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6.06.07 스매쉬브라더스와 별의카비 탄생 비하인트 스토리
  2. 2016.05.12 노라고 말하지 않는 남자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
  3. 2016.04.21 명문대 출신 닌텐도 전 CEO 이와타 사토루가 초라한 벤처기업을 선택한 이유
  4. 2016.04.08 위기속에서 선택된 이와타 사토루
  5. 2015.08.12 닌텐도는 어떻게 아타리 쇼크로 붕괴된 게임 시장을 부활시켰을까?(하)
  6. 2015.08.11 닌텐도는 어떻게 패미컴으로 게임시장을 부활시켰을까? (상)
  7. 2010.12.05 포켓 몬스터는 어떻게 미국을 정복했을까? (8)
  8. 2010.12.03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상- (26)
  9. 2010.11.17 닌텐도 창조성의 27가지 비결 (12)
  10. 2010.04.05 닌텐도의 창조가 위대한 이유! (3)
  11. 2010.04.01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 (18)
  12. 2010.03.26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의 역사! (12)
  13. 2010.01.06 닌텐도는 왜 소수정예에 집착할까? (24)
  14. 2009.12.18 삼성 애플이 아니라 닌텐도를 따라가야 (58)
  15. 2009.12.12 너무 멋진 포켓몬 제작사의 사무실 (19)
  16. 2009.12.10 법앞에서 정말 강한 닌텐도의 역사 (14)
  17. 2009.12.04 2010년 IT 혁명의 시대가 온다. (26)
  18. 2009.10.28 닌텐도 게임천재의 조언,인생에 헛됨은 없다.! (3)
  19. 2009.10.26 5년후면 아이폰이 소니와 닌텐도를 제압한다. (28)
  20. 2009.10.16 윈도우 7 발매에 고춧가루 뿌리는 애플과 구글 (29)
  21. 2009.10.09 위핏에 빠진 비욘세 "게임 개발을 고려중" (18)
  22. 2009.09.16 9월16일 멀티라이터의 IT와 게임 정보 한 덩어리 (5)
  23. 2009.09.07 재미있는 일본 게임광고의 변천사! (34)
  24. 2009.08.26 장난감 회사의 길을 선택한 닌텐도 (19)
  25. 2008.11.10 어린이 비만에 비디오게임이 효과적이다? (8)
  26. 2008.09.12 아이팟터치2는 최고의 휴대용게임기다! (15)
  27. 2008.09.05 게임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한 닌텐도 게임천재! (1)
  28. 2008.08.21 사이비 종교 신자로 오인받던 닌텐도 사장! (11)
  29. 2008.08.14 일본 수영 영웅의 금메달 비결은 닌텐도 위? (14)
  30. 2008.08.13 91세할머니, 닌텐도 위(Wii)에 흠뻑빠져들다. (3)




닌텐도처럼 창조한다는 것(4)


1991년 일본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붕괴가 장기 불황의 시대가 열린다. 이는 2006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국에 끼친 영향보다도 당시 일본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 주었다. 마침 1991년 HAL 연구소는 대규모의 사옥을 완성하는데 버블붕괴의 영향으로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경영위기를 겪게 된다. 결국 1993년 HAL 연구소는 무려 50 억엔에 이르는 부채를 갚지 못하고 부도가 난다.


 그리고 회사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32세의 프로그래머 이와타 사토루였다.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기술력과 친화력은 난파된 HAL 연구소의 새로운 선장으로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HAL 연구소의 사장을 맡은 것은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이와타사토루가 명문대생으로써 HAL 연구소라는 벤처기업을 선택한 것이 일종의 모험이라면 HAL 연구소의 사장이 되는 것은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회사가 빚을 지면 사장이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무려 50억엔의 빚을 지고 있는 회사의 사장이 되겠다는건 보통 정신으로 선택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좋은 회사에서 더 많은 연봉을 주겠다는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와타 사토루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는 남자였다. 사실 이와타 사토루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아내가 HAL 연구소의 사장이 되는 것에 반대 하지 않았다는 것에 가장 고마워할 정도로 그 자신도 꽤 위험한 선택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그 위험한 HAL 연구소의 사장직을 받아들인 데는 두 가지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우선 같이 땀흘렸던 동료들을 놔누고 도망갈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그는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도망가거나 피하는 것을 아예 옵션으로 조차 생각하지 않는 성향의 소유자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찬스가 있는데 그것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힘이 있으면 그것을 전부 사용하자라는 신념의 소유자인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리스크가 없으면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는 승부사 적인 기질을 타고난 만큼  사장직 제의가 왔을 때 피하지 않고 직접 위험한 도박의 주인공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이와타 사토루는 이공계 출신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즉시 각오가 서는 인물이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으로써 스스로 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왜냐하면 HAL 연구소는 기술에 강점이 있는 회사인데 결국 개발의 총 책임자였던 자신이 회사를 부활시키는데 적격자라고 봤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경영 서적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자신이  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다른 사람보다 논리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사고력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논리적인 이치 따지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가 프로그래밍작업을 통해서 수련한 결과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사람이 원하는 작업을 컴퓨터에 구현하기 위한 논리적인 명령들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프로그래밍작업에서 하나의 오류만 있어도 컴퓨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은 코드를 짤 때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작업을 반복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프로그래머들은 자연스럽게 논리적 사고를 익히게 된다. 그는 컴퓨터와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프로그래밍 작업을 통해서 곤란한 과제를 분석하고 실마리를 찾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회사를 경영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와타 사토루의 행복 경영


이와타 사토루가 사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일은 대내외에 신용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우선  빚을 독촉하는 은행을 상대로 40억엔 부채가 있지만 우선 1년에 2억 5천만엔씩 6년에 걸쳐15억엔을 먼저 돌려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자 어떤 은행은 32세의 젊은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에게 고압적으로 행동하였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사실 은행 입장에서도 HAL연구소가 진 빚이 부담스러운 금액이라는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와타 사토루는 90명이 넘는 전직원을 상대로 직접 면담을 시작했다. 이때 이와타 사토루는 회사 재건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매일 철야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 면담을 진행했다. 직원들은 회사를 믿고서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회사가 망했으니 직원들이 회사를 불신하는 건 당연하다고 봤다.  


그래서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서 회사의 미래 계획을 함께 세우려고 했다. 직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이를 경영에 반영하려는 것으로 이미 계획을 세워놓고서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형식적인 면담이 아니었다.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한 장으로써 면담을 활용한 것이었다. 면담의 주제는 직원들에 따라서 달랐지만 그는 항상 첫 번째로 지금  행복한지를 물었다.  원래 이와타 사토루는 사장이 된 후 상품 만들기를 통해서 직원과 고객이 같이 행복해지는 회사로 슬로건을 정할 정도로 행복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담을 통해서 회사도 행복하고 직원도 행복한 방법을 찾으려 했다. 이와타 사토루는 회사가 직원을 올바르게 알아주고 직원의 행복을 제대로 생각해주는  회사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면담을 통해서 깨달은 한가지는 회사와 직원이 동일한 가치관을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상호 행복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면담은  직원과의 소통을 통해서 서로 기분이 좋아질때까지 장시간이라도 대화를 나누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직원간의 면담이 자신에게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되고 직원들의 신뢰을 얻는 좋은 소중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6개월동안 하려던 면담은 그가 HAL연구소에서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HAL 연구소가 경영위기에 빠진 이후 회사는 이른바 자전거 조업이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 조업이란 자전거 폐달을 밝지 않으면 넘어지듯이 만성적으로 자본이 부족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회사가 도산하게 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게임이 출시되면 고객들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게임을 내놓아야 하는 악순환에 대해서 이와타 사토루는 악마의 사이클이라고 부르곤 했다.  결국 이러한 악마의 사이클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역시 킬러컨텐츠가 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별의 카비 개발 스토리


그런데 마침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바로 HAL 연구소에서 들어온 사쿠라이 마사히로가 중심이 되어서 초보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인 팅클 ☆ 포포라는 게임을 제작한다.  게임은 출시전부터 화제가 되어서 사전 예약만 2만 5천개를 받았다.  그런데 닌텐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총책임자인 미야모토 시게루가 게임이 너무 좋으니 조금 더 수정해서 발매하라고 충고한다.  

오래전부터 이와타 사토루가 게임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미야모토 시게루였다. 마리오와 젤다의전설등을 창조한 그는 만드는 게임마다 밀리언 셀러를 연발하면서 게임의 신으로 불리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총책임을 맡고 있었던 만큼 이와타 사토루와는 오랜시간 친교를 맺고 있었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옆에서 여러 게임을 히트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떡하면 HAL 연구소가 미야모토 시게루처럼 인기있는 게임을 만들지 고심을 했다. 직접 미야모토 시게루의 비법을 연구한 레포트까지 작성할 정도의 이와타 사토루였던 만큼 미야모토 시게루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2만 5천개라는 적지않은 예약을 받은 상태에서 제작을 전면 중지하고 다시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다. 특히 영업부에서는 회사의 신용을 손상시킨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결국 고심끝에 이와타 사토루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의견을 들었고 게임 발매를 취소하고 다시 게임을 개발한다. 그 후 이 게임은 팅클 ☆ 포포 별의 카비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게임보이용으로 출시하게 된다.  별의 카비는 발매후 무려 500만장이 판매되었고 시리즈 전체는 2천만개가 넘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며 HAL 연구소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다. 


별의 카비의 빅히트 이후 이와타 사토루는 두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첫째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것이다. 팅클 ☆ 포포가 완성 된 후 이와타 사토루는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와타 사토루가 고객이 아니라 개발자 그리고 회사 관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바라봤기 때문에 문제점을 찾아낼수 없었다. 하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는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서 팅클 ☆ 포포의 아쉬운점을 찾아냈다.  


둘째 이와타 사토루가 꺠달은 교훈은  모든 사람이 미야모토 시게루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팀워크를 발휘해서 만든다면 더 훌륭한 아이디어를 탄생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별의 카비는 팀 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된 좋은 교훈이 되었다

별의 카비는 게임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는 초심자용 게임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이때부터 야마우치 히로시도 이와타 사토루를 주의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야마우치 히로시의 철학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추구하는데 별의 카비가 바로 그가 원하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HAL 연구소 부활에는 역시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도 한 몫한다. 일본에서 광고천재로 통하는 이토이 시게사토는 닌텐도에 마더라는 신개념의 게임을 제안한다. 그의 천재성을 높이 산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가 제안한 게임을 개발하도록 도와준다.  마더는 닌텐도의 첫번째 게임기인 패미컴으로 발매되서 히트를 하게되고 야마우치 히로시는 아예 이토이 시게사토에게 APE라는 회사를 창업시켜준다. 그 후 APE사의 사장이 된 이토이 시게사토는  팍스소프트와 공동으로 마더2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4년동안 게임이 완성되지 않아서 관계자들의 속을 타들어 가게 만든다.  사실 이토이 시게사토는 광고 크리에이터 출신으로 컴퓨터 지식이 전무하였다. 그래서 당시 컴퓨터 성능과 프로그래밍 기술로는 황당 무계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이토이 시게사토가 기획한 마더2에는 실제 게임으로 구현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아이디어로 구성되었었기 때문에 실제 개발작업도 별 진척없이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원래 닌텐도에서는 게임 개발이 어려움에 처하면  이와타 사토루에게 SOS를 쳤는데 마더 2 역시 사실상 개발이 포기상태에 이르자 해결사 이와타 사토루를 호출했다.  


당시 개발중이던 마더2를 분석한 이와타 사토루는 만약에 기존 프로그램을 고쳐서 개발한다면 3년이 더 걸리겠지만 만약 자신이 처음부터 개발하면 1년만에 완성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타 사토루가 장담한대로 4년 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마더 2는 1년후에 발매된다. 이 에피소드는 슈퍼 프로그래머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마더2의 기획자 이토이 시게사토는 이와타 사토루의 처음 제안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냥 자신이 하면 1년 걸린다고 하면 될것을 궂이 기존의 방식대로 개발할 경우 3년 걸린다는 옵션을 던져주고 상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이와타사토루의 대화방식이 흥미로웠다. 이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공개한 후 대안을 제시하는 이와타 사토루식의 대화법 이었던 것이다.  


한편 4년 동안 교착상태였던 마더2를 1년 만에 개발 완료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발 도구의 자동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게임이라는 것은 화면의 캐릭터 움직임이나 배경 처리등의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효율적인 개발 도구라는 것은 이런 단순 반복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컴퓨터가 대신 처리해주는 자동화에 달렸는데 이와타 사토루의 프로그램은 이부분에서 탁월했다.  원래 이와타 사토루가 컴퓨터가 프로그래머에게 매력을 가지게 된 이유자체가 인간이 반복해서 해야하는 귀찮은 일을 기계에게 시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또한 이와타 사토루가 만든  개발 도구는 프로그래머들뿐만 아니라 컴퓨터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획자나 그래픽 디자이너도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가 그림을 그리면 당시만 해도 무조건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아야만 컴퓨터 화면상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의 자동화된 게임개발 도구를 이용하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머의 도움 없이 간편하게 원하는 그림을 게임 화면상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그래픽디자이너가 원하는 그림을 즉시 게임 화면에 구현해주는 이러한 개발도구의 개념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다. 사실 슈퍼패미컴 시절만 해도 닌텐도가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에게 제공했던 개발도구에 대한 불평이 많았었다.  그런데 닌텐도 64에서부터 겨우 게임 개발 도구라고 부를 수 있는 툴을 제공했다.. 그런데  이 게임 개발 도구를 만든 곳이 바로 HAL 연구소 였다.  HAL 연구소가 닌텐도의 게임 개발 도구를 만들어 주는 회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프로그래밍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매쉬 브라더스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이와타 사토루가 HAL 연구소에서 선보인 마지막 작품은 스매쉬 브라더스였다. 이 게임은 닌텐도의 인기 캐릭터가 총출동한 격투 게임으로 최근에 닌텐도 위로 발표된 스매쉬 브라더스 X가 840만장이 넘게 팔릴정도의 대표적인 킬러 컨텐츠이다.  사실상 이 게임을 통해서 HAL연구소는 부활할 수 있었고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로 가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스매쉬 브라더스는 별의 카비를 만든 사쿠라이 마사히로의 뛰어난 기획력과 이와타 사토루의  기술력 이외에도 닌텐도와의 협업이 빛을 발했다. 


