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사실들'에 해당되는 글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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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5.01 고아라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 (2)
  3. 2017.04.27 박보영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 (7)
  4. 2017.04.24 조보아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
  5. 2017.04.17 손예진에 대한 흥미로운 10 가지 사실들
  6. 2017.04.14 정소민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
  7. 2017.04.12 서현진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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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6.03.31 전자책 IT 왕조실록을 출간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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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14.01.17 한지민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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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013.05.15 드라마 나인이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와 엔딩인 이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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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11.07.19 빌게이츠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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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011.06.14 포켓몬스터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10가지 (9)
  25. 2011.06.10 박신혜에 대한 흥미로운 12가지 사실들 (43)
  26. 2011.06.08 조너선 아이브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10가지 (10)
  27. 2011.05.23 애플스토어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15가지! (8)
  28. 2011.05.11 구글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사실들 10가지 사실 (26)
흥미로운 사실들2017.06.21 21:22



1. 김소희는 왜 퀵소희로 불리우는가?




사실 김소희의 별명인 퀵소희의 어원을 아느냐 유무는 그녀의 팬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사실 팬들은 김소희라는 이름보다도 오히려 퀵소희에 더 익숙해져 익숙해져 있다. 필자역시 글을 쓰면서도 퀵소희가 아니라 김소희라고 글을 쓰려니 어색할 정도다. 퀵소희라는 별명은 프로듀스 101에서 참가자중과 대화를 나누던중 나이를 물을 때 95년생 여기에 빠른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유례가 된것이다.  그래서 퀵소희라는 별명은 사실 김소희에게 달가운 별명은 아니었다. 나이를 물어봤던 안예슬과는 프로듀스 101에서 가장 친한 친구중 하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사정을 모르고 편집된 화면만 본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기에 충분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김소희는 매우 한정된 화면속에서 자신의 매력과 성품을 드러냄으로써 퀵소희라는 별명을 애칭으로 들리게 만들었다.  프로듀스 101을 본 사람은 11위안에 못들은것이 안타까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5위라는 순위역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종 악 조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이는 충분히 증명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김소희는 정말로 빠르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때 달리기 대회를 하면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고 하니 퀵소희라는 별명은 어쩌면 김소희에게 운명이었던듯 하다.


2. 그녀에게는 슬픈 역사  슈퍼스타 k 통편집




사실 모든 팬들이 그럴 수 있지만 프로듀스 101을 보면 새삼스럽게 김소희가 거둔 성적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프로듀스 101을 보면 사실 1편과 2편만 보면 누가 11인 안에 들어가게 될지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분량하나 없는 그녀인데 김소희에게는 프로듀스 101보다 더 슬픈 역사가 있었다. 그녀는 슈퍼스타 K의 시즌 2부터 7회사이에 다섯번을 출연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물론 중간 예선에 떨어지면 화면에 나올 기회가 없는 것은 당연한데 무려 슈퍼위크에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출연분은 몇초가 되지 않는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이렇게 통편집의 역사를 가지고 프로듀스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그 주눅든 모습을 이겨내고 최종 성적 15위까지 거둔것은 다시봐도 기적이라고 생각된다.


3. 김소희는 음악의신 계약이 진짜 인줄 알았다.





김소희는 음악의 신에서 진행된 계약이 진짜 인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매니저도 이야기를 안해주고 그냥 방송하러 간다고만 했는데 이상민과 탁재훈의 열연에 그들이 말한 계약도 진짜인줄로만 알았다는 것이다. 음악의 신인줄은 생각도 못하고 이상민과 탁재훈의 화려한 언변에 휘둘려서 얼떨결에 계약서가 진짜인 줄 알고 지장을 찍었다고한다. 이런 사실을 김창렬의 올드스쿨에 나와서 김소희와 윤채경이 말을 하는데 이때만해도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상민이 진행하는 밀크 뮤직에서 이상민에게 진지하게 묻는 장면이 있다.  처음 만났을때 이상민이 일부러 상위권에 있던 자신을 음악의 신에 출연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순위를 떨어뜨렸냐는 질문이었다.  이상민은 이에 노코멘트로 답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묻는 김소희의 목소리를 들어본다면 이상민과의 계약도 진짜로 믿었던 듯 싶다. 하여튼 음악의 신은 김소희에게 큰 축복이 된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이름을 알리고 데뷰까지 하고 사랑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예능감이라는 것을 선물했다는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선물이다.  인터넷으로 방송되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와 모비딕에서 진행하는 게임 인터넷 방속인 소희오락실을 보시면 그녀의 예능감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4. 그녀가 저지른 최고의 일탈은?





고등학교를 졸업후에 가수가 되겠다는 꿈 하나를 믿고서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운 김소희는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담을 주기 위해서 갈비집과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거역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일탈이었노라고 그녀는 말한다.


5. 김소희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하다.



음악의 신 마지막회에서 김소희는 옛말에 연예기획사 대표와 사기꾼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말을 읊조린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사기꾼 대표를 만난적이 있다.  기획사 대표가  연습할 시간에  대표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서빙하고 양파도 깍는 일들을 시켰따고 한다. 장사가 잘되어야 자금이 생기고 그래야 데뷔도 할 수 있다는 마음에 정말 열심히 일했던듯 싶다.  그런데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회사 실장이 그녀를 여자로 보고 결혼하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여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에 6개월만에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이상민과의 계약이 진짜 인줄 알았고 매니저에게 사기당하는 모습을 보니 약간 걱정이 될 정도이다. 


6. 음악의 신에서 녹음실에서 울던 장면은 진짜였다.




찾아보시면 몰래카메라 장면으로써는 너무나 재미있는 장면이다. 필자는 그 장면을 보면서 김소희라는 사람이 정말 겁많고 순진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생각하면서 본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번지점프나 놀이 기구 같은데는 또 겁이 없다고 한다. 



7. 순둥이 김소희를 화나게 하는 방법



브이앱 방송 일주일전부터 너무 떨려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방송중에 떨고 있는 모습을 한 두번 보여주는게 아닌 순둥이 김소희.. 그런 그녀가 표정과 눈빛이 변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자신의 앞머리가 노출되었을 때이다.   김소희에게 이마는 컴플렉스이고 이마를 가려주는 앞머리는 그녀에게 쉼터이자 안식처이다.  앞머리가 노출되는 순간 그녀는 당황하고 어떻해서든 앞머리로 가리려고 노력한다.  내 개인적으로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헬로 아이비아이를 보면 이런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2회에서 수현은 세수할 때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 해주는 헤어밴드를 착용시켜줄 때의 그 복잡다단한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8. 그녀가 최고로 좋아하는 것! 바로 라면!




라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라면을 먹고 점식은 다른 음식을 먹어야 겠다고 자신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에도 여지없이 라면을 먹고 그리고 속으로 다시한번 저녁은 밥을 먹어야곘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라면을 먹었을 정도로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만큼 라면요리에도 자신이 있다는 그녀는 라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계란이다. 물을 올려놓고도 계란이 없으면 불을 끄고 다시 슈퍼에 가서 계란을 다시 사올 정도다. 이렇게 라면을 좋아하는 만큼 그녀가 가장 찍고 싶은 CF 역시 어떤건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9. 라면만큼이나 확고한 김소희의 이상형 강하늘




그녀의 모든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이상형은 한결같이 강하늘이라는 대답을 한다. 강하늘하면 자기 일에 열심히하고 모범생에 착한 이미지가 있으니 아무래도 이런 모습들이 그녀의 이상형이 아닌가 싶다. 



10. 그녀의 롤 모델 아이유





한편 가수로써 김소희의 롤 모델은 아이유이다. 그러고보니 아이유는 원래 아이돌로 준비했지만 목소리카 튀어서 솔로로 데뷔한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소희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허스키하기 때문에 그룹보다는 솔로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서 괜히 시간 낭비하느니 작사작곡을 배워서 아이유처럼 뮤지션의 길을 걷는게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마침 그녀는 작사와 작곡을 하고 있다고 한다. 듣던 중 참으로 반가운 소리였다. 뛰어난 예능감과 괜찮은 말솜씨를 가진 만큼 라디오 DJ라는 확고한 일자리를 가진 상태에서 예능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다가 CF로 돈도 벌고 그녀가 작사 작곡한 노래가 히트함으로써 뮤지션의 길을 갔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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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5.01 22:37



1. 대한민국 공군의 딸 고아라




고아라는 1990년 2월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1남 1녀중 장녀로 태어난다. 아버지는 공군출신의 직업군인이며 어머니는 교사로 알려졌다. 덕분에 고아라는 공군 홍보대사로 활약중이다. 키는 169CM 의 장신으로 종교는 개신교이며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다녔다. 절친으로는 같은 대학 동기 동창 출신인 박신혜가 있다. 좋아하는 운동으로는 볼링과 승마가 있다. 원래는 헬스도 좋아했지만 몸에 무리가 생기자 필라테스를 더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2. 친구따라간 오디션에서 백댄서로 대상을 받다.





고아라의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이브의 모든것의 애청자였던 그녀는 채림의 모습을 보면서 아나운서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SM에서 주최하는 전국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 참가하려고 한 고아라의 친구가 고아라에게 백댄서를 해줄 수 없느냐고 부탁을 한다.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자 백댄서로 대회에 참가하게 된 고아라는 단번에 관계자의 눈에 띄게 되고 백댄서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받는다. 그때 경쟁률이 무려 8231:1 이 넘었음을 생각하면 고아라의 잠재력과 스타성은 이미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적으로 함께 대회에 참가한 친구는 대회에서 탈락을 하게 된다. 당시 오디션에 참가한 곡은 보아의 발렌틴이었다. 원래 발렌틴의 핵심 안무는 2절에 있었다. 1절은 고아라가 추고 2절은 친구가 추도록 되어 있었다. 친구가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2절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음악이 끊기고 관계자는 고아라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고 한다.



3. 교회 오빠 덕에 반올림에 캐스팅된 고아라




고아라는 데뷔전에 짝사랑 하던 오빠가 있었다. 그녀가 다니 던 공군 부대의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치던 오빠였다.

하지만 SM에 오디션 합격후 서울로 상경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그런데 고아라가 그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고 대표작인 반올림에 출연하게 된 것은 바로 교회오빠 덕분이었다. SM연습생 신분으로 선배들의 인사차 오디션을 따라갔다가 드라마국 부장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에 짝사랑했던 교회 오빠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를 했는데 고아라의 순수한 마음에 드라마국 부장이 높은 점수를 주었고 나중에 드라마 반올림의 캐스팅으로 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참고적으로 당시 교회오빠는 교회 반주를 하던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아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아라에게는 또 다른 한명의 교회 오빠가 있다. 바로 응답하라 1994에서 같이 연기를 했던 손호준이었다. 광주에서 교회를 다닐당시에 손호준이 고아라에게 연기지도를 해주던 교회오빠였다고 한다.




4. 고아라는 오디션의 여왕





823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SM의 연습생인된 고아라는 반올림 오디션에 참가할 당시 경쟁률이 1000대 1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한중몽골 합작영화 징기스칸에서는 무려 4만대 1의 오디션을 뚫고 캐스팅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하는 비결은 뭐 당연한 소리지만 연습이라고 한다. 대본을 열심히 읽는다고하는데 마치 수석합격자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한다는것과 비슷하지 않은가?한편 응답하라 1994 역시도 오디션을 보고서 합격한거라고 한다. 오디션을 볼때 고아라가 눈물을 흘려서 매우 유명했는데 신원호 PD로부터 난생처음 받는 질문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원호 PD는 고아라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를 부수고 싶은 의지가 있나를 물어봤다고 한다 고아라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기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처음이었고 이에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5. 고아라에서 아라로 이름이 바뀐 사연은?





고아라 라는 이름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아라로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의아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라에서 다시 고아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왜 이름을 바꿨을 까 싶었다. 그러다 관련 고아라에 대한 글을 찾아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고아라의 영어식 발음이 코알라를 연상 시키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꽤 납득이 되는 이유였던것 같다.



6.  고아라가 힐링하는 방법은?



 

고아라는 스스로 집순이 스타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녀가 자주 가는 곳은 도서관과 미술관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면 힐링되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또한 답답할 때는 서울의 응봉산에 올라가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7. 시를 사랑하는 고아라




사실 도서관과 미술관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딱 느껴지는 그 어떤 것이 있었다. 바로 시이다. 실제로 그녀는 시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집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때 그녀는 문화적인 충격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시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었는데 반올림을 찍을 당시에도 시를 출판하자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시절 그때는 당연히 거절하였고 이후에도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시를 책으로 출판하는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한편 그녀가 추천하는 시집은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다.



8.  10년만에 SM을 떠난 이유는?




SM의 3대 미녀로 불리우는 고아라가 계약기간이 종료되자 마자 회사를 나가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아라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세운 아티스트 컴퍼니로 이적하였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지향하는 바와 자신의 꿈꾸는 바가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정도면 당연히 배우의 대한 열망과 갈증때문이라는 정도는 눈치를 챌수 있을것 같다.

실제로 고아라는 정우성과 이정재로 부터 작품을 할때와 쉴때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조언을 들었고 현장과 관련된 각종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고 한다. 매니저들도 연기분야에 오랫동안 일을 해서 배울게 많고 같은 소속사의 남지현이나 이솜과도 배낭여행을 같이 가보고 싶을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한편 고아라는 아직까지 로맨티 코미디를 한번도 찍어 본적이 없다고한다. 기획사도 옮겼으니 이제 그 꿈 꼭 이루길 바란다.



9. 고아라 이상형




구체적인 이상형은 없고 진실이 느껴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차차 구축해가고 있으면 일기를 쓰면서 생각하고 있을정도란다. 참고적으로 강렬한 사랑을 원하고 남지친구와 손잡고 놀이동산에서 데이트 하는게 꿈이라고 한다.



10. 고아라가 부르는 노래 시작




SM에서는 원래 고아라를 가수로도 키울려고 하였다. 하지만 반올림에 캐스팅된 고아라는 연기에 전념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 실력도 수준이라고 한다. 위의 영상은 박기영의 노래인 시작을 응답하라 1994에서 리메이크 한 노래다. 그녀의 노래 실력을 영상으로 직접 확인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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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고아라
흥미로운 사실들2017.04.27 11:30



1. 증평의 딸  박보영




박보영은 1990년 2월 증평군에서 태어났다. 사실 증평군에 대해서 아는 분들은 잘 아실거다. 거기에 특전사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박보영은 직업군인인 아버지 밑에서 3녀중 차녀로 태어난다.  그리고 직업의 특성상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게 박보영을 가르쳤는데 덕분에 박보영은 시간 관념이 투철하며  10시 통금시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별명은 뽀블리로 불리우며 특이사항으로는 커피를 먹으면 심장이 뛰어서 잘 마시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에 물을 잔뜩섞어서 희석된 커피를 최대한 조금씩 마시면서 먹는다고 한다.



2.  박보영이 첫번째 맡은 역할은 인형 그런데 캐스팅된 이유가?





박보영은 학교 동아리에서 제작한 단편 영화 이퀄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하지만 박보영이 원했던 출연은 아니라고 한다.  영화를 찍던 선배들은 돈이 없는 관계로 영화에 필요한 인형 대신 사람을 출연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당시 중학생 1학년이었던 박보영을 키가 작다는 이유로 캐스팅을 해서 인형역할을 시킨다.  하기 싫은 역할을 억지로 하게 된 박보영에게 맡겨진 특명은 눈을 뜨고 감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자연적인 특성상 눈을 감지 않으려고 부릅뜨면 뜰수록 눈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자 이번에는 그냥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해서 박보영은 서러움이 폭발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퀄은 서울 국제 청소년영화에서 현실도전상을 수상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얻었고 박보영 역시 연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서울을 오가며 연기공부와 오디션에 매진하게 된다.



3.  박보영 과속스캔들에 캐스팅 된 이유는?





학생 시절 박보영은 캐스팅 복은 확실히 있었다.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을 시작으로 이민호 문채원과 함께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에 출연하였고 김수로와 함께 울학교 ET까지 찍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각 흥행과 시청률면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19살에 아역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박보영에게 운명같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바로 과속 스캔들이었다. 과속 스캔들의 마지막 오디션은 노래방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실력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보영은 이때 발라드, 락, 트로트, 댄스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원래 과속스캔들속 황정남은 노래실력이 필요한 역할이었는데 감독은 박보영의 노래실력에 깜짝놀라며 박보영을 캐스팅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박보영에 대한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박보영을 고집하였고 과속스캔들은 8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음으로써 박보영은 단숨에 대한민국 영화계의 샛별이 된다.  한편 과속 스캔들속에서 차태현과 박보영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며 싸우는 장면이 있다. 원래 감독은 이 장면의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디션에서 박보영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상황만 던져주고 즉흥연기를 요구하게 된다. 울분이 쌓여서 아버지인 차태현에게 폭발하는 장면에서 박보영이 즉석으로 내뱉는 대사가 너무나 마음에 든 감독은 이를 대부분 영화에 반영했다고 한다.


4. 박보영이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박보영 커리어중 가장 화려했던 순간은 과속스캔들이다. 그녀 스스로 과속스캔들이 정점이고 그 이후에 내리막을 걷고 있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앞으로도 과속스캔들때처럼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할것이라고 말하는게 박보영이다. 그토록 화려했던 과속스캔들이지만 박보영은 이후에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을 겪게 된다. 바로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2년이 넘는 동안 공백기를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소속사는 얼음의 소리라는 피겨 스케이팅 소재의 영화에 출연을 강요했지만 몸상태와 건강상의 이유로 출연을 거부하자 소속사와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에 연매협의 중재로 전속계약 분쟁은 해결되고 차태현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소속사와 일하게 된다. 박보영은 이때 은퇴를 고려할정도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박보영은 시골로 내려갈 준비까지 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보영은 대학도 연극 영화과에 진학했고 연기이외에 할줄 아는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팬들의 팬레터 역시 좌절했던 그 순간에 큰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5. 더욱 단단해진 박보영의 멘탈 관리법은?





소속사와의 분쟁은 박보영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지만 더욱 단단해진 계기였으며 일에 대해 감사하고 매사에 침착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박보영은 예의 바르고 특히 멘탈이 좋은 배우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줄 아는 그녀의 멘탈 관리법은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매일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레고다.  마음이 복잡할때 레고를 조립하면 잡생각이 안들고 좋다고 한다. 세번째는 서점이다. 서점에서 책과 DVD등 이것저것을 구경하는게 그렇게 좋다고 한다.



6. 박보영의 피부관리법은?





나는 박보영하면 깨끗한 피부가 떠오르는데 정작 박보영은 좋은것은 아니지만 노력중이라면서 겸손해 한다. 하여튼 피부를 위해 노력하는(?) 박보영은 사과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요구르트와 함께 갈아서 먹는다고 한다. 



7. 박보영이 영화가 개봉하면 반드시 찾아가는 그곳은?





박보영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가 끝날 즈음에 영화관의 화장실을 꼭 찾아간다고 한다. 화장실  칸에 앉아서 사람들의 적나라하고 거침없는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8. 할 말은 하는 여자 박보영




박보영이 어리고 순수해보이는 이미지때문에 할말도 못하는 답답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실 그녀는 스스로 오지랖이 넓어서 할말은 해야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녀의 그런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중학교 시절 박보영이 다닌 학교의 교칙은 엄격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얀색 양말만 신어야 했는데 박보영과 학교친구들은 이것이 너무나 괴로웠다고 한다.  학생들은 긴 양말이 아니라 좀 짧은 양말을 신을 수 있도록 학교에 건의하기로 약속을하고 학교선생님을 찾아갔다. 하지만 막상 아무말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박보영이 나서서 한마디한다.  박보영은 발복 짧은 양말이 가격도 저렴하고 풍기문란죄도 아니라면서 이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말과 동시에 박보영은 교무실로 끌려가고 두달동안 반성문을 써야 했다고 한다.




9.  박보영 이상형






박보영은 정신이 바른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보영을 좋아하는 사람은 박보영의 이상형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바로 박보영 스스로 원빈님이라고 말하는 원빈이 있다. 여기에 멜로 연기를 하고 싶은 배우로  여진구를 뽑아서 화제가 되었다.



10.  박보영의 추천곡




박보영이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첫번째 노래는 김광진의 편지이다.  박보영은 기업의 행사 현장에서 회사원이 부른 편지를 처음듣게 된다. 노래에 감동을 했던지 박보영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 노래 제목이 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90년생이었던 박보영이 편지를 처음듣는 순간이었다. 휴대폰에 노래제목을 메모해두고 음악을 찾아들었다고 한다. 박보영에 의하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노래가 존재 했나 싶을정도로 너무나 좋았다고 한다.  박보영은 지금도 기분이 좋은날이나 감정신을 촬영할때는 김광진의 편지를 듣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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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24 07:00



1. 대전의 딸 조보아


 



조보아는 1991년 8월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키는 165CM 2녀중 장녀이다. 조보아의 본명은 조보윤이다. 그녀는 초중고를 모두 대전에서 다닌 대전의 딸이다. 조보아 데뷔는 송중기가 사회를 봤다는 그 어떤 전설적인 오디션 프로그램 메이드인 유이다. 하지만 출연도중에 닥치고 꽃미남 밴드에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중도하차하게 된다.  조보아가 좋아하는 음식은 맛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좋은 고구마이며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는 팬이기도한 한예슬과 유승호이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다음과 같다.


https://www.instagram.com/xxadoraa/


 

  

2. 조보아의 터닝 포인트 가시






조보아는 처음부터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녀의 데뷔작인 닥치고 꽃미남 밴드에서 여주인공역할을 맡았고 대형사극인 마의에서 꽤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보아는 엄청난 발연기를 선보이면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마의 이후에 조보아는 캐스팅에 애를 먹게 된다.  스스로 더 이상 작품을 찍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고 있을때 바로 250: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과 7번의 오디션을 뚫고 영화 가시에 여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다.  우연히 케이블에서 가시를 보게 된 필자는 사실 조보아의 연기 그것을 하나 보고서 끝까지 봤던 경험이 있다.아시다시피 가시는 흥행에 실패를 했는데 그래도 조보아는 분명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실제로 조보아는 가시 이후의 작품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연기자로 거듭나게 되고 발연기라는 꼬리표 역시 떼게 된다. 참고적으로 말하면 감독은 조보아를 캐스팅한 이유가 오디션을 볼 때 멍하고 나사가 풀린 모습을 보고 결정했다고 한다.



3. 처음으로 칭찬받은 작품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에서 부잣집 외동딸 장채리 역할을 맡은 조보아는 제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것처럼 꽤 괜찮은 연기를 해내고 처음으로 칭찬받았다면서 조보아 스스로 대견스러워 한다. 이렇게 조보아가 연기에서 호평을 들을정도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성격이 조보아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티파니의아침, 로마의 휴일속 오드립 햅번의 연기를 연구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조보아가 얼마나 드라마의 성공에 기뻐하는지는 그녀의 일화가 증명한다. 22층에 사는 조보아는 그 높은 곳에서 엄마를 부탁해를 보는 사람들을 일일이 체크를 했어다니 말이다.



4. 한때 스튜어디를 꿈꾸었던 조보아





조보아는 한서대 항공운항과에 입학하여 한때 스튜어디스를 꿈꾸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꿈이 커져 가면서 배우를 꿈꾸게 되었고 무작정 오디션을 보러다녔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에 반대하였다. 특히 어머니는 조보아가 스튜어디스가 되기를 바랬기 때문에 연기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이 대학에 연기로 입학하면 허락해주기로 약속을하자  조보아는 독학을 통해서 성균관대 연기 예술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지금도 부모님이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는것은 아닌것 같다. 최근 인터뷰에 의하면 부모님이 졸업을 해야한다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였고 이에 조보아는 악착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5. 성형수술 의혹을 한방에 보내버리다.





