몸무게는 .. 뭐 굳이 이야기할 필요 있을까요? 어차피 보기 좋은 자태의 소유자입니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건국대 영화예술학과에 재학중이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좌우명은 감사하게 살자! 별명은 수많은게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막내 같은 맏이라는 의미로 맏내, 꼬부기를 닮아서 나부기 그리고  과즙녀, 나부기 쪼다연,  토끼 언니등이 있음





 

2.  취미는 립스틱을 모으는 게 취미다. 이른바 립 덕후인 트와이스 나연은 화장은 잘 못하지만 입술이라도 제대로 바르자는 생각으로 립스틱을 모았는데 그러다 보니 수 십개의 립스틱을 수집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입술의 립스틱 색깔에 매우 민감해서 30분 마다 립스틱 색깔을 바꾼다는 멤버의 폭로가 있을 정도다.

 




3. 트와이스 나연의 친한 연예인은 블랙핑크의 동갑내기 지수와 제니이며 그녀가 좋아하는 걸그룹은 오마이걸로 오마이걸의 춤을 잘 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의외의 인맥으로는 김국진이 있다. 바로 트와이스 나연의 아버지가 바로 김국진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김국진은 어릴때부터 트와이스 나연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4.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사진을 볼 때 마다 박진영의 모습이 보인다는 발언을 무려 공중파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에서 용감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매우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은근 얼굴 형이 비슷한듯도 하네요. ^^)



5.  나연은 잘 넘어지고 휘청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교통사고 후유증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왼쪽 다리에 힘이 잘 풀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와이스 나연은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6. 트와이스 나연은 스스로 기계치라고 생각하는 그녀인데 2017년 초에 운전면허를 땄다는 점에서 그래도 어느정도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않았을까?

 

 




7. 트와이스 나연의 이상형은 따로 없지만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서 듬직한 사람이 좋다고 한다. 또한 기계를 못 다루기 때문에 기계를 잘 아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한다. 이는 키스 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말을 하자 이특은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냐고 물었고 이에 멤버들이 괜찮다고 맞장구를 치는 장면이 재미있다.

 




8.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기이다.  스스로 중독수준이라고 말하며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즐겨 본다고 한다. 그녀가 좋아했던 아이들로는 송일국의 삼둥이와 이동국의 대박이가 있다.

 




9. 트와이스 나연에게도 개인기가 있다. 그녀의 개인기는 개소리이다. 말을 순화시켜 이야기하자면 쯔위와 함께 강아지소리를 내는 개인기이다.  개인적으로 개소리보다 더 웃긴 것은 나연의 새빨개진 얼굴이다.



 



10. 트와이스 나연이 노래방에서 가장 자주 부르는 노래는 드라마 덕후 답게 풀하우스의 OST곡으로 별이 부른 I Think I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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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 방문은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 헨리 블로젯, 2010년 <비즈니스 인사이더> How I Ended My Affair With BlackBerry And Eloped With The iPhone 기사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7)



사람들이 애플의 힘을 평가할 때 가장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애플스토어다. 애플이 곧 망할 것이라면서 애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사람들이 정작 애플의 가장 훌륭한 자산인 애플스토어라는 존재는 쏙 빼놓는다. 애플은 소비자 가전업체로 항상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면서 물건 파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보다 나은 애플만의 노하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HP나 델컴퓨터에게 라이선스를 넘긴다. 엄격히 말하면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을 고객으로 상대한다. 구글 역시 광고주와 거래를 하는 것이지 소비자로부터 돈을 벌지는 않는다. 하지만 애플은 소비자에게 직접 돈을 받고, 물건을 판다. 그래서 애플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소비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이런 노하우가 애플스토어에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는 유통점의 영향력이 우리 생각 이상으로 크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물건들의 수에 비해 제품의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통업체는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팔릴 물건과 그렇지 않을 물건을 선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대형 유통점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제품을 어느 위치에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판매량이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정도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상점의 구석자리에 전시되어 있다면 팔리기 힘들다. 당연히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회사 간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애플이 직접 소매점을 운영할 생각을 한 것도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유통점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고육지책이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애플2 컴퓨터는 인기 상품이었고, 유통업체는 애플의 까다로운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까지 애플 제품을 공급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IBM PC가 등장하자 상황은 돌변했다. IBM PC가 매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고, 애플 제품은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점원의 권유를 뿌리치기 힘든데, 매장 점원은 IBM PC에 익숙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객을 IBM PC가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매킨토시가 팔리지 않자 매장은 더욱 애플 제품을 홀대했고,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설치해 놓지 않아서 작동도 되지 않는 매킨토시가 먼지만 잔뜩 낀 채 구석에 방치되었다. 오죽하면 그 광경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열혈 애플 마니아들이 매장에 전시된 매킨토시를 직접 깨끗이 닦고, 꺼져 있는 전원을 켜서 손수 소프트웨어를 작동시켰을까.