스매쉬 브라더스는 원래 정식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이와타 사토루와 사쿠라이 마사히로가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한번 만들어본 작품이다.  처음 게임의 모습은 회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후지산 배경에 당시 인기 있었던 광고 캐릭터인 펩시맨을 이용한 격투게임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닌텐도의 인기 캐릭터인 마리오와 돈키콩등을 등장 시킨 새로운 형태의 격투게임을 만드는게 더욱 승산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리오와 돈키콩을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는 격투게임에 자신의 캐릭터가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사실을 직접 들은 이와타 사토루는 사쿠라이 마사히로에게 알리지 않고  닌텐도의 캐릭터들을 그대로 사용해서 우선 게임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당시 사쿠라이 마시히로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게임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위태한 순간이었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대범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다. 이와타 사토루 생각에는 좀더 완벽하게 게임을 만들어서 가져가면 분명 미야모토 시게루도 허락할 것이라는 생각에 일부러 프로젝트를 강행하게 된다. 그리고 마리오가 실제로 돌아가는 게임을 본 미야모토 시게루는 흡족해 하며 결국 허락하고 만다. 


이번에도 역시 이와타 사토루는 스매쉬 브라더스를 통해서 소중한 교훈을 깨닫게 된다. 우선 고객과의 소통이었다. 1999년 당시에는 인터넷이 활성화 되지 않았는데 HAL연구소는 스매쉬 브라더스가 발매 된 직 후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었다. 이는 고객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개발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원래 이와타 사토루는 장인으로써 상품을 만드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 그 다음에는 입을 조용히 다물고 있는 것이 더욱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을 통해서 고객과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손님의 의견을 듣는다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미디어 믹스로써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동안 개발자가 고객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되었지만 인터넷을 활용한다면  더욱 멋지고 매력적인 그 무엇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는 스매쉬브라더스를 만들면서 게임 개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게임을 개발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게임이 더욱 복잡하고 화려해지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소프트웨어의 미래는 없다는 문제였다. 대작을 만들기 위해서 작업량은 방대해지고 작업량은 그만큼 늘어나니 신선한 아이디어를 좀더 빠르게 고객에게 선보이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는 호화로운 대작 위주의 게임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야 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생각은 대작의 게임보다는 쉽고 가볍게 즐기는 게임이 더욱 소중하다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경소단박론과 일맥상통하였다.  사실 스매쉬 브라더스는 기존의 격투게임과는 확연히 달랐다.  격투 게임은 시리즈가 계속 될수록 한 캐릭터당 가지고 있는 기술의 숫자가 늘어난다.  


게임을 1탄부터 한 사람은 늘어나는 기술이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처음 게임하는 사람은 복잡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1999년 당시에 격투 게임은 초보자가 하기 힘든 마니아들만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래서 스매쉬 브라더스는 누구나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경소단박형 게임으로 제작한것이었다. 이런 이와타 사토루의 의도는 정확하게 적중하였다.  99년 1월에 일본에서 발매된 스매쉬 브라더스는 197만장이 판매되고 미국에서는 293만장이 판매되면서 격투 게임으로써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HAL 연구소의 재정은 더욱 좋아졌다. HAL 연구소를 부활 시키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2000년 되자 이와타 사토루는 닌텐도로 스카우트 한다. 경영 기획본부의 실장으로 발탁된 이와타 사토루는 2001년 발매된 가정용 게임기 게임큐브의 개발을 담당하게 되고 입사한지 단 2년만인 2002년 43살의 어린나이에 닌텐도의 사장으로 임명된다.



지금까지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입사하기전 까지의 모습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입사하기 전까지의 삶의 궤적들을 살펴보면 왜 야마우치 히로시가 이와타 사토루를 닌텐도의 사장으로 선택했지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첫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기술이다. 이는 사실 야마우치 히로시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자 닌텐도의 단점이었다. 하지만 슈퍼 프로그래머 소리를 들었던 이와타 사토루였던 만큼 닌텐도가 기술을 잘못사용해서 실패할 확률은 그만큼 적어질 것이다.  둘째 도산직전의 회사를 살려낸 경영능력이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와타 사토루가 기대에 한번도 배신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했는데 HAL연구소를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어떠한 구설수 없이 사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난파된 회사를 구한건 이와타 사토루의 능력을 충분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셋째 야마우치 히로시와 비슷한 철학이다. 평소 게임은 누구나 쉽고 가볍게 즐길수 있어야 한다는 경소단박을 강조한 야마우치 히로시의 철학이 HAL 연구소에서 발매된 게임인 별의 카비와 스매쉬 브라더스에 그대로 구현되었다. 이렇게 야마우치 히로시가 가지지 못한 기술 그리고 야마우치 히로시가 기대하는 경영능력 그리고 야마우치 히로시와 같은 개발철학을 공유했기 때문에 이와타 사토루는 수많은 유력후보들을 제치고 입사 2년만에 사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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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닌텐도처럼 창조한다는 것(3)



이와타 사토루 덕분에 HAL 연구소는 기술 하나는 최고인 회사로 명성을 드높였다. 회사도 도쿄 번화가 맨션을 벗어나 있는 야마나시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후지산으로 유명한 야마나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했는데 도심보다는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이곳으로 회사를 옮긴 것이다. 1983년 일본에서는 닌텐도의 첫 번째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콤이 발매되어 단 6개월만에 50만대가 판매될 정도로 큰 선풍을 일으킨다. 이와타 사토루는 패미컴이 발매 되기 전부터 닌텐도를 주목했다.  닌텐도야 말로 HAL 연구소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패미컴을 1만5천엔 짜리 값싼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패미컴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리고 패미컴에 대한 자신이 붙자 주변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패미컴의 개발사인 닌텐도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일부러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평소 입지도 않은 양복까지 찾아 입은 이와타 사토루는 닌텐도 본사가 있는 교토로 찾아가서 다짜고짜 패미컴용으로 게임을 개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시 닌텐도는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하기로 유명했다.  닌텐도는 소프트웨어 제작사가 게임을 개발하면 무조건 발매 시켜 주는 게 아니라 닌텐도가 정한 기준에 부합되는지 검토를 한 후에  합격한 게임만 패미컴으로 발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허가 받은 소프트웨어 제작사의 경우 일년에 단 세 개만 발매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조항까지 마련했다. 그래서 패미컴용으로 게임을 발매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대신 한번 패미컴으로 발매되는 게임은 소수정예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았고 덕분에 한번 게임이 발매만 되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를 찾아간 것도 HAL 연구소가 패미컴으로 게임을 발매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24살의 어린 나이었던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가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자 처음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결국 닌텐도는 정식으로 허가 받은 소프트웨어 업체 즉 서드파티가 아니라  외주방식으로 게임을 대신 제작해주기로 했다. 

닌텐도 내부에서는 수많은 게임들이 기획을 하고 있었지만 기술상의 문제로 포기한 게임들이 많았다. 닌텐도는 이런 고난이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게임들을 이와타 사토루에게 한번 속는셈 치고 맡겼던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가 맡긴 일들을 이와타 사토루가 척척 해내자 닌텐도에서 그의 명성도 덩달아 쌓여갔다. 그래서 게임업계에서는 아이디어의 닌텐도 기술의 HAL연구소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서 직원들에게 스타 취급을 받게 되는 계기는 프로그래밍 실력이 아니라 컴퓨터 키보드를 빨리 치는 타이핑 속도 덕분이었다.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키보드를 안보고 치는 블라인드 타이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를 방문하는 날이면  순전히 그의 블라인드 타이핑을 구경하기 위해서 회사의 각 부서사람들이 모여들 정도였다. 당시 이와타 사토루는 마치 진기 명기에 나오는 기인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햔편 이와타 사토루는 HAL 연구소 내에서도 직원들의 신망이 무척 두터웠다. 왜냐하면 그는 프로그래머로써 절대 노라고 말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원래 기획자들은 작품에 대한 원대한 소망을 꿈꾸기 마련이다. 남들이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는 것을 실제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면 종종 기술의 한계를 고려치 않은 기획안을 만든다. 그럴 경우 일반적인 프로그래머는 기술도 파악 못하고 기획을 했다면서 타박하기 마련이다.  이는 게임뿐만 아니라 IT 업계 그리고 모든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과 그 아이디어를 실행 해야 하는 사람간에 분명한 입장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이상적이고 개발자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에는 일종의 주도권 싸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애초에 이와타 사토루는 기획자의 아이디어에 노라고 말을 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존중을 해주었다.  물론 이와타 사토루 자체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그의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가 “노”라고 하는 순간 기획자의 아이디어는 거기서 멈추어 버려서 더 이상 발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를 수도꼭지론으로 설명한다. 프로그래머는 수도꼭지와 같은 존재인데 꼭지를 닫아 놓으면 수도관의 물의 흐를 수 없듯이 프로그래머가 노라고 하면 그 어떤 좋은 아이디어와 그림도 무용지물이 되므로 프로그래머는 꼭지가 열려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술상의 제약으로 기획자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때는 모든 가능성을 한번에 일축 해버리는 “No”가 아니라 기획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이와타 사토루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기획자가 제시하는 황당한 아이디어까지도 가급적이면 들어주려는 이와타 사토루의 철학이 자신을 더 노력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최고의 프로그래머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이와타 사토루는 “다음에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자”라는 모토를 가진 사람으로써 일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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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처럼 창조 한다는 것 <2>


이와타 사토루는 1959년 일본의 삿포루에서 태어난다. 어린 시절부터 천식이 있었던 그는 전학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자라야 했다. 그랬던 이와타 사토루의 인생전체를 바꾸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휴렛패커드에서 발매한 공학용 전자계산기였다. 휴렛패커드의 전자계산기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발사 됐을 때 승무원들이 이용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첨단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기기였다. 애플의 창업자중에 한명인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HP의 공학용 계산기를 몹시 아꼈던 걸로 유명하다. 또한 델 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이나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에르 같은 IT 거장들 역시 전자계산기의 매력에 빠지면서 컴퓨터의 세계로 입문했다.  HP의 공학용 계산기는 당시 가격으로 무려 2백만원이 넘을 정도로 비싼 기계였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이 전자계산기가 무척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신문배달과 접시 닦는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던 아버지는 이와타 사토루가 전자계산기값의 반을 모우자 나머지 돈을 보태줘서 전자계산기를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


휴렛 패커드의 공학용 전자계산기는 단순히 숫자계산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프로그래밍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초 미니컴퓨터였다. 이와타 사토루는 제대로 된 사용설명서도 없던 HP의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철저하게 파고들기로 결심했다. 전자 계산기의 사용자 설명서를 읽어가면서 여러 게임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그는 직접 자신이 짠 프로그램들을 휴렛팩커드 일본지사에 보내자 이를 본 관계자들은 이와타 사토루의 실력에 깜짝 놀라며 선물을 보내줄 정도였다.


전자계산기에 완전히 미쳐버린 이와타 사토루의 실력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발리볼이나 미사일 사격 게임 등을 개발할 수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교 친구에게 자신이 만든 게임을 보여주자 정말 대단한 걸 해냈다면서 진심으로 칭찬하고 그를 격려했다.  이와타 사토루는 자신의 실력으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생겼고 이러한 자신감 덕분에 성격도 점차 활발하고 외향적으로 변해갔다. 이와타 사토루는 아직도 그때의 칭찬이야 말로 오늘날 자신을 있게 고백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친구가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말할 정도다. 


전자계산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 이와타 사토루는 일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문대인 동경공업대의 컴퓨터 공학과에 지원해서 합격을 한다. 하지만 1978년도만 해도 컴퓨터가 별로 보급되어 있지 않아서 컴퓨터 공학과의 교육수준도 별로 그리 높지 않았다. 학교의 수업자체가 이와타 사토루가 알고 있는 것 보다도 뒤떨어 졌었다. 처음에는 학교친구를 규합해서 스터디를 하려고 했지만 친구들은 학교 수업을 받는 것만으로도 벅차했다. 결국 이와타 사토루는 혼자서 컴퓨터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코모도어사의 PET 컴퓨터를 구입한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혼자서 하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었다. 고등 학교시절 친구가 옆에서 응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고 생각하던 이와타 사토루는 그런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도쿄의 대표적인 상업 중심지역중에 하나인 이케부쿠로역에 있는 세이부 백화점의 컴퓨터 판매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당시 컴퓨터 판매점은 단순히 컴퓨터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컴퓨터 고수들이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진정한 고수들은 자신이 직접 짠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와타 사토루는 매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앞에 사람들이 뭔가 잘못하면 지적을 해주고 쉽게 설명을 해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실력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컴퓨터 판매점의 직원 중 한 명이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에 등장하는 컴퓨터에서 이름을 딴 HAL 연구소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이때 이와타 사토루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점원은 회사에서 개발 업무를 맡아달라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였다. 1980년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이와타 사토루는 어차피 학생으로써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HAL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정한다.  HAL 연구소는 아키하바라의 맨션에서 한 명의 정직원과 여섯 명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하였다. 아르바이트 생이었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개발할 제품의 계획을 세우고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는 등 회사 개발팀의 실질적인 리더가 되었다. 이와타 사토루의 첫 번째 작품은  당시 텍스트만 표시되었던 컴퓨터에 그래픽이 표현가능 하도록 만들어주는 PCG라는 주변기기를 만들었고 여기에 대응하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였다. 


이와타 사토루는 적은 임금을 받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일 자체가 너무나 좋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더욱 빠져 들어갔다. 결국 이와타 사토루는 학교생활보다는 HAL 연구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에 매달렸다.  


대학 졸업 때가 다가오자 대학교 친구들은 모두 대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망설일 것도 없이 정직원이 다섯 명밖에 없었던 HAL 연구소의 정직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일류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작고 초라한 벤처기업인 HAL 연구소에 들어가자 그의 아버지는 6개월을 넘게 대화도 나누려 하지 않을 정도로 화를 냈다. 가족들은 이와타 사토루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생각 할 정도로 그의 HAL 연구소행은 대단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스스로 가족 역사중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었다고 칭할 정도의 충격을 주면서까지 굳이 왜  HAL 연구소를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 게임 개발자들의 컨퍼런스인 GDC 2006에 참가한 이와타 사토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게임의 프로그래머이자 엔지니어였으며 디자이너였고 마켓터였습니다. 또한 음식을 주문하고 청소를 도왔지요.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죠”


 이와타 사토루는 명예와 돈보다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자신이 만든 물건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전형적인 장인의 피가 흐르는 인물이었다. 결국 이러한 그의 성향이 닌텐도 최초로 가족이 아닌 인물로 최초의 전문 경영인에 등극할 수 었던 원동력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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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회사에서 세계 최고 게임회사로 변신시킨 야마우치 히로시는 시대가 변한 만큼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1세기가 오면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많은 언론에서는 그의 후계자와 관련된 여러 예상들이 쏟아졌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데릴사위이자 닌텐도 어메리카의 사장이었던 아라카와 미노루였다.  1946년 교토의 부유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난 아라카와 미노루는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MIT 대학을 유학한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파티에서 첫눈에 반한 야마우치 히로시의 딸 요코와 결혼을 한 후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원래부터 아라카와 미노루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끈질기게 닌텐도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의를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나뻤던 요코는 남편이 닌텐도에서 일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일에 바뻤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가정일에 소홀했는데 자신의 남편도 아버지처럼 일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야마우치 히로시의 원대한 비전에 호의를 품고 있던 아라카와 미노루는 닌텐도가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자 사장직을 받아들인다. 그후 아라카와 미노루는 미국시장에서 패미컴과 슈퍼패미컴 그리고 포켓몬등을 대성공 시킴으로써 일본의 닌텐도를 세계의 닌텐도로 만든 공신이 되었다.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직원들의 신망을 얻고 있었으며 다른 일본인들과 다르게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언론들과도 관계가 좋았다. 특히 미국시장에서의 활약덕분에 북극에서도 아이스 크림을 팔 수 있는 세일즈맨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실제로 각종 경영관련 상들을 수상했다.