조보아는 설리, 수애, 한예슬같은 유명 연예인들과 닮은꼴로 화제였다. 이렇게 유명인과 닮은 신인배우들은 성형수술 의혹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조보아 역시 성형수술 의혹에 시달렸고 과거 사진을 공개하면서 한방에 논란을 잠재우게 된다.



6. 그녀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한강을 보러 간답니다. 이게 끝이냐구요? 예 끝입니다.  열개를 채운다는게 쉬운게 아닙니다.



7. 조보아의 피부 관리법 광채 주스




조보아는 피부를 위해서는 몸속부터 관리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이른바 광채 주스를 매일 마신다고 한다. 조보아의 광채주스는 탄산수에 레몬즙과 사과, 깻잎, 당근, 청경채 같은 야채에 샐러리를 갈아서 얼음으로 얼려서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8. 조보아 정글의 법칙 비하인드 스토리




조보아는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면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전혜빈 이후 최고의 게스트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조보아가 이렇게 정글의 법칙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조보아가 정글의 법칙을 좋아했고 직접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언론을 통해서 밝혔기 때문이다. 기사를 본 PD가 직접 조보아를 섭외했지만 스케쥴때문에 번번히 좌절되었지만 정글의법칙 수마트라편을 통해서 시청자와 만날수 있게 되었다.



9. 조보아의 이상형





정글의 법칙에 출연한 조보아는 지상렬이 이상형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조보아는 자신의 이상형을 세세하게 밝힌 적이 있다. 그녀의 이상형은 다정다감하면서 외모적으로 보면 쌍꺼풀이 없고 남자다운 남자가 좋다고 한다.  나쁜 남자보다는 착한남자가 좋고 세심하고 배려심 깊고 좋아하는 마음 다 표현해주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밝힌다. 이걸 보고서 지상렬도 해당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예 그럴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글을 읽어보시죠.




10. 조보아가 좋아하는 노래는?




사실 위에 잔뜩 그녀의 이상형을 소개하였지만 조보아 인생 최고의 이상형은 박효신이다. 중학교시절부터 팬으로 콘서트장도 직접찾아가고 박효신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정도로 박효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가 있다.  그래서 조보아가 좋아하는 박효신의 노래가 뭔지를 찾아봤지만 검색으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팬이라면 뭐 특별히 한곡을 뽑기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어차피 박효신의 모든것을 좋아하는 팬이 아니던가? 이럴때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곡 올리면서 끝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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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17 07:30




1. 연예계의 대표 의리녀 손예진




본명은 손언진 1982년 1월 대구 출생으로 키는 161CM 2녀중 둘째다. 손예진하면 여성스럽고 청순함의 대명사인데 정작 손예진은 스스로 아들 같은 딸이라고 한다. 영화제작비가 부족하다고 하자 10억을 내놓는 것을 보면 드라마속 이미지와 다르게 대장부 같은 당찬 면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손예진은 의리녀로도 유명하다.  손예진은 19살 때 고등학교 시절 연기를 하고 싶어서 서울에 상경했는데 처음으로 계약한 회사가 바로 바른손엔터테인먼트이다.  현재는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로 회사명이 변경되어 있는데 손예진은 고등학생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소속사를 옳기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2. 박해일이 감탄한 손예진의 연기 비법





손예진은 작업에 들어가면 작품과 어울리는 음악들을 모아두고서 촬영직전까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감정에 몰입한다. 박해일은 손예진의 모습을 보고서 좋은 노하우라고 생각하고 손예진처럼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손예진은 박해일이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지 궁금해서 살짝 들어봤더니 이미자의 노래였다고.. 참고적으로 덕혜옹주를 촬영할 때 손예진은 나윤선 버전의 사의찬미를 들었다고 한다.



3. 알고 보면 스포츠 우먼




손예진은 현장에서 최적의 몸 상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소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는다. 이 밖에도 수영, 요가, 조깅을 꾸준히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몸의 긴장을 풀고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필라테스를 매일 한다고 한다.



4. 알고 보면 푼수? 손예진?





손예진하면 왠지 까탈 스러 울 것 같고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이 난다. 절친 공효진에 의하면 손예진이 엉뚱 발랄하고 푼수 끼가 있다고 한다. 식당에 가서도 큰 소리로 주문도 잘하고 물건도 잘 깎는다고 증언하였다.  손예진은 자신이 남을 웃기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서 공효진의 푼수발언에 대해서 일정부분 인정을 하게 된다. 


5. 손예진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손예진은 작품이 끝나거나 스스로 스트레스로 자신을 혹사했다고 생각하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외국에 가면 작품에 대한 고민 없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6. 손예진의 별명 소예진을 아시나요?




손예진처럼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열심히 현장에서 악착같이 일하는 진정한 배우로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소예진은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손예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손예진은 이에 대해 어감은 별로지만 별명자체는 참 마음에 든다고 화답하였다.


7. 손예진 알고보면 다큐멘터리 매니아?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에 반복되는 것에 지친 그녀는 판타지에 대한 로망도 물론 있지만 리얼한 이야기 갈증이 있다고 말한다.


8. 손예진 피부 관리법




손예진은 물에 레몬을 담가두었다가 세수를 하는데 그러면 비타민 C덕분에 피부트러블을 없애고 피부 진정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를 다 믿을 수 는 없겠죠?? 전 솔직히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걸 적었냐구요? 솔직히 10개 채우는 게 쉬운게 아닙니다. ^^;;


9. 손예진 이상형




손예진은 나이가 들면서 성격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대화가 통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같은 분야보다는 다른 분야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참고적으로 손예진은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딱 꼬집어서 이야기한적이 있습니다.


10. 손예진의 애창곡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입니다. 함께 들으시고 가시죠?



11. 손예진의 따귀에 김주혁이 서운해한 이유는?




오 정리를 하다보니 한가지가 더 있네요. 그래서 추가합니다.  비밀은 없다 촬영할 때 손예진이 김주혁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배역에 몰입한 손예진은 정말 강하고 쌔게 김주혁의 따귀를 때렸다고 한다.  사실 김주혁은 이때까지 서운함이 폭발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자마자 김주혁은 내팽개치고 모든 스탭들이 오히려 김주혁을 때린 손예진을 걱정하면서 다가가자 홀로 남겨진 김주혁은 결국 서러움이 폭발하고야 말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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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14 08:00



1. 정소민의 간단한 프로필




1989년 서울 출생으로 키 163cm 1남 1녀 중 장녀로 2010년 SBS 드라마 나쁜 남자로 데뷔하였다. 사실 데뷔한지는 오래되었지만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필자도 이광수와 출연한 마음의 소리를 통해서 팬이 되었고 그 후 관련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아직까지 많은 자료를 찾을 수가 없어서 글을 작성하는데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심으로 똘똘 뭉쳐서 정소민에 대한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을 작성하는데 완성을 하였습니다. 그나저나 키 163CM는 정말 믿기지가 않네요. 저는 무조건 168CM이상으로 봤거든요.



2. 정소민이 골든벨에 출연한 이유는?







정소민은 어린시절 발레를 배우다가 고등학교때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극심한 반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정소민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골든벨에 출연하였고 여기에서 기악천무라는 무용을 선보여서 아버지를 감동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적으로 골든벨에서 30번 문제까지 풀면서 연예계 대표 뇌섹녀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뭐 그런 기사도 있다. 무용을 했지만 악바리 성격이 있는 그녀는 학교공부도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인다.



3. 한국 예술 종합원 수석 입학한 정소민




무용을 위해 아버지를 어렵게 설득한 정소민이지만 갑자기 어느 날 그녀의 꿈이 뒤바뀌게 된다. 감정연기와 표현력에 도움을 받기 위해 연기를 공부하게 되는데 강의를 처음 듣는 날 그는 무용이 아닌 연기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게 된다. 이미 수시를 통해서 무용관련학과에 대학교 합격까지 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정소민은 아버지 몰래 한국예술 종합원에 연기전공으로 시험을 보게 되고 결국 수석입학을 하게 된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갑작스런 정소민의 진로변경에 화가난 아버지는 정소민의 연기를 인정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4. 정소민의 피부 건강 관리법




촉촉한 수분관리 크림 하루 한끼 한식을 챙겨 먹는다. 뭐 그렇다고 하네요


5. 정소민이 뜨개질에 빠진 이유는?





그녀가 어린시절에 빠진건 무용뿐만이 아니다. 중학생 때부터 정소민은 뜨개질을 해왔다고 한다. 실력도 보통이 아니라서 목도리, 모자, 장갑 등을 뜨개질로 만들 수 있는 스킬을 보유했다고 하는데 정소민이 이렇게 뜨개질에 빠진 이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 주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것을 보면 정소민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지 않을까요?


6. 그녀의 독특한 잠버릇





한때 가위를 많이 눌린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피곤해서 잠을 자면 잠꼬대를 하는데 어떨 때는 크게 말하면서 혼자 깰 때도 있다고 한다.


7. 정소민이 사실은 예명이었다? 






제가 정소민 한테 두 번째로 놀란 것이었습니다. 첫번 째는 키가 놀라웠고 두번째는 정소민이 본명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본명은 이윤지인데 예명을 이름에 연을 붙여서 윤지연으로 생각했다가 나중에 결국 정소민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8.  밤에 잠자기 싫은 올 빼미형 인간 정소민




정소민이 가지고 싶은 버릇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다.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밤이 되면 자기가 싫어진다고 한다. 조용한 그 시간이 온전히 자기의 시간처럼 느껴져서 그시간에 가만히 있거나 대본을 읽는다고 한다.


9. 정소민 이상형




잘난척 하고 거친 사람은 별로고 훤칠한 사람보다는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인성을 가진 남자라고 하네요.



10. 정소민이 추천하는 노래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 이다.  정소민은 이 노래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드라이브를 할때 이 음악을 듣는게 아니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르 타거나 드라이브를 하고 싶게 만드는 음악이라고 하네요. ^^;;  얘기를 들어보니 뭔가 집밖으로 나가는것보다 집안에 있는걸 좋아하는것 같지 않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밖에 나가는건 또 더럽게 싫어하면서 컴퓨터로 바깥 풍경사진 보는건 엄청 좋아하거든요. 딱 그런 느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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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정소민
흥미로운 사실들2017.04.12 08:00



1. 서현진의 롤모델은 메릴 스트립





1985년 서울 출생으로 키는 생각보다 큰 167cm, 몸무게는 생각한대로 45kg이다. 동덕여자 대학교에서 실용음악과를 전공하였고 종교는 천주교이다. 그녀의 가장 이색적이면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경력으로는 서현진의 나이 17살때 데뷔한 아이돌 그룹 밀크 출신이는 점이다.  그녀의 히트곡은 2004년 부른 이누야사 4기 오프닝곡이다. 가장 친한 친구로는 구혜선과 박희본이 있다.  덕분에 서현진은 구혜선이 연출한 영화 대부분에 출연하였고 밀크의 멤버였던 박희본이 결혼할 때는 오해영 촬영으로 바쁠때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참석하였고 바보처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서현진은 롤모델로 메릴스트립을 지목하였는데 얼굴의 눈코입보다 표정으로 설렘을 느끼게 만드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그녀의 특기는 무용! 부러운 사람은 한예리





서현진은 4살때 부터 무용을 해서 국립국악 중학교 한국 무용과를 거쳐 국립국악 고등학교 한국무용과를 다녔다.  그녀가 가장 후회하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무용을 포기했던거라고 밝힐 만큼 여전히 무용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무용을 좋아하는 것은 그녀가 연기를 좋아하는 이유 그대로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그 느낌이 좋아서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부러운 사람중 한명이 바로 한예리라고 한다.  한예리와는 함께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인데 한예리는 연기도 하고 여전히 무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서현진 에게 가장 값졌던 7년간의 공백기






서현진이 밀크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도 정작 그녀가 아이돌로 활동한것은 단 1년에 불과하다.  팀원의 탈퇴와 회사의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서 서현진은 사실상 강제 은퇴상태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은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만난 세계는 사실은 밀크 2집의 타이틀곡으로 예정되어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여튼 아이돌 생활을 그만 둔  그녀는 대학생활을 집중적으로 즐겼다고 한다. 친구들과 밤샘 합주를 하고 돗자리를 깔고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강의를 들을 정도로 푹빠져 있었다고 한다. 서현진은 엄마의 친구가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가끔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닮은 사람이라면서 능청스럽게 넘어갔다고 한다. 




4. 서현진을 구원해준 뮤지컬






서현진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친다. 거기에다가 연기도 잘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뮤지컬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녀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통해서 다시 새롭게 연예계로 복귀하면서 연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모든것이 낯설고 처음하는 것이라 그런지 너무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연습을 하고 휴식시간이 될때마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릴정도였다고 말할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2015년 까지만 해도 스스로 배우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배우는 캐스팅이 안되면 그만둬야 하는데 서현진은 섭외가 안되면 아쉬울것 없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 신데렐라를 출연하면서 직업란에 배우를 쓰게 될 정도로 직업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5. 서현진의 피부와 몸매 그리고 건강 비결





서현진의 피부비법은 피부과를 정규적으로 다니면 생활속에서 늘 가습기를 켜놓고 마스크팩을 수시로 붙인다. 그녀는 몸매 관리를 위해서 필라테스를 그리고 체력이 필요할 때는 홍삼으로 버틴다고 한다.



6. 서현진은 단 한번도 술먹고 울어 본적이 없다.





서현진은 자신이 FM적인 면이 있어서 술먹고 울어보거나 길거리를 헤맨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왜 흥미로운 사실일까?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연기중 일품은 또 오해영에서 보듯이 술먹고 술주정 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술취한 연기가 너무 좋다고 한다. 서현진의 말로는 평소에 못해본걸 마음껏 할 수 있어서라고 한다.




7. 좋아하는 노래가 칠갑산?





서현진의 노래방 18번은 칠갑산, 강원도 아리랑, 대전블루스라고 한다.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고등학교 때 작성한 프로필에 당당히 적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고등학생의 서현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 목록이다. 한마디로 트롯트필 나는 음악들인데 과연 그녀가 부르는 칠갑산, 강원도 아리랑, 대전블루스가 궁금해진다.




8.  서현진은 오지 여행 전문가??





서현진의 의외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여행 그것도 남들에게 잘 알려진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오지여행이다.  오지를 좋아하는 것은 태초의 땅에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9.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서현진





한마음 한몸 운동본부의 홍보대사인 서현진은 이미 무명시절부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2005년에 몽골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고 2008년에는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갔다. 1년동안은 일주일에 한번씩  보육원에 가서  봉사하였고 노숙자들을 위한 밥차에서도 봉사활동을 하였다. 



10. 서현진의 이상형





이쯤 읽게 되면 서현진이 참으로 매력적이면서도 훌륭한 여성(?)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자분들이라면 그녀의 이상형에 궁금해지기 마련일 것이다. 사실 연예인들의 이상형은 언제든 그때 그때 변하기 마련이다. 가장 최신 버전의 서현진 이상형은 바람을 피지 않는 남자라고 한다. 2010년대 초반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 남을 행복하게 만들줄 알고 행복이 뭔지 깊이 생각해본 남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밀크 시절에는 남자답고 주관이 뚜렷해서 자기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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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7.04.11 08:00



 

1. 트와이스 나연의 일반적인 프로필로 말씀 드리면 1995 9 22일 강동구 상일동출생에, 162CM, 몸무게는 .. 뭐 굳이 이야기할 필요 있을까요? 어차피 보기 좋은 자태의 소유자입니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건국대 영화예술학과에 재학중이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좌우명은 감사하게 살자! 별명은 수많은게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막내 같은 맏이라는 의미로 맏내, 꼬부기를 닮아서 나부기 그리고  과즙녀, 나부기 쪼다연,  토끼 언니등이 있음





 

2.  취미는 립스틱을 모으는 게 취미다. 이른바 립 덕후인 트와이스 나연은 화장은 잘 못하지만 입술이라도 제대로 바르자는 생각으로 립스틱을 모았는데 그러다 보니 수 십개의 립스틱을 수집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입술의 립스틱 색깔에 매우 민감해서 30분 마다 립스틱 색깔을 바꾼다는 멤버의 폭로가 있을 정도다.

 




3. 트와이스 나연의 친한 연예인은 블랙핑크의 동갑내기 지수와 제니이며 그녀가 좋아하는 걸그룹은 오마이걸로 오마이걸의 춤을 잘 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의외의 인맥으로는 김국진이 있다. 바로 트와이스 나연의 아버지가 바로 김국진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김국진은 어릴때부터 트와이스 나연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4.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사진을 볼 때 마다 박진영의 모습이 보인다는 발언을 무려 공중파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에서 용감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매우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은근 얼굴 형이 비슷한듯도 하네요. ^^)



5.  나연은 잘 넘어지고 휘청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교통사고 후유증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왼쪽 다리에 힘이 잘 풀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와이스 나연은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6. 트와이스 나연은 스스로 기계치라고 생각하는 그녀인데 2017년 초에 운전면허를 땄다는 점에서 그래도 어느정도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않았을까?

 

 




7. 트와이스 나연의 이상형은 따로 없지만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서 듬직한 사람이 좋다고 한다. 또한 기계를 못 다루기 때문에 기계를 잘 아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한다. 이는 키스 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말을 하자 이특은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냐고 물었고 이에 멤버들이 괜찮다고 맞장구를 치는 장면이 재미있다.

 




8.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기이다.  스스로 중독수준이라고 말하며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즐겨 본다고 한다. 그녀가 좋아했던 아이들로는 송일국의 삼둥이와 이동국의 대박이가 있다.

 




9. 트와이스 나연에게도 개인기가 있다. 그녀의 개인기는 개소리이다. 말을 순화시켜 이야기하자면 쯔위와 함께 강아지소리를 내는 개인기이다.  개인적으로 개소리보다 더 웃긴 것은 나연의 새빨개진 얼굴이다.



 



10. 트와이스 나연이 노래방에서 가장 자주 부르는 노래는 드라마 덕후 답게 풀하우스의 OST곡으로 별이 부른 I Think I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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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6.03.31 23:54





8개월만에 IT 왕조실록시리즈를 모두 작성하였고 전자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한가지 절실하게 느낀 게 있습니다. 과연 사람들이 이른바 미친 짓이라는 것을 했을 때 그것이 정말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IT 왕조실록을 쓰게 된 이유는 사실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저는 IT 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이를 이용해서 IT의 역사와 흐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자는 겁니다. 물론 써놓은 책이 많아서 한 권이 아니라 여섯 권의 시리즈로 말이죠

 

1권은 개인용 PC 혁명을 주제로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가 업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모습을 그리고

2권은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로 IBM과 애플을 잡고 IT 황제 자리에 오르는 모습과 함께 PC 시장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텔의 앤디 그로브와 델컴퓨터의 마이클델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잡스가 광야에서 고생하다가 픽사로 부활하고 넥스트로 애플에 돌아오는 이야기

 

3권은 인터넷의 시대로 구글이나 아마존 처럼 인터넷으로 성공한 기업이야기에다가 IBM처럼 인터넷으로 부활한 회사들을 묘사하고

 

4권은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부활시키는 과정과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IT 업계정상에 오르는 모습에다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이야기도 좀 넣고… 시대를 잘 읽는 손정의 이야기를 쓰고..

 

5권은 소셜네트워크 시대를 주제로 잡고 페이스북처럼 소셜로 성공한 기업과 소셜네트워크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서술하고

 

6권은 게임이 IT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주제로 게임이 IT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었고 또 게임사적으로 위대한 게임 개발 스토리를 담아야겠다.

 

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냥 쓴다고 하면 절대로 저는 IT 왕조실록을 시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 제가 썼던 책들 잘 조합하고 버무리면 쉽게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이 이렇게 크게 될지 몰랐습니다. 정말 두 달이면 다 쓸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두 달도 걸리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예 앞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딱 8개월 걸렸습니다. 제가 IT 왕조실록 쓰기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나고 나서 내 스스로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를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각 권 별로 책의 내용구성도 고민해야 했고.. 내용을 추가, 수정, 보완을 하게 되다 보니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시작했으니 끝을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힘든 여정일 줄은 몰랐습니다.

 

하여튼 이 과정에서 제가 느낀 건 두 가지 입니다.

 

첫째 미친 짓이라는 게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게 미친 짓이고 일을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 그게 또 미친 짓이 되어버리더라..

 

둘째 무엇을 예측하든 두 배의 시간이 들어간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한달 남았다고 생각하면 두 달이 걸리고 보름 남았다고 생각하면 한 달이 걸리고 일주일 남았다고 생각하면 2주일이 걸리고 하루가 남았다고 생각하면 이틀이 걸리더군요.

 

미친 짓이었지만 그래도 결과물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IT 왕조실록 1권은 무료로 받으실 분들은 아래의 주소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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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바로가기


표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디자인한겁니다. ^^;;; 그래서 책도 싸게 팔 수 있는 겁니다. ^^;; 
저는 전자책을 쓰면서 전자책은 소프트웨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물론  IT 책이라는게 시류를 타기 마련인데 IT 왕조실록은 최대한 그런 시류를 타지 않기 위해서 정말 역사에 남을 굵직굵직한 회사와 인물 그리고 제품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앞으로 최소한 40년이상 내용을 보강하면서 업데이트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IT 왕조실록 전권을 구입하시면 업데이트 되는 내용들을 계속 받아 보실수 있는거죠. 지금 당장은 업데이트를 약속하지 못합니다. 책을 쓰느라 너무 힘들었거든요. 물론 내용상의 오류가 있다면 패치형식으로 내용을 수정 보강하곘지만 새로운 챕터를 추가하는 식의 대규모 업데이트는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습니다만 .. 또 책의 반응이 좋으면 또 그런 측면에서 열심히 업데이트를 할수도 있곘죠. ^^;; 

블로그에 사람도 별로 안오는데 주절이 주절이 참 긴글도 썼네요, 

제가 페이스북에 팬페이지 하나 만들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multiwriterpage/

지금 막 만들었는데요. 다른건 몰라도 제 팬 페이지에 좋아요 버튼 좀 눌러주세요. 저도 좀 페이스북 활동좀 하고 싶네요. 그런데 좋아요 버튼이 좀 있어야 사람이 활동할 맛이 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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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5.07.29 08:30




1) 두명의 대학생 유니티(통합) 하다 




2002년 5월 21일 새벽 1시 47분 대학생 신분의 1인 개발자 니콜라스 프란시스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조언을 듣고자 게임개발자를 상대로 전체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몇시간이 지나자 20살의 또다른  1인 게임 개발자인 요하임 안테가 개발자 니콜라스 프란시스에게 회신을 함으로써 인연이 시작된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개발중인 게임엔진을 통합하기로 약속하는데 이것이 바로 유니티의 시작이다.



2) 또 다른 창업 동지 데이비드 헬가슨과의 인연





게임을 창업하면서 요하임 안테는 나중에 회사의 CEO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이비드 할가슨을 유니티에 합류시킨다. 천성적으로 자신이 게으르다고 표현하는 그는 대학을 4번이나 중퇴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가 대학을 그만 둔 것은 잠 때문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뭔가를 끝내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11살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였고 결국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요하임안테와 데이비드 헬가슨은 해킹에 대한 관심사로  인터넷으로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다.


3) 인터넷으로 만난 3개 국적의 다국적 연합 창업자들이 덴마크의 한 지하실에서 유니티를 시작하다.