매장에서 찬밥대우를 받게 되자 스티브 잡스는 뭔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만 했다. 특히 구석에 손상된 채 방치되어 있는 매킨토시는 그 자체로 애플의 브랜드에 악영향을 주었다. 구겨진 애플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가만히 앉아서 희생자가 되느니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심 끝에 직접 소매점을 운영하기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가 이 어려운 도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선택한 인물은 의류업체 갭(GAP)의 CEO였던 미키 드렉슬러(Mikey Drexler)였다. 그는 하나의 매장 안에서 여러 의류 브랜드 상품을 팔던 당시의 관행을 깨고, 갭 제품만 판매하는 소매점을 운영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3년 5억 달러가 되지 않았던 갭의 매출은 그의 전략 덕분에 2000년에는 137억 달러로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마케팅과 소매점에 대한 노하우를 얻고자 애플의 이사회로 초대했고, 미키 드렉슬러는 컴퓨터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기꺼이 애플 이사회의 일원이 되어 주었다. 


또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 사업을 책임지고 실행해줄 인물로 론 존슨을 스카우트했다. 론 존슨은 타깃(Target)이라는 유통업체에서 근무했었다. 타깃은 월마트와 같은 할인마트 지점 방식을 추구했지만 회사 전체의 규모는 군소업체에 불과했다. 그는 갭의 직영점 운영전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타깃에 적용하였다. 패션업체가 디자이너의 명성을 이용하는 것처럼 론 존슨은 산업계에 유명한 디자이너를 끌어들여서 주전자와 같은 가정용품을 만든 후 타깃 브랜드로 상품을 판매했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타깃의 브랜드, 그리고 유통망이 합쳐져서 론 존슨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둔다. 


스티브 잡스는 론 존슨을 소매점 책임자로 임명하고 함께 애플스토어 전략을 세워갔다. 애플스토어가 실현하고자 하는 핵심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전략은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매장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하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의 다른 상점들은 고객이 제품을 쉽게 찾아서 빨리 계산을 하고 매장을 빠져 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애플은 좀 더 크게 생각해야 한다고 봤다. 두 번째 전략은 애플스토어를 통해서 고객이 주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는 바로 그 순간 상점과 고객 사이의 관계도 끝난다. 그러나 애플은 고객이 제품을 구입하는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간주하고, 계속해서 고객의 디지털 라이프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직영점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은 애플에서 제품을 만드는 방법과 똑같았다. 수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가면서 제품을 개발하듯이 본사 근처에 실험적으로 매장을 직접 만들었다. 몇 개월간의 노력 끝에 실험 매장이 거의 완성됐을 무렵 론 존슨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론 존슨은 애플스토어가 물건 파는 곳이 아니라 미래의 디지털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런 의견을 듣자마자 스티브 잡스는 크게 화를 내며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모두 포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고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단단히 화가 난 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론 존슨을 찾아온다.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말투로 론 존슨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론 존슨은 고객이 원하는 물건보다는 회사가 생각하는 제품별로 분류되어 있다는 문제를 깨닫고 있었다. 이는 고객 체험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에 위배되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와 론 존슨은 처음부터 다시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6개월에서 9개월이 더 걸려서야 애플스토어의 실내 디자인을 끝마칠 수 있었다. 애플스토어에서 제품과 관련된 공간은 4분의 1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고객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구성됐다. 이런 노력 끝에 애플스토어는 겨우 완성되었고, 정식으로 개장을 하게 된다. 


애플스토어에 대한 고객 평가를 조사하던 중 론 존슨은 한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애플스토어에 초대된 다양한 부류의 고객들에게 지금까지 받았던 최고의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물어봤더니 18명 중 16명이 호텔이라고 말했다. 호텔은 고객에게 아무런 물건을 팔지 않고 오직 고객에게 경험을 서비스하는 곳이다.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하자는 애플스토어의 전략은 호텔의 역할과도 여러 가지로 맞아떨어졌다. 론 존슨은 다시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애플스토어에서 호텔과 같은 친절한 느낌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고객들은 애플스토어 안에 바를 설치하라고 답해 주었다. 론 존슨은 이를 바탕으로 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지니어스 바(genius bar)’를 선보이게 된다.