그런데 정작 2002년 야마우치 히로시는 게임회사 닌텐도의 개국공신이자  사위인 아라카와 미노루를 회사에서 퇴임 시킨다. 그리고 닌텐도로 부임한지 단 2년 밖에 안된  이와타 사토루를 사장으로 임명하며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가 새롭게 발표한 집단 지도체제는 파격 그자체였다.  집단 지도 체제는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 이외에도 아사다 아츠시, 모리 히토시, 다케다 겐요, 하타노 신지, 미야모토 시게루 등 6명의 이사들이 공동 대표권을 가지고 회사의 중요한 결정들을 합의를 통해서 결정하는 지도체제이다. 


아사다 아츠시는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 보다는 키잡이의 역할을 하고 모리 히토시는 경영총괄 본부장으로써 회사의 재무문제를 전담한다. 영업본부장인 하타노 신지는 주로 라이센스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른 회사와의 업무제휴를 추진하는 일을 하였는데 한국에 지사를 세울 때 역시 하타노 신지가 직접 일을 추진하였다.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을 창조한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는 정보개발 본부장으로써 소프트웨어 개발을 책임지고 종합 개발 본부의 다케다 겐요는 하드웨어 개발을 총괄하는 구조였다. 이러한 역할 분담 자체는 IT 업체로서는 훌륭한 조직 체제이지만 문제는 중요 안건에 대해서 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는 야마우치 히로시가 지난 50여년을 넘게 혼자서 하던 일을 여섯명이 분담 분담하는 것으로 회사운영이 둔해지는 역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 뻔했다. 


원래 닌텐도는 야마우치히로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원맨회사였다. 닌텐도 내에서는 그의 말 한마디가 법이요 진리였으며 야마우치 히로시가 목표를 세우면 직원들은  그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야마우치 히로시가 화를 내면 직원들은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처럼 좌절하였고 한마디 칭찬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것보다 즐겁고 기쁜 것이 없다고 할정도로 야마우치 히로시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통치자였다. 50년을 넘게  닌텐도는 야마우치 히로시라는 원맨체제에 익숙했던 만큼  새로운 사장도 야마우치 히로시 처럼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해야 할텐데 여섯명이나 되는 이사가 공동으로 대표권을 가지는 집단 체제는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를 살수 밖에 없었다. 


원래 IT 업계는 발전속도가 빠른 만큼 그 어떤 분야보다도 의사결정 역시 빨라야 한다. 그래서 IT 업계는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CEO가 회사를 장악하기 마련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가 대표적인 인물로써 그들은 회사를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방식으로 경영했다. 허브앤 스포크방식은 수레 바퀴의 중앙축에 살이 연결되어 있듯이 CEO가 회사 전체의 중앙통로가 되어서 각 사업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말한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는 회사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사업을 직접 챙겼고 이를 통해서 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냈다. 


닌텐도 역시 야마우치 히로시를 중심으로 허브 앤 스포크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였고 대부분의 IT뿐만 아니라 게임 회사 CEO들은 야마우치 히로시와 같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총 개발 책임자였던 구타라기 겐 역시 게임사업을 위해서는 확실한 주도권과 통제권을 확보한 리더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플레이스테이션 사업을 처음 진행할 때는  임원들의 견제로 일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지만 구타라기 겐이 회사로부터 전폭적인 임무와 권한을 약속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게임사업도 가속도를 내고 탄력을 얻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후 게임회사에서는 집단 지도 체제는 안된다고 단언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야마우치 히로시가 3년을 넘게 고민한 끝에 내놓았다는 이와타 사로투 중심의 집단 지도 체제는 당초의 예상과 다르게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 특유의 화합과 결단의 리더쉽으로 6인의 집단 지도체제는 환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집단 지도체제가 시작된 2002년 이후 닌텐도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5041억이었던 매출이 어느덧 2억엔을 넘어서면서 무려 네배가 넘는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어느덧 이와타 사토루는 일본의 스티브 잡스라는 칭송을 듣고 있으며 야마우치 히로시의 마지막 결단은 그만이 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었다면서 어느덧 찬양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왜 야마우치 히로시는 수십년간 닌텐도에 충성한 여러 공신들을 제쳐두고 외부인사 그것도 하청업체 출신인 이와타 사토루를 사장으로 임명했을까?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게임산업에 완벽한 이해를 가진 인물로 한번도 자신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타 사토루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것만으는 뭔가 부족하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들어 오기까지의 삶의 궤적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닌텐도의 하청업체 직원에서 사장이 될수 있었는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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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15.08.12 07:00







학생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컴퓨터가 각광받자 급속도로 붕괴되는 산업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었다. 사실 컴퓨터와 가정용 게임기는 같은 기술로 시작한 쌍둥이와도 같고 동시에 라이벌이기도 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이미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VCS 2600가 2천만 대 넘게 판매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시 가정용 컴퓨터의 마케팅 포인트는 우선 게임을 할 수 있으며 그밖에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만능 기계로 강조하는 것이었다. 가정용 게임기의 보완재이자 대체재로써 컴퓨터를 강조하여 초기의 컴퓨터 보급을 이끌었는데 마침 컴퓨터 과목이 정식으로 학교의 교과 과목으로 채택됐을 때 컴퓨터 회사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실행한다. 게임기는 아이의 학업을 망치지만 컴퓨터는 아이를 대학에 보내준다는 것으로 이와 같은 캠페인은 놀라운 파괴력을 발휘해 실질적인 경제권을 갖고 있는 부모들이 집에 있는 게임기를 버리고 새롭게 컴퓨터를 구입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컴퓨터의 보급이 늘어가면 갈수록 놀랍게도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붕괴되었고 결국은 거짓말처럼 시장 자체가 증발되었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붕괴를 뜻하는 아타리 쇼크 후에 등장한 닌텐도의 문제는 당시 게임에 부정적이었던 여론들이었다. 실제로 처음 닌텐도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당시 언론들은 미국 사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느 일본의 무식한 기업가가 미국에 게임기를 들고 나왔다고 비아냥 거렸다. 당시 미국에서는 게임이란 이미 철이 지나도 한 참 지난 유행 같은 것이었다. 롤러 스케이트장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다가 사라졌듯이 미국에서는 게임은 그런 대접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닌텐도의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 붕괴의 원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수준이 떨어지는 게임들이 무분별하게 시장에 쏟아져 나온 것이 문제라고 봤다. 시장에서 질이 낮은 게임을 구매한 고객들이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에 실망하고 그 다음에는 게임을 아예 구매하지 않게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 검증받은 양질의 게임 콘텐츠만을 제공하면 충분히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바라본 미국 시장은 훨씬 더 심각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심한 나머지 유통업체에게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컴을 소개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아예 닌텐도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판매 책임자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위였던 아라카와 미노루였는데 오랫동안 해외에서 근무해봤기 때문에 미국의 그런 현 사정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우선 그는 패미컴이라는 제품명을  NES(Nintendo entertainment)로 바꾸고 여러가지 준비끝에 미국 최고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에 출품해봤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이미 게임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는지 가정용 게임기를 전시하고 있는 닌텐도의 부스 자체를 방문하지도 않고 외면했다. 이때 아라카와 미노루는 너무나 큰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야마우치 히로시에게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싶다고 밝힐 정도였다. 하지만 야마우치 히로시는 호통을 치면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500만 달러의 금액을 제시하면서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지시했다.


결국 아라카와 미노루는 패미컴이 가정용 게임기로 시장에 접근하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패미컴이 게임기라는 이미지로부터 탈피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패미컴의 디자인도 새롭게 수정하고 각종 부가 기능을 추가했다. 또한 패미컴은 그 자체가 패밀리 컴퓨터라는 약자에서 보여 주듯이 단순히 가정용 게임기가 아니라 컴퓨터의 기능도 고려한 제품이라고 선전했다. 사용자들은 패밀리 컴퓨터로 베이직 언어를 이용하거나 워드프로세서 작업도 할 수 있었고 또한 사운드 칩을 내장해 이를 통해 컴퓨터 음악도 구현할 수 있었는데 아라카와 미노루는 이와 같은 장점을 강조하면서 판촉전을 펼쳤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유통회사로부터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라카와 미노루는 다시 완구 제품의 이미지로 패미컴을 재정립하기에 이른다. 닌텐도가 일본에서 내놓아 크게 히트한 완구제품인 로봇 형태의 장난감 R.O.B(Robotic Operating Buddy)를 보너스로 추가해 함께 판매한 것이다.






 R.O,B는 말 그대로 로봇 형태의 장난감이었는데 패미컴의 컨트롤러로 각종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었고 이는 많은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또한 재퍼라는 총 모양의 컨트롤러도 함께 추가했는데 이는 총을 쏘는 사냥 게임으로 실제로 체감하는 느낌의 재미를 살린 제품이었다. 아라카와 미노루의 미국 지사는 당시의 기준으로 일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정용 게임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패미컴을 유통업체에 소개한 덕분에 그나마 완구점을 통해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시장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미국에서 새롭게 가정용 게임기를 판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애초에 패미컴을 취급해주는 가게는 그야말로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패미컴의 판매는 계속 지지부진 하였고 결국 닌텐도는 파격적인 유통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게에서 전시해주기만 해도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무료로 패미컴의 견본품을 보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가게에 패미컴을 전시할때는  닌텐도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서 패미컴을 설치하였고 가게 전체를 예쁘게 인테리어까지 해주었다. 


또한 패미컴의 재고가 생길 때 100% 환불해주기로 하는등 유통 상인의 입장에서는 패미컴을 상점에 전시한다고 하면 손해볼것도 없었고 오히려 이익이 더 많았다. 사실 일본에서 패미컴을 유통하는 사람은 무조건 선불금을 내고 물건을 가져가야 했으며 재고는 절대로 받아주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미국에서의 각종 인센티브는 파격 그자체로서 시장 개척을 위해 닌텐도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패미컴이 팔리든 안 팔리든 부담이 없었던 미국의 유통점들은 가게 한 켠에 패미컴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통점을 하나씩 장악하던 중에 마침 미국 최고의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왔고 이때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고르던 부모들은 가게에 예쁘게 전시되어 있던 장난감으로서의 패미컴이 눈에 띄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하여 패미컴 판매에 불이 당겨졌다. 한번 패미컴의 판매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식을줄을 몰랐고 이미 죽었다는 게임시장은 완벽하게 부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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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분류없음2015.08.11 07:00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 붙여 큰 성공을 거둔 일화는 야마우치 히로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어찌보면 야마우치 히로시는 스티브 잡스보다도 인생의 굴곡이 많았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야마우치 히로시는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해서 카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의 카드는 단순히 게임을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지만 디즈니의 인기 있는 캐릭터를 넣으면 사람들이 갖고 싶고 보관하고 싶은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아이디어는 일본 시장에도 그대로 적중해서 디즈니 카드는 무려 60만 개에 이르는 판매량을 기록한다. 디즈니 카드의 대 히트 이후 닌텐도는 명실공히 일본 최대의 카드 회사로 거듭난다.


디즈니의 캐릭터를 이용한 카드의 성공을 바탕으로 닌텐도는 1962년 주식 시장에 상장되고 야마우치 히로시는 대규모의 자금을 공급받게 된다. 이에 고무된 그는 오래 전부터 소망하고 있던 닌텐도의 사업다각화를 위해 다양한 업종에 뛰어든다. 그는 시대가 갈수록 빠른 것을 원한다고 판단해서 인스턴트 식품업에 뛰어들지만 곧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다. 그 후 일본 전체의 풍요로운 산업 발전으로 레저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택시와 같은 운수업과 호텔 같은 숙박업 등에도 진출하지만 새롭게 시도한 사업 모두 줄줄이 망하고 만다. 


이 결과로 한때 980엔에 이를 정도로 유망한 주식 종목 중 하나였던 닌텐도의 주가는 20엔까지 급락하게 된다. 이때 야마우치 히로시는 마지막 시도라는 심정으로 닌텐도가 놀이를 제공하는 카드 회사인 만큼 장난감을 개발해 보는 것이 어떨까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마침 공장 직원 중 한명이 손수 만든 장난감으로 재미 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 장난감을 보는 순간 야마우치 히로서는 직관적으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장난감을 상품으로 개발하라고 직원에게 지시를 하고 판매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1962년에 발매된 이 장난감의 이름은 울트라 핸드로 600엔의 가격에 발매 되어서 무려 140만 개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한다. 이러한 놀라운 히트 재정적으로 수렁 속에 빠진 닌텐도의 어려움이 단번에 해결되었다.





울트라 핸드를 발명한 직원은 요코이 군페이였는데 그는 수공업으로 이루어지던 카드 생산을 기계를 이용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 고용한 기술자였다. 원래 닌텐도의 직원은 대학 졸업자가 별로 없었지만 요코이 군페이는 회사의 공장 자동화를 위해 회사에서 뽑은 몇몇의 고학력자 가운데 하나였다. 사실 야마우치 히로시가 고학력의 고급인력들을 사원으로 뽑겠다고 할때만 해도 사내의 반발이 심했다. 카드회사에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하지만 야마우치 히로시는 지금 당장보다는 미래를 위해서 고급인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코이 군페이 역시 야마우치 히로시의 고급인재 전략 덕분에 입사한 사원이었다. 울트라 핸드의 히트 이후 야마우치 히로시는 요코이 군페이를 공장의 자동화 시스템 개보수 관련 업무 담당자에서 장난감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총책임자로 임명한다.