세계적인 게임 엔진 업체로 성공한 유니티는 특이하게도 미국이 아니라 유럽 그것도 IT나 게임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덴마크에서 창업을 한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것은 창업한 장소와 함께 이들의 국적이었다. 데이비드 헬거슨은 아이슬랜드 국적이었고 요하임 안테는 독일 국적 그리고 니콜라스 프란시스는 덴마크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것을 보면 인터넷으로 만난 친구들을 무시못한다고 할 수 있다. 필자도 유니티 포럼을 통해서 몇몇의 지인을 만든것을 보면 참 21세기는 흥미진진한 세상이라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가끔보면 현실에서 만난 친구보다 인터넷으로 만난 친구가 더 나을 때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4) 원래는 게임 개발이 목표였다.





유니티는 처음부터 게임 엔진회사로 시작된것은 아니었다. 게임을 개발하다가 자신들의 장점과 단점을 깨닫게 되었다. 소규모 팀으로써의 한계를 느낀 그들이지만 그들은 소규모 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규모 게임 개발팀도 쉽게 게임을 제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게임 엔진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5) 무료식사를 위해 까페에서 일하다. 






수입이 없던 그들은 정말 가난하고 배고픈 개발자였다. 이때문에 데이비드 헬거슨은 까페에서 일을 하였다. 그가 까페에서 일을 한 것은 돈도 돈 때문이지만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 때문이었다.였다 그는 까페에서 준 무료 식사를 니콜라스와 요하임 안테에게 가져다 주었으니 어찌보면 둘을 먹여살린 장본인이라고 할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나중에 합류한 데이비드 헬거슨이 CEO가 되는것이 의아했는데 이렇게 음식과 식사를 제공한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작용한게 아닌가 싶다.



6) 애플빠들 맥으로 실패하고 아이폰으로 부활하다





유니티의 창업자들은 해커였으며 동시에 애플빠였다. 그들은 사업에 대한 어떤 조사나 기대 없이 그들이 좋아하는 맥으로 게임 엔진을 개발했다. 2005년 여름 유니티 1.0이 등장 하였지만 매우 처참하게 실패를 경험한다. 생각해보면 맥 OS X으로 게임엔진을 개발한다는 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과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2005년만 해도 맥의 판매량은 형편 없었으며 정작 게임을 위한 환경도 엉망이었다.  게임은 윈도우를 위한것었지 애초에 맥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실패는 너무나 당연하였다.  (유니티의 윈도우 버전은 무려 4년 후인 2009년에 등장했다.) 이때문에 2008년 까지 그들은 그야말로 악몽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유니티는 새로운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게 된다. 2008년 중반 앱스토어가 오픈하자 애플빠들인 유니티의 창업자들은 아이폰의 게임개발을 도울 수 있도록 유니티를 업데이트 시켰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수익을 얻게 된다. 이런것을 보면 IT세상의 변화란 일순간이고 혁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필자는 2012년 초에 유니티를 알게 되었고 그때 이미 대세가 되었던 시점이었다. 그때만해도 내가 왜 이렇게 늦게 유니티를 알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제 보니 유니티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것은 불과 4년 밖에 안 지난 시점이었던 것이다.


7)  개발자들의 새로운 보물 창고 애셋스토어





2010년 유니티는 게임 개발에 필요한 각종 콘텐츠와 리소스를 판매하는 오픈마켓인 에셋스토어를 연다.  64개의 애셋으로 시작하였고 가장 많은 매출을 얻은 개발자의 매출은 2,500달러에 불과했다. 20011년  애셋스토어 판매순위 15위  이상의 개발자들의 수익은 5000달러정도였지만 2014년에는 평균 2만달러를 달성하였다.   2014년 5월  1천4개의 애셋이 올라 온 애셋스토어의 월 매출은 12억이고 탑3 개발자는 월 5000만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또한 한국인중에도   2000만원이상을 벌어들이는 판매자가 있다고 한다


8)  길건너편 친구들은 유니티 애즈로 90일만에 30억을 벌어들였다.




유니티처럼 3명의 개발자로 시작한 호주의 유명 게임인 길 건거 친구들을 한번씩 다 들어 봤을것이다. 세계적인 히트 게임인 길건너 친구들은  유니티 애즈를 통해서 45일만에 10억원 그리고 90일만에 무려 30억원을 수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9) 세계에서 유니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시는 서울이다.




유니티의 시장 점유율은 45%이고 등록 개발자수는 450만명 그리고 유니티를 이용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수는 6억명에 이른다.  특히 모바일 게임은 대부분 유니티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적으로 유니티로 만든 게임으로는 닌텐도를 다시 게임의 중심으로 불러들인 포켓몬고 블리자드의 최신 히트작인 하스스톤과 시티즈 스카이라인이 있으며 아래의 사이트를 가면 대충 어떤 게임들인지 확인할 수 있다. 


http://unity3d.com/showcase/gallery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서울이 가장 많이 유니티를 이용하는 도시라는 점이다.  이 정도면 정말 서울은 게임의 수도가 아닌가 싶다. 참고적으로 한국은 지난해 까지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로 이용자가 많은 나라였지만 일본이 급성장하면서 4위가 되었다고 한다.



10) 멀티라이터도 혼자서 게임을 개발하다~ 야호!




가장 놀랍고도 훙미로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그래밍과는 정말 거리가 먼  게임 기획자 출신의 제가 사실은 유니티를 가지고 무려 3D 게임을 만들었다는거 아닙니까?. 사실 게임을 만들어서 서비스도 했고 미약하나마 매우 조금 수익까지 얻었습니다.  아직까지는 누군가에게 알려서 내가 만든 게임이라고 말할정도는 안되고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유니티와 프로그래밍에 대한 개념도 잡혀가고 있고 제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아이디어들을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니티라는 툴 자체가 편리하고 쉬운만큼 제작 작업도 재미가 있습니다.  요즘 제가 게임을 별로 안합니다. 왜냐하면 게임만드는게 더 재미있거든요. 그리고 요즘 제가 느낀것중에 하나가 글쓰는게 얼마나 어려운일이었던가? 그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글쓰는게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참 힘든일이었던것 같습니다. 아직 제가 초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유니티는 눈으로 바로 바로 확인하면서 제작을 합니다. 그래서 유니티는 툴을 만지는 그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유니티의 원래 비전이 개발의 민주화입니다. 저처럼 프로그래밍과는 상관없던 사람도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임에는 분명합니다. 유니티를설명할때 창업자들은 과거만 해도 영상 편집은 전문가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파이널컷 프로를 통해서 누구나 할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포토샵도 그렇고요. 유니티 역시 그런길을 걷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지금은 아무나 쉽게 접하기에는 부담이 있습니다만 유니티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그만큼 쉬워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정말 포토샵처럼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게임 관련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필수적이겠죠.  


제가 원하는 게임을 스스로 만들게 된다면 그때 저의 졸저인 게임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획과 시나리오의 내용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할겁니다. 기획자들이 유니티를 배워라! 이렇게 외치면서 프로그래밍 관련 이야기를 잔뜩 써내려 가야겠죠. ^^;;


그리고 강좌는 동영상을 강력 추천합니다. 책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겠다는 것은 마치 요리를 글로 배우겠다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프로그래밍에 겁먹지 마시고 주말 하루만 투자하세요. 자유자재로 지형을 만들고 거기에 캐릭터를 움직이고 조종하고 마음껏 꾸미실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유니티에 관심이 생기신 분들은 주저 마시고 아래의 배너를 눌러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게임엔진이 뭔지도 모르고 프로그래밍이 뭔지도 모르는 분들도 딱 하루만 투자하세요. 위의 동영상처럼 유니티를 이용해서 자유롭게 캐릭터를 움직이고 조종하고 꾸미실수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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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4.01.24 08:11





1) 예체능에 강했던 한효주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한효주의 어머니는 한효주에게 영어나 수학보다는 예체능에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효주는 어머니 덕택에 피아노, 바이올린, 부채춤 에어로빅등을 배우고 실제로 무대에 올라서서 공연도 하고 이와관련해서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체육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학창시절에 달리기는 항상 1등이었고 체력장 역시 1등급이었다고 하네요. 또한 피구와 발야구에서는 에이스 였다고 합니다. 중학교시절 남자들과 축구와 농구를 즐겼고 검도까지 배웠다고 하니 체육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2) 한효주는 원래 이름이 한효주가 아니었다?





연예계에는 수많은 한씨들이 있습니다. 한가인, 한예슬, 한채영 등등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예명이고 진짜 한씨를 대표하는 사람은 한지민과 한효주 정도입니다. 한효주라는 이름과 그녀가 참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 는데요. 그런데 사실 그녀의 이름도 한차례 개명을 한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녀의 성씨는 확실히 한씨입니다 다만 이름이 원래는 한지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어머니가 점을 봤는데 점이 나쁘게 나오자 어머니는 이름을  효도 “효”에 두루 “주” 즉 한효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팬의 입장에서나 한효주의 입장에서나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3) 꿈이 참 많았던 소녀 한효주





물론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저마다 수 많은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 한효주는 그 숫자와 장르장체가 정~말~ 광범위합니다. 유치원 선생님출신인 어머니를 따라서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시작이었죠. 그 후 한효주는 시인, 화가,  조련사, 수의사등을 꿈꾸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꿈많았던  한효주는 정작 연예인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못했다고 합니다. 청주여고 1학년 시절 인터넷에 의류 광고 모델을 뽑는 다는 광고를 본 그녀는 당시 유행이었던 프로필 사진을 즉흥적으로 재미삼아  보냈는데 예상치 못하게 수상을 하게 됩니다. 됩니다. 그리고 대회를 주최한 측에서 추천을 해줘서 빙그레 선발대회에 나가게 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서 엄마한테 대회에 나가는 것을 쉽게 얘기하지 못했답니다. 용기를 내어서 겨우 이야기를 했는데 어머니는 좋은 추억이 될것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허락을 했답니다.  한효주는 당연히 빙그레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이 일을 계기로 연기자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그녀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연기학원을 다녀야 했는데 아무래도 학원은 수도권에 밖에 없으니 서울에 올라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트렁크 두개 들고 홀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고모집에 상경을 하게 되었답니다. 



4) 한효주의 술버릇.. 아무도 모르는 이유는?







한효주는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소문에 한효주는 굳이 부정하지 않고 실제로 좋아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런데 한효주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술을 절대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답니다. 실제로 그녀는 남들에게 취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게 그녀의 술버릇이거든요. 집에서는 신발도 안벗고 침대에 쓰러지지만 그래도 절대로 취해도 취한티를 내지 않는게 바로 그녀의 술버릇이라네요.


5) 한효주 사슴영혼으로 시선을 사로잡다.






참으로 닭 살스런 별칭이 아닐 래야 아닐 수 없지만 사실 그녀의 데뷔작인 논스톱시절을 보면 또 그만큼 잘 어울리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한효주 팬들은 다 아시다시피 논스톱 출연은 단 1회만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1회 출연한 이 후에 반응을 보고 고정으로 갈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기로 했는데요. 다행히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고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원래 캐릭터는 “복수할거야”를 외치고 다니는 여대생이었는데 그녀가 이를 잘 살라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결국 당시 그녀의 원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감이 제로인 캐릭터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



6) 봄의 왈츠의 캐스팅 소식을 들은 후





한효주가 이른바 인기스타로서 거듭난것은 찬란한 유산일겁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연기자로써 이름을 알린것은 봄의 왈츠였죠. 저도 사실은 봄의 왈츠를 통해서 한효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효주가 가장 이뻤던 시절은 봄의 왈츠 1회와 2회에 등장하는 오스트라이씬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한효주에게도 봄의 왈츠는 그녀 인생에 매우 중요한 전환기가 작품이었죠.  당시 한효주는 아는 누나와 식당에서 식사중이었는데 주연이 되었다는 소식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고 큰 소리로 환호를 했다고 하네요.


7) 사춘기를 겪고 있는 한효주





한효주는 이렇다 할 질풍 노도의 시기 없이 별다른 문제 없이 순하게 살아왔지만 광해가 끝난 이후에 학창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한 사춘기를 겪었다고 합니다. 감시자를 준비하는 기간 역시 그녀의 사춘기 가 계속되고 있었고 약간의 반항심과 함께 세상에 대해서 화가나고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시자속의 마냥 밝은 성격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마음에 별로 안들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사춘기를 겪고 있던 자신의생각들을 담아내서 초기 기획과는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하네요.  당시에는 그녀로써는 심적으로 꽤 힘든 날들이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니 나름 보상은 받은 것 같습니다.


8) 할머니에 대한 한효주의 사랑





광해에서 천만을 기록하고 반창꼬로 꽤 준수한 흥행을 하였고 감시자들로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한효주는 이제 영화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중 하나가 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영화계로 간 배우들은 보통 웬만해서는 드라마로 돌아오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계에서 다시 드라마를 찍는 경우는 영화계에서 별로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두었을때 다시 재기를 목표로 드라마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효주는 빨리 드라마를 다시 찍고 싶다고 하네요. 그 이유는 바로 할머니 때문이랍니다. 한효주가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죠. 할머니가 보내주신 열무김치로 각종 음식들을 하며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미니홈피에 표시하기도 했고요.  그런 할머니가 드라마에 나오기를 바라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할머니들은 극장보다 텔레비전이 더 익숙하고 안방에서 보는게 더 편하기 때문이죠. 할머니를 위해서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데 할머니를 위해서 선택한 드라마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9) 한효주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백만송이 장미





제가 사실 한효주씨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는 알것 같더군요. 노래를 참 좋아할것 같습니다. 그냥 그건 저의 직감인데요. 한효주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등장해서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니 더 확신이 들었고요.  사실 그 스케쥴이 알고보니 감기몸살에다가 링거까지 맞으면서 진행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보통 음악사랑이 아닌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으로는 이하나씨 다음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 한효주가 추천하는 노래는 "백만송이 장미"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한효주씨는 실제 노래를 발표한적도 있습니다.  원래는 백만송이 장미를 링크할려고 했는데요.  한효주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맞고 보기에도 상큼한 영상이 있기에 그녀의 뮤직 비디오를 틀어 드립니다.




10) 한효주 이상형





수많은 스타들과 남성들의 이상형인 한효주의 이상형은 어떻게 될까요? 밝고 건강하고 엄마처럼 기댈 수 있는 남자라고 합니다. 열정이 있고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한효주는 처음에 확 끌리는 것보다 시간이 지날 수록 끝리는 사람이 좋다고 합니다. 그녀가 이상형으로 지목한 사람은 꽤 많습니다. 소지섭과 지진희에서부터  가정에 충실한것 같다는 이유로 김인권을 지목하기도 하였고 대세라는 이유로 싸이를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한효주가 지목한 이상형중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박해일인것 같습니다. 원래 이런것은 연예인 이상형은 데뷔초기에 이야기한 사람이 가장 근접한것 같더군요. 데뷔초기에 꾸준히 언급한 박해일이 가장 솔직한 이상형인것 같고 개인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스타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글을 읽는 분이 이상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추천"버튼이나 "좋아요"버튼을 클릭해보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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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4.01.17 08:15





1) 한지민은 독방쓰는걸 싫어한다.


 



3대가 모여사는 종갓집에 둘째로 태어난 한지민은 어리시절부터 대가족의 일원으로 가족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녀에게는 유일한 단점이 하나 생겼다고 합니다. 항상 가족과 하는게 일상생활이 되어 버려서 혼자 있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도 혼자 떠나지 못하고 영화를 봐도 혼자 보는걸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지민의 언니가 독방을 쓰자고 해도 싫다면서 언니가 유학을 떠날 때 까지 함께 방을 썼다고 하는군요.




2) 공포영화가 전혀 무섭지 않은 한지민 하지만......








청순한 외모의 큰 눈망울을 보면 겁이 많을 것 같고 공포영화도 못 볼 것 같은  한지민이지만 정작 그녀는 별로 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포영화도 안 무섭고 귀신도 무섭지 않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무서운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물"입니다. 그년 물속에 들어가면 고열과 어지럼을 느끼는 물공포증있다고 하네요.



3) 체육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데뷔하다.






한지민은 고등학교 1학년때 네버스탑 CF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어린나이에 연예계에 발을 내디딜수 있었던 것은 중학교 시절 한지민을 눈여겨 보던 체육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체육 선생님의 처제가 연예 기획사를 운영했는데 이때 한지민을 소개시켜주어서  데뷔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4) 한지민 연기력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고 조연을 자청하다







한지민은 미니시리즈 좋은사람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후 갑자기 대장금의 조연으로 연기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좋은 사람에서 자신의 연기력 부족을 실감하고 조연이지만 연기력 향상을 위해 대장금에 출연할 결심을 하게 되었답니다.



5) 선물 주는게 취미인 한지민







한지민은 주변사람에게 선물을 자주 해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선물주기를 좋아하는 것은 선물받는 사람의 기쁜모습이 너무 좋기 때문이랍니다. 참고적으로 한지민이 받은 선물중에서 최고로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는 것은 고3때 친구가 수능 보기 50일전부터 쓴 일기장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마음이 전해진것 같네요.



6) 올인보다 가족여행을 선택한 한지민







한지민이 500대 1의 경쟁률을 물리치고 무려 "20세"나 되는 나이에 "아역"으로 "올인"에 데뷔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지민은 오디션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디션 보자는 것도 거절하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다는군요. 원래 한지민은 가족여행과 오디션사이에서 고민을 하였지만 처음가는 해외 가족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것이죠. 그렇게 편안하게 여행을 갔다왔건만 정작 "올인" 제작진 측에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는지 오디션까지 거절하고 가족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한지민에 연락을 해서 캐스팅을 했다고 합니다. 참고적으로 한지민은 송혜교의 아역인데 정작 송혜교와 한지민은 동갑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너무나 유명한데요. 당시에 제가 아는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한지민이 송혜교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저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저를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본 분의 모습이 새삼 떠오르네요.



7) 한지민이 추천하는 음악은 I have a dream






한지민이 가장 좋아하고 여러분들에게 가장 추천하는게 바로 아바의 I have a dream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한 느낌이 나서 이 노래를 자주 듣는 다고 하는데요. 여기에서 한지민이 추천하는 노래 I have a dream 듣고 가시죠. 개인적으로 저는 웨스트라이프의 노래를 더 좋아해서 웨스트 라이프의 I have a dream 을 링크해드립니다.




8) 복지시설을 만드는게 꿈인 여자





한지민은 학창시절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하였고 각종 기부활동을 통해서 천사연예인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그녀의 봉사활동은 책으로도 쓸수 있을 정도이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을 듯 하네요. 꽃보다 할배에서도 이산에 같이 출연했던 선배들인 이서진과 이순재의 발언을 통해서 그녀가 얼마나 착한 연예인인지를 쉽게 확인할수 있을 겁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지민은 역시 자신의 미래 꿈으로 실버타운과 같은 복지시설을 짓고 그곳에서 복사하는 것이라고 하는건 가식처럼 느껴지기는 커녕 너무나 당연해 보일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바로 사회사업학과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한지민은 꼭 재벌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재벌이 사회사업에 많은 돈을 쓸것 같거든요~ ^^;;




9) 한지민 이상형은 가화만사성을 이룰 수 있는 남자







어린시절부터 조부님과 함께 여섯식구과 함께 살아온 대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이 정말 화목한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다 시피 오죽하면 혼자 있는걸 싫어하겠습니까? 이렇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그녀는 이상형도 역시 가정적인 남자랍니다. 자신의 가족과 잘 어울리는 것은 기본에다가 여기에 배려심이 있고 변하지 않는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진 남자가 바로 한지민 이상형이라고 하네요.



10) 한지민의 아름다움의 비결은 호박즙과 비타민 C






한지민의 어머니가 연예인인 딸을 위해서 항상 준비해주시는 것이 바로 호박즙이라고 합니다. 호박즙을 하루에 두번씩 먹으면 붓기걱정은 할필요가 없다고 하네요. 그리고 제철음식을 통해서 비타민 C를 섭취하는 것 역시 그녀의 피부와 피로 관리 비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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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4.01.09 08:17





1) 남상미는 직접 강도를 잡은 적이 있다.





남상미가 친구 집에 놀러 간 어느 날…  갑자기 친구 집 창문으로 강도가 침입을 하는 되었답니다.   강도를 발견한 친구가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다른 방에 있던 남상미에게 도망쳤고 강도는 그녀를 따라서 남상미가 있던 방으로 달려 들어오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중간에 책이 끼어서 문이 닫히지 않는 바람에 강도와 남상미는 문을 앞에 두고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남상미는 자신도 믿기 힘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강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고 그 사이 친구가 112로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차 덕분에 겨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답니다. 강도를 잡아 놓고 보니 정말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는 전과자였다고 합니다. 만약 그때 남상미의 초인적인 힘이 아니었다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몰랐던 그런 큰 사건이었던 거죠. 가끔씩 남상미씨를 보면 뭔가 강한 여자의 느낌이 났는데 다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2) 대타 출연이었지만 결국 최고의 기회를 얻은 남상미






오늘날 남상미를 있게 한 작품이자 저 개인적으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달콤한 스파이는 원래 황신혜가 주연으로 물망에 올랐다고 합니다. 저도 황신혜씨가 출연하는 드라마라고 알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남상미가 확실한 주연급으로 발돋움하게 만들어준 불량가족역시 남상미가 1순위가 아니라 한채영이 유력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상미가 두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처음 들릴때만 해도  대타출연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데요. 사실 지금와서는 그 누구도 대타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하도록 완벽한 연기를 펼쳤고 오늘날 탄탄한 톱스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참고적으로 남상미가 달콤한 스파이에 출연이 결정된 것은 촬영이 시작 되기전 불과 3일전이었다고 합니다. 기회는 정말 언제 올지 몰라요. 기회라고 생각하면 망설이지 말고 올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거 같습니다.



3) 경찰과의 특별한 인연을 가진 남상미





남상미의 인생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달콤한 스파이와 영화 강력 3반에 경찰역으로 출연한 남상미는 정말 여러가지로 경찰과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어린시절에는 꿈이 경찰이었고 그렇게 좋아한다는 그녀의 두살 많은 친오빠는 경찰관으로 근무중이고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강도를 잡은적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남상미씨가 저런 제복을 입고 경찰역 한번 더 해봤으면 좋겠네요. ^^;;



4) 구혜선과 남상미가 친해진 이유





구혜선이 감독한 영화인 ‘복숭아 나무'에 남상미가 출연해서 의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둘 사이가 최고의 절친이라고 하더군요. 84년생 동갑내기인 둘은  얼짱 출신으로 서로 안면은 익히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이 지금처럼 서로에게 최고의 절친이 된 것은 남상미의 쌀 선물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남상미는 구혜선의 화실을 찾아가려고 주변사람에게 수소문을 했는데 이를 듣게 된 구혜선이 직접 집으로 초대해서 며칠간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며칠간 같이 지냈으면 지금처럼 친해질수 없었는데 다음날 남상미가 쌀을 들고 다시 찾아왔답니다. 남상미의 어머님이 친구에게 신세를 졌으니 쌀을 갖다주라고 했다는겁니다. 이 말이 구혜선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후 남상미와 구혜선은 연예계에서 최고의 절친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5) 남상미에게 가장 무서운 건 예능





남상미는 연기에 대해서 비난 받았던 적은  거의 없었던것 같습니다. 연기논란이라는 논란을 만들어내는 기사를 본적이 없네요. 이정도면 어느정도 연기에 타고난것일 테고 사진 몇장으로 유명해진 그녀인 만큼 왠지 카메라와는 매우 익숙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정작 남상미는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카메라 공포증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할 때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가장 최근의 예능프로인 화신에 출연할 때는 청심환을 먹고 녹화에 임할 정도였답니다. 해피투게더에서는 예능 울렁증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군요.  남상미가 특히 무서워하는 예능은 그중에서도 버라이어티입니다. 그녀가 버라이어티와 맞지 않는 이유는 버라이어티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버라이어티가 가장 무섭답니다.