지니어스 바는 고객의 삶을 풍족하게 한다는 애플스토어의 당초 취지를 완벽하게 구현한 장소이다. 기존의 컴퓨터 업계에서 고객상담은 전화로만 이루어졌다. 고객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의 이상증세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그런 컴퓨터 초보자가 전화로만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기존의 컴퓨터 업체들은 비용을 줄이고자 인도에 외주를 줄 정도로 고객상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애플은 고객과 얼굴을 맞대고 친절하게 상담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해낸 것이다.


 지니어스 바에서는 ‘지니어스’라고 불리는 컴퓨터 전문가에게 누구나 무료로 컴퓨터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지니어스 바는 단순히 애프터서비스를 받는 공간이 아니라 컴퓨터 전반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 론 존슨에 의하면 요즘 지니어스 바는 마치 스튜디오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애플의 맥용 소프트웨어인 아이 무비에 음악 넣는 방법을 배우거나 친구 결혼식에서 맥을 이용해서 DJ를 하는 방법을 상담받으면서 분위기가 마치 크리에이티브한 스튜디오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지니어스 바는 친절하게 애프터서비스를 받는 공간에서 어느덧 고객의 경험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곳으로 진화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를 오픈하면서 한 가지 위험한 도박을 한다. 대도시 지역에서, 그것도 누구나 한 번 가보면 금방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노른자위 땅 위에 매장이 들어서도록 했다. 땅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이는 초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도박은 결국 큰 성공으로 돌아왔다.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과감한 선택을 한 이유는 애플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애플스토어를 한 번 정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에 매장이 있다면 특별한 애정이 있지 않는 한 방문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 중심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애플스토어에 들어와서 매장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애플 제품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철저한 계산 아래 디자인된 만큼 막상 매장에 들어오면 애플에 호의적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Sillicon Alley Insider>의 기자인 헨리 블로젯(Henry Blodet)은 애플스토어에 처음 들어서자 마치 새로운 신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호의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스토어는 애플이 만들면 매장도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애플이 직영점을 연 시기는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가 대세였기 때문에 애플의 선택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다. 직영점을 운영하던 컴퓨터 회사 게이트웨이는 매장사업을 그만두려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더욱 애플을 부정적으로 봤다. 애플의 제품에 언제나 그랬듯이 <비즈니스위크> 같은 언론에서는 실패할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애플은 기존의 상식을 깨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집단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2001년 오픈한 애플스토어의 매출은 3년 만에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06년에는 분기당 매출이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8년에는 각 매장당 매출액이 2,800만 달러 정도를 기록했으며 제곱미터당 수익은 4,700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미국의 모든 소매점 중 가장 장사를 잘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2009년 애플의 전체 매출은 299억 달러였는데, 당시 애플스토어 매출이 66억 달러였을 정도다.


애플스토어에는 수치로만 드러나지 않는 다른 여러 장점들이 있다. 우선 애플스토어 자체가 애플의 광고판 역할을 한다. 애플을 전혀 모르던 사람도 아름답게 꾸며진 매장을 지나가면서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호감을 갖게 된다. 또한 애플스토어의 지니어스 바 덕분에 컴퓨터와 가전업체 중에서 서비스가 최고인 회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충성도 높은 애플 마니아들은 마치 성지를 순례하듯이 애플스토어를 방문해서 애플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고 마니아들끼리의 사교 공간으로 활용한다. 또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소비자들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제품개발 단계에서는 시장조사를 별로 하지 않는다. 대신 시장에 출시한 후에는 고객들의 반응을 세밀하게 체크해서 차세대 제품에 이를 반영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애플의 제품은 그 어떤 기업의 제품보다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 2009년 미국 소비자 만족도 조사(American Customer Satisfaction Index, ACSI)에서 애플 컴퓨터는 PC 분야 1위를 기록했는데, 델컴퓨터와는 9점, HP와는 10점이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JD파워가 발표한 스마트폰 만족도에서도 810점으로 1위를 기록했는데, 경쟁사들이 700점대 초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엄청난 차이였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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