한편 야마우치 히로시는 장난감 울트라 핸드의 성공덕분에 생겨난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하여 또 다시 여러 업종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육아용품을 만들고 사무기기 등의 문구업까지 손을 대지만 야마우치 히로시는 또 다시 크게 실패하고 만다. 이 무렵 야마우치 히로시는 다른 사람이 먼저 시작한 사업을 따라해 봐야 결국 남에게 뒤쳐질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남을 따라가기 보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마침 울트라 핸드를 개발한 요코이 군페이가 이번에는 전자기술에 장난감을 접목한 광선총을 개발한다.  광선총은 일본에서 사회현상으로 불릴 만큼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덕분에 닌텐도는 일본 최고의 완구업체로 등극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을 통해서 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의 발전 방향을 전자기술과 놀이의 결합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관련 업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서 크리스마스 성수기의 판매량을 높게 잡고 미리 많은 장난감을 대량 생산해 놓지만 때마침 터진 오일 쇼크 때문에 회사는 다시 어려움에 빠진다. 닌텐도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도 힘들어졌고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외부에서 돈을 빌리러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1972년에 세계최초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마그나복스의 오딧세이가 등장하는데 이를 본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도 전자오락 분야에 진출한다. 비디오 게임이야말로 닌텐도의 미래라고 생각한 그는 새로운 대졸 신입사원들을 받아들여 게임 개발에 매진하게 한다. 1975년에 닌텐도는 마그나 복스의 오딧세이를 일본에서 직접 유통한다. 또한 닌텐도는 일본의 대표 전자업체인 미츠비시와의 합작으로 가정용 게임기인 GAME 6와 GAME 9을 자체 개발한다. GAME 6는 게임기에 여섯 개의 게임이 들어가고 GAME 9는 9개의 게임이 들어있는 게임기를 의미하였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닌텐도는 이제 언제 망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때 또 다시 등장해서 닌텐도의 위기를 구해낸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요코이 군페이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철도인 신칸선을 타고 가다가 어느 회사원이 휴대용 전자계산기를 들고 심심풀이로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휴대용 게임의 가능성을 깨닫는다.





요코이 군페이의 아이디어를 들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샤프전자와 협력해서 휴대용 게임기를  개발하도록 지시한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게임워치이다. 일본의 아이들은 방과 후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많고 그래서 다른 나라 또래들에 비해 자투리 시간이 많다.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워치는 자투리 시간을 무의미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이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시켜주었다. 일본에서는 버스와 전철에서 게임워치를 즐기는 많은사람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처음 게임워치를 발매하려고 할때만해도 주위에서는 12800엔이나 되는 장난감을 사는 사람이 없을것이라고 야마우치 히로시를 비웃을 정도였지만 게임워치의 성공은 매우 놀라웠다. 게임워치 성공 덕분에 무너져가던 닌텐도가 회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게임 워치 발매전에 닌텐도의 빚이 무려 80억 엔에 이를 정도였지만 게임워치의 극적인 성공으로 단숨에 회사의 모든 빚을 갚고 40억 엔에 이르는 자금을 은행에 저금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워치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무렵 마침 닌텐도의 업소용 게임 사업부에서 개발한 동키콩이 미국에서 히트해서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한다. 동키콩의 성공으로 닌텐도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유명기업으로 통하게 되는데 동키콩의 게임 기획자가 오늘 날 게임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미야모토 시게루이다. 하드웨어 기술이 뛰어난 요코이 군페이와 게임 소프트웨어의 디자인이 뛰어난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양 날개를 단 야마우치 히로시는 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그것은 바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으로의 진출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타리 쇼크라고 해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붕괴되고 있을 무렵으로 한때 유행한 디스코나 롤러스케이트처럼 게임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질 무렵이었다. 이와 같이 암울한 시장 상황과 주위의 비난과 비아냥 속에 개발된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이 미국시장에 발매하게 되는데..


<다음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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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10.12.05 08:22



이글은 포켓 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스토리 -하편- 으로  마지막 글입니다. 이전의 글을 보고 싶으면 아래 글을 클릭하세요.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상-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중-   포켓몬스터의 놀라운 미디어 믹스 전략



포켓몬스터는 일본에서 게임이 먼저 나오고 또한 게임을 중심으로 프로모션이 진행되었던데 비해 미국에서는 에니메이션이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에니메이션을 총책임졌던 쿠보마사카즈가 미국을 몇번이나 방문하면서 관련 프로젝트를 협의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에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포케몬에는 일본식 이름이 들어갔는데 미국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발음이 많았다. 사실 애초부터 포켓몬스터라는 말 자체가 걸림돌이 되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이 몬스터라고 하면 거대하고 우락부락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포켓 몬스터의 캐릭터들은 한결같이 귀여운 이미지였다. 그래서 미국쪽 관계자들은 포케몬의 캐릭터는 몬스터이미지와는 너무 상반된다면서 제목도 바꿔야 하고 캐릭터 이름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일본 닌텐도 관계자들은 전세계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명칭도 전세계에서 통합되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몬스터 이름이 국가마다 다르면 전세계적인 사회현상을 불러일으키가 힘들어 진다고 생각한 닌텐도는 결국 에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바꾸는 대신 몬스터들의 명칭은 가능하면 원작을 유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에니메이션 내용에는 좀더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경우 선과 악의 개념이 모호했지만 미국에서는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에니메이션 내용을 몇차례 수정해야만 했다.

그런데 에니메이션 판권을 가지고 있던 4Kids사가 미국 지방 방송국을 상대로 .방영권을 파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 미국 방송국은 과거 일본 에니메이션들의 시청률이 저조했다는 이유로 포켓몬스터를 방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닌텐도는 500만달러를 프로모션 비용으로 책정하고 있다면서 겨우 겨우 방송국을 설득할 수 있었다. 1998년 9월 9일 드디어 포케몬이 미국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닌텐도는 캐릭터를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만들기 위해  KFC와 2500만달러를 들여서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캐릭터 상품을 나누어주는 캠페인을 벌이며 분위기를 띄운다.

  9월 28일에는 게임 포켓몬트서가 발매되었다. 에니메이션과 게임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서로의 인기를 상승 시켰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게임과 에니메이션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장난감과 카드 같은 관련 상품이 연달아 발매되면서 닌텐도가 당초 계획한대로 포케몬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너도나도 포켓몬을 하기 시작하더니 아예 초등학생들에게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포켓몬을 잘하면 아이들에게 인기 학생이 되었지만 못하면 학교생활에 소외감을 느껴야 할정도로 사회적 현상으로 발전했다.  포케몬의 히트로 미국에서는 찬반 양론이 일어났다. 아이들의 정서를 헤친다는 반대의견과 포케몬은 머리를 쓰는 게임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고력을 높여준다며 칭찬하는 부모도 있었다. 한편 포켓몬스터의 에니메이션은 게임을 사라는 광고에 불과하다며 혹평하는 사람들은 닌텐도의 사행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반면에 아이와 대화가 없었지만 포케몬을 함께 즐기며 재미있는 휴일을 보냈다면서 포케몬을 칭찬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실 이런 논쟁자체가 포케몬의 존재를 세상에 더욱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단순히 닌텐도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까지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 마리오가 일본인들에 대한 선입관을 약간 바꾸기는 했지만 포켓몬스터 만큼은 아니었다. 포켓몬스터의 팬들은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일본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으로 발전되었고 급기야 다른 일본 문화상품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본 에니메이션의 수출도 덩달아 늘어났다.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일본 에니메이션이라면 무조건 미국방송국에서 판권을 구입하던 시기도 있었다.  포켓 몬스터의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포켓몬스터를 즐겼던  세대는 인터넷 세대였다. 그들은 포켓몬스터에 대한 내용을 교환하기 위해서 홈페이지를 개설했는데 이들은 나중에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을 추가하면서 일본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까지 수행하였다.

 포켓 몬스터는 일본에서의 매출이 1조엔 그리고 해외에서의 매출이 2조엔에 이르고 있으며 게임소프트웨어 전체시리즈는 1억 8600만개가 팔렸다.  포케몬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봐도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국가이미지 개선등에 미친 부과효과까지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성공이었다.  그런데 이런 성공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공을 되짚어보면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우선 제작초기부터 해외를 고려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몇가지 선택이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닌텐도는 문화의 특수성에 기대지 않고 인간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만든다. 포켓몬스터 역시 너무 일본적인 요소는 배제 되었다. 특히 포켓몬스터의 인기 캐릭터인 피카추는 무국적성을 띄고 있으며 캐릭터는 성별에 따라서 남자와 여자의 선호도가 달라지는데 피카추는 아예 그런 성별을 알수가 없다. 원래 포케몬스터는 피카추가 아니라 분홍색깔을 가진 다른 몬스터를 메인으로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그 분홍색은 너무 여성취향적이라는 이유로 노란색의 피카추를 주인공으로 결정했다.

원래 무엇인가 붐이 일어났다고 언론에서 떠들면 그 순간 붐은 끝났다고 한다. 사실 포켓 몬스터의 경우 많은 사람들은 단기적인 붐으로 끝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런데  포켓몬 붐이 한가창 일 때 닌텐도는 아예 이시하라 츠네카츠를 사장으로 한 주식회사 포케몬을 창업시켰다 처음에 사람들은 포케몬의 인기는 금방 시들어질 텐데 그때는 포켓몬이라는 회사는 어떻게 될것이냐며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그건 도요타나 닛산에게 자동차의 시대가 끝나면 어떻게 할것입니까라고 묻는것과 같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포켓몬의 창업이유가 포케몬을 영원히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포켓몬만으로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직원들의 마음가짐도 다르고 오직 포켓몬만 생각하다 보니 더욱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생겨났다.  또한 포켓몬스터 에니메이션은 전세계적으로 7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방영중이고 여기에 각 나라별로 게임과 캐릭터에 대한 판권등이 존재하는데 이런 라이선스를 관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었는데 주식회사 포켓몬을 출범시킴으로써 이를 일원화 할 수 있었다.

덕분에 프로모션을 할때도 전세계에서 짜임새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일회성 붐을 지속가능한 문화로 만들기 위한 취지로 창업한 주식회사 포켓몬의 철저한 브랜드 관리덕분에 지금까지도 포켓몬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포켓몬스터가 예전처럼 사회현상의 한가운데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는 매년 여름에 개봉되어서 흥행에 성공하고 있고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송중이며 2006년 등장한 포케몬 다이아몬드/펄은 무려 1680만장이나 판매되었다.  포켓몬의 성공을 보면 새삼 닌텐도의 대단함이 느껴진다. 포켓몬스터의 성공에 빠질 수 없는 건 닌텐도의 과감한 투자였다. 사실 게임 포켓몬스터를 만든 회사인 Game phreak은 이렇다할 실적이 없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손수 제작비를 투자했고 개발자들 스스로 포기하고 싶어할 정도로  개발이 어려움에 닥쳤을때는 오히려 닌텐도가 나서서 물심양면으로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닌텐도는 하나의 게임에 무려 6년동안이나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로모션과 미디어믹스 전략을 세울 때 역시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이렇게 닌텐도가 장기적으로 포켓몬스터를 지원해주고 거액을 들여서 프로모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가치를 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포켓몬스터의 가치를 제대로 봤기에 투자도 하고 작품이 완성되도록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런데 닌텐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결국 원동력도 결국 가치를 보는 눈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닌텐도가 처음 패미컴을 만들어서 성공시키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이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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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10.12.03 08:22




포켓 몬스터는  중학생 시절부터 게임광으로 유명했던 타지리 사토시로부터 시작된다. 1965년 도쿄의 외곽 지역인 마니치에서 태어난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는 순간 완전히 게임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즐겼다. 어느 날은 부모님이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라고 했는데 그는 오락실과 가장 가까운 곳의 학원을 등록할 정도로 게임에 미쳐있었다. 그의 게임 실력도 출중하여서 오락실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에 마침 세가에서는 게임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는데 여기에 응모를 한 타지리 사토시는 대상을 받게된다. 이후 게임의 세계에 더욱 빠져든 그는 다음 해에 게임 잡지 GAME Freak 를 직접 창간한다.  1983년은 닌텐도에서 패미컴이 발매되던 해로 게임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인정받기 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게임 잡지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에 17살의 타지리 사토시는 직접 잡지를 창간하고 게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것이다.  물론 GAME Freak 은 정식 게임잡지라기 보다는 아마추어들의 동인지와 비슷했다. 타지리 사토시는 당시 인기 있던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돈키콩과 같은 인기 게임의 공략이나 숨겨진 비법들을 직접 손으로 쓴 후 이를 복사하고 후치케스로 찍어서 잡지를 만들었다.  차마 잡지라고 부를 수 없을정도로 겉모양은 조악했지만 내용은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그래서 300엔에 팔았던 이 잡지는 한때 만권씩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오늘날 일본 게임 잡지의 원조로 인정받고 있다.

원래 타지리 사토시의 부모님들은 그가 공부를 해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 원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타지리 사토시는 더욱 게임에 빠져들었고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갔다.  결국 전문고등학교를 졸업한 타지리지 사토시는  패미통과 같은 게임 전문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생활을 하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게임에 대한 글들을 계속 쓰면서 어느덧 재미있는 게임과 그렇지 못한 게임을 구분할 수 있는 직관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게임을 제작하면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한 그는 2년간의 노력끝에 겨우 게임을 제작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된다. 그는 이때  게임 작가로 활동하면서 알게된 인맥을 총동원해서 패미컴 게임개발을 위한 팀을 구성한다.  그런데 그가 게임을 제작한 방식은 당시로 보면 획기적이었다. 당시 패미컴으로 게임 개발을 하려면 닌텐도에 허락을 받고서 제작을 해야 했다. 하지만 타지리 사토시는 프리랜서 방식으로 팀원들을 모은 후 게임을 먼저 만들었고 그후 유통사를 찾았다. 이는 마치 영화와 비슷한 형태의 제작방식으로 화제가 되었다.  타지리 사토시가 만든 게임은 1년 간의 제작끝에 만들어졌다.  쿠인티라고 이름 붙여진 이게임은 남코를 통해서 발매된다. 쿠인티는 20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는데  타지리 사토시는 이때  5천만엔을  벌게된다.   이 돈을 가지고 타지리 사토시는 아예 정식으로 게임 회사를 창업한다. 회사의 이름은 그가 창간한 잡지명을 따라서 GAME Freak 로 결정했다.