6) 남상미 이상형





최근 남상미가 특이한 이상형을 밝혀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남상미에 의하면 그녀의 이상형은 회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땀을 흘리는 모습에 끌린다고 하는데 그녀가 회색티를 지목한 것은 회색티가 측은함을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7) 남상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심각한(?) 콤플렉스가 있다





남상미는 어리시절부터 가슴의 발육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유난히 큰 가슴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꼈던 그녀는 노출이 있는 옷은 일부러 입지 않았고 최대한 가슴을 감추기 위해서 양편 테이프를 붙였고 수업을 들을때는 붕대로 감고 들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8) 체육은 전교 1등이었던 남상미





남상미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중에 하나는 학창시절 전교 1등을 자랑하는 운동신경입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근육이 태능인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남상미는 실제로 스쿼시, 인라인,보드등 다양한 운동을 즐긴답니다.




9) 알고보면 남상미는 사물과 대화하는 4차원?





백일섭과 최불암등 어른들에게 유독 큰 칭찬을 받는 남상미는 외모라던가 모든것에서 정석만을 추구하는 FM의 느낌이 강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사물과 대화가 가능한 약간의 4 차원끼가 있다고 하는군요. 서해대교를 건너면 서해대교가 이야기하는 것 같고 바닷가에 가면 파도가 위로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달콤한 스파이에서 남상미는 양파와 대화를 나누는 신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연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은 정작 진짜 양파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주장하더군요.




10) 그녀는 취미는 자신의 이름 들어간 기사 외우기





남상미는 자신을 주제로한 기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모든 기사들을 다 읽는답니다.그래서 주변사람이 자신에게 한 이야기들까지 다 외우고 다닌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기사뿐만 아니라 기자이름까지 달달 외운다고 하는군요. 기사를 열심히 검색하는 그녀인 만큼 어쩌면 이글을 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남상미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래 추천이나 리플이라도 달아주세요.  추천수가 적으면 남상미씨가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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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4.01.03 07:37





1) 문채원이 왕따를 당한 이유는?









문채원은 대구 태생입니다. 하지만 문채원은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 청담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는 군요.  원래 겁도 많은 남한테 욕먹기는 더더욱 싫었던 그녀는 사투리 때문에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답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왕따가 되어버린거죠. 왕따에 한번 빠지니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학창 시절은 더욱더 힘들어졌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문채원이 선택한 길은 예술계 고등학교였답니다. 문채원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것이죠.  실제로 문채원은 선화예고에 진학한 후 생활은 달라졌고 그때서야 비로서 정상적(?)인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군요.


2) 그녀가 학교대신 찜찔방에 간 까닭은?







그림이 좋아서 그림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문채원은 다른 한편으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개인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는 문채원을 좋아했지만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에는 절대 반대를 하셨다는 군요.  그녀가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극렬하게 반대하였고 결국 문채원은 우선 부모님 뜻대로 미대에 가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배우의 꿈을 가지게 된 문채원은 그의 꿈을 포기 할 수 없었고 아예 학교를 가지 않고 찜질방으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찜질방에서 어머니에게 발각된 문채원은 어머니와의 허심탄회한 대화 끝에 연기자가 되기 위한 오디션을 보는데 까지 합의를 보게 되었답니다.



3) 문채원이 첫 오디션에서 눈물을 펑펑 흘린 이유는?






드디어 !! SBS의 “달려라 고등어”에 오디션을 보게 된 그녀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조금이나마 풀고자 아로마 향초를 키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밤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불운을 겪게 됩니다. 잠자는 도중에 향초가 그만  그녀 얼굴에 떨어지면서 살점도 패이고 속눈썹도 다 타는 화상을 입게 된것이죠. 문채원은  병원으로 가야할지 오디션을 봐야할지 고민을 한 끝에 임시방편으로 붕대를 하고 오디션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예쁘게 보여야할 오디션장에 세수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고 붕대를 감고 갔으니 감독이 깜짝놀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문채원은 그날 탈락을 예감하고 집에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차지하게 됩니다. 전혀 기대도 안했는데 오디션에 합격통보를 받은것이지요. 그녀가 합격한 드라마가 바로 달려라 고등어입니다. 당시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영의 쓴맛을 보았지만 그래도 문채원과 박보영 그리고 이민호를 탄생시킨 드라마라는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중요한 미팅 전날에는 라면에 끌린다.





그녀에게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중요한 미팅전날이라면 라면이 그렇게 끌린다고 합니다. 다음날을 생각하면 참아야 하겠지만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라면에 굴복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



5) 문채원이 가장 힘들었던 1년 하지만..





1년간 기획사와의 문제로 1년을 강제로 쉬워야 했던 문채원은 그 당시를 가장 힘든 시기로 뽑는고 합니다. 일부러 드라마도 보지 않으면서 지냈던 어려운 시기였지만 자신을 뒤돌아볼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는 군요. 그래도 그때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힘들다가도 거짓말처럼 기운이 솟는다고 합니다. 그야 말로 전화위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문채원을 통해서 인생사라는걸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6) 문채원이 뽕구로 불리우는 이유





문채원은 팬들에게 뽕구로 불리웁니다. 왜 뽕구일까 궁금하실텐데요. 뽕구는 그녀가 길렀던 강아지의 이름있다. 여기에 착안해 문채원은 싸이월드의 주소를 moonbbong9 라고 하였는데 이를 알게된 팬들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뽕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군요.



7) 문채원은 머리를 5일동안 감지 않은 적도 있다.





촬영에 들어가면 그 누구보다 일에 몰두하지만 문채원의 평상시 모습은 집에서 늦은시간 동안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휴식기에는 그녀 특유의 귀차니즘이 작동하는데 5일동안 머리를 감지 않은적도 있다고 합니다. 피부가 좋을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데 그녀의 느긋한(?) 성격을 보면 문채원의 경우는 아무래도 타고난 피부인것 같습니다. 아니 또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라 성격이 여유롭고 느긋해야 피부도 좋다는건가요? ^^;;;



8) 술, 담배, 커피, 게임도 안하는 문채원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술, 담배, 커피, 게임도 안하는 그녀에게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바로 여행입니다. 마음에 끌리는 곳이라면 아무리 장거리라도 용감하게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문채원은 사람들이 많은 유명한 여행지보다는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여행지를 선호한다는 군요.


9) 문채원의 진짜 이상형은?





시상식에서 이상형에 대한 질문을 받자 BHE라는 이니셜을 말해서 한때 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던 문채원... 당시 BHE가 누군이지를 두고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했었는데요. 이는 그녀가 특정인을 지목하면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일부러 만들어낸 이니셜이라고 합니다. 하필 이니셜이 B로 시작한것은 그게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성씨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고 하는군요 한편 문채원의  이상형은 마음이 선하고, 건강한 사람,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로맨니스트라고 하는데 이는 그냥 명목상의 이상형일뿐 실제로는 정작 마음이 꼭 그렇식으로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군요.  그녀가 가장 최근에 받은 이상형 질문에 문채원은 뚜렷하게 이상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10)  문채원의 취미는 해외토픽 보기





그녀의 프로필중에서 특이한것중에 하나는 바로 해외토픽이다. 단순히 기사에 나온 해외토픽을 보는게 아니라 직접 해외사이트를 찾아가서 읽을정도라고 합니다. 문채원은 하루라도 해외토픽을 읽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쳐버릴정도라고 하는군요. 이렇게 그녀가 해외토픽을 좋아하는건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새삼 느낄수가 있고 위로를 받을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고 마음이 아플 때 120명과 사귄 13살짜리 카사노바 이야기를 듣고 위로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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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문채원
흥미로운 사실들2013.12.20 09:35


1) 1일 1식의 저자 나구모 요시노리는 우엉차에 대해 극찬한 책을 썼다.







한국에서 1일 1식의 저자로 유명한 일본인 의사 나구모 요시노리는 20년 젊어지는 우엉차 건강법이라는 책을 썼는데 50대인 그는 30대의 두뇌나이 38세, 뼈나이 28세 혈관나이 20세로 신체나이 20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엉차 덕분이라고 할정도로 우엉차를 극찬하고 있다.



2) 전영록이 우엉차를 최고의 차로 추천하다.






대장암에 걸렸던 전영록은 건강을 위해 온갖 차를 다 마셔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전영록은 우엉차만큼 좋은차가 없다고 한다. 우엉차를 먹을 때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혈압을 너무 많이 떨어뜨리는게 문제라고 하니 이 얼마나 대단한 차란 말인가?



3) 엄정화가 선택한 몸에 좋은 것





그동안 일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던 엄정화는 몸이 아픈 이후에 건강관리에 힘쓰게 되었는데 그런 그녀가 몸에 좋은 것을 먹기 위해 챙겨먹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우엉차라고 한다.


4) 갑상선 항진증 진단받은 유채영 건강관리를 위해 우엉차를 선택하다.







어느날부터 건강이 많이 나뻐졌음을 직감한 유채영은 건강검진 결과 갑상선 항진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때부터 운동과 보양식등 건강관리에 힘쓰게 된다.  그는 꾸준하게 운동을 하는데 운동을 한 후 에는 바로 우엉차를 마신다. 우엉차가 운동으로도 빠지지 않는 체내의 불순물을 빼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 우엉차는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사포닌이 인삼보다 더 많이 들어가 있다.





아랍어로 비누라는 뜻을 사포닌은 혈관을 깨끗하게 해주는데 콜레스테롤과 지방 그리고 활성산소까지 제거를 해주기 때문에 비만과 노화 예방에도 좋다. 사포닌 성분덕분에 피지도 줄어들어서 피부결도 함께 좋아진다.



6) 우엉차는 식이섬유질이 풍부하다.





 우엉차는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등의 식이 섬유질을 함유하고 있고 위장속 수분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변비에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


7) 다이어트와 당뇨에도 도움이 되는 이눌린





우엉차 안의 이눌린은 몸안의 불필요한 수분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부종과 다이어트 그리고 당뇨,신장에도 좋다.



8) 피부질활에도 도움을 준다. 




탄닌은 몸에 소염작용을 돕기 때문에 아토피, 건선, 습진, 두드러기 같은 피부 질환에도 도움을 준다.


9) 체력 보강에 좋다.





우엉에 들어있는 아르기닌은 단백질의 일종으로 성장호르몬을 촉진하고 체력을 강화시켜준다.



10) 우엉차는 고기를 먹은 후에 먹으면 좋다.







우엉은 체내의 독소를 빼주기 때문에 특히 고기를 먹고 우엉차를 먹는게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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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3.11.26 07:33





1) 케이블의 진정한 여왕 김정민





원래 이 글의 제목을 배우 김정민으로 소개하려고 하였습니다. 가수 김정민과 구분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케이블 여왕 만큼 완벽한 닉네임도 없네요.  요즘 텔레비전을 키면 어느 채널에서나 볼 수 있는게 바로 김정민입니다. 최근 그녀가 출연한 케이블 TV만 봐도 겟잇뷰티에서부터 용감한 기자들, 동치미, 신의한수, 신순정녀등이 있지요.  우연인지 몰라도 제가 보는 프로마다 출연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그녀에 대한 관심을 안가질 수 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케이블 여왕 김정민을 주제로 그녀의 흥미로운 10가지 사실들을 밝혀보고자 합니다.



2) 명랑소녀 성공기





13살이었던 김정민은 학업을 포기하고 집을 가출하게 되었답니다. 사촌언니가 일하는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중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서 반올림으로 데뷔했다는데요. 여기까지 들으면 왠지모르게 그녀의 이미지와 겹쳐서 문제아 같을것 같은데요. 사실 그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해서 어머니가 먼저 가출을 했고 아버지가 자신을 학교에 보내지 않자 아버지가 무서웠던 자신도 가출을 할수 밖에 없었다는군요. 그리고 그녀는  폭행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가출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녀는 반올림을 통해서 연예계에 데뷔하고나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되었고 지금은 어머니 역시 재혼하고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혼자힘으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대학교까지 나왔으니 그녀의 성실성을 의심을 필요는 없을것 같네요. 오히려 소녀가장으로써의 책임감이 대단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순정녀에서 각종 안좋은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에 올랐던 김정민이었지만 김민종의 "결혼하면 바가지 긁을것 같은 여자"에서 7위를 기록하면서 오래만에 김정민의 웃는모습을 볼수 있었는데요. 식당에서 부모님께 잘하는 모습을 직접 본 김민종이 남편에게도 잘할것 같아서 7위에 올렸다고 합니다.(7위지만 결국 7위가 1위인 순위죠 ^^;;) 한편 그녀가 이렇게 자신의 힘든 가정사를 털어 놓은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하는군요.



3) 그녀의 이상형은 나이가 많은 남자?





파란장만한 가족사 덕분에 그녀는 20대 초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정도의 애 늙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냥 그런게 아니라 서로 물어 뜯는 재미를 선사하는 순정녀에서는 저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망신창이가 되는데 김정민에 대한 한결같은 평가는 생각이 깊고 애늙은이 같아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가족사와 함께 어린시절부터 일을 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동년배보다는 나이가 좀 있고 정신적으로 교감할 수 있으며 헌신적인 남자를 이상형으로 삼고 있습니다.  연예인으로는 임재범과 신성우라고 하는군요.


4) 철저한 자기 관리





김정민은 몸매 좋은 연예인으로 유명한 만큼 역시 자기관리에도 철두철미하기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회식자리에서도 튀김을 종이로 짜서 기름을 빼고 먹는다고 합니다. 술도 별로 마시지 않는 그녀는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기 보다는 몸매관리를 위해 운동과 산책 그리고 집안에서 독서와 다이어리쓰기를 즐긴다고 하는군요. 최근에는 중국활동을 위해 중국어 공부에도 열심히랍니다.



5) 스트라이크를 못 던져서 우는 여자





김정민은 승부욕도 강한것으로 보입니다. 시구가 포수에게 가지 않고 엉뚱한곳으로 날라갔는데 처음에는 괜찮은듯 싶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더군요.  아무래도 광주까지 내려가서 던졌는데 준비하고 노력한것에 비해서 엉뚱한곳으로 공이 날라가서 울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눈물까지 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마스코트인 호돌이가 장난으로 "쯧쯧쯧" 하면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이이야기를 라디오스타에서 김정민이 재미있게 풀어놨는데요. 그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턱돌이라고 놀렸다고 그러는데요.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동영상을 보니 훨씬 재미있더군요.


6) 모태솔로 김정민?






예능에 출연하는 김정민의 중요한 캐릭터중에 하나는 모태솔로입니다. 2010년부터 꾸준히 모태솔로를 주장해오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 역시 하나의 캐릭터로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그래도 모태솔로를 주장하는 덕분에 재미있는 상황이 많이 만들어지기는 합니다.  이를테면 요즘 용감한 기자들에서 김태현과 핑크빛 모드가 만들어지는데요. 서로 농담을 주고 받다가 김정민 스스로 어색한 나머지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이 있는데.. 사실 저 개인적으로 그거 보는게 재미있기는 합니다.


7) 5일동안 밤을 새서 게임을 즐기는 그녀





김정민은 1녀 3남의 장녀입니다.  남동생이 3명이나 있는 만큼 컴퓨터 게임에도 친숙할 수 밖에 없는데요. 동생과 게임방송을 함께 시청하였고 스타크래프트에서 저그를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녀는 아이돌스타와 프로게이머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인 스타 n 스타에 출연까지 했으니 게임과 인연이 있다고 할수 있는데요.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게임은 심시티와 심즈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이고 데뷔에 한 다음에도 5일 동안 게임하면서 밤을 지샌적도 있다고 하네요.


8)  그녀의 머릿속은 노트3로 꽉 찼다.





3남 1녀의 장녀 그리고 밤새서 게임을 즐겼던 과거 그리고 노트3로 위의 사진과 같은 뇌구조를 그릴 수 있는 저런 환경이라면 IT와도 그녀가 매우 잘어울릴것 같습니다.  그래서 겟잇 뷰티 처럼 IT 와 관련된 프로의 MC가 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9) 여자 신동엽을 꿈꾼다.





김정민은 여자 김구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휘재의 순정녀에서 보여준 특유의 독설덕분인데요. 그런데 요즘 김정민의 유머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신동엽과는 2010년에  <커플쇼! 결혼해도 될까요? >를 통해서 호흡을 맞춘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동엽과는 요즘 신순정녀와 용감한 기자들을 보면 예전보다 훨씬 여유가 있더군요. 예전에는 잘 농담을 하다가도 상대가 좀 예리하게 공격을 한다고 하면 흥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힘을 빼고 반격을 펼치는겁니다.  여러가지로 신동엽과 비슷해지는 느낌이 드는데요. 실제로 신동엽은 김정민에게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미래의 꿈이 신동엽과 같은 MC가 되는 것이기도 하구요.  물론 꼭 신동엽만의 영향은 아닐겁니다. 원래 예능계에서는 배우에 대한 선입관이 있어서 처음에 같이 일할때 이런 저런 눈치를 봐야 했지만 지금은 달라진듯 합니다. 정말 신나게 놀았는데 돈도 받는 그런 느낌으로 예능을 한다고 하는군요.


10) 그녀의 또다른 롤모델 한고은





아직 배우로써의 욕심도 버린건 아닙니다. 특히 그녀의 롤모델은 사랑과 야망에 같이 출연했던 한고은입니다. 한고은처럼 그녀특유의 자유로움을 매력으로 발산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한고은의 옷스타일을 좋아해서 한고은을 따라서 청재킷을 디자인별로 사기도 했답니다. 그녀의 스타일을 따라하면서 한고은의  성격과 사고방식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타일의 완성은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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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흥미로운 사실들2013.08.21 07:33



정말로 위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드라마가 탄생했네요. 저는 원래 드라마에서 엔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드라마라도 엔딩이 나쁘면 그 드라마는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오히려 그동안의 시간이 아까워서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실제로 수많은 드라마들이 용두사미로 끝났기 때문에 가급적 어떤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종영되기전까지 평가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기존에 볼수 없었던 화법과 기가막힌 반전 거기에 치열한 두뇌싸움까지 가미된 "황금의 제국"을 보면서 도저히 찬양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드라마를 보면서도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 많기에 이렇게 블로그에 황금의 제국을 소재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드라마는 16회까지 방영된 상황으로 서양의 이야기 구조가 3막을 따르고 있음을 볼때 이 드라마 역시 정확히 바로 이러한 구조아래서 이야기들이 설계되어있더군요. 8회까지는 주인공들이 모여서 성진 그룹을 차지하기 위한 저마다의 사정들이 그려졌고 이후 중반부 동안 암투가 벌어지면서 서로간에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더니 이제 드디어 무주공산이었던 회장자리에 최민재가 등극함으로써 2막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1막이 저마다 성진 그룹을 차지할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단계였다면 2막은 야망을 이루기 위한 실행의 단계이며 3막은 "영광과 몰락" 이 주요 스토리가 될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회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결국 몰락을 하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황금의 제국이라는 드라마가 희대의 명작으로 사람들의 찬양을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는 바로 3막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기에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황금의 제국을 보는 저의 관전포인트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원래 황금의 제국의 작가인 박경수 작가의 전작인 추적자를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 역시 사회에 던지는 어떤 메시지가 있을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10회 초반까지만 해도 돈에 미친 탐욕자들의 기업 정복 스토리 정도로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그 자체만 해도 저는 좋았습니다. 뭐랄까 과거 삼국지나 최근의 왕좌의 게임을 보는 기분이 들었고 이런 호쾌한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어디에 감정이입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판을 보면서 각 사람별로 기업을 차지하기 위한 머리싸움을 펼치는것 자체가 흥미로롭기 스포츠 경기 보듯이 관람 할 수 있었기 때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최소한 두가지의 메시지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무엇을 얻으려거든 다 걸어라" , "부의 재분배" 말이죠. 최민재가 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과거 본전을 생각하다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지만 16회에는 자기 각성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던지고 결국 회장자리에 오를 수 있었죠. 그리고 황금의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알고 보면 부의 재분배였습니다.  최동성과 최동진과의 형제의 싸움에서도 그렇고 최민재와 장태주의 결별도 바로 부의 재분배였습니다. 그리고 황금의 제국을 차지하기 위한 모든 캐릭터들이 저마다 자신의 몫을 생각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전제적으로 보면 1막은 부의 재분배이고 2막은 무엇을 얻으려거든 다 걸어라라 정도가 되겠네요. 그렇다면 3막에서도 뭔가의 메시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메시지가 기대되네요.



2) 장태주 (고수)   몰락할 것인가? 구원 받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황금의 제국은 결국 야망과 탐욕에 미쳐서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1회에서부터 매우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극에서만 뒤통수를 치는게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뒤통수를 치는게 특기입니다. 시청자가 어떤 생각을 하면 그 그림을 뛰어넘는 기가막힌 반전을 선보였습니다. 대부부분의 드라마라는것이 뻔한 스토리로 전개되고 오히려 그 뻔한 스토리가 아니면 대개 막장으로 치닫기 마련인데 황금의 제국은 그야말로 기분좋은 배신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미 장태주가 엄청난 큰 일을 벌여놓은 상황이라서 결국은 그 죄값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장태주의 몰락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겁니다. 하지만 저는 작가가 그렇게 누구나 생각하는 뻔한 스토리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래서 장태주가 법망을 피해서 해외로 도피하는 막장 스토리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드라마의 3막을 영광과 몰락이라고 한 이유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저마다 한번씩 승리를 경험하게 될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장태주 역시 회장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때 "자수"를  선택 하지 않을까 싶네요.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모든것을 버림으로써 마음속에 있던 짐을 버리고 구원을 받는 것이죠. 그리고 나중에 교도소에 나오면 윤설희가 그를 지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최서윤(이요원) 장태주를 사랑할 것인가?






원래 게시판의 캐릭터 소개에서부터 최서윤이 장태주를 사랑한다는 글이있지만 이미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많은글들이 이미 많이 어긋났기 때문에 별의미는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면 오히려 최서윤이 장태주를 사랑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7회에 장태주가 망하기 직전에 최서윤이 장태주를 스카웃하기 위해서 만나지만 거절을 하죠. 그때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네요. 


그리고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구구절절하게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지만 최서윤만 없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최서윤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최서윤이 얻은건 사실 그가 최동성 회장의 딸이기 때문에 이루어놓은 것이지 따지고 보면 오히려 실책과 패배가 많습니다. 최서윤은 두번의 승리가 있는데 하나는 성진건설에서 성진시멘트로 지주회사를 옮긴거였고 두번째는 제철회사를 인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가지는 결국 최동성 회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실행불가능한 것이었고 스스로 이뤄놓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지금 현재는 그룹을 최악의 위기로 몰고 갔습니다. 거기에 회장자리도 민재에게 빼앗겼으니 알고보면 그렇게 우월한 캐릭터는 아니죠. 지금은 열심히 태생이 다르다면서 장태주를 천대시하고 있지만 앞으로 발휘될 장태주의 능력에 서서히 빠져들테고 장태주를 통해서 그가 그토록 집착하는 아버지 최동성 회장의 모습을 보게 되겠죠. 저는 고수가 장태주 역할에 캐스팅 되었을때 의아했습니다. 사실 작가가 좋아할 스타일은 아니라고 봤는데 요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최동성 회장을 맡은 박근형과 가장 닮은 배우를 찾은게 아닌가 싶더군요.