1989년 닌텐도에서는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를 출시 한다. 테트리스의 인기 덕분에 게임보이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그런데 테트리스가 인기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두개의 게임보이를 통신케이블로 연결해서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이었다. 타지리 사토시는 게임보이의 통신 케이블로 많은 사람들이 테트리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나오기전 타이지리 사토시는 동네주변의 주차장과 숲속을 돌아다니면서 잠자리 같은 곤충을 채집하면서 놀았다. 타지리 사토시는 제대로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서 곤충의 습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고 어느덧 친구들에게 곤충박사로 불리면서 인기가 많았다.  이렇듯 그는 곤충을 보면서 자연을 이해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더욱 친해질수가 있었다. 그런데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더 이상 동네에서 곤충을 채집할 수 없게 되었다.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게임으로 재현보고자 했다.  도시화로 인해서 곤충 채집의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즐거웠던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통신 케이블을 통해서 캐릭터와 아이템을 교환한다는 개념의 포켓 몬스터였다. (그래서 처음 게임이름은 캡슐몬스터였음)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평소부터 친하게 지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에게 들려주었다. 둘의 인연은 게임관련 다큐멘타리를 만들고 있던 프로듀서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일본에서 가장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던 중 타와지리 사토시를 소개 받으면서 시작된다.  게임 기판을 수집하는게 취미였던 타와지리 사토시는. 70년대와 80년대에 발매한 대부분의 게임기판을 가지고 있었고 게임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풍부하였는데 이에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타지리 사토시 역시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자 텔레비전 업계에서 유명인사로 통하는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자 호감을 느끼고 이후 계속 해서 교류하게 된다.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은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에이프라는 회사에 타이지 사토시를 소개시켜준다. APE는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앞으로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가 고갈될 수 있으니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해서 독창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창업한 회사였다. 에이프의 사장은 광고 천재로 유명한 이토이 시게사토였는데 이시하라 츠네카츠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1990년 이시하라 츠네카츠의 소개로 타와자리 사토시는 APE를 직접 방문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한다.  마침 에이프에는 닌텐도에서 파견 나 온 카와구치 다카시가 근무중이었는데 그는 이 아이디어를 닌텐도 본사에 들어가서 보고한다. 타지리 사토시의 아이디어가 마음에든 닌텐도는 전격적으로 개발자금을 투자하기로 한다.

처음 계약할 당시에는 1991년까지 닌텐도에 게임을 납품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구현하는게 쉽지가 않았다. 게임보이가 가지는 성능의 한계도 있었지만 게임 개발을 하면서 타지리 사토시의 욕심도 더욱 커졌다. 당초 기획과는 다른 아이디어들이 계속해서 추가되어갔고 게임 제작은 계속 지연되었다. 그러자 직원들도 하나 둘 회사를 그만두기 시작했다. 이때 이사하라 츠네카츠는 포켓 몬스터 개발에 모든 걸 올인하지 말고 머리도 식힐겸 다른 쉬운 게임을 먼저 개발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당시 회사의 개발자금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포켓몬스터 완성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스터 제작을 중지하고 닌텐도로부터 제안 받은 여러 게임을 하청의 형태로 개발 해준다. 이때 그가 개발한 게임이 요시아일랜드와 와리오 마리오였다.  특히 요시 아일랜드는 해외에서 게임이 많이 팔리면 개런티를 더 받기로 계약을 했다. 그런데 요시 아일랜드가 해외에서 큰 히트를 한 덕분에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회사는 풍부한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는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여러 게임을 개발하면서 회사의 개발력도 향상시키는등 제작중지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돌아왔다.

한편 이런 저런 사정으로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에이프가 사실상 폐쇄되자 회사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크리쳐즈를 창업한다. 그리고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자신이 프로듀서가 되어서 직접 포켓몬스터를 챙기기 시작한다. 사실 타지리 사토시는 여러 번 포켓몬스터 제작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럴때 마다 옆에서 포켓몬스터를 계속 개발해주도록 용기를 주고 지지했던 사람이 이시하라 츠네카츠였다.  특히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카드 게임에 조예가 깊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포켓 몬스터에 다양하고 값진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실제로 포켓몬스터가 제작중지된 상태에서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제시한 게임아이디어 덕분에 다시 프로젝트가 살아날정도였다.  

포켓몬스터 제작이 재개 된후 10명의 개발자들은 한 사람이 된것처럼 의기투합하게 된다. 나중에 포켓몬스터의 성공 요인은 10명의 개발자가 모두 같은 비전을 한마음으로 품었기 때문이라고 밝혀질 정도로 정말 하나가 되어서 열정적으로 게임을 개발한다. 다시 게임 제작이 시작 된 후 포켓 몬스터는 초기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갔다.  원래 포켓몬스터는 전투위주의 게임이었지만 나중에는 150마리의 몬스터를 수집해서 도감을 완성한다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또한 수집된 몬스터는 애완동물의 이미지였지만 나중에는 친구와 동료의 이미지로 바뀌었고 스토리도 덩달한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로 수정되었다. 고객들이 몬스터를 통해서 자신의 개성을 더 나타낼수  있도록 수집한 몬스터의 이름을 바꿀수 있게 하는등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나중에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스터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이는 팀원들이 함께 만든 게임이라고 밝힐정도로 팀원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명작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많은 곡절을 겪은 끝에 포켓몬스터는 1995년 겨우 완성이 된다. 원래 포켓몬스터는여름에 발매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새로운 형태의 대작 게임이었던 관계로 예상치 못한 오류들이 대거 발견되었다.  오류를 찾고 수정하는데만 해도 몇 개월의 시간이 더 걸렸다. 결국 포켓몬스터는 1996년 2월 27일에야 겨우 발매되었다  처음 닌텐도는 게임의 성공을 확신하고 텔레비전 광고를 집중적으로 방영하는등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초기 포켓몬스터의 성적은 단 7만 5천장의 주문을 받을 정도로 저조했다.  그런데 포켓 몬스터는 다른 게임과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판매량이 늘어 났다.  이렇게 게임의 인기가 늘어난 건 일본의 인기 만화잡지인 코로코로 코믹스에 포켓몬스터 만화가 연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치밀한 미디어 믹스 전략의 결과였다.

<내일은 포켓몬스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중편으로 포켓몬스터가 일본에서 히트작이 되는 과정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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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10.11.17 08:17



1. 좋은 아이디어는 팀워크로도 만들어진다.

세상에는 마리오의 창조자인 미야모토 시게루 같은 천재는 적다. 하지만 팀워크로도 좋은 아이디어는 탄생할 수 있다.

2. 때로는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게 더 빠르다

4년동안 교착상태였던 게임 마더2의 해결사로 투입된 이와타 사토루는 과감하게 처음부터 원리에 맞게 개발을 함으로써 단 1년만에 개발을 완료한다.

3. 적을 만들지 않는다.

외부에서 사장으로 영입된 이와타 사토루는 회사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사내에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4. 효율성을 추구하라

이와타 사토루는 개발의 중복작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개발의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서 이를 하고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환경제작부를 조직한다.

5. 위기의식을 강조하되 패배의식은 안된다.

변화하지 않으면 닌텐도는 서서히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강조한 이와타 사토루는 철저히 현상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강점을 살린 가운데 변화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6. 직원은 한번에 변하지 않는다.

이와타 사토루는 사람이란 한마디의 말에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기회있을 때 마다 회사의 방침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면서 직원들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7. 실패만 기록한 팀에게는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닌텐도 사내에서 실패만 기록했던 팀을 네트워크 개발부라는 이름으로 재편하고 사장의 직속의 기구로 편입하였다. 그 후 네트워크 개발부는 WiFi-Conection이라는 닌텐도의 핵심서비스를 개발하여 닌텐도 부활에 일조하였다.

8. 실패를 보약으로 만들어라!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서 만든 첫번째 상품은 게임 큐브였다. 하지만 게임큐브는 실패를 기록하였고 닌텐도를 3인자로 만들었다. 게임큐브에 대한 반성에서 이와타 사토루는 전략을 재검토하고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9. 등치가 큰 기업과는 정면승부하지 마라!

이와타 사토루는 IT 기업의 황제인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전자기업의 거인 소니와 정면 승부해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그들과 경쟁하기 보다는 그들과 다른 창조적인 상품을 개발하는데 전념한다.

10. 시장을 연구하라!

이와타 사토루는 상품이 팔리면 팔리는 이유를 연구하고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이와타 사토루는 8월에 두뇌트레이닝이 갑자기 많이 팔리자 가족이 함께 모인 추석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후속편을 일부러 연말에 출시하였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11.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

하드웨어의 성공에는 위대한 소프트웨어의 존재가 있었다. 닌텐도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는 생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을 쏟는다.

12. 안된다는 생각보다는 한번 해본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닌텐도는 어떤 아이디어든 초기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디어를 말로만 평가하는게 아니라 직접 실험을 해보고 아이디어에 대한 검증의 단계를 거친다.

13. 확실한 테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닌텐도 위핏은 원래 몸무게를 잰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지만 인간의 밸런스를 교정한다는 테마를 결정하자 여러 아이디어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14. 핵심 아이디어는 그냥 얻는게 아니다.

아이디어는 천재의 번뜩임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로 다듬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반복되어야 한다.

15.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닌텐도의 대표적인 히트상품인 닌텐도 위핏과 닌텐도 위는 산처럼 많은 실수를 반복해서 만들어졌다.


16. 창조적 파괴

닌텐도는 단순히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기존의 존속성 기술을 파괴하는 와해성 기술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한다.


17. 원점으로 돌아가자

때로는 창조를 위해 원점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닌텐도는 화려하고 호화로운 게임이 대세를 이루는 시점에서 그래픽보다는 재미의 본질이 중요했던 패미컴 시대에서 더욱 많은 영감을 얻었다.

18.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열정

닌텐도의 초상화 서비스 Mii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20년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가졌기에 겨우 완성된 상품이었다.

19. 벽없는 조직

닌텐도는 유저층 확대 프로젝트나 본체검토 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직간의 벽을 허물고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20. 다양한 합작 방식

닌텐도는 조직이 가지는 분명한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업체들과 합작을 하거나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신선하고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하였다.

21. 다른분야의 시든 기술을 아이디어와 결합하라

가격이 싸진 다른 분야의 시든 기술에 신선한 아이디어를 결합하면 게임 & 워치나 닌텐도 위처럼 고부가 가치 산업을 창출 할 수 있다.

22. 기술은 인간을 향해야 한다.

첨단 기술이 무조건 고객을 만족시키는 건 아니다. 기술을 자랑하지 말고 고객이 당장 필요한 기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23. 사용자는 설명서를 읽지 않는다.

닌텐도는 사용자가 설명서를 읽지 않는다는 전제아래서 상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닌텐도의 상품을 보는 순간 즉시 사용할 있는 직관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게되었다.

24. 고객을 탓하지 마라

닌텐도는 고객이 상품을 구입한 후 개발자들의 생각대로 상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닌텐도의 패배로 생각하지 고객을 탓하지 않는다.

25. 기능중심의 사고가 아이디어를 창조한다.

닌텐도는 겉모습보다는 철저히 기능중식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탄생한다.

26.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일체의 생각

닌텐도의 경쟁력은 하드웨어를 만들 때 최고의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닌텐도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하드웨어를 빛낼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면서 히트작을 연발했다.

27. 창조는 실패를 대비해야 한다.

창조는 실패할 확률이 큰 만큼 위험을 대비해야한다. 그래서 닌텐도는 평소 한푼이라도 아끼려하고 히트가 보장된 프렌차이즈 개발에도 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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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10.04.05 08:23


닌텐도의 모든 것은 결국 창조로 귀결된다. 그들은 창조적일 때 빛났고 창조적이지 못했을 때 그들은 어려웠던 시기를 보냈다. 닌텐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창조를 통해 부활한 만큼 그 어떤 회사보다 창조적인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를 주제로 닌텐도를 바라보면 그들의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창조는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창조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과거에 이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닌텐도는 마케팅 자료로 상품을 평가하지 않는다. 실제로 패미컴과 포켓몬스터가 미국에 진출할 때에도 닌텐도는 마케팅 자료를 참고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마케팅 자료를 참고했다면 미국에서 패미컴과 포켓몬스터를 감히 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창조적인 상품이 시장에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만약 성공을 이루게 하는 엄청난 법칙을 알고 있다고 자만한다면, 절대로 성공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성공을 경험했다고 해서 자만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 닌텐도는 이러한 자만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것이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게임 산업은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창조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창조 역시 성공하면 엄청난 이익이 따라오지만 실패하면 회사에 큰 타격을 입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닌텐도는 항상 실패를 대비하면서 회사를 운영한다. 그들은 평소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으며,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않고 있다.

닌텐도와 다른 회사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많은 회사들이 창조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거창한 구호에 불과하다. 창조를 외치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한다. 실패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야만 비로소 창조다운 창조를 할 수 있다. 닌텐도는 무조건 창조를 외치는 대신 우선 남들과 다른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시도하는 행위 자체를 서로 칭찬하고 실패에도 관대하다.

닌텐도가 상품을 만드는 방식인 끊임없는 실험과 검증은 사실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면서 최종적인 제품으로 완성해가는 시스템이다. 닌텐도 위의 컨트롤러를 만들 때 닌텐도 본사 복도에는 실패한 시제품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성공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의 위축도 없이 계속해서 도전했고, 결국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게임 컨트롤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닌텐도의 전매특허인 밥상 뒤집기 역시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고 새롭게 다시 만드는 것이다.

또한 닌텐도 내부에서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겨우 상품을 시장에 출시했지만 정작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개발자들이 문책당하고 벌을 받지는 않는다. 게임 하나가 히트한다고 해서 성과급을 주거나 특별대우를 하지 않듯이 실패한다고 해서 개발자들을 벌하지 않는다. 닌텐도 DS의 개발 책임자인 오카다 사토루는 직원들에게 닌텐도의 전통을 설명하면서 실패가 경험이 되는 것이니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실패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닌텐도의 사고방식이야말로 겉으로만 창조를 외치는 다른 회사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업문화를 살펴보아도 닌텐도는 필연적으로 창조를 위한 회사임을 알 수 있다. 닌텐도는 직원들에게 경쟁심을 가지지 말라고 한다. 닌텐도는 직원 사이에서뿐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와의 관계에서도 경쟁심을 갖지 않는다. 이는 라이벌 회사에 대한 경쟁심을 적극 활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대비된다. 경쟁심을 없앤 닌텐도는 블루오션의 개척자가 된 반면에 승부욕을 강조하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레드오션의 최강자가 되었다. 사실 이는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레드오션은 수많은 경쟁자들이 싸우고 있는 곳이다. 승부욕이 강한 기업이 수많은 경쟁자들을 싸워 물리치는 것이 레드오션의 숙명인 것이다. 반면에 닌텐도는 경쟁보다는 남들이 하지 못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니 결국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장인 블루오션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닌텐도의 창조는 단순히 게임 안에서의 혁신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패러다임까지 파괴하면서 게임의 틀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이와타 사토루는 게임이란 사람이 무엇인가를 입력하면 이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같은 정의를 따른다면 세상에 게임이 아닌 것은 없다. 닌텐도는 과거 기준으로 보면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위대한 밥상이나 영어 삼매경 같은 소프트웨어를 발매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사카 전기통신대학은 닌텐도 DS를 활용해 영어 수업을 진행했는데 성적이 대폭 향상되자 다른 과목에서도 닌텐도 DS를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닌텐도는 게임의 틀을 확장시킴으로써 회사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있다.

닌텐도의 기업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철학은 모두 창조를 향해 있고 그들의 생존과 성공은 모두 창조 덕분이었다. 닌텐도라는 기업은 그 자체로 창조의 위대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닌텐도의 창조성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닌텐도는 자신들보다 훨씬 규모가 큰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당당히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선진국의 초일류 기업들과 값싼 노동력이 무기인 중국 기업 사이에서 고전하는 우리나라의 여러 기업들이 지금 당장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초일류 기업을 흉내만 낸다면 자금과 기술이 뛰어난 기업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수많은 중국 기업들에게 우리의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샌드위치 신세가 된 우리에게 닌텐도야말로 매우 훌륭한 성공모델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기대 이상으로 매우 선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독 미국의 애플이나 일본의 닌텐도 같은 기업이 없다. 우리가 한 단계 진보하기 위해서는 애플이나 닌텐도 같은 기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애플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계가 있는 롤모델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애플은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인재들을 고용해 스톡옵션과 같은 성과급으로 보상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자유롭게 이직할 수 있다. 마치 전세계 야구선수가 메이저리그로  모이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연봉을 받고 있듯이 말이다. 이에 비해 닌텐도는 일본 사람 그것도 교토 지역 사람들 위주로 인력을 공급받고 있음에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성과급보다는 고용안정을 통해 인재들을 붙잡고 있다. 사실 일본의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우리나라와 대만의 업체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닌텐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들도 일본 기업들처럼 중국 기업들에 의해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우리나라에도 닌텐도 같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기업들이 탄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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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10.04.01 08:17

저는 우리나라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러가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IT 분야에서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되는게 우리가 한단계 도약하지 않으면 지금 일본이 겪는 문제를 똑같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가격 경쟁력 역시 한 몫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 경쟁력이라는 문제에서 보면 나중에 우리는 중국이라는 경쟁자를 만나게 될것입니다. 일본이 한국기업때문에 요즘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한국은 나중에 중국때문에 더 크게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조업의 숙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조업의 생산기지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지금은 한국과 대만으로 넘어오는데 결국지금 한국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제조업 산업의 우위는 중국으로 넘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업을 보면 그런 전조가 보입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세계 제1위의 조선강국이라면서 그 신화를 찬양하는 글들을 수없이 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조선업으로  검색하면 중국에 의해서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를 진단하는 기사가 수두룩합니다.  조선업 신화가 이렇게 금방 위기론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다른 산업 역시 중국이라는경쟁자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겁니다. 다행히 지금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너무 조급해 하지말고 대책을 세우면 될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선발주자가 후발주자에게 역전당하는 것을 보면 일등보다 성능이 좋은데 가격이 비슷하면 일등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이래서 2등이 편한겁니다. 1등이 만든제품에다가 기능을 몇가지 추가하고 가격은 싸게 만들면 되니 고민할것도 없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중국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들을 잘 분석하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즉 후발주자보다 성능도 부족하고 가격도 비싼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업체들이 있기 때문이죠.

제가 그 토록 강조하면서 한국이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업으로 손 꼽는 애플과 닌텐도가 있습니다.

애플과 닌텐도는 짝퉁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짝퉁을 만들었다고 해봐야 별 타격이 없지요. 또한 경쟁 회사가 더 좋은 스펙과 싼 가격을 무기로 공격한다고 해도 그리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소프트웨어 파워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소프트웨어를 팔기위해서 하드웨어를 만드는 느낌까지 드는 회사들입니다.  애플과 닌텐도는 소프트웨어의 힘을 보여줍니다. 특히 하드웨어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지요. 사실 애플과 닌텐도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보면 항상 그럽니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하드웨어 가지고 왜 그렇게 찬양을 하냐고? 애플과 닌텐도의 힘은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힘에서 나온다고 해도 스펙중심으로 하드웨어를 평가하는 그들에게는 그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습니다.

애플의 아이팟을 보십시오. 아이팟 보다 가격이 싸고 좋은 MP3 세상에 수도 없이 넘쳐납니다. 짝퉁 역시 너무나 많구요. 하지만 아이팟은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팟의 힘은 무엇일까요?

하드웨어의 성능이 아니라 아이튠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덕분이지요.

지금의 아이폰도 보십시오. 아이폰보다 좋은 하드웨어 스펙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자사의 하드웨어 스펙보다 뛰어난 스마트폰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하던가요?  아이폰 현상을 보면서도 스펙중심주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소프트웨어의 힘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애플이라는 회사를 계속 무시하게 될겁니다.

이는 닌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당장 누군가 닌텐도 DS보다 훨씬 뛰어난 휴대용 게임기를 내놓은다고 칩시다. 그런데 닌텐독스나 포켓몬스터같은 소프트웨어 없이 닌텐도와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닌텐도 Wii같은 모션 센스 컨트롤러를 넣고 훨씬 뛰어난 그래픽 기능으로 무장한 게임기를 내놓았다고 쳐봅시다. 젤다의 전설과 슈퍼마리오 같은 소프트웨어 없이 닌텐도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겠습니까? 닌텐도를 이기려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경쟁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팝니다. 닌텐도의 하드웨어 사업부는 자신들은 소프트웨어 사업부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라고 까지 합니다.  닌텐도는 게임기 경쟁을 펼칠때마다 결국 승부는 소프트웨어에서 결정난다고 합니다.

애플의 흥망성쇠를 봐도 소프트웨어의 힘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19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놓고 애플 2, 코모도어, TSR-80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1979년 오늘날의 엑셀과 같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원조가 되는 비지캘크(VisiCalc)가 애플 2로 등장하면서 사실상 개인용 컴퓨터 전쟁의 승자가 됩니다. 비지캘크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는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서 그저 고급스런 사치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재무관리를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비지캘크가 등장하자 개인용 컴퓨터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비지캘크가 애플2로 나온건 하드웨어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컴퓨터 업체의 성공을 추적한 로버트 크린즐리는 우연의 왕국이라는 책을 통해서 결국 회사의 성공이라는 것은 결국 노력보다는 행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할까요?  비지캘크를 제작한 댄 브리클리는 유일하게 빌릴 수 있었던 컴퓨터가 애플2I였을뿐 그가 특별히 애플 2를 선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로버트 크린즐리는 애플 2가 컴퓨터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댄 브리클리가 우연히 애플 2를 입수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그리고 매킨토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84라는 환상적인 광고와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 덕분에 매킨토시는 출시 며칠간은 인기를 끌었습니다만 금방 판매량이 떨어집니다.  정작 매킨토시를 구입했지만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에 맞는 그래픽 소프트웨어등이 나오면서 디자이너와 같은 전문직들에게 사랑 받는 컴퓨터가 되면서 애플도 겨우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게임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리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타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 VCS 2600은 출시 초기만 해도 판매량이 부진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창업자인 놀런 부시넬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해고당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 일본 타이토 사에서 발매된 소프트웨어인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타리의 VCS 2600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기사회생했습니다. 닌텐도가 패미컴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라는 소프트웨어 덕분이었습니다.



컴퓨터와 게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결국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만나게 됩니다 .   애플과 닌텐도가 아니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소프트웨어만으로 전세계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를 지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역시 소프트웨어 힘을 가질때 미래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 국가의 격을 높인다면서 이런 저런 정책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정말 우리나라가 한단계 올라가고 싶다면 우선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하드웨어힘만으로  후발주자와 경쟁한다면  후발주자들의 매서운 추격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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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10.03.26 08:35

닌텐도가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 3DS 발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서 한번 닌텐도가 그동안 발매했던 휴대용 게임기를 정리해보는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아래 휴대용 게임기는 닌텐도가 발매한 모든 제품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를 담은 제품들만 모아둔것입니다.


1. 게임 워치



게임워치를 만들기 직전에 닌텐도는 그야말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코이 군페이라는 분이 우연히 출장을 갔다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전자계산기를 들고서 이리저리 노는 모습을 보고 이를 게임에 접목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의 운전기사가 몸이 아파서 운전을 못하게 됩니다. 이때 요코이 군페이가 대신 운전을 해주게 되는데 이때 사장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합니다. 그냥 듣기만 하던 사장은 다음날 출근하더니 바로 게임 워치를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그날 닌텐도 사장은 샤프관계자를 만나서 전자계산기에 사용될 액정화면을 조사하였고 이에 휴대용 게임기로 이용하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게 됩니다.  게임워치는 초기에 비싼 가격으로 인해서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엄청나게 성공했고 회사 빚도 다갚고 은행에도 꽤 많은 돈을 저금하게 됩니다. 그리고 게임 워치의 닌텐도에게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는 닌텐도를 상징하는 십자키가 바로 게임 워치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겁니다.  돈키콩을 게임 워치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중에 십자키가 탄생하거든요.


2.  게임 보이




1989년 4월 21일 처음 발매된 휴대용 게임기로 오늘의 닌텐도가 있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죠. 당시 기술로도 컬러가 가능했지만 배터리 사용문제로 과감히 흑백을 선택하였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덕분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휴대용 기기에 있어서 배터리 사용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죠. 또한 게임보이는 이른바 닌텐도의 시든 기술을 게임에 접목한다는 개발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전자계산기 가격이 폭락하자 이를 게임에 접목해서 성공했듯이 닌텐도 게임 보이 역시 고기술보다는 시든 기술에 게임의 재미를 접목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게임보이의 성공은 테트리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시들해진 인기를 포켓몬스터로 부활시키면서 전세계적으로 1억 천 백만대를 판매했습니다. (게임보이 컬러를 포함한 숫자입니다.)  그리고 게임보이를 광고했던 인물중에 하나가 일본최고의 스타로 손꼽히는 기무라 타쿠야가 있더군요. 닌텐도가 당대의 슈퍼스타를 게임 모델로 쓰는건 생각보다 긴 전통이 있었군요.


3. 버추어 보이




1995년 발매된 닌텐도 게임기로 매우 혁신적인 제품으로 주목을 받았으니 매우 처참한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희귀품으로 고가에 팔리고는 있지만 닌텐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가 없죠.  버추얼 보이가 시장에서 실패한 이유로는 색깔이 단색이었고 킬러타이틀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머리에 착용한다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게임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입니다. 친구가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어야 하는데 버추얼 보이는 혼자만 게임화면을 보게 되어있으니 다른 사람과 교감을 나눌수 없었습니다. 이 실패로 인해서 버추얼 보이의 개발자인 요코이 군페이는 회사를 그만두는데요. 요코이 군페이는 닌텐도의 개발실을 이끌었던 사람으로 닌텐도의 유명장난감과 게임보이 그리고 십자키를 고안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같은 인재들을 키워서 개발자들에게 스승대접을 받았죠. 우연인지 요코이 군페이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닌텐도는 점차 어려워지더니 10년여만에 겨는 닌텐도 DS로 부활의 날개짓을 펴게 됩니다.


4. 닌텐도 게임보이 어드밴스 SP



이 모델 이전에 더욱 가벼워진 게임보 포켓 그리고 타사가 컬러 게임기로 조금씩 닌텐도를 위협할때 반격의 카드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한 게임보이 컬러 그리고 독점체제를 확고히 해주는 게임보이 어드밴스가 2001년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2003년이 되어서 닌텐도 게임보이 어드밴스 SP가 나오는데 솔직히 그동안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는 그야말로 장난감의 느낌이 강했고 어른들이 들고 다니기에는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하지만 게임 보이 어드밴스 SP는 디자인적으로 세련되어지면서 어른들도 들고 다닐수 있는 게임기로 변신했습니다. 게임 보이 어드밴스 SP를 통해서 휴대용 게임을 즐기게된 여성분도 꽤 있더군요. 게임보이 어드밴스 시리즈 전체는 전세계적으로 8천 백만개가 판매되었으며 이중 4천 3백만개가 게임 보이 어드밴스 SP로 팔려나갔습니다. 하여튼 닌텐도가 게임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후 가장 어려웠고 혹독한 순간을 견디고 버티게 해준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닌텐도가 가정용 콘솔게임과 휴대용 게임기라는 양날개로 날고 있지만 포켓몬스터와 휴대용 게임기가 캐쉬카우 역할을  도맡아 했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닌텐도가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장난감을 만들고 있었고 디자인 자체가 유치한 면이 있었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이 왔다고 생각되기에 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휴대용 게임기 말고 가정용 게임기도 정말이지 아주 작정하고 장난감으로 디자인했었거든요.



5.  게임 보이 마이크로





2005년 발매된 게임기입니다. 발표는 화려하게 했는데 당초 원대한 목표와는 다르게 유야무야 됐죠. 게임계의 아이팟될 것처럼 떠들어 됐지만 결국 2백40만대를 판매하는데 그칩니다.  게임 보이라는 이름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임기로써 의미가 있습니다. 아참 게임보이라는 이름이 사실은 남녀차별적인 단어라고 해서 이름을 두고 반대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닌텐도는 이름보다는 기능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름의 어감이 나쁘다고 해서 바꾸지는 않습니다. 이름이 어찌되었든 중요한건 재미를 선사하면 그만이라는 거죠. 닌텐도 위만해도 그게 오줌누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닌텐도는 그냥 밀고 나갔듯이 말이죠.


6.  닌텐도 DS




드디어 닌텐도 DS입니다. 닌텐도 DS는 지난 12월까지 1억 2천 5만개가 판매되었다는 군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사실 소니의 PSP때문에 고전하리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았죠. 마치 닌텐도가 가정용 게임기에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리듯이 말이죠. 게다가 소니는 워크맨을 통해서 휴대용 기기에서 나름 브랜드 파워가 있던 만큼 소니가 PSP를 통해서 워크맨 신화를 재현하리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압도적인 차이로 닌텐도 DS가 앞서고 있죠. 닌텐도의 전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새로만드는 게임기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가야 한다면서 이를테면 화면이 두개면 어떨까? 라는 의견을 듣고서 이를 채용하였고 덕분에 기존과는 다른 게임들을 탄생시킬수 있었습니다. DS의 약자자체가 듀얼 스크린의 약자로 디스플레이화면을 강조하는데 이제 3DS로 또다른 혁명을 준비중인 닌텐도가 기대가 됩니다.