  요즘 장태주를 통해서 최동성 회장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데 지금까지는 감정에 있어서는 냉혈 인간인 최서윤이 장태주에게 사랑에 빠진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네요. 최서윤이 장태주를 얻는 최고의 방법은 결국 최서윤이 회장에 오르는겁니다. 그래서 장태주가 자신을 떠나지 못할테니깐 그래서 오히려 사랑때문에 더 회장자리에 집착하지 않을까 싶네요. 여기에 덧붙여서 저의 상상을 덧붙이자면 회장에 오른 장태주가 자수를 결심하자 이를 막는게 최서윤이고 최서윤이 결국 장태주의 아이를 낳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급진적인 예상도 해봅니다. 장태주의 아이가 나중에 회장에 오를테구요. ^^;;;


4) 민재(손현주) 는 어떻게 몰락할 것인가?




당하기만 하던 민재가 드디어 회장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당하기만 하던 민재가 회장에 올랐으니 통쾌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황금의 제국 3막은 영광과 몰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마다 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겠지만 그와 동시에 한사람 한사람씩 몰락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여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민재 회장의 몰락이 한정희가 심어놓은 강전무 때문에 일어날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작가는 여지 없이 그 생각을 비웃더군요. 이렇게 빨리 저의 생각을 비웃을지 몰랐습니다.  


최민재의 몰락은 결국 사람의 배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민재는 조필두도 그렇고 강전무도 그렇고 충성스러 부하가 없다는 겁니다. 정을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서 몰락의 길을 걷지 않을까 싶은데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사랑없는 결혼을 한  부인이 문제를 일으킬것이라고 어림짐작을 해봅니다만 뭐 박경수작가가 뭐 보통사람입니까? 워낙 대단한 필력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결국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그런 전재를 보여주겠죠.  그리고 최민재가  비록 회장자리에서 물러나지만 그만큼 인생에 중요한 어떤 것을 얻지 않을까 싶네요. 그건 아무래도 아버지겠죠? 민재가 캐스팅 보트로서 나중에 태주를 밀어주는것도 어찌보면 반전이라면 엄청난 반전이 될듯도 하네요.



5) 윤설희(장신영)  악녀가 될 것인가? 성녀가 될 것인가?






황금의 제국에서 윤설희를 보면서 그야말로 역대급 캐릭터가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여성캐릭터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서 본적이 없던것 같네요. 사실 드라마 소개를 보면 윤설희는 장태주(고수)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적혀있지만 현재는 장태주가 성진그룹을 차지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되었고 장태주라는 캐릭터를 사람들이 응원하는 이유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3류 막장적 드라마 관점을 살펴 보면 장태주와 최서윤이 사랑에 빠지고 이에 배신감에 치를 떨어서 복수의 화신이 되는 그런 스토리가 그려지지만 저는 그렇게 갈것 같지는 않군요. 


오히려 성녀로써의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장태주를 구원시키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윤설희의 사랑은 장태주뿐만 아니라 최서윤도 변하게 만들 겁니다. 최초에는 최서윤에게 어떤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겠죠. 최서윤은 돈때문에 장태주에게 결혼을 제의했고 자신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장태주를 절벽속으로 밀어 넣은 사람이기도합니다. 사실 따지고보면 최서윤은 한정희와 다를바가 없는 인물이기 하죠. 그런 모습은 이미 최민재가 16회에서 충분히 비웃어졌죠. 장태주와 최민재가 서로를 비웃으면서도 여러가지로 비슷하듯이 사실 최서윤은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한정희와 똑같아졌을뿐만 아니라 말그대로 장태주를 돌이킬수 없는 최악의 수를 던지게 한 인물입니다. 최서윤이 결혼하자는 모습에서 장태주는 필리핀으로 떠날 생각까지 하였죠. 이렇듯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최서윤이 살인혐의로 교도소까지 갔다온 낮은 신분의 윤설희를 장태주처럼 비웃겠지만 결국 윤설희를 통해서 뭔가 깨닫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금의 제국 3막에서는 주요캐릭터가 저마다 삶의 어떤 요소들을 하나씩 깨닫게 될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최서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될것이고 윤설희는 장태주를 얻게 될것 같네요.(아래에도 이야기했지만 장태주의 아기를 최서윤이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6) 최성재 과연 타락할것인가?





저는 최성재가 결국 다른 캐릭터처럼 타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황금의 제국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이 모두들 순수한 한때가 있었고 어떤 계기를 통해서 탐욕자가 됩니다. 장태주는 효자아들이었고 최서윤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죠.  한정희역시 한 여자의 착한 부인이었죠. 그러다가 각자 황금의 제국을 차지하기 이유들이 생겨나는데 하나는 가족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돈맛을 경험한 후입니다.


 그래서 최성재도 역시 지금은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은 다른 캐릭터처럼 타락할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15회에서 검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달라질줄 알았더니 작가가 누굽니까? 박경수 작가 아닙니까? 그동안의 드라마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중에 하나인 혈통관계도 그냥 가볍게 밝혔네요. 저의 원래 예상은 최성재가 온갖 더러운 수법을 다 동원해서 회장자리에 올랐다가 알고봤더니 배성재가 아니라 최성재임을 깨닫고 미쳐버러지 않을까 뭐 그런 장면을 예상했는데 그런 예상을 가볍게 밟아주었네요.  


전쟁이 끝내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는 패해야 하고 누군가는 승리해야 합니다. 최성재도 결국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전쟁에 뛰어들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황금이 제국이 출연하는 다른 인물들처럼 피도 눈물도 없이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거는 그런 모습을 생각했는데 그렇게 간단한 스토리로 흐르지 않을것 같네요.


저의 예상은 민재쪽이 우위에 있다가 그 다음 패권은 한정희쪽 그리고 장태주(고수)와 최서윤(이요원)의 결승전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그런데 한정희쪽 인물은 밸런스적으로 너무 떨어집니다. 최성재가 각성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변신을 하느냐가 3막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듯 하네요.  어찌보면 순수한 마음으로 회장이 되었지만 결국 엔딩에서는 최서윤의 도움을 받는 장태주의 "아들"이 경영권 싸움을 펼치지 않을까 뭐 그런생각을 합니다. 최서윤과 한정희의 평행이론이 펼쳐지는 거죠. 또한 그런 모습에서 황금의 제국속에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는나는 것을 강조하는거죠. 그리고 결국 최성재도 돈앞에서 타락한 모습도 보여주고요. 그리고 최동성과 최동진사이의 분열과 같은 원점으로 돌아가니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을것 같습니다. 


7) 과연 어떤 반전들이 나올까?



황금의 제국은 그야말로 반전의 제국으로 도저히 생각하지 못한 드라마의 흐름을 보여줬죠. 그래서 앞으로다 더 기대가 됩니다. 그런의미에서 지금까지는 황금의 제국속의 펼쳐진 여러정황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고민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전개를 예상해봤는데요. 지금부터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일개시청자인 저는 황금의 제국의 작가의 상상력을 아예 쫓아갈 수 없으니 이것저것 던져보겠습니다.


우선 저는 장태주가 어떤 큰 그림 위애서 전체 상황을 움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금의 제국에서 주인이 되려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어찌되었든 고수는 자신이 먼저 배신하지 않았으며 조필두와 윤설희처럼 누군가의 절대적인 신뢰를 쌓았습니다. 아버지에 물려받은 박전무를 움직이는 최서윤이나 전남편의 사람을 이용하는 한정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 고수는 손동휘 검사마저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15회의 그 엔딩 보셨습니까?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전율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앞으로 황금의 제국은 그런 모습을 하나둘씩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저는 최민재(손현주)가 회장이 되도록 한것이 장태주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 장태주가 얻을것도 없는데 왜 최민재를 도와주었을까라고 반문하실겁니다. 16회에서 장태주는 최서윤이 자신을 믿게 만들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암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같이 한편에 서서 적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당장 결승전을 펼치면 회사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고수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최서윤을 상대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당장은 패배를 선택하고 힘을 쌓아서 최서윤과 대등해질때 결승전을 펼치는게 좋지요.  저는 최민재와 직접 딜을 했다기 보다는 손동휘 검사를 통해서 슬쩍알려주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고수가 회장자리에 오를려면 최민재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또다른 한편으로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여튼 장태주가 주총전에 승리를 장담하면서 설레발을떨거나 가족회의를 할때 오버하는 모습에서 뒤에 뭔가기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장태주가 회장자리에 오르는데는 결국 한사람 한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인물중에는 박전무도 끼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최고의 반전이기도 하죠. 박전무가 장태주쪽으로 기울어진다고 생각한것은 4회에서의 대사 한마디 때문입니다. 


"당신이 가장 믿는 사람이 당신을 배반하게 만들겁니다. 그때 다시 통화하죠."



사실은 장태주가 최서윤을 배신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할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장태주와 최서윤은 결승전에서 맞설 상대이기 때문에 배신을 예상을 하고 있죠. 장태주가 최서윤에게 어떤 사건과계기를 통해서 믿음의 존재가 되겠지만 가장 믿는 사람은 아닐겁니다.  가장 믿는 사람은 바로 박전무이죠. 결국 박전무의 어떤 행동이 극의 흐름을 확 바꾸어 놓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러가지로 기대되는 모습들입니다. 어떻게 장태주가 박전무의 마음을 얻는지 그 과정을 보고 싶거든요. 반대로 최서윤은 조필두를 상대로 작업을 걸겠지만 반면에 조필두는 배신하지 않을겁니다. 그게 바로 최서윤과 장태주의 차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글을 쓰다보니 정말 길어졌네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이 몇분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길긴 길어요. 그런데 황금의 제국을 보다보니 나도 뭔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글을 쓰게 되었네요. 황금의 제국 정말 참으로 대단하고 위대한 드라마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이렇게 위대한 드라마를 매회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니 한국에서 태어난게 자랑스러울 정도네요. 그래서 이렇게 긴글도 쓸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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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흥미로운 사실들2013.05.15 07:33








저는 지금까지 케이블 드라마를 제대로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케이블 드라마는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케이블 드라마가 화제라고 해도 케이블 드라마를 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나인을 보게 된것도 찾아 본것이 아니라 새벽에 재방송하던 나인을 보다가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드라마 한편을 발견했다는 즐거움 정도였는데 회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내가 봤던 드라마중에서 최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과거 제 인생 최고의 드라마는 "겨울 연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제 제 인생 최고의 드라마는 나인이라고 말할겁니다.  개인적으로 놀라운건 그렇게 우습게 알았던 케이블 드라마를 내인생 최고의 드라마라고 생각하다니 정말 "나인"이 제게 주는 의미는 매우 특별한것 같습니다.



1) 다양한 장르의 접목


저는 서태지를 좋아합니다. 아직도 서태지의 음악을 듣는데요. 서태지 음악의 최고 매력은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다양한 장르들이 섞임으로써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겁니다. 그의 앨범을 틀어놓으면 힙합, 락, 메탈, 댄스, 발라드, 펑키 음악이 번갈아가면서 들리니 지루하지 않고 계속해서 음악을 듣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인이 바로 그렇습니다.  나인의 1편은 경쾌한 로맨틱 코메디가 되더니 2편에서는 신파 멜로가 되었다가 3편과 4편에서는 환타지가 되고 그다음에는 액션영화가 되었다가 다시 스릴러물이 되었습니다.  


나인의 19편에서는 결국은 눈물을 보이게 할수 밖에 없을정도로 그렇게 슬플수가 없는 드라마가 되더니 20편에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새롭게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로 이끌어갑니다. 그런데 드라마 나인의 경우 이런 분위기가 이질적이지 않고 하나의 드라마로 융합시켜놓았으니 제게는 서태지 만큼이나 흥미를 가지게 되는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20회의 급작스런 분위기 전환에 실망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20회의 밝은 분위기를 보면서 오히려 저는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19회 내내 선우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면서 싸웠습니까? 그렇게 고생 고생했는데 끝에가서 해피엔딩나오면 뭐합니까? 그런데 20회에 작가는 제 마음을 너무나 잘알더군요.  주인공인 선우와 주민영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사랑을 별로 확인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20회는 그 갈증을 확 풀어주었고 앞으로 저는 그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20회를 끊임없이 재생 반복할것 같네요.







2)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텔링


드라마는 절대적으로 시나리오의 힘으로 굴러가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스타가 나온다고 한들 시나리오가 나쁘면 가차없이 한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신인만 나와도 시나리오가 좋다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있지요.


 나인은 다시하번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보여주었습니다. 나인이 시나리오적으로 위대한 이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전개입니다. 사실 TV드라마만큼 뻔한 내용이 반복되는 매체는 없을겁니다. 특히 한국 드라마의 경우는 매우 극단적일 정도로 내용이 뻔합니다. 물론 가끔씩 틀리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별로 변화가 없습니다. ( 가진것 별로 없는 여자가 좋은 남자 만나서 잘살게 되는 내용인데 여기에 화해와 용서(혹은 복수) 라는 메세지만 생각하면 엔딩은 자동으로 그려집니다. ) 


 특히 한국드라마의 문제는 초반의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하지만 중반만 넘어가면 힘이 꺽기게 됩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생각을 해보면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정리를 못하는능력도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서 작가의 능력을 초반에 집중 투자해서 후반에는 아무래도 힘이 딸리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에 후반으로 갈수록 시간이 쫓기니 더더욱 드라마 후반부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거겠죠. 그런데 나인은 회가 거듭될수록 전개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면서 예측은 도저히 할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20회가 진행되는 동안 극에 대한 흥미도와 몰입도는 더욱 커지는데 정작 시나리오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경우는 드라마 나인이 최초였습니다. 


 하물며 인터넷 게시판에는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서 비슷한 예측을 내놓은 경우가 있는데 드라마 나인의 경우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작가가 시청자들의 머리위에 있다는 생각이 여러번들더군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사람은 정말 천재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물론 한국에는 좋고 훌륭한 작가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굉장하고 위대하다라는 느낌을 가진 작가는 떠오르지 않네요. 그런데 저는 드라마 나인의 작가인 송재정씨는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여러번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머리로는 예측조차 할수 없는 전개였지만 그 전개가 너무나 탁월했기 때문이죠.







3) 철학적인 메시지


드라마 나인은 단순히 킬링타임용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환타지 드라마인 만큼 뭔가 내용이 가볍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드라마 나인을 보면 저절로 철학적인 생각들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인생의 어떤 특정시점으로 돌아가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바꿀까?라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과거로 돌아가는게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할뿐이지 막상 과거로 돌아가면 과거의 저는 쉽게 변할수 있을것만 같습니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런 생각을 철저하게 비웃는것 같았습니다. 큰 정우는 큰 선우가 20년전의 과거로 가서 자수를 권하면 작은 정우는 쉽게 자수를 하고 잘못된것을 바로 잡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은 정우는 큰 정우의 바램을 배신하게 되고 이에 대한 실망으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다시 하게 되죠. 그리고 나인은 과거의 행동 하나하나가 또한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보여줍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은 과거를 뒤돌아 봤을 때에 비로서 점들을 연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점들은 당신의 미래와 어떻게된 결국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본능, 운명, 삶, 업보 등 무엇이든간에 점들이 결국 연결되어 하나의 길을 이루게 될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당신의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자신감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설사 당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잘 닦여진 길에서 벗어날지라도 그것이 여러분들을 남들게 다르게 만들어 줄것입니다. "


드라마 나인은 과거의 점들이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였고 저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매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나인의 마지막회 엔딩을 보면서 저는 나인의 메시지사가 스티브 잡스의 명언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선택을 믿으라는 큰 선우의 말을 믿고 히말라야행 비행기를 타고 자신에게 첫번째 보내는 메시지라면서 믿고 싶은 환타지는 믿고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하면 된다라고 독백을 하지요.  이것이 작가의 메시지고 저는 이메시지가 과거의 중요성과 가슴이 움직는대로 살라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과 궤를 같이하였고 그 메시지를 더욱 제 가슴에 각인 시켜주었습니다.






4) 매회 소름끼치는 명장면


요즘 유행하는 단어가 맨붕이라는 용어죠. 저는 사실 인터넷 유행어를 별로 잘사용하지 않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속으로 맨붕이라는 단어만큼 저의 상태를 잘 표현하는게 없더군요.  드라마 나인을 보면 매회 소름끼치는 명장면들이 있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감탄사를 여러번 연발하였고 다시한번 더욱 놀라운 것은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장면들이 빈번하다는겁니다.  그 명장면들을 하나하나 소개시켜드리고 싶었지만 문득 그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중파 드라마였다면 스포일러를 말하는게 쉬울수 있지만 아무래도 아직 드라마 나인을 안보신분들이 많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이 계기가 되어서 드라마를 보는 분들이 생갈수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나인만큼 매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사람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소름끼치는 드라마는 제인생 처음이었습니다. 









5)  대본 연기 연출의 완벽한 삼박자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저는 드라마에서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명작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사니리오만 완벽해서는 안되겠죠? 당연히 연기와 연출 역시 최고여야 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나인은 케이블 드라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신들린 연기와 연출력으로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연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주인공 선우 역을 맡은 이진욱을 칭찬하지 않을수 없을겁니다.  이진욱은 과거의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였고 팩트만을 신봉하던 그는 정말 말도안되는 현실에 맞닿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직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결국 고난의 시간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시청자 만큼이나 이진욱 역시 맨붕연기(?)를 해야 했는데 그 역할을 이진욱은 완벽하게 해내었죠. 개인적으로 이진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앵커라는 지식인의 모습과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위험한 시간여행을 수행하는 감성적인 모습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겁니다. 마치 이성적인 팩트연기와 감성이 극대화된 환타지 연기가 잘 섞여있다고나 할까요?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조카인 박민영이 사실은 주민영이라는 것을 알고 많이 방황하지만 결국 주민영이 아닌 박민영으로 살기로 결정하고 이진욱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사무실에서 이진욱은 진지함과 장난을 반복하면서  그 상황을 견뎌내는데요.  이렇듯 하나의 씬에서 이성적인 모습과 감성적인 모습이 교차적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이진욱의 연기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민영의 조윤희 역시 다시한번 프리티 우먼으로써의 자신의 캐릭터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조윤희씨의 역할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만 20회의 모습을 통해서 충분히 상쇄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드라마 나인 전체를 반복해서 볼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20회는 프리티 우먼 조윤희의 원맨쇼 덕분에 장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표정하나 제스춰하나 완벽한 프리티 우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남자인 저는 20회를 멍하니 지켜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게 선우의 절친인  한영훈입니다. 국민친구라는 호칭까지 얻었는데 그럴만 합니다. 드라마에 나온 친구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친구 역할을 했을겁니다. 여기에 드라마 나인의 절대악인으로 등장하는 정동환 역시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켜놓았죠.  그리고 과거의 실수 때문에 방황하는 나약한 형인 전노민의 고뇌하는 연기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우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박형식은 내가 본 아이돌중에서 최고의 연기였습니다. (사실 저는아이돌인지도 몰랐습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구멍이 있기 마련입니다.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연기자 한두명은 꼭 있기 마련인데 드라마 나인은 케이블 드라마에도 그런 구멍이 없습니다. 여기에  연출까지 완벽해짐으로써 나인은 제게 최고의 인생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사실 드라마의 경우 연출자의 역할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서 대사가 많고 씬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장면이 집이나 커피숍 혹은 사무실에서 대화하는게 드라마의 대부분 장면 아닙니까? 그런데 나인은 그렇지가 않아요. 게다가 여러 장르들이 짬뽕되어있죠. 제가 감독의 연출력을 인정한것은 13화입니다. 13회는 그야말로 액션 영화를 보는것처럼 쉴새없이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사실 대량의 물량이 들어간 장면들은 아니지만 긴장감 하나는 최고였습니다. 괜히 명작드라마가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최고의 엔딩


 (제가 그렇게 우려하는 스포일러가 될수 있으니 드라마 나인을 못보신분들은 아래의 글은 읽지 마시고 다 보신다음에 읽어주세요. ^^;;)


저는 나인의 엔딩 역시 마지막까지 실망을 주지 않는 최고의 결말이었다고 봅니다. 엔딩은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엔딩에 대한 반응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엔딩은 적어도 저에게는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했으며 최고의 헤피엔딩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생각한 엔딩은 다음과 같습니다.


1)(2012년에 처음 시간여행을 하는) 큰 선우는 전화박스에서 죽었습니다. (어떤분들은 큰 선우가 살아나서 20년후에 나타났다고 생각하시지만 드라마에서 죽었다고 한말 그대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2) 하지만 여기에도 반전이 있겠죠? 엔딩에서 나타난 히말라야 산의 선우는 2033년에 과거로 온 작은 선우(1992년 고등학교 시절의 ) 인 동시에 2013년의 큰 선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만든건 작은 선우의 활약때문입니다.  


송재정 작가는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린선우는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게 어린선우 역할인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는데요. 정작 20회에서 어린 선우가 중요한 역할은 하지 않죠. 하지만 20회에서 어린선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저는 엔딩에 나타난 선우가 바로 그 어린선우이고 작은 선우라고 생각을 바로 하게 되었습니다. 


3)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은 정우가 왜 히말라야 산에서 향을 찾다가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느냐일겁니다. 이미 큰 선우가 바꾸어놓은 과거로 인해서 정우가 히말라야 산에서 헤멜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선우가 바꾸어 놓은 과거들을 되살펴 보면 정우가 히말라야 산에 가야할 이유는 많습니다.  큰선우가 결혼식에서 행방 불명 되었을때 중국 에서 자원봉사하던 정우를 생각해봅시다. 


(편의상 큰 정우라고 호칭하겠습니다.)  큰 정우는  선우와 선우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친아버지마저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향의 존재를 알고 있는 큰 정우는  히말라야 산을 찾아서 향을 찾을 수 밖에 없지요. 작은 선우가 살고 있는 작은 정우 역시 생각해봅시다. 


 작은 정우는 향의 존재를 알지 못하지만 20회 마지막회를 보면 알겠지만 정우가 매우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정우가 선우를 만나는 장면은 1회에서 선우와 정우가 만나는 장면과 여러가지로 유사합니다. 선우가 과거 20년전에 본 남자의 모습과 똑같아지는 모습에서 정우는 뭔가 이속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겁니다. 작은 선우가 비록 자수를 해서 어느정도 죄책감을 씼을수 있었지만 대신에 자신을 도와준 남자의 존재는 또다른 괴로움과 방황이 되었을겁니다. 1화에서 레스토랑에서 선우를 만나는 정우의 모습이나 20회에서 선우가 정우를 만나는 모습에서 별반차이가 없어보입니다. 그런상황에서 정우가 가 괜히 네팔로 의료봉사를 가는게 아니죠.  네팔에서 정우는 향의 존재를 알게 되고 히말라야 산을 헤메게 될겁니다.  




4)  자 여기서부터 저의 상상력을 더 발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정우가 처음부터 선우에게 민폐만 끼쳤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정우가 마지막에도 뭔가 한건을 해야겠죠? 정우도 분명 그 역할을 했을테고 결국 죽음을 각오하고 실제로 죽음을 통해서 그 향을 찾았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향을 찾아 히말라야 산으로 간 정우는 1화에서처럼 향을 찾았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1화에서처럼 작은 선우는 정우를 통해서 향을 다시한번 손에 얻게 됩니다. 향에 대한 집념으로 정우가 찾은 향은 그냥 사라지는게 아니라 제대로 사용할수 있는 향이죠. 그런데 선우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향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잘압니다.  (선우 자신이 곧 향이라는 말을 한적이 있죠. 즉 향은 정우에게 동생과 같은 존재이고 다시 살아나서도 불행한 인생이 반복되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찾아오는 기회이자 행운이기에 정우가 발견한 향은 다시 사용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거를 되돌리려는 절박한 의지와 집념을 가진 정우만이 진짜 사용할 수 있는 향을 찾을 수 있는거죠.)