7. 닌텐도 DSi




중간에 더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닌텐도 DS Lite로 모델이 체인지되고 여기에 닌텐도 DSi가 추가되었죠. 닌텐도 DSi는 조만간 한국에서도 출시된다고 합니다. 닌텐도 DSi는 그동안 닌텐도가 오직 게임기로써만 접근했던 그동안의 시야를 벗어나 멀티미디어 기기에도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봅니다. 아이폰고 아이팟터치 같은 멀티미디어 기기가 닌텐도를 위협하는 현실에서 이에 대해서 닌텐도 식으로 대처를 하였죠. 인터넷과 음악 재생기능등이 더해졌고 카메라까지 장착했습니다. 닌텐도 DSi를 통해서 닌텐도 역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는 오직 게임기능에 충실한 기기와 멀티미디어기능이 강화된 버전 이 두개를 내놓으면서 역시 실익을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8. DSi XL



 화면만 커진 닌텐도 DSi입니다. 하지만 닌텐도 DSi 역시 닌텐도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것으로 보입니다. DSi XL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타블릿 컴퓨터이고 좀 낮게 보면 킨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제품이거든요. 즉 아이패드와 같은 타블릿 컴퓨터의 전성시대가 열리면 이에 대한 닌텐도식의 대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닌텐도는 하나의 휴대용 게임기의 제품 라인업을 순수 게임기, 멀티 미디어 기기, 그리고 타블릿 기기 이렇게 세가지 버전을 내놓을수가 있으며 앞으로 닌텐도를 위협하는 다른 휴대용 기기로부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닌텐도가 최근 가장 신경쓰는 분야중 하나가 닌텐도 DS를 활용해서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러닝 도구로써 닌텐도 DS를 포지셔닝 하고 있는데 기존의 작은 화면의 닌텐도 DS는 분명 문제가 있지요. 교육용 시장에서 닌텐도 DSi XL 역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크기가 작아서 사용에 불편함이 많았던 중장년층에게도 DSi XL은 중요한 타깃층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게 될것으로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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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10.01.06 08:25
닌텐도는 경소단박을 상품 개발에 가장 중요한 철학으로 여기는 회사답게 그들의 기업 조직 역시 불필요한 인력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소수정예를 유지하려고 한다.   닌텐도가 소수의 집단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지는 다른 초일류 회사들과 비교를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3768명의 직원을 고용한 닌텐도의 2008년 매출은 2조 4366억원인데 다른 초일류 기업들과 비교하면 직원대비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다.  비슷한 매출의 구글이 2조 7520억원인데 비해서 직원이 무려 20164 명으로 닌텐도보다 5배나 많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경쟁자들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교하면 닌텐도의 효율성은 더욱 극명해진다.  소니의 경우 전체 매출은 10조 2444억원인데 비해  18만 500명의 직원을 고용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7조 6310억원의 매출에 직원은 60240명이다.  직원 1인당 매출을 비교하면 소니는 5천600만원이고 마이크로소프트가 12억원인데 닌텐도는 무려 64억원이나 된다.  2008년 기준으로  닌텐도는 1인당 순이익에서 140만달러로 2위인 골드만 삭스의 126만 달러를 앞서고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돈버는 집단으로 정평이 나있다.

닌텐도가 이렇게 적은 인재로 월등한 실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만 인재를 채용하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이를 위해 세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을 나누어 관리한다. 첫째 각종 상품들을 포장하거나 게임을 테스트 하는 단순한 업무들은 파트타임으로 고용한다. 상품 포장의 경우 시급도 높고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이 있는 주부들에게 꽤 인기있는 아르바이트가 된다. 둘째 마케팅이나 게임개발등에 필요한 고급인력은 외주를 적극활용 한다.  셋째 파트타임이나 외주로도 안되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섰을 때 비로서 정식 직원으로 고용한다. 닌텐도는 만약에 뽑으려는 사람이 회사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원래 고용하려는 인원보다도 적게 사람을 뽑을 정도로 정식 직원을 뽑을때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인력관리가 철저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닌텐도는 여러 번 도산의 위기를 겪으면서 한푼이라도 아낀다는 절약 경영이 몸에 베어있다. 또한 평생고용을 지향하는 닌텐도는 직원들을 쉽게 해고하지 않는데 소수정예를 지향하는 만큼 잘못된 사람이 회사에 들어오면 조직전체에 금방 악영향 을 준다. 그래서 닌텐도는 사람을 처음 고용할 때부터 과연 회사에 필요한 사람인가를 철저히 검증하려 한다. 

특히  닌텐도가 소수정예에 집착하는 것은 이른바 대기업병을 가장 경계하기 때문이다. 모든 회사들이 처음에는 작은 벤처기업으로 시작하지만 기업이 거대해지면서 회사초기에 전직원들이 가지고 있던 패기와 열정들이 사라지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한다. 특히 사업분야가 많아지면서 조직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경우 회사의 이익보다는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 생각들이 자리잡는다. 그러다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부서간에 사사건건 싸움이 일어나고 이는 자연스럽게 조직간의 알력싸움으로 발전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과거 스티브 잡스가 돌아 오기 직전의 애플이었다.  당시 애플은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면서 무려 15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이 많은  프로젝트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조직에 대한 이기심으로 생겨났다. 많은 예산과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조직은 그만큼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뜻하였다. 프로젝트가 취소된다는 것은 조직의 존재의의가 없어지기 때문에 애플의 직원들은 어떻해서든지 자신이 소속된 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래서 조직의 역량을 초월하는 허황된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팀의 프로젝트를 취소시키기 위해 서로를 폄하하면서 극심한 내부 분열 상태에 이르기까지 했다.  어떤 팀은 회사에서 허락 받지 않은 프로젝트를 먼저 외부의 언론에 공개하면서 회사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언론에서 애플이 뭔가 멋진 것을 만든다고 보도가 되면 고객들의 기대치는 한없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그 제품이 사실은 개발계획도 없었다거나 개발상의 어려움으로 중간에 중지 된다면 회사의 신뢰는 그만큼 훼손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각 조직들은 열심히 자신의 프로젝트를 외부언론에 홍보했다. 하지만 그렇게 떠들대었던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회사의 연구소에만 존재하고 출시되지 못하는 좀비 프로젝트가 되었고 애플은 더욱 어려움에 처했다. 그래서 회사의 경영진들은 좀비프로젝트를 가려내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조직에 대한 이기주의로 똘똘뭉친 직원들을 통제하기가 불가능해졌고 회사의 서열체계마저 붕괴되어갔다.

그래서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150개에 이르던 프로젝트를 단 10개로 줄였으며 60개에 달하는 생산 품목을 고작 4개로 줄여버리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렇게 사라진 사업부들은 나중에 스티브드(steved) 되었다고 불리울정도로 혹독한 구조조정이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팀의 멤버가 100명 이상이 넘으면 초점을 잃고 통제하기 힘들어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소규모로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는 과거 애플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회사에 단합하지 못한 이기적인 직원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유능한 인재는 5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형편없는 직원은 회사전체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스티브 잡스는 직원을 뽑을때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직원 하나를 뽑는데도 몇단계의 검증 과정이 있으며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회사도 소수의 몇사람에 불과하다.  스티브 잡스의 또 다른 회사인 픽사를 보면 그가 얼마나 소수정예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포춘과의 인터뷰를 통해 픽사의 성공이 소수정예 때문에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현재 450명인 픽사의 직원이 만약 2,000명이었다면 절대 지금과 같은 인재구성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한편 규모가 커진 대기업의 또 다른 문제는 기존사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신규사업에 부정적인 자세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소니의 워크맨이 좋은 예가 된다.  소니의 경우 워크맨의 성공으로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MP3 시대가 도래하자 뒤늦게 대처를 하는 바람에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서 애플에게 일방적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는 소니가 아날로그 기기인 워크맨에 집착해서 디지털 기기인 MP3를 탐탁치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에 MP3 잘나가면 그동안 소니의 성장을 이끌었던 워크맨이 팔리지 않을게 뻔하다.  그래서 소니는 가능하면 워크맨이 계속 팔릴수 있도록 기존 제품을 개량하기만 할뿐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렇듯 대기업의 문제는 기존 사업부에 악영향을 줄 경우 신규사업에 진출하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소니가 MP3 사업에 제대로 뛰어들지 못한 이유중 하나는 자사가 소유하고 있는 소니음악의 존재 때문이었다. 음반판매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MP3 사업에 소홀했던 것이다.  애플의 아이팟 사업을 관장했던 루빈스타인은 원래 아이팟은 소니의 제품이어야 했다면서 아이팟 같은 제품을 소니가 개발하지 않은 것은 결국 소니의 다른 사업들에 해를 끼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렇듯 조직의 규모가 커진 대기업들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여 변화를 제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사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안위에 더 관심이 많은 관료주의적 성향이 만연하는데 닌텐도는 이러한 대기업병을 경계하기 때문에 철저히 소수정예로 회사를 운영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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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9.12.18 08:25

사실 삼성안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으니 알아서들 잘하겠지만… 그냥 제 생각을 밝힌다면 만약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일반 휴대폰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했던것처럼 그렇게 그자리를 차지하려면 애플이 하던 것을 똑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애플은 스마트폰에 일종의 황금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말인 즉슨, 모든 스마트폰은 아이폰과 비교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만약에 스마트폰이 아이폰보다 비싸면 그건 바가지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고.. 그렇다고 아이폰보다 가격이 싸면 좋은게 있느냐? 어차피 아이폰은 스마트폰의 황금기준이기 때문에 아이폰이 비싸도 비싼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는거죠.

스마트폰 관련 리뷰들을 보세요. 아이폰이 제공하는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제품은 있으면 형편없는 스마트폰이 되는거고.. 아이폰이 제공 못하는 기능을 구현하면 쓸데없는데 신경썼다며 야유를 받습니다.

이 모든 게 스마트폰의 황금기준은 아이폰이 되어버렸다는 증거죠.

그런데 삼성은 분명 강점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부품을 직접 만들고 다년간 제조업에서 쌓은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훌륭한 하드웨어를 가진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삼성에게 문제는 스마트폰을 제대로 만드느냐 안만드냐보다는 오히려  스마트폰에 대한 방향과 전략에 따라서.. 삼성 스마트폰이 휴대폰 시장처럼 강자로 군림하느냐 혹은 과거 새로운 전략적 변곡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패배의 잔을 마신 그 수많은 기업중 하나가 되느냐의 운명이 결판날 듯 합니다.

그런데 저는 삼성이 애플을 벤치마킹하고서.. 애플과 똑같이 나아가서는 성공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의 법칙을 애플이 세웠으니.. 그 게임의 법칙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애플일수 밖에 없지요. 데스크탑 운영체제 시장을 한번 봅시다. 하드웨어어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서 PC 제조업체들에게 OEM으로 운영체제를 공급해서 로열티를 받는 방식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게임의 방식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수익구조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상대하기 위해서 물론 제품도 잘만들어야 겠지만 전략상 다르게 접근해야죠... 리눅스처럼 아예 무료로 제공하던가.. 혹은 애플처럼 직접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거죠.

어차피 성공이라는 것이 똑같이 재현되는건 아니니깐요. 뭔가 다른게 있어야 기존의 시장 강자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삼성이 애플과 상대할 때 자신할수 있는건 역시 다년간의 휴대폰 제조와 부품을 직접 공급하는 업체로써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가져갈수 있지요.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단일모델을 두고서 매년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을 덧붙이는 형식인데요.

삼성은 아이폰 같은 단일모델이 아니라 여러 운영체제에 맞추어서 제품을 다양화 할수 있습니다. 어차피 스마트폰시장은 하나의 운영체제로 통일될 시장은 아니고. 각 국가마다 대세가 되는 운영체제가 달라질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이동통신 업체와 협의해서 그들이 원하는 스마트폰을 적재적소에 투입한다면..

충분히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아주 강력한 브랜드로 프리미엄있는 스마트폰을 팔기 위해서는..

역시 아이폰에 대항하는 단일 모델 기반의 그 어떤 스마트폰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삼성의 최상위 모델이지요.  아주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도요타가 중저가 시장을 노리고 있다면렉서스라는 브랜드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듯이..

스마트폰도 그런 전략이 필요할 듯 합니다.

문제는 결국 아이폰이나 렉서스처럼 고급 프리미엄 시장인데.. 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닌텐도의 전략을 참고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아이폰에 대한 경쟁력을 이것저것 이야기하다보면 결국 앱스토어로 귀결됩니다.

아이폰의 앱스토어전략에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문제인데…

지금 당장 삼성이 앱스토어를 똑같이 따라가기도 힘들고… 애플의 개발자 지원을 봤을 때 이는 질수 밖에 없는 게임 같습니다.

애플과 똑같이 앱스토어 경쟁을 하는게 아니라.. 앱스토어의 문제를 파악하고 거기에서 헛점을 찾아야 하는데.. 저는 닌텐도가 답을 준다고 봅니다.

앱스토어는 누구나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올려서 팔수가 있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갈수록 쓰레기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과거 수준 낮은 게임들 때문에 한순간 망해버린 아타리 게임기를 떠올리는데요.

저는 앱스토어가 아타리쇼크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인터넷이 발전했기 때문에.. 과거 아타리때처럼 멋도 모르고 샀다가 실행도 안되니 게임기를 박살내는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죠.

하지만 저는 수백개의 컨텐츠보다는 한두개의 킬러컨텐츠가 중요하다는게 제 생각이거든요.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킬러 컨텐츠가 미국음악을 세계에 알렸고 비틀즈라는 킬러컨텐츠하나가 영국음악을 세계에 알렸죠. 겨울 연가 하나가 일본에서 한류를 일으켰듯이 말이죠.

그런데 닌텐도의 역사가 바로 그 킬러컨텐츠에 의해서 성장한 회사거든요.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돈키콩이라는 게임 하나 히트해서 엄청난 돈을 벌고 당시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알고 과감하게 게임기를 만듭니다.

패미컴에서 마리오가 히트를 하면서 시장의 대세가 되었고..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는 테트리스 덕분에 휴대용 게임시장을 장악했고 그 후 게임보이 인기가 한창 떨어졌을 때 포켓몬스터하나가 성공해서 또 게임보이 시장을 부활시켰죠.  나중에 닌텐도 64와 게임큐브의 성적이 나빴을때는 포켓몬스터가 회사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런데 닌텐도의 정책은 철저히 검증된 소프트웨어만 판매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삼성이 애플의 앱스토어와 상대할려면 닌텐도처럼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애플처럼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열린 공간 보다는 닌텐도처럼 검증된 소프트웨어만 판매하는거죠. 물론 닌텐도처럼 매우 엄격할 수는 없고..  우선 회사가 추천하는 소프트웨어만 있는 프리미엄 마켓과 누구나 프로그램을 올릴 수 있는 오픈마켓을 구분하는게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또한 킬러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집중적으로 밀어주는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닌텐도가 처음 패미컴을 들고 나올 때는 다른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닌텐도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여기저기 선전활동도하고 여러 밀약을 통해서 여러 회사들을 패미컴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캡콤이나 코나미 같은 회사가 이때 큰 도움을 얻어서 세계적인 회사로 도약할수 있었구요.

그렇듯이 삼성이 닌텐도처럼 가능성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밀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바람은  닌텐도가 일본기업 밀어주었듯이 한국기업을 밀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좋은 모바일 회사들이 많습니다. 그 회사들에게 삼성 스마트폰에 독점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록 하고 이를 앱스토어와 함께 홍보를 하는거죠. 뭐 펀드를 운영해서 지적 재산권을 공유할수도 있지요.

포켓몬스터만 해도 게임프리크라는 제작사가 게임 아이디어만 들고 갔는데 닌텐도가 투자를 해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그래서 게임에 대한 소유권은 게임프리크와 닌텐도가 같이 가지고 있는데요.