그리고 작은 선우는 정우 형의 죽음을 통해 발견된 향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사용함으로써 1993년 공중전화 박스속에 자신을 살려냈을거라고 봅니다. (작은 선우는 2012년에 있기 때문에 1993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큰 선우를 살리기에는 시간이 충분히 있습니다. 공중전화박스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떄문에 의학적 지식이나 의약품을 준비해두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사고가 나는 그 시간으로 떠나는 거죠. 애초에 사고를 막을수도 있는거구요. ^^;;)


5) 그리고 2033년이 되자 그때 가지고 있던 향을 사용해서 정우 형을 살리러 옵니다. 정우형이 과거에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히말라야산에 향을 찾으러갔다가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우는 형을 살리기 위해 다시한번 모험을 감행하는거죠.


6) 그런데 정말 작가는 대단한 천재입니다.  정우앞에 나타난 선우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작은 선우이지만 사실은 공중전화박스에서 죽었다가 작은 선우의 도움으로 살아난 바로 그 큰 선우라는 겁니다.   즉 나인속의 세계는 과거에 갇힌 선우가 있는 세상과 작은 선수가 사는 세상이 있습니다.  공중전화속에 있는 큰 선우가 작은 선우를 구했고 큰 선우는 20년기다렸다가 결혼식이 무산된 후 큰 선우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정우앞에 나타나는거죠.  20년후를 기다린 것은 다른 사람들이 향의 존재를 알게 될때를 기다렸다고 생각합니다. 주민영의 결혼식에 큰 선우가 나타나지 않은 직후에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큰 선우가 나타나는거죠.  정우가 히말라야 산으로 향을 찾아 떠난다는 정도는 알아낼수 있을테고요.



7) 결국 제가 생각하기에 히말라야 산에 나타난 59세의 선우는 사실  작은선우의 노력으로 살아난 공중전화 박스의 큰 선우이자  2033년에 형을 구하기위해 시간여행을 온 작은 선우이기도 합니다.  참 이렇게 생각하니 작가가 정말 경이롭게 보일수 밖에 없더군요.


(즉 장면적 상황이 같을뿐 작은 선우와 큰 선우가 히말라야 산에서 정우를 발견하는 구체적인 시간은 다르게 봐야 합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미래에서 오는 작은 선우는 2033년이 아니라 2032년에 2012년의 작은 정우를 만나는거고 공중전화박스에서 살아난 큰 선우가 정우를 만나는건 결혼식이 무산된 2013년 4월 이후라고 생각되는군요. )


물론 제 상상력의 발로로 해석한 엔딩입니다. 하지만 저는 드라마의 엔딩을 보고 조금은 헷갈렸지만 위의 내용이 저절로 연결되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밤늦은 새벽에 이렇게 드라마 나인을 찬양하게 만드는 장문의 글을 쓰고 싶을정도의최고의 엔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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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9.06 09:07


1. 스티브잡스는 눈물많은 울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스티브 잡스가 원래는 어린시절부터 눈물 많은 울보였다는 사실은 의외인데 스티브 잡스는 어린시절 수영경주에서 지고나면 울면서 집에 가버릴 정도로 울보였다고 한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동업을 할때는 스티브 워즈니악 아버지로부터 너는 별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울었다고 한다. 매킨토시 팀의 주도권을 가지고 제프러스킨과 싸울때는 경영진에게 눈물로 호소해서 매킨토시팀을 차지한 적도 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스티브 잡스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자 역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아들의 졸업식장에서도 많은 사람앞에서 역시 눈물을 흘려서 이웃들을 찡하게 했다는 것 역시 유명하다.

 


2. 스티브 잡스의 스트레스 해소법중에 하나는 기타였다.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후 하루종일 컴퓨터를 조립해야 했는데 이에 지칠때면 스티브 잡스는 마당에서 기타를 치면서 밥딜런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렇게 음악을 좋아했기에 나중에 아이팟과 아이튠스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가 서체디자인을 공부했기에 매킨토시를 만들 수 있었듯이 말이죠. 참고적으로 스티브 잡스는 악대에서 트럼펫을 연주하였고 셰익스 피어의 작품을 연구하는 한편 영어 선생님을 우상처럼 숭배했다는군요.

 

3. 스티브 잡스는 여기자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았다

 

대학시절 스티브 잡스는 화려한 연애경력을 가지고 있을정도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애플을 창업한 후에도 잘생긴 얼굴덕분에 특히 여자기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에게 홀딱반한 여기자들은 스티브 잡스에 대한 아부성 기사를 쓰기로 유명했다


4. 스티브 잡스의 애인은 가구없는 집에 질려버려서 집을 나갔다.

 

1980년대 초반 스티브 잡스는 티나라는 여성과 동거를 하였다. 스티브 잡스의 양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큰 충격에 빠진 스티브 잡스를 위로한 여성이었으며 애플에서도 꽤 유명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티나는 결국 스티브 잡스의 집에서 나와야 했는데 그것은 가구하나 없는 집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실에 소파가 없는 집에서 1년을 살았지만 스티브 잡스가 가구사는걸 허용하지 않자 아예 집을 나가게 된다. 티나라는 여성은 매우 독립적인 성격이었는데 스티브 잡스가 새차를 사주자 이에 화가나서 후진으로 자동차를 박살낼정도였다고 한다.


5. 애플 컴퓨터가격에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애플1 컴퓨터의 가격은 666.66 달러였다. 666은 흔히 악마의 숫자들이라고 하는데 컴퓨터 가격이 666.66달러로 책정되자 사람들이 항의전화를 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666의 의미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항의전화를 통해서 알게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가장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숫자 777.77과 111.11을 골라서 앞숫자에 뒤숫자를 뺀거라고 답하였다

 
6. 스티브 잡스는 공짜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

 스티브 잡스의 배짱은 원래부터 유명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학비와 기숙사비는 내지도 않고 학교 수업을 자기마음대로 듣고 무료로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다.  해변으로 여행을 가고 싶을 때면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어디든 떠났던 그는 멕시코로 떠날때는 공항에서 개인용 경비행기 조종사를 꾀어서 비행기를 얻어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말 몇마디로 원하는 것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7. 스티브 잡스는 자기에게 막말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스티브 잡스가 인재를 뽑는데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회사에서 꼭 뽑고 싶은 사람이 만약 회사오기를 꺼릴 때 스티브 잡스가 나서면 바로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99%의 시간은 자유롭게 놔두지만 남는 1퍼센트 동안은 무자비한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처음오는 직원들은 이에 당황했지만 스티브 잡스와 오랜시간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일부러 군기를 잡기위해 연기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와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스티브 잡스의 폭언을 여유롭게 대처한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측근인 버드트리블의 경우 스티브 잡스는 지는 해를 보고도 빨리 해가 지라고 큰 소리칠 사람이라며 스티브 잡스의 고함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수전 반즈는 자신의 발음가지고 인신공격하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 마음 고생을 했지만 나중에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적당히 무시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수전 반즈가 좋은 이유로 자신을 무시할 줄 알았다. 맥오에스를 만든 핵심개발자인 애비터버니언 역시 스티브 잡스의 의견에 신랄하게 반대를 하는 인물이었고 매킨토시의 아이콘을 만든 수전 케어 역시 스티브 잡스의 말에 사정없이 비꼬거나 허풍을 떤다고 이야기하는 인물이었다.

 

 8. 빌게이츠도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부러워했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비디오로 녹화해서 이를 지켜본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라고 한다.  언론에서는 스티브잡스를 비전너리로 빌게이츠는 사업가로 묘사하는데 빌게이츠는 이에 불만을 갖고 있는듯하다. 한번은 앤디 그로브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스티브 잡스를 뽑자 이에 빌 게이츠가 항의전화를 한 것은 유명하다.


9. 스티브 잡스는 사람을 살린적이 있다.

 1972년말 대학을 다니던 스티브 잡스는 자살을 기도한 친구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살려준적이 있다.

 
10. 어도비의 성공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어도비는 원래 레이저 프린터를 개발중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가 만들고 있는 하드웨어 기술이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인쇄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에 반해버린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의 창업자인 존 워녹과 척 게슈케에 게 하드웨어 회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전문회사가 되도록 충고하는 한편 1인칭당 1,200도트 프린터가 아닌 1인치당 300도트 프린터에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설득했다. 스티브 잡스는 이제 차고에 시작하는 회사였던 어도비에 거액의 라이선스 거액의 라이선스비를 보장하는 한편 250만 달러를 투자해서 어도비의 주식 20%를 인수한다.  어도비의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와 애플의 매킨토시 그리고 캐논의 프린터를 묶어  레이저라이터를 판매하였다. 가격은  6,995달러의 고가였지만 화면 속의 텍스트와 그림을 그대로 프린터로 인쇄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출판 혁명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11. 리차드 파인만에 감동받은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리차드 파인만을 존경했는데 그가 특히 감동했던 일화는 암에 걸린 리차드 파인만이 의사에게 자신이 만약 암에 의해서 죽는 것이 확실해지면 마치를 풀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죽는 순간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차드 파인만의 일화를 인용한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Life is short, and we're all going to die really soon. It's true, you know.

 


12. 애플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라이벌 중에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CEO였던 스콧 맥닐리Scott McNealy가 있다. 맥닐리는 애플의 창업 초기에 스티브 잡스에게 대학은 유닉스를 선호한다며 유닉스 기반의 컴퓨터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만든 컴퓨터도 직접 보내주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미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스콧 맥닐리의 의견을 아예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워크스테이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13. 스티브 잡스는 벽돌깨기의 게임 기획자였다.

 

스티브 잡스가 취직한 첫번째 직장은 게임회사였떤 아타리였고 그의 직업은 게임개발자로 우리에게 벽돌깨기로 유명한 브레이크 아웃을 만들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공짜게임을 시켜준다면서 아타리에 유인해서 브레이크 아웃을 만들었는데 게임의 컨셉은 스티브 잡스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컨셉은 스티브 잡스가 제공하고 엔지니어링은 스티브 워즈니악이했으니 스티브 잡스의 직업은 게임 기획자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브레이크 아웃은 스티브 잡스도 자랑스러워하는 게임인듯하다. 왜냐하면 아이팟에도 벽돌깨기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14.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인체를 대상으로 각종 실험을 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젊은시절부터 자신의 인체를 대상으로 각종 실험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면 박탈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이틀 연속으로 잠을 자지 않는 일을 여러번 반복했다특히 그가 빠진 것은 식이 요법으로 그는 걸핏하면 단식에 빠져들었다.  뇌에 가스가 차면 정신병이 생긴다는 에레트의 사상에 매료된 그는 영장류의 음식을 조사해서 뼈구조를 연구하기도 했다. 2년동안 과일만 먹고산 에레트처럼 스티브 잡스는 음식먹는것에 엄격했는데 그는 저녁을 먹고 일부러 토하기 까지 하였다.

 

 

15. 스티브 잡스의 협상비법중 하나는 산책이다.

  

 스티브 잡스는 산책을 참 좋아한다. 직원들과 산책을 하면서 대화나누기를 좋아했다. 결혼식때 역시 하객들과 산책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산책은 스티브 잡스의 협상비법중 하나다.  길 아멜리오와 넥스트의 인수 협상을 했을때 스티브 잡스는 일부러 길 아멜리오를 집에 초대해서 함께 산책을 했다고 한다. 길 아멜리오에 의하면 산책을 함께하면서 나누었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스티브 잡스가 산책을 통해서 노련하게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간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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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7.19 09:32




1.빌 게이츠는 지기를 싫어하는 승부욕의 화신이다.





지기를 싫어하고 항상 누군가에 승리하고자 하는 열망은 어린 시절부터 빌 게이츠의 전체 능력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누나와 퍼즐 게임을 하거나 썰매를 탈때도 항상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한번은 그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산상수훈을 다 암송하는 사람에게 고급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빌 게이츠는 단 두시간 동안 성경책을 읽고서 산상수훈을 전부 암기했다. 사실 이는 믿음 때문에 성경을 외웠다기 보다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승자가 되려는 타고난 승부욕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즐겨하고 좋아하는 놀이는 브리짓 게임이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집착하는 그가 카드 게임에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보통 사람이 시험을 괴로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을 좋아했다. 빌 게이츠는 학교에서 시행하는 읽기 시험에서 여러 번 일등을 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것이 지기 싫어하는 빌 게이츠의 성격 덕분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남에게 뒤쳐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이른바 보이스카우트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보이스카우트는 여름에 80KM를 행군하는 캠프가 열린다. 빌 게이츠 역시 행사에 참여하는데 문제는 새로 산 신발 때문에 얼마 못가서 발 뒷꿈치가 까졌다. 발꿈치의 상처는 더욱 심각해져서 발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빌 게이츠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행군을 하였다. 행군의 반정도 왔을때는 신발 전체에 핏물이 보일정도였다. 그래도 끝까지 빌 게이츠는 뒤쳐지지 않고 행군을 하려 했다. 하지만 상처를 본 보이 스카우트 관계자의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강제로 빌 게이츠를 데려갔다



2. 빌 게이츠는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이렇게 모든 것에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종종 부모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참다 못한 그의 아버지는가 컵에 있던 찬물을 빌게이츠 얼굴에 끼얹는 사건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빌 게이츠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다. 정신과 상담의는 빌 게이츠 부모에게 그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면서 그를 통제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부모님과 전쟁중이라고 선언한 빌게이츠에게 의사는 부모님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그들의 아들이기 때문에 결국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에게 승리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말에 빌 게이츠는 생각을 바꾸고 과거보다는 부모님에게 순종적인 아들이 되었다.



3. 트레이라는 애칭은 카드게임에서 나왔다.


빌 게이츠의 애칭인 트레이는 평소 카드게임을 즐겼던 그의 외할머니 아델 맥스웰이 붙여주었는데 이는 카드놀이에서 3점을 뜻한다. 



4. 빌게이츠는 학교 시간표를 조정해서 반에서 최고의 인기인이 됐다.


빌 게이츠는 뛰어난 컴퓨터 실력 덕분에 학교에서 유명했는데 교장은 빌 게이츠에게 학교의 수업 시간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빌 게이츠는 수업시간표에 조금만 장난들을 숨겨두었다. 이를테면 수업을 듣는 학생중에 빌게이츠가 유일한 남자가 되어서 예쁜 여학생 틈에서 수업을 듣도록 한것이었다. 또한 수업 시간표를 잘 조절해서 자신이 포함된 반이 화요일 오후에 수업이 없도록 했다. 이에 빌게이츠의 반 친구들은 Tuesday Club이라는 티쳐츠를 입고 빌 게이츠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5. 빌게이츠는 사업자금을 카드게임으로 벌어들였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 때 들어간 사업자금은 빌 게이츠의 친구인 폴알렌과 빌 게이츠가 공동으로 조달했는데 폴 알렌이 내놓은 자금은 그가 직접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번돈이었던데 비해서 빌 게이츠가 번 돈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벌어진 심야의 포커판에서 번 돈이라고 한다.  



6. 빌 게이츠는 속도위반으로 구속된적이 있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 한 이후 처음 구입한 차는 스포츠카인 포르셰 911이었다. 그가 속도를 즐기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경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최고 속력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속도광이었던 그의 자동차를 타는 건 매우 긴장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제한속도가 35마일 인 곳에서도 80마일 이하로는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취미중 하나는 자동차가 별로 없는 새벽 3시에 속도를 즐기는 일이었다. 과속으로 인해 그는 수많은 벌금딱지를 받았다. 빌 게이츠에게 도착하는 메일 대부분은 벌금딱지였을 정도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과속을 하다가 결국 경찰에 체포되기 까지 했다. 또한 빌 게이츠는 곧 잘 회사 동료들과 레이싱 대결을 펼쳤다. 레이싱은 어느덧 회사의 문화가 되었다. 직원들 사이에는 회사와 공항까지 누가 더 빨리 차를 몰고 가는지 경쟁이 붙었다. 빌 게이츠는 비행기 출발 시간 10분전에 사무실을 나왔기 때문에 비행기의 탑승 출입문을 닫기 바로 전에야 도착하곤 했다. 


7. 빌 게이츠는 동안덕분에 직원으로 종종 오해를 샀다.


지금이야 제 나이를 찾았지만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때만 해도 소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새로 고용된 비서가 자신의 앞을 획 지나가서는 사장의 컴퓨터를 사용하자 그 비서는 꼬마가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년 같은 사람이 바로 그가 모셔야할  빌 게이츠였다.
 


8. 빌 게이츠는 너무 더러워서 여자 직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빌 게이츠는 항상 꾀죄죄한 모습을 넘어서 샤워를 전혀 하지 않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스티브 발머보다도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9.  빌 게이츠는 누구보다 맥을 사랑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외부 업체를 돌아다니면서 매킨토시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해서 매킨토시에 이야기를 하자 빌 게이츠는 이를 부정적으로 여겼다. 이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 본사에 직접 방문해서 매킨토시를 직접 봐야하다고 초대를 한다. 빌 게이츠는 애플에서 매킨토시를 보고는 그것이 미래라고 여겼고 회사의 유능한 직원들을 매킨토시팀에 배치해서 응용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독려하였다.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의 프로토타입을 SAND(Steve's Amazing New Device)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했는데 그는 1993년 스티브 잡스가 주최한  Macintosh Software Dating Game 에서 다음과 발언하여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얻어냈다.



새로운 표준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조금 달라서는 안됩니다. 정말로 새로워야 하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 잡아야 합니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모든 기기중에서 매킨토시는 그 기준에 맞는  단 하나의 컴퓨터입니다.  




(참고적으로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좋아해서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녹화해서 시청하고 연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만큼이나 터프가이다.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야 유명하지만 빌 게이츠는 샌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 만큼이나 터프하기로 유명하다.  애플이라는 회사가 스티브 잡스중심으로 돌아가듯이 빌 게이츠가 있을때는 회사의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은 빌 게이츠가 내렸다. 회사의 조직자체가 빌 게이츠 중심으로 돌았으며 직원이 빌게이츠와 회의를 하는 건 마치 황제를 알현하는 것과 같았다. 빌 게이츠의 카리스마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빌 게이츠는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또한 빌 게이츠는 회의를 할때 몸을 흔드는 버릇이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은 그것마저도 흉내를 낸다고 한다. 특히 빌 게이츠는 마음에 안드는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기로 유명하다.. 처음 빌 게이츠에게 욕설을 들으면 많은 직원들이 당황하는데 직원들사이에는 빌 게이츠가 욕을 하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어서 그런거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라고 조언을 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상대를 예리하게 추궁하는 것으로 유명한다. 상대를 윽박지를때는 물건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빌 게이츠의 이런 카리스마는 외부회사를 대할때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CEO였던 길 아멜리오가 4억달러를 들여서 스티브잡스의 넥스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하자  길 아멜리오의 사무실로 달려가서는 큰소리로 스티브 잡스를 험담하면서 후회하게 될것이라고 큰 소리 쳤다고 한다. 빌 게이츠보다 12살이 많은 길 아멜리오로서는 참으로 황당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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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7.15 09:32



1. 탤런트 이영하는 김민정을 자신의 아이로 착각한적이 있다.





김민정은 강남의 모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는데 마침 그날 이영하와 선우은숙의 2세도 같은날 같은 장소에서 태어났다.  이영하는 병실을 잘못 찾아가서는 이제 갓 태어난 김민정을 보고는 자신의 아이 인것처럼 흐뭇하게 바라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김민정이었고 간호사가 잘못된 방이라는 것을 알려준 후에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고 한다.



2. 김민정은3년간의 구애를 받고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김민정은 유아복 업체의 모델 선발 대회에 나가서 대상격인 귀염둥이상을 받았다. 바로 CF모델 제의를 받지만 연예계에 데뷔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3년간의 끈질긴 구애를 받은 끝에 김민정은 7살의 나이에 코알라빵 광고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3. 김민정은 잘자라줘서 고마운  배우 1위에 뽑힌적이 있다.






2009년 영화 전문 사이트 씨즐에서 ‘다코타 패닝 처럼 잘 자라줘서 고마운 아역 출신 한국 배우라는 설문조사에서 김민정은 40%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2위가 유승호였고 3위가 문근영 그리고 4위가 장근석이었다. 



4. 김민정이 부상당한 작품은 불행해진다.
 





김민정은 부상 때문에 3개의 작품에서 하차해야만 했다. 첫번째는 천녀호로 중국에서 촬영을 하다가 낙마하여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김민정은 촬영중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하차를 해야 했다. 두번째는 강풀 원작의 "29년"에 캐스팅되어서 오토바이 타는법을 배우던중에 중심을 잃고 쓰러져 부상을 당하여 하차하게 된다.  세번째는 이준기와 히어로에 공동출연하기로 하고 포스터 사진까지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석회화건염 때문에 하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김민정이 부상 때문에 하차한 작품들은 한결같이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준호와 김효진이 출연한 천년호는 60억이라는 대작임에도 불하고 흥행실패를 기록하였고 강풀 원작의 29년은 아예 제작도 되지 못했으며 히어로는 5%내외를 기록하였다.  앞으로 김민정과 함께 일하는 제작자는 김민정이 아프지 않도록 절대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듯하다 만약에 김민정이 부상으로 하차한다고 하면 아예 투자비 환수를 위해서도 아예 제작을 중지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5. 김민정이 뽑는 자신의 대표작은 “아일랜드” , “음란서생” , "뉴하트"






아일랜드는 김민정에게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애틋한 작품이었고 음란서생은 한석규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스스로 배우가 됐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뉴하트에서는 외모에 대해서 욕심을 버리고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음에도 호평을 들었기에 절반의 성공을 기록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6. 김민정의 입술은 마술이다.






김민정의 상대배우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키스신이다. 윤계상은 김민정과 발레 교습소에서 키스신을 찍은 후에 감정의 혼란을 느껴 여자친구와 헤어질 생각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김재원 역시 김민정과 키스신을 찍고 나서는 입술이 예술이었다고 측근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살인 입술이라고까지 불리우는 김민정의 마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에 주상욱은 가시나무새에서 김민정과 키스신을 찍은 후에 급격히 친해졌다고 고백을 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김민정의 입술에는 무슨 마법이 있는 듯 하다.




7. 김민정의 이상형은 정말 구체적이다.

포털에서 김민정 이상형을 검색하면 “부모님한테 잘 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엄할 땐 엄한 약간 보수적인 남자. 그리고 착하고 마음이 따뜻하다면 일등 신랑감” 이라고 당당하게 프로필에 적혀있다. 이렇게 구체적인 이상형은 정말 처음 듣는데 김민정씨의 매력이라면 얼마든지 원하는 사람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 수 있을 듯 하다.




8.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김민정





어린시절부터 연예계에 있어서 왠지 모르게 시대의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기기에는 익숙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김민정은 기계치라고 한다. 가시나무새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치는데 독수리 타법을 선보여 진짜 못친다는 타박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컴맹에 가까운 그녀는 미니홈피도 없을 정도였는데 그녀가 트위터를 개설하자 팬들이 기계치인 김민정이 트위터를 한다니 믿기지 않아할 정도였다. 트위터는 아래의 주소인데 http://twitter.com/#!/miniminiminiyo  역시나 거의 활동이 전무하다.  참고적으로 그녀는 문자도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직접 통화를 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라고 한다.


9. 김민정은 팬들을 펭귄떼라고 부른다.





김민정의 팬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단어다. 만약에 김민정의팬이라면 펭귄떼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김민정은 자신이 먹여살리던 대가족을 보고는 펭귄떼라고 칭하였는데 이후로 김민정은 자신의 팬들을 팽귄떼라고 부른다. 만약에 여러분이 김민정이 팬들에게 펭귄떼라고 칭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아래의 팬클럽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http://cafe.daum.net/kmjfanclub/
 

10. 민정은 대박 이후에 쪽박을 차고 다음 작품으로 기사회생한다.
 



김민정씨가 출연한 드라마들을 모아두면 재미있는 패턴을 한가지 발견할 수 있다.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라이벌 시청률 31.7% 대박
술의 나라 (김민정 인터뷰에서 시청률이 부진해서 마음고생이 있었다고 밝힘)

아일랜드  
패션 70S (시청률 29.1 %의 대박
천국보다 낯선 (주몽과 붙어서 3%의 낮은 시청률 기록)

뉴하트 시청률 32%의 대박
외인구단  (시청률 부진으로 조기 종영)
가시나무새

김민정씨가 연기력과 외모 그리고 출연경력에 비해서 아직 확고한 원톱 주연으로 자신만의 자리를 차지 하지 못한 이유를 찾아본다면 위의 출연작 리스트가 그 대답을 해주는 것 같다. 연예계에서 자신만의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드라마가 연속적인 히트를 해주어야 하는데 김민정씨는 이상하게도 대박을 치고 나면 다음 작품이 말도 안될 정도의 매우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는 이상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대박을 치고 난후에 연타석 홈런을 날려야 대세의 흐름을 탈 수 있는데 다음 작품이 흥행부진에 시달리면서 인기에도 타격을 입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으니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특급스타 반열에까지 오르지 못하는듯하다. 팬으로서 정말 안타까운데 반대로 생각하면 김민정은 불사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쪽박을 찬 이후에는 작품성 있는 중박이상의 드라마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부활을 하고 다시 대박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패턴대로라면 다음 작품은 무척 기대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제 다음 작품에서는 대박이 날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시나무새에서는 김민정이 너무 독한 악역이었고 드라마 내용도 분노하고 오열하면서 하루도 눈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감정을 끄집어내는 좀 힘겨운 드라마였기 때문에 제발 다음 작품에서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마침 김민정씨 역시 다음 작품에서는 로맨틱코미디를 찾고 있다고 한다. 제발 다음작품에서는 런닝맨에서 활약하는 모습처럼 밝고 유쾌한 캐릭터로 돌아와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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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TAG 김민정
흥미로운 사실들2011.06.29 09:30




1.     손정의 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교육법을 가지고 있었다.

  


손정의는 재일교포 3세로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하였다. 손정의 집안은 80 가구정도가 무리 지어서 사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어렵게 살아야 했다. 손정의가 태어났을때도 돼지를 길러서 생계를 유지 해야할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아버지 손삼헌이 생선판매점으로 성공을 거둔 이후 파칭코와 부동산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된다. 덕분에 손정의는 다른 재일교포와 다르게 풍족하게 살게 된다. 손정의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 손삼헌이 정의롭게 살라는 의미를 가지고 지어주었다. 그런데 손삼헌은 매우 특별한 교육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천재 교육법인데 손삼헌은 손정의에게 너는 타고난 천재이니 무엇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은 그는 어느덧 아버지의 말에 체면이 걸린 그는 무슨 일이든지 자신감이 넘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무모한 도전을 하고 이를 성취하는데 묘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2.     손정의 차별없는 미국사회에 반하다.

 


손정의는 어린시절부터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였다. 유치원시절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남자아이가 큰 소리로 조센징이라고 놀리고는 큰 돌을 던졌는데 손정의는 이 돌에 맞아서 큰 부상을 당하였다. 이사건 이후 그는 최대한 자신이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미국 연수를 가기 위해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하는 중에 자신이 재일교포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친구들은 내국인 심사를 하였는데 자신만 외국인심사를 통해서 출국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손정의에게 미국은 신세계였다. 그가 방문한 버클리 대학에는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거기에서는 일본인인지 미국인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문화와 버클리 대학에 반한 손정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에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말한다. 처음에 그의 아버지는 적극반대하지만 그 누구도 손정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3.     입학한지 2주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끝마치다.

 
1974년 2월 손정의는 미국으로 유학을 온다. 영어를 위해 손정의는 오클랜드 지역에서 영어학원을 다녔다. 학원에는 일본인들이 꽤 있었고 그들끼리 그룹을 모아서 다녔지만 손정의는 빠른 시간안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일본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철저히 영어로 살았다. 손정의는 9월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4년 고등학교인 사라몬테 하이스쿨 2학년에 편입하게 된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이 너무 쉬웠던 그는 교장을 찾아가서 3학년으로 학년을 올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하룻밤만에 3학년이 되었고 4일이 지나자 3학년의 교과서를 다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4학년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교장은 손정의가 원하는데로 4학년이 되었다. 또 일주일이 지나자 손정의는 대학으로 보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교장도 이번에는 힘든일이었다. 그래서 손정의는 검정고시를 보기로 한다. 그리고 손정의는 검정고시에 합격을 해서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가 고등학교 입학후 검정고시를 합격하게 될때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2주였다.  

4.     마이크로프로세서 탄생에 눈물을 흘리다.



손정의는 과학잡지 일렉트로닉스에 인텔이 발매한 8080 컴퓨터 칩이 실리게 된 것을 보고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컴퓨터가 세상을 바꾸게 될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인텔의 컴퓨터 칩이 찍힌 사진을 베개밑에 두고  낮에는 가방에 넣고 다닐정도로 컴퓨터에 흥분하게 된다. 마이크로컴퓨터칩 사진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손정의는 언젠가는 컴퓨터 업계에 진출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된다.  손정의는 경제학이었지만 앞으로 컴퓨터가 온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깊히 연구하였다. 그가 다녔던 버클리 대학은 마침 학생이라면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컴퓨터 강의를 들으면서 미래를 준비하게 된다.

 5.     손정의는 베트남 난민에 정신병 환자 취급을 받았다.
  
대학시절 손정의는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남루한 옷들을 입고 다녔는데 그래서 백화점에서는 노부부에게 베트남 난민으로 동정을 받기도 했다. 또한 대학재학 시절부터 사업에 대한 포부가 컸던 손정의의 첫번째 사업은 음성전자 번역기였데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 손정의는 이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버클리 대학의 모더 교수를 찾아간다. 손정의가 모더교수를 찾아가서 음성전자 번역기를 만들어 달라고 하자 모더 교수는 손정의가 망상증 환자라고 생각했다.

 6.     설득의 황제 손정의 평생의 은인 사사끼 전무를 만나다.

손정의의 역사를 보면 그의 성공에는 “설득”의 힘이 있었다. 사라몬테 하이스쿨을 다닐 때 멋대로 학년을 올려달라고 할 때 교장은 황당했지만 손정의의 설득에 넘어가게 된다. 검정고시를 볼 때 역시 손정의는 자신이 외국인이니 사전을 마음껏 사용하고 시험 시간도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였는데 처음에는 담당자가 황당해했지만 손정의는 이역시 금방 납득시켰다. 모더 교수 역시 손정의가 망상증 환자라고 생각했지만 동양에서온 학생에 불과한 손정의 말에 설득당하였고 함께 음성인식 번역기를 만들기로 한다. 

손정의의 설득력은 음성인식 번역기를 판매할 때 역시 다시 한번 발휘된다. 처음 손정의가 일본에 음성인식 번역기를 팔기 위해서 기업과 접촉할때는 아무런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했다. 손정의는 회사의 고위급을 만나서 직접 담판을 지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왜햐나면 회사의 고위급은 다른 사람보다 선견지명이 있어서 자신의 제품을 높게 평가해줄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위급 인사를 만나야 하는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손정의는 묘안을 짜내는데 그는 샤프전자와 일을 가장 많이 한 변리사 사무실을 알아내고는 그쪽에 전화를 걸어서 함께 일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샤프전자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이 누군인지를 물었고 사사끼 전무라는 답을 듣게 된다. 손정의는 사사끼 전무와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는데 특허 사무실은 이미 손정의와 함께 일하기로 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사끼 전무를 만나게 된다. 사사끼 전무는 손정의를 보자마자 매료되고 그날 손정의의 설득에 넘어간 그는 음성인식 번역기의 개발을 도와주기로 했을뿐만 아니라 평생의 후원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훗날에 손정의가 사업을 하게 되자 사사끼 전무는 자신의 집까지 저당잡히며 보증을 서줄정도로 손정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7.     소프트뱅크라는 이름덕분에 행운을 거머쥐다.

 

손정의가 일본에 귀국해서 정식으로 한 사람은 소프트뱅크이다. 소프트뱅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는 업체였다. 그런데 이 이름이 손정의에게 큰 행운으로 다가온다. 다이치겐쿄은행에서 융자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영업사원이 소프트뱅크의 간판을 보고는 같은 동업자인줄 알고 회사를 방문하게 된다. 소프트뱅크 직원은 다이치겐쿄은행의 영업담당자에게 회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고 이를 인연으로 손정의는 다이치 겐쿄은행의 고지마치 지점장인 미키야 마사유키를 만나게 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손정의는 직접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수 있는 뛰어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다이치 겐쿄은행의 지점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손정의를 만났지만 손정의가 이야기하는 미래 비전에 끌려버린 나머지 제대로 된 영업보고서도 없는 신생회사인 소프트뱅크에 보증인도 없는 조건으로 1억엔을 최고 좋은 조건으로 융자받게 된다. 이때 융자받은 돈은 소프트뱅크가 일본에서 최고의 소프트웨어 유통점으로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되어준다.

 8.     손정의는 한때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사업에 본궤도에 올랐던 1982년 손정의는 중증의 간염으로 인해서 5년 정도 밖에 살수 없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손정의는 그때가 자신에게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고 한다. 이때 손정의는 어쩔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요양을 하게 된다.  치료를 위해 3년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던 그는 독서에 열중하는데 그에게 가장 큰 힘을 준 것은 사카모토 료마가 말한 “예를 들어 죽음을 선고받는다고 해도 , 재미있고 즐겁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좋지않겠는가?” 였다.  덕분에 조금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손정의는 마침 간염의 획기적인 치료법인 스테로이드 이탈요법을 개발한 구마다씨를 만나게 되면서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9.     손정의가 일본에서온 마지막 거품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소프트웨어 유통과 잡지 발행등으로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큰 돈을 번 손정의는 지프 데이비스의 사장인 에릭히포를 통해서 야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손정의는 사원이 15명에 매출액이 2억엔으로 적자에 시달리던 야후의 주식 37%를 얻기 위해서 150억엔을 투자하게 되는데 이때 미국 언론에서는 손정의를 일본에서온 마지막 거품남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손정의의 선견지명은 성공하였는데 1999년 소프트 뱅크가 보유한 야후의 주식 시가 총액은 1조 4,586억엔으로 그가 투자한 금액에 360배가 넘는 돈을 벌기도 했다.

 10.   소프트뱅크의 주식 94%가 폭락하다.

 

야후의 성공 이후 인터넷 기업에 집중 투자한 손정의는 재산이 760억 달러에 이르며 일본 최고의 부자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소프트뱅크의 주식은 94%나 폭락하고  재산 역시 11억 달러로 줄어든다. 이후 5년간 적자에 시달리면서 위기론에 시달리지만 아이폰덕분에 소프트뱅크는 완전히 부활하면서 사상 최고 이익을 경신 중이다.

 

11.   손정의는 결혼식에 지각을 해서 결혼을  미뤄야 했다.

 

손정의는 버클리 재판소에서 일본인 여자인 우미와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일에 빠져있던 손정의는 첫번째 결혼식에 늦게 도착한다. 이미 판사가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첫번째 결혼식은 무사된다.  일주일 후에 다시 결혼식을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손정의는 일에빠져서 지각을 한다. 하지만 손정의는 담당자들에게 부탁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에는 원래는 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증인도 준비 못한 손정의는 역시 경비에게 증인을 부탁을 해서 겨우 결혼식을 치를 수 있게 된다.  손정의 부인은 결혼 후에 일에빠진 남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서른다섯살에 그의 할아버지는 집한칸 없는 손정의를 무척 걱정했던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손정의는 서른아홉살에 집을 장만하는데 일본 잡지에 실릴정도로 큰 집이었다.  

손정의가 일본에서 비난을 들을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호화스런 집을 마련한 것은 신혼여행에서 우미에게 궁전 같은 집에서 살게 해줄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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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6.22 09:30
1. 매킨토시의 시작은 게임기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애플의 회장이었떤 마이크 마쿨라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컴퓨터공학과 교수출신인 제프 라스킨에게 500달러짜리 게임기를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이에 제프 라스킨은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다시 제안을 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2. 상표권 침해를 피하기 매킨토시의 철자를 다르게 불렀다.
 




매킨토시는 원래 사과의 한종류인 McIntosh로부터 가져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타자하기가 힘들고 오디오 제조회사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철자를 Macintosh로 바꾸었다. 하지만 철자를 바꾸어도 상표권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였고 협상을 통해서 MACINTOSH라는 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3.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라는 코드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매킨토시는 원래 제품명이 아니라 코드명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라는 코드명 대신 자전거를 사용하고 싶어했다. 자전거의 발명으로 인간의 이동속도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듯이 컴퓨터가 생각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매킨토시의 코드명을 자전거로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자전거가 바보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스티브 잡스는 결국 자신의 고집을 포기해야 했다.


4. 스티브 잡스가 임원진에게 지지를 받은 것은 눈물덕분이었다.



매킨토시는 제프 러스킨이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스티브 잡스가 중간에 합류하면서 두 사람사이에 파워싸움이 시작된다.  스티브 잡스를 탐탁치 않게 여긴 제프러스킨은 당시 회사의 사장이었던 마이크 스콧에게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이끌어서는 안되는 10가지 이유를 적어 보냈고 회장인 마이크 마쿨라는 스티브잡스와 제프러스킨중에서 책임자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눈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결국  스티브 잡스 밑에서는 일하기 싫어했던 제프러스킨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5. 스티브 잡스가 팀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비전”덕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프로젝트를 맡은 것은 단순히 눈물만은 아니었다. 사실 제프러스킨과 스티브 잡스가 생각하는 매킨토시는 완전히 달랐다. 제프러스킨은 제품가격이 천달러를 넘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형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저장장치도 테이프레코더를 고집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신형프로세서에 플로피디스크를 채택하려고 했다. 메모리 용량도 더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킨토시의 원조 멤버들은 제프러스킨과 친구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 대부분은 스티브 잡스를 지지하였다.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의 비전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팀은 하나의 변방 프로젝트에 불과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합류한 이후 애플2 컴퓨터의 전원장치를 개발한 로드홀트와 애플2컴퓨터의 디자인을 맡은 제리마녹등을 영입하면서 매킨토시팀은 애플에서 주목받는 프로젝트로 변하였다.  매킨토시의 아버지는 누군가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지만 매킨토시의 핵심개발자인 앤디 허츠펠드에 의하면 제프러스킨의 매킨토시와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제프러스킨은 마우스 자체를 끔찍히 싫어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팀원들에게 소외당했다고 한다. 반면에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매킨토시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밝히면서 이런 논쟁도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6.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팀이 건물에 입주하기전에 퇴마사를 부르려고 했다. 

애플2 컴퓨터 팀이 사용하던 건물인 밴틀리 드라이브로 매킨토시팀이 이전을 하게 되자 스티브 잡스는  애플 2 팀이 불순한 기운을 남겨두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퇴마사를 불러서 악령들을 쫓아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스스로 그 계획을 포기한다.



7.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는 기판까지 아름다워야 했다.




스티브 잡스는 아름다움에 집착하기로 유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내부의 부품배치를 보면서 이러 저런 평가를 내렸다.  그러자 이에 화가난 개발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누가 PC 보드의 모양까지 신경씁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이지 아무도 PC보드를 꺼내보지 않는다구요.”

이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본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본다고. 비록 그것이 케이스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이 가능한 아름답기를 바래.. 위대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뒷면 형편없는 나무를 쓰지 않아 !”

스티브 잡스는 5천달러를 들여서 보드를 새로 디자인하기도 했지만 결국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판에 대한 집착은 애플에 돌아온 이후 꽃을 피우게 된다.  위의 맥 프로처럼 애플제품은 내부도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8. 매킨토시 공장을 방문해서 직원들에게 100달러씩을 주었다.

매킨토시가 제조되기 시작한 날 스티브 잡스는 공장근로자와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어서 직접 공장을 방문해서 공장 근로자와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100달러 짜리 지폐를 건내주었다.



9.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스티브 잡스는 리사의 실패원인중 하나를 소프트웨어의 부재라 생각했기 때문에 외부의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적극 협력하기 위해 직접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아가서 빌게이츠에게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내노도록 설득하였다. 처음에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매킨토시에 매우 시큰둥해있었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에게 직접 애플에 방문해서 개발중인 매킨토시를 보라고 초대를 하였고  애플본사에서 매킨토시를 보게된 빌 게이츠는 한눈에 반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매킨토시의 프로토타입을 SAND 즉 Steve's Amazing New Device라고 부를 정도로 매킨토시를 좋아했다. 빌 게이츠는 회사의 최고 인재들을 매킨토시팀에 배치해서 응용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이때 만든 프로그램들이 바로 MS 오피스 시리즈로 발전하게 된다.



10. 매킨토시의 실패 스티브 잡스를 내쫓게 되다.

스티브잡스가 애플에 쫓겨나는데는 여러 정치싸움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결론은 결국 하나이다. 매킨토시의 판매부진이 스티브잡스에게 치명타가 되어서 애플에서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11. 스티브 잡스, 애플과 어도비의 구세주가 되다.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발굴한 회사중에는 어도비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와 프린터를 결합한 제품을 선보이려고 했지만 마음에드는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수소문끝에 스티브 잡스는 이제 막 차고에서 시작된 어도비를 알게 된다. 어도비는 인쇄품질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주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도비는 직접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접목한 하드웨어기기를 만드려고 했다. 존워녹과 척 게슈케에게 하드웨어 부분을 포기하고 소프프트웨어 전문회사가 되라고 충고해준다. 또한 어도비가 개발한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은 1인치당 1,200도트 프린터에서 사용이 가능했는데 이를 애플이 준비하고 있는 레이저 프린터에 맞게 1인치당 300도트 프린터에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접목하도록 설득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250만달러를 투자해서 어도비의 주식 20%를 인수하였고 포스트 스크립트에 대해 거액의 라이센스를 지불해준다. 그후 어도비,애플, 캐논은 은 공동작업을 통해서 포스트스크립트기술이 들어간 레이저 프린터를 완성하게 된다. 레이저 라이터는 6,995달러의 고가였지만 컴퓨터 화면속의 텍스트와 그림을 그대로 인쇄할수 있는 혁신덕분에 데스크탑 전자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존 스컬리는 애플에 스티브 잡스가 없던 시절도 결국은 스티브 잡스의 회사였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쫓겨난 후 매킨토시이 판매량이 늘어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제품이 바로 레이저 라이터였다. 레이저 라이터 역시 매킨토시 만큼이나 사내에서는 제품의 성공가능성을 낮게 보았지만 결국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와 레이저라이터덕분에 세계 1위의 PC회사로 군림하게 된다.


12. 존 스컬리 애플 역사 최악의 계약을 실행하다.



존 스컬리는 애플 역사상 전략적으로 세가지 실수를 한다. 첫째는 빌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를 다른 회사에 라이센스를 해야한다는 충고를 무시한점 둘째는 애플이 자제적으로 만든 맥베이직에 대해서 빌 게이츠가 애플2로 베이직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맥베이직을 폐기해버렸다는 점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컴퓨터 역사에 길이 남는 가장 멍청한 계약으로 손꼽히는데 바로 마이크로소프트가 2년간 MS워드와 멀티플랜(액셀)을 다른 플랫폼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애플 고유의 아이콘과 디스플레이 화면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음데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존 스컬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를 통해서 자사의 제품을 베꼈다는 사실에 분노해서 빌게이츠에게 따지러 갔다가 이 어이없는 계약에 사인을 했다고 한다. 존 스컬리는 당시 계약의 의미를 몰랐다고 한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2년간이 독점한다는 사실만 좋아했을뿐 자사 고유의 인터페이스를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중대한 의미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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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6.14 08:25







1. 포켓몬스터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는 유명한 게임 오타쿠였다.




포켓몬스트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는 중학생시절부터 게임광으로 유명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면서 게임의 세계에 빠져버린 그는 학원을 선택할때도 오락실이 가장 가까운곳으로 다닐정도였다. 워낙 뛰어난 게임실력덕분에 오락실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임에 대한 사랑덕분에 그는 세가에서 진행하는 게임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으며 GAME FREAK라는 잡지도 만들었다. 이 잡지는 일종의 동인지로 원고를 복사한다음에 타지리 사토시가 직접 후지케스로 찍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형편없었지만 게임 공략은 매우 훌륭해서 300엔에 팔았던 잡지가 만권씩 팔린적도 있다.


2. 프로그래밍에 문외한이었던 타지리 사토시 게임을 위해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다.

 





타지리 사토시의 부모님들은 그가 공부를 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기를 바랬지만 게임에 빠져든 타지리 사토시는 학업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전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프리랜서로 각종 게임 잡지에 원고를 기고한다.  그러면서 그는 재미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구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고 직접 게임을 개발할 생각을 하게 된다. 프로그래밍을 전혀 몰랐던 그는 2년동안 공부한 끝에 게임을 만들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인맥을 총동원해서 1년간의 제작끝에 쿠인티라는 게임을 만든다. 남코에서 발매된 쿠인티는 20만개가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는 5천만엔이나 벌게 되고 이돈으로 타지리 사토시는 GAME Freak을 창업한다.

 
 

3. 포켓몬스터는 어린시절 곤충 채집에 대한 추억의 산물이다.
 




1989년 닌텐도에서 발매된 게임보이는 테트리스덕분에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테트리스의 매력은 통신케이블을 연결해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타지리 사토시는 이에 착안해서 통신케이블을 이용한 게임을 구상하는데 마침 어린 시절 동네 주변의 주차장과 숲속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채집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곤충을 채집해서 곤충의 습성을 연구한덕분에 친구들로부터 곤충박사로까지 불리었다. 그는 이때 친구들과 곤충이야기를 하며 더욱 친해질수 있었다. 하지만 동네가 급속히 도시화가 되면서 곤충을 채집하는 아이들이 없어졌는데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즐거웠던 추억을 되살려주고자 새로운 게임을 기획하는데 그 게임이 바로 포켓몬스터이다.


4. 포켓 몬스터의 원래 이름은 캡슐 몬스터 였다.
 

포켓 몬스터의 원래 이름은 캡슐 몬스터였다. 이는 통신 케이블을 이용해서 캐릭터와 아이템을 교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5. 포켓몬스터는 1991년에 완성될 작품이었지만 1995년에 완성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큐멘터리 프로듀셔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에게 알려준다.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게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타지리 사토시를 알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각종 게임 기판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타지리 사토시의 도움을 받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후에도 함께 교류하면서 지낸다.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마침 일본의 광고천재인 이토이 시게사토와 친분이있었는데 그는 닌텐도의 투자를 받고 에이프를 운영중이었다. 이런 관계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의 아이디어는 닌텐도에까지 흘러가게 되고 제작비를 지원해주게 된다. 당초계약은 1991년까지 게임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는 새로운 개념의 게임으로 스케일도 컸기 때문에 제작은 난항을 거듭한다. 이에 닌텐도는 자사의 캐릭터를 이용한 게임을 개발하도록 도움을 주게 된다.  이때 요시와 마리오 와리오 같은 게임을 제작하게 되는데 요시가 해외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회사는 풍부한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타지리 사토시는 다시 포켓몬스터에 전념을 해서 1995년 겨우 게임을 완성하게 된다.

 
6. 포켓몬스터의 초기 판매량은 기대치 이하였다.




닌텐도에서는 전국에 텔레비전 광고를 집중적으로 방영할 정도로 포켓몬스터에 대한 기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당초의 기대와 달리 단 7만 5천장의 주문을 받을정도로 부진하였다. 하지만 포켓몬스터의 인기는 코로코로 코믹스에 연재되면서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코로코로 코믹스는 180만부나 발행되는 잡지로 코로코로 코믹스는 아이들의 유행을 선도하는 만화잡지였다. 
 
 
7. 포켓몬스터의 인기에 가속도를 붙인 것은 버그덕분이었다.
 





포켓몬스터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는 계기는 제작자도 생각하지 못한 버그덕분이었다. 포켓몬스터는 원래 150마리의 몬스터를 수집하는게 최종목표였다. 그런데 게임 마니아들사이에서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가 151마리라는 소문이 돌게 된다. 처음에는 회사도 이 소문의 진위여부를 몰랐으나 회사의 프로그래머가 테스트를 위해서 몰래 넣어둔 몬스터라는 것을 알게 된다. 151번째의 몬스터는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절대로 등장할 수 없지만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등장하였다. 게임 유저들은 151번째의 몬스터를 획득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포켓몬스터를 연재했던 코로코로 코믹스는 151번째의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독자들의 빗발치는 문의덕분에 알게 된다. 이때 코로코로 코믹스의 부편집장인 쿠모 마사카즈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코로코로 코믹스에 엽서를 보내준 사람들중에 100명을 선정해서 151번째 몬스터인 뮤를 선물해주는 이벤트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코로코로코믹스의 독자들이 엽서를 보내는데 무려 78000명이 참여하게 된다.  뮤를 선물해주는 이벤트는 포켓몬스터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시켰으며 포켓몬스터의 인기는 어느덧 신드롬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8. 미국 관계자들은 포켓몬스터라는 이름을 이상하게 여겼다.
 



닌텐도는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게임보다는 우선 만화로 포켓몬스터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였다. 그래서 만화에니메이션의 총책임자인  쿠보마사카즈 미국을 직접 방문해서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조율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포켓몬스터라는 제목자체를 이상하게 여겼다. 몬스터라고하면 뭔가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느낌이 나는데 비해서 정작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쪽 관계자들은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 캐릭터들의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닌텐도는 포켓몬스터의 몬스터 이름들이 제각각이 되면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전세계적인 커뮤니티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고수하게 된다.


9. 2010년까지 포켓몬스터시리즈의 총 판매량은 2억개가 넘는다.
 



포켓몬스터는 2010년까지 2억개가 넘게 판매되었다. 철저한 원소스멀티유스 전략을 택한 포켓몬스터는 인형,카드,만화,에니메이션,음반등 다양한 관련 상품들이 쏟아졌는데 관련제품의 일본 매출은 1조엔 그리고 해외 매출은 2조엔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 포켓몬스터에는 미야모토 시게루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있다.

 



타지리 사토시는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을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를 존경하였고 그를 자신의 롤 모델로 여겼다. 포켓몬스터가 제작에 어려움을 겪을때 미야모토 시게루는 멘토가 되어서 용기를 복돋워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존경을 담아 포켓몬스터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이벌이름을  시게루라고 정하였다. 참고적으로 만화속 주인공의 이름은 자신과 같은 사토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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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6.10 08:22





1.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하나가 인생을 바꾸다.

 


박신혜는 원래 연예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뭐 그래봐야 초등학교 시절때까지의 이야기지만요당시 박신혜가 품었던 유일한 꿈은 경찰이었다고 합니다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이때 나쁜 사람을 일망 타진하고 싶다는 생각에 경찰이 되고 싶어했는데요우연한 기회에 박신혜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길을 걷게 됩니다어릴적 모습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마침 사진을 공부방 선생님들이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여자 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에 사진을 보냈고 이를 계기로 이승환의 드림 팩토리에 발탁되었다고 합니다뭔가 운명적인 스토리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2.     박신혜의 원래 목표는 드림팩토리의 보아가 되는 것이었다.



 

오디션을 본 박신혜는 드림팩토리의 보아로 키워질 예정 이었다고 합니다하지만 늘어나는 춤 실력에 비해서 노래부분은 부진하였답니다감성을 키우기 위해서 연기를 공부하게 되는데 이때 생각지도 못한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다고 하는군요이를 보니 이하나씨가 떠오르네요.  이하나씨도 원래 가수가 목표였으나 우연히 연기 공부를 했다가 연기에 빠져들었다고 하죠.

 

3.     16살에 최연소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주인공 되다.





 

박신혜의 연기실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였는데  꽃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이후에 천국의 계단의 오디션을 보게 됩니다천국의 계단 오디션이 한창 진행중일 때 뒤늦게 오디션 소식을 알게 된 박신혜는 급하게 오디션을 준비하고 참여했음에도 불과하고 500명이 넘는 지원자중에서 당당히 1위를 기록 여주인공이었던 최지우의 아역역할로 화려하게 데뷔하게 됩니다생각지도 않은 연기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그녀는 만 16세의 나이로 미니시리즈 주연자리를 꿰차게 되는데 이는 미니시리즈 역사상 최연소 여우 주연이라고 합니다역시 박신혜는 연기자가 되기 위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인듯 합니다.

 

4.     박신혜의 한달 용돈은 30~40만원

  정엽의 푸른밤에 출연한 박신혜는 자신의 용돈이 한달에 30~40만원이라고 답한적이 있습니다사실 이 이야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듯 합니다.  16세부터 드라마의 주연역할을 하고 다수의 CF까지 출연한 박신혜가 그야말로 일반 대학생들의 한달 용돈이 30~40만원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의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요저 역시 풋풋한 대학생으로 자신을 포지션하기 위한 준비된 답변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그녀의 트위터를 보면 아무래도 정해진 용돈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위의 캡쳐화면에서보듯이 화이트 아이폰4와 아이폰5사이에서 고민을 하는데 만약에 용돈이 아니라 마음대로 돈을 쓴다면 두 제품 모두를 사면 되니 저렇게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죠 또한 그녀는 통금시간도 10시라고 합니다 그것도 2010년에 있는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아무래도 박신혜는 일부러 자신의 나이에 맞게 행동하려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박신혜는 자신의 나이에 맞춰서 용돈을 받고 여대생들이 그런것처럼 통금시간을 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5.     박신혜의 고민은 애교

 박신혜는 스스로의 단점이자 고민으로 과도한 애교라면서 주변남자로부터 고쳐야할 점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라고 하네요예능프로에서 자신의 애교를 이야기하면서 상황극을 펼치는데 사실 손발이 오그라듭니다정말 자연스런 필살 애교를 보고 싶다면 미남이시네요를 보세요박신혜의 원맨쇼를 볼 수 있을겁니다.

 

6.     박신혜는 살찌는 체질

 

개인적으로 박신혜에게 가장 놀랬던 것은 1990년 생이라는 사실입니다. 1990년생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들을 만들어왔으니깐요그런데 박신혜는 그 나이 또래중에서는 최고의 연기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관리도 철저해서 구설수에도 휘말린적이 없습니다또한 외모와 몸매까지 갖추었고 운동실력도 발군이라 랜디신혜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데요 이렇게 모든 것을 가진듯한 박신혜지만 그녀에게는 몸이 잘 붓고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고 한다사실 미남이시네요를 보면 그녀의 모습이 볼살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목격 할 수 있습니다인터넷을 조금만 돌아다니면 박신혜라고는 믿기지 않는 후덕한 사진들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기도 하죠하지만 살찌는 체질 역시 어쩌면 신의 축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왜냐하면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쉽게 살이 찌기 때문에 더욱 자신을 위해서 더욱 노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실제로 그녀가 운동을 매일 하려는 것도 자신이 살찌는 체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그녀 스스로도 살찌는 체질인 것을 알고 있으며 연기를 오래하고 싶은 만큼 결국 박신혜는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야할 듯 싶습니다.

 

7.     박신혜의 오빠는 기타리스트이다. 


 박신혜의 오빠는 밑에 댓글을 달아주신 키키님에 의하면 서울예대 실용음악과를 휴학하고 통기타 그룹 나무자전거의 객원 기타리스트 출신인데 현재는 군복문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역시 프로급 섹소폰 실력을 가지고 있고 어머니 역시 오카리나를 연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박신혜야 원래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박신혜 집안 자체가 아티스트의 끼가 흐르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한데요박신혜는 가수 활동에 마음이 없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집안전체가 음악을 하나 발표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박신혜는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걷잡을 수 없는 체질인듯하네요.)

 

8.     이승환, 박신혜를 위해 배우매니지먼트를 그만두다.


 

 이승환은 연기자들의 매니지먼트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차에 박신혜가 만년 유망주라는 이야기에 특히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그래서 이승환은 가수 매니지먼트에 전념하기로 결정하고 박신혜가 더 잘 될 수 있도록 연기자 매니지먼트를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이에 박신혜는 울면서 뛰어나갔는데 이승환는 그때 복도에서 울리던 발자국 소리를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박신혜는 이승환과의 결별 후 한지민이 소속된 유명 아바엔터테인먼트으로 이적한 그녀는 4HIM 엔터테인먼트 라는 처음들어보는 회사로 이적을 해서 의아했는데요보도자료에 의하면 10년간 함께한 매니저와의 의리 때문이라고 하네요.

 

 9.     4살 이상 차이나는 남자와는 만나지 않겠다.

 



박신혜는 키가 크고 4살 이상 차이가 나지 않으며 센척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처럼 부드럽고 주관이 있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장근석이 떠오르네요물론 박신혜는 연예인과 사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10년후에 둘이 결혼한다고 해도 놀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10.   박신혜는 러시아에 2000명이 넘는 팬클럽을 가지고 있다.



 해외에서 미남이시네요의 인기는 매우 폭발적입니다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덕분에 박신혜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몰이 중입니다러시아에서는 2000명이 넘게 가입한 팬클럽이 있으며 중국의 EASY 매거진 웹사이트에서는 7개월 연속으로 아시아스타 인기투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11.   박신혜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폭발적

  


박신혜의 팬이라면 항상 박신혜가 과소평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하지만 위의 투표결과를 보면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미남이시네요가 아이리스에 완전히 밀리는 바람에 박신혜가 작품에서 보여줬던 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위의 투표 결과만 보면 꽤 많은 분들이 박신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작품 하나만 히트하면 톱으로 도약하는건 시간문제로 보이네요 최고의 사랑 후속으로 방영되는 수목 미니시리즈 넌 내게 반했어는 박신혜에게는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될듯합니다.


12. 박신혜는 서태지의 부인 이은성과 절친이다.





 저는 서태지의 팬인데 박신혜와 이런 인연이 있을줄이야 정말 생각도 못한 조합입니다. 둘의 우정은 반올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반올림의 오디션 현장에서 만나면서 10년이 넘는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참고적으로 이은성은 서태지의 광팬역할을 하였고 박신혜는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 하네요. 피노키오를 촬영할때는 서태지가 밥차를 쏘면서 형부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내가 둘 사이에 아는 사이도 아닌데 둘이 친하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더욱 친근감이 느껴지는게 신기하네요. 참고적으로 저는 이승환을 좋아하는데 이승환이 서태지와 교류하는 몇 안되는 뮤지션중에 하나이고 박신혜는 이승환 회사에서 연예계 생활을 한것을 보면 이렇게 인연이 엃히고 설키는게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덧말

 미남이시네요를 보고서 박신혜의 팬이 되었습니다미남이시네요를 보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박신혜는 신의 은혜다미남이시네요는 제가 그 동안 마음속으로 대한민국 1위라고 생각했던 겨울연가의 아성을 깨고 당당히 1위로 올라섰습니다사실 대부분의 드라마는 10회만 되면 힘이 빠지고 축 늘어지기 시작하는데 마남이시네요는 16회까지 전부가 재미있었던 최초의 드라마였습니다혹시나 안봤던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저처럼 박신혜의 팬이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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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6.08 08:25




 




“우리의 관심사는 바로 단순함입니다. 뻔뻔스러을 정도의 단순함을 드러냄으로써 완전히 다른 제품이 탄생합니다. 차별화가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다. 사실 남들과 다른 제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쉬운일입니다. 차별화는 제품을 매우 단순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탐구하는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1.  컴맹이었던 조너선 아이브 매킨토시로 구원을 받았다.








애플의 디자이너인 조너선 아이브는 아이러니하게도 컴퓨터에 전혀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게 목표였고 이를 위해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과 뉴캐슬 폴리테크닉 대학교를 다녔다.  컴퓨터에는 컴맹이었던 그는 컴퓨터를 쓰는게 무척 힘들어 했는데 1989년 매킨토시를 처음 보게 되고 자신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킨토시에 완전히 반해버린다. 그는 매킨토시에 반해버린게 아니라 애플까지도 좋아하게 된다.  그는 애플이라는 회사에 대해서 더욱 심층적으로 알아보면서 애플빠가 되어버린다.


 

2. 조너선 아이브는 변기를 디자인했다.


조너선 아이브는 변기, 펜, 빗등의 생활용품을 디자인하였다. 하지만 화장실 세면기를 디자인하는데 몇달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이 퇴짜를 맞게 되자 심한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애플로부터 노트북 디자인의뢰를 받니다. 조너선 아이브가 내놓은 디자인에 감명받은 애플은 그를 스카웃하려 한다. 조너선 아이브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를 해야하고 자신이 창업한 회사인 탠저린을 그만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3.  애플에 들어온 조너선 아이브는 세계 최초의 PDA인 뉴튼을 디자인한다.
 



 



애플로 돌아온 조너선 아이브는 비운의 기기인 뉴튼을 디자인하였고 곧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애플 디자인팀을 이끌게 된다.



 

4. 조너선 아이브 존 스컬리를 분노케 하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에 빠지는데 혼란에 빠진 애플의 경영진들은 디자인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없고 우왕좌왕하였다. 애플 디자인팀이 만든 시제품들은 대부분 쓰레기통에 쳐박히게 되고 결국 조너선 아이브는 독립적으로 애플 디자인팀을 이끌게 된다. 당시 애플의 CEO였던 존 스컬리마저도 애플의 디자인실에 들어가지 못해서 엄청나게 분노를 했다고 한다. 



 

5. 조너선 아이브는 스티브 잡스에게 사표를 쓸 생각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왔지만 조너선 아이브를 무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디자인을 중요시 여기는 스티브 잡스는 세계에서 최고 유명한 디자이너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이에 실망한 조너선 아브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갑작스럽게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에게 회의를 하자고 하자 조너선 아이브는 주머니속에 사직서를 쓰고 회의에 참가한다. 그런데 그 회의는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의 훌륭함을 알아보고 그의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회의였고 조너선 아이브는 아이맥을 개발하게 된다. 사탕같은 반투명 디자인으로 유명한 아이맥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적자에 헤매이던 애플을 구원해준다.



6. 조너선 아이브도 스티브 잡스처럼 항상 똑 같은 옷을 고집한다.

 

 



스티브 잡스는 언제 어디서든 청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검은색 터틀넥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조너선 아이브도 위의 사진 처럼 항상 같은 옷을 입고 다닙니다. 

 


7. 조너선 아이브는 실패를 해도 즐거워 한다.


조너선 아이브는 수많은 시제품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다른 디자이너가 다섯개에서 여섯개의 시제품을 만들때 조너선 아이브는 수백개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사는 아파트는 시제품으로 꽉 채워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시제품은 엄밀히 말하면 수많은 실패작들을 만드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너선 아이브는 실패를 해도 즐거워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패를 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8. 조너선 아이브 디자인의 시작은 겉모습이 아니라 재료로부터 시작한다.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을 할때는 겉모습을 먼저 구상하는게 아니라 우선 재료를 연구한다.  조너선 아이브는 디자인을 공부할떄 3차원 기술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재료를 이용해서 만들어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재를 충분히 이해하면 제품의 틀도 잡힌다는게 조너선 아이브의 생각이다. 실제로플라스틱을 연구하면서 반투명 디자인의 영감을 떠올렸고 애플의 노트북 역시 알루미늄을 활용한 디자인이다.



9. 조너선 아이브의 팀들은 컬트중에 컬트다.








조너선 아이브의 팀은 10여명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뉴질랜드, 독일, 영국, 이탈리아에서온 다국적 팀이기도 하다.  조너선 아이브 팀들은 함께 저녁을 먹고 여행도 함께 다니는 친밀한 사이다. 디자인팀은 칸막이도 없고 개방된 공간을 같이 쓰는데 애플의 디자인들은 디자인 스튜디오 내부의 부엌에서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탄생한 제품이라고 한다.  


 


10.  조너선 아이브와 스티브 잡스는 애플내에서 Jives로 불리운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는 하루에 한번은 만나서 제품에 대해서 의논하기로 유명하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은 식당에서 함께 점식식사를 하고 애플의 쿠퍼티노 본사의 정원을 함께 자주 산책하는데 이렇게 둘이 불어다니는 덕분에 애플내부에서는 둘을 일컬어 Jives라는 애칭까지 생겨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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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5.23 08:33

1. 10년이 지난 애플 스토어는 11개국가에 323개의 매장이 있으며 10억명이 넘는 방문자를 기록했다.








2. 애플 스토어는 지난 분기에 319억달러를 벌어들였고 회사의 제품 판매중에서 13%를 담당하였다. 또한 애플스토어는 지난 1년간 90%를 성장하였다.

 



3. 애플스토어에서는 지난 분기에 79만 7천대를 판매하였는데 이는 전체 맥 판매의 21%였다.







4. 애플스토어에서 가장 큰 것은 런던에서 오픈한 것으로 2만 5천 평방미터에 이르는 규모다. 





5. 지난 분기에 애플스토어를 방문한 사람은 7100만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 관객방문수인 7300만명과 비슷한 규모다.







6. 애플스토어를 위해서 스티브 잡스는 처음으로 컨설턴트를 고용했다.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스티브 잡스는 소매점 사업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위해 컨설턴트를 고용했다. 이는 게이트웨이가 왜 소매점시장에서 망했는지를 알기 위한 것으로 스티브 잡스는 오직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를 원하기 때문에 시장조사를 위해 컨설턴트를 고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7. 애플은 40개의 새로운 애플 스토어를 계획중이며 이중에 4분의 3은 미국이외의 지역에서 세워질 예정이다. 또한 중국에는 다섯개의 애플 스토어가 더 오픈하게 될 예정이다. 
 





8. 아이폰이 발매되면 시간당 수천명의 사람들이 줄을 선다. 애플은 우산과 양산 그리고 음료수와 스낵을 제공하면서 이들을 격려한다. 






9. 애플 스토어에는 3만명의 정규직원이 고용되어 있다.








10. 2009년 말 애플 스토어의 평당 매출은 4,300 달러였는데 이는 미국 최대의 전자 소매점중에 하나인 베스트바이가 평당 872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다섯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11. 애플스토어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하버드만큼 경쟁률이 높다.  2009년 애플은 맨하탄에 새로 오픈한 애플스토어에 만명이 넘는 사람이 일을 얻기 위해 지원서를 보냈다고 한다. 이중에 오직 200명만이 일자리를 얻었으니 오직 2%만이 합격을 한 것이다.  반면에 하버드 대학교는 2만 9천명의 지원자중에서  2천명이 합력을 했으니 대략 7%가 합격을 했다.







12. 가장 작은 애플스토어는 산타로스 플라자에 있는 것으로 540평방미터 규모이다.







13.  애플스토어에 배치된 가구목재들을 구입하는데 31만 5천달러를 사용했다.  애플스토어를 하나 만드는데 대략 100만달러가 사용되며 만약에 규모가 있는 애플스토어는 8백만에서 천만달러를 더 강력한 애플스토어는 2천만달러에서 4천만달러가 들어간다고 한다.






14.  애플 스토어에서 맥을 구입한 사람들의 절반은 이전에 맥을 구입한적이 없었다.







15. 호주에 있는 애플 스토어는 내부에 살아있는 나무가 있는 유일한 소매점이다. 





출처 비즈니스 인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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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5.11 08:33
미국의 블로그 미디어 사이트인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구글에 대해서 잘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사실 23가지라는 제목으로 구글에 대한 글을 포스팅했는데요. 사실 23가지중에서 별 놀라운 것이 아닌건 빼고 10가지만 간추려서 올립니다. 


1. 데니스 크로울리는 구글에 트위터의 성공을 경고했다.



위치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포스크웨어를 창업해서 요즘 잘나가는 데니스 크로울리가 구글직원이었다는게 재미있네요. 데니스 클로울리는 트위터가 등장하자  구글사람들에게 이메일을 통해서 이를 경고했는데요. 구글은 소셜에 관심이 없어서 이를 싸그리 무시했다는 군요. 재미있
는 사실은 구글이 현재 트위터를 100억달러에 매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점입니다.


2. 다우존스는 구글이 될 수 있었다.



다우존스하면 주식이 생각나는데 다우존스는 세계적인 금융정보 회사입니다. 이곳에 리옌홍이라는 남자가 다녔는데 그는 구글이 나오기전부터 구글과 같은 방식의 검색기술을 발견합니다. 회사에다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알리자 정작 다우존스는 자신들이 인터넷 회사가 아니라면서 리옌홍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렇다고 리옌홍이 가만 있을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가서는 검색 회사인 바이두를 창업합니다. 바이두는 현재 한국의 네이버처럼 중국시장에서 검색시장을 독점하고 있는데요. 리옌홍의 현재 재산은 94억달러로 중국전체에서 갑부 순위 1위입니다.

3.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첫번째 투자를 받고는 버거킹에서 축하파티를 열었다.


썬의 창업자인 앤디 벡톨샤임에게 10만달러를 투자 받고는 둘이서 조촐하게 파티를 한것은 유명하죠. 


4. 에릭 슈미트가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에게 큰 점수를 얻은 이유는 바로 버닝맨축제



매년 8월말과 9월초에는 네바다 사막에서 목각인형을 불태우는 축제가 있습니다. 버닝맨으로 이름붙여진 이 행사를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은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은 구글의 CEO를 뽑기 위해서 후보들을 인터뷰했는데.. 인터뷰에 응한 사람중에서 버닝맨에 참가한 사람은 에릭슈미츠가 유일했다고 하는군요. 덕분에 에릭슈미츠는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에게 큰 호감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5.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 야후를 협박하다.



이건 의외인데요.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은 다른 IT 창업자들에 비해서 점잖은 걸로 알았는데 야후가 오버추어를 매수하자 협박을 했답니다.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은 만약 야후가 오버추어를 인수하면 그건 전쟁이라고 밝혔는데요. 사실은 오버추어가 검색광고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글 창업자들은 이것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것이라고 생각한듯 합니다. 더욱 주목해야할 사실은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이 협박한 대상이 야후의 CEO였던 테리시멜은 위에 사진에서보듯이 그들보다훨씬 많이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6. 중요직으로 구글에 취직하는 사람은 25번의 면접이 필요하다.



구글은 사람을 뽑을때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뽑을때는 무려 25번의 면접을 봐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뽑는데 인터뷰하는 기간만해도 45일에서 60일이 걸릴정도랍니다.

7.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냄새에 민감하다.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글 본사에는 냄새를 제거하는 초강력 필터 시스템이 가동중이라고 합니다.

8.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SAT에 집착한다.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른은 그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미국의 대학 수학 능력시험이라고 할수 있는 SAT의 점수를 물어보는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9. 래리페이지는 구글의 주식을 구입하는 투자자들을 테스트하고 싶었다.



래리페이지는 투자자들이 구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시험을 쳐보고 싶었답니다.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구글의 주식을 구입하도록 할려는 것이었는데 이는 SEC에 의해서 거절당하였다는 군요.

10.2002년  빌 게이츠는 구글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2002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이었던 카이푸 리가 20억달러에 구글을 매입하도록 충고헀는데 빌 게이츠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해서 이를 거절했습니다.  현재 구글의 가치는 1720억달러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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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