닌텐도는 외부회사에서 들고오는 게임아이디어를 듣고서 게임이 좋으면 거기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만 해도.. 외부회사 사장으로써 닌텐도에 게임들고가서 프리젠테이션 했던 사람입니다. 그때 채택되서 히트한 게임이 별의카비와 스매쉬 브라더스가 있고 이런 활약 덕분에 닌텐도 사장까지 될수 있었습니다.

닌텐도가 이렇게 일본의 수많은 회사에 투자를 하고 그들을 밀어주었듯이..

삼성도 닌텐도처럼 게임 개발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한국의 모바일 게임회사라면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봅니다.

스마트폰 광고할 때 멋진 게임장면을 보여주면서 오직 삼성의 스마트폰에서만 실행할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눈길이 가지 않을까요?

닌텐도의 광고 방식이 항상 그런식이죠. 게임소프트웨어 광고하면서 은근슬쩍 하드웨어를 끼어넣는 것이지요.

말이 길어졌는데요. 닌텐도가 미국시장을 공습한건… 단순히 닌텐도 혼자가 아니라.. 캡콤,코나미,남코, 타이토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와 같이 싸운겁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파는게 게임기 시장의 생리이니 하드웨어 하나 잘만든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필요합니다.

삼성 역시 스마트폰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면.. 게임기 시장을 참고해야하고..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는 금언을 꼭 되새겨 봐야 할것입니다.

또한 이미 애플의 앱스토어는 프로그램들이 양적으로 어마어마하기 많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이 경쟁해서는 안되고. 질로 승부해야합니다.

결국 질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결국 닌텐도가 패미컴을 내놓고 괜찮은 일본 소프트웨어 회사를 방문해서 제발 패미컴으로 만들어 달라며 간청하고 여러 특혜를 주었듯이..

삼성 역시 킬러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소프트웨어회사와 연합체제를 구성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괜찮은 게임아이디어는 선행투자를 통해서 스마트폰에 대한 독점계약을 맺는거죠. 사실 게임기 시장에서도 그런 독점관행들이 존재하고 있죠.  한국 온라인 게임회사와의 연합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삼성 스마트폰 독점으로 던전앤 파이터, 메이플 스토리, 라그나로크가 나온다면 ..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킬 것 같네요.

(위의 온라인 게임이 위피로 나온거 잘알고 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말하는겁니다. 스마트폰에 특화된 독점 게임으로 말이죠.^^:; 한국 모바일 게임회사와의 계약한다면 위피는 자유롭게 만들고 스마트폰에 대해서만 독점하도록 해야할 듯하네요.)

하여튼 삼성이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면.. 전세계의 불특정 다수의 개발자 보다는 닌텐도처럼 자국의 개발자들을 먼저 포섭해서 이들과 같이 세계에 진출하는게 어떨까? 뭐 그런 바램을 참 길게도 써버렸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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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닌텐도 이야기2009.12.12 08:20
포켓몬스터 잘 아시죠? 포켓몬스터는 일본에서만 매출이 1조엔 세계적으로 2조엔을 기록한 게임의 대표적인 성공 신화죠. 원래 일본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지가 좋지 못했지만 포켓몬의 피카츄 덕분에 국가 이미지도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문화를 추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포켓몬을 좋아하면서 일본 만화에 빠져들고 일본 대중문화에 호감을 가지게 되더니 일본에 대한 국가 이미지가 좋아하진 경우죠. 하여튼 포켓몬은 문화컨텐츠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포켓몬은 닌텐도가 유통하고 일부 제작비용을 되었기 때문에 닌텐도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제작사는 게임 프리크라고 동경에 소재하고 있는 게임회사입니다. 게임 프리크의 창업자가 타지리 사토시입니다.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의 아버지인데 만화속 주인공 이름이 바로 타지리 사토시죠.. 참고적으로 주인공의 라이벌은 시게루인데 이것은 타지리 사토시가 평소 존경하는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의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로부터 따온 이름이랍니다.  포켓몬스터가 나온지 어느덧 10년이 나왔지만 나오는 게임마다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게임 프리크의 자금사정은 아주 끝내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 사무실도 엄청 나게 멋지고 훌륭합니다. 2008년 올해의 뉴오피스 상을 받을 정도니 그 훌륭함은 이미 검증이 된것죠. 하여튼 포켓몬 제작사인 게임프리크의 홈페지에 공개된 사진들을 한번 보시죠. 사무실의 새로운 획을 긋는 것처럼 멋집니다. ^^;  특히 주목해야 할것은 회의실입니다. 직원이 53명에 불과하지만 회의실이 무려 일곱개나 된답니다. ^^:;

1. 입구




게임 프리크 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인데요. 저기 위에 지구 본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답니다. 저렇게 지구본을 놓은것은 세계를 향해 놀이를 만들고 있다는 구상이 담겨져 있다는군요. 지구본을 볼때마다 포켓몬 유저가 지구의 각 나라에서 놀아주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그런 깊은 의미도 있답니다.

2.  복도


복도는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있고 우주로부터 퍼지는 공간을 이미지화 하고 있답니다. ^^;;


3. 오피스 내부


일부러 파티션을 낮게 설정해서 직원 전원이 서로 바라볼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답니다. 데스크나 의자 역시 디자인이 뛰어난 것을 채용해 창조적인 환경을 만들었다는 군요. ^^;;


4. GAIA 회의실



지구를 테마로 해서 자연이 넘치는 회의실입니다.  지구 그 자체를 살아있는 혹성으로 보고 지구로부터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려고 한다는 군요.


5.  SATURN 회의실



토성을 이미지한 디자인입니다.  PC 모니터를 보면서 평등하게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놨습니다.



6. MARS 회의실






싸움을 테마로 한 회의실이랍니다. 빨간벽과 화성을 본뜩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서양의 무기와 방패가 장식되어 있어 장초적인 투쟁심과 모험심을 자극합니다.


7. 비너스 회의실


평화를 테마로 한 회의실이라는 군요. 작은 여자아이를 모티브로해서 동심에 돌아간 발상을 하자는 목표로 만들었답니다. 방안은 여성 직원이 센스를 발휘해서 여성스러운 아이템으로 가득합니다.


8. SUN



사람이 모이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SUN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테마는 파워입니다. 집과 회사의 중간과 같은 분위기로 릴렉스한 휴식 공간을 추구합니다. 조명도 태양과 같은 디자인의 따뜻함이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서는 여러 음료수를 마시면서 까페처럼 즐길수가 있답니다. 바쁜시간에도 동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9. 주피터




다른 개성 넘치는 회의실과는 다르게 가장 베이직한 느낌으로 디자인된 회의실이라는 군요. 최신의 음향기기와 게임게, 화이트 보드등이 놓여져 있어서 영화를 감상하거나 사내 강연회등이 열리는 장소랍니다. 테이블은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기 때문에 공간을 플렉서블하게 사용할수 있답니다. ^^:;

10. COMET



사무실 중앙에 위치한 COMET은 잠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장소이자 각종 서적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이곳의 테마는 진화라는 군요. 게임 프리크는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발견으로 진화해 갈것이라는 의지를 담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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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닌텐도 이야기2009.12.10 08:17


닌텐도의 전 사장인야마우치 히로시는 상대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협상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중에 일부러 자리를 비워서 마치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제의가 온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외국인들에게 일본어로 고함과 욕설을 퍼부으면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닌텐도의 성공을 뒤돌아 보면 그들이 훌륭한 전략에 위대한 제품을 만든 덕분이었지만 회사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 장면을 보면 법적인 협상전술도 한 몫했다.

닌텐도는 돈키콩이 세계적으로 히트한 직 후 유니버셜 영화사로부터 항의 문서를 받는다. 게임 돈키콩에 등장하는 고릴라가 영화 킹콩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금을 주지 않으면 법적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나선 인물이 미국 닌텐도의 법적 고문을 맡았던 변호사 하워드 링컨이었다. 닌텐도 보다 규모가 훨씬 컸던 유니버셜 영화사는 일류 변호사들을 고용해서 수많은 소송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유니버셜 영화사측에서 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법원으로 가기전에 먼저 돈으로 합의를 볼 정도였다. 나중에는 유니버셜 영화사는 이점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돈키콩은 닌텐도가 만들었지만 나중에 판권을 구입한 아타리와 콜레코등이 가정용 게임기로 제작하였다.  그래서 유니버셜 영화사는 닌텐도뿐만 아니라 아타리와 콜레코에게도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유니버셜 영화사와 법적소송을 하면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고 승소한다는 확신도 없던 아타리와 콜레코는 즉시 유니버셜 영화사에게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합의금을 내어준다.  그런데 아타리나 콜레코보다도 더 작은 규모였던 닌텐도는 유니버셜 영화사와 법정으로 가는 배수진을 친다. 이는 유니버셜 영화사의 태도가 미심쩍음을 발견한 닌텐도의 변호사 하워드 링컨 덕분이었다.  법적 소송으로 가기전에 무조건적으로 합의를 종용하는 유니버셜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여긴 하워드 링컨은 과연 그들의 말대로 유니버셜 영화사가 킹콩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유니버셜 영화사에게 킹콩의 소유권을 정말로 가지고 있다면 그걸 증명할 만한 문서를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자 유니버셜 영화사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었다. 그러자 하워드 링컨은 여러조사를 통해서 유니버셜 영화사가 킹콩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킹콩은 1933년 RKO픽쳐스에서 제작되었는데 유니버셜 영화사는 1976년 RKO픽쳐스와 합의 없이킹콩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에 RKO 픽쳐스가 고소를 하자 유니버셜 영화사측은 킹콩이 처음 영화로 제작된 이후 40년동안 새롭게 나온영화가 없기 때문에 소유권도 자동소멸했다고 주장하였고 이는 법정에서 받아들였다. 유니버셜 영화사는 자신들이 킹콩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러 회사에게 합의금을 받는 수완을 발휘했던 것이다.  닌텐도와 유니버셜 영화사의 다툼은  법정으로까지 가는데 법원은 닌텐도의 손을 들어준다. 또한 닌텐도는 나중에 법적 소송에 들어간 비용으로 180만달러를 유니버셜 영화사로부터 받아낸다. 이 사건 이후 닌텐도는 법적인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사내에 법률 시스템을 강화한다. 그리고 사건을 담당해준  하워드 링컨은 정식으로 미국 닌텐도에 입사해서 부사장이 된다. 그는 사장인 아라카와 미노루에 이어서 명실공히 회사의 2인자가 되는데 이를 보면 확실히 닌텐도가 얼마나 법적인 문제를 중요시 여기는지 알 수가 있다.

이후 닌텐도는 법적인 문제에서는 확실히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닌텐도는 패미컴으로 발매되는 모든 게임은 무조건 자사에게 허락을 받고 일정 금액의 로열티를 내야 했다. 또한 닌텐도는 다른회사에서 무단으로 패미컴게임을 만들수 없도록 보안칩을 심어두었다. 그런데 아타리에서 게임 소프트웨어 부문이 독립한 텐젠이라는 회사에서 해킹을 통해 보안칩을 무력화 시킨다. 그후 닌텐도에게 로열티를 주지 않고 패미컴용으로 게임을 발매하겠다고 발표한다. 법정으로까지 간 이 사건은 닌텐도의 일방적인 승소로 이어진다. 이후 텐젠은 닌텐도가 독점적인 지위를 통해서 자사를 게임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다고 고발한다.  미국의 경우 반 독점법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미국에서 사상 최대 흑자기업이었던 IBM이 한순간 나락에 빠졌던 것이 바로 이 반 독점법 재판때문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예전 같은 압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것도 반 독점법 재판 이후이다. 반독점법에 걸리면 회사는 당국의 각종 규제로 인해서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회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법안이다. 그런데 닌텐도의 경우 반독점법 재판이 싱겁게 끝난다. 법원은 닌텐도가 가격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해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패미컴을 구매한 모든 고객에게 5달러짜리 쿠폰을 나눠줘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는 사실 닌텐도 입장에서 보면 게임의 재고관리에 도움도 되었고 고객들이 상점을 방문함으로써 다른 닌텐도의 게임들을 판매할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테트리스의 사용권이 닌텐도로 넘어오는 과정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법적으로 엄격한 집단인지를 알수 있다. 모스크바 과학 아카데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서 러시아 전통 퍼즐 ‘펜토미노’를 기반으로 테트리스를 개발한다.  그는 자신의 게임을 소련과 동유럽의 컴퓨터에 일부러 퍼뜨린다.  그 후 이 게임이 서방국가에도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시작 한다.  그러자 게임회사들이 테트리스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영국의 게임회사인 안드로메다의 로버트 스테인 사장은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서 알렉세이 파지노프와 소련정부로부터 판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로버트 스테인 사장은 계약이 완료되기 전에 미국의 판권을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유럽은 미러 소프트에 넘긴다.  하지만 로버트 스테인 사장은 나중에 오직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테트리스에 대한 권리만 계약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실은 다른 회사에 알려지지 않고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와 미러소프트는 자신들이 컴퓨터와 가정용 게임기에서 작동하는 테트리스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휴대용 게임기에 대한 사업권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된 행크 로저스는 직접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닌텐도로부터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판권을 확보 후 이를 닌텐도에 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행크 로저스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소련정부에서 행크로저스에게 가정용 게임기에 대한 테트리스의 판권을 구입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키보드와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에서만 돌아가는 테트리스에 대한 권한만을 로버트 스테인에게 넘긴 사실을 파악하게 된 행크 로저스는 즉시 일본으로 가서 닌텐도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를 만난다. 

테트리스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 야마우치 히로시는 게임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미야모토 시게루를 부른다. 사장실로 들어온 미야모토 시게루는 직원들이 쉬는 시간마다 테트리스를 즐기고 있는데 가끔은 일을 해야할 업무시간에도 그게임을 즐긴다고 하였다. 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휴대용 게임에 대한 테트리스 판권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행크 로저스는 미국 닌텐도 사장인 아라카와 미노루에게 가정용 게임기에 대한 판권이 남아있다고 말해준다. 그말을 들은 아라카와 미노루는 즉시 소련측 관계자와 접촉해서 테트리스 판권을 구입한다. 문제는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와 미러소프트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업체들이 제각기 테트리스를 제작하고 판매중이었다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아타리 소프트였다.  닌텐도의 소송으로 아타리의 제품은 판매중지를 당하는데 이때 폐기된 게임팩만 무려 25만개였다.

 테트리스의 판권문제를 되살펴 보면 회사의 역량차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타리는 닌텐도에게 독점법이나 판권문제에서 법적으로 완패했다. 그런데  아타리는 변호사의 잘못된 판단 착오로 인해서 닌텐도와의 게임기전쟁에서 패배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아타리의 사장이었던 놀란 부쉬넬은  가정용 게임기 VCS 2600을 개발한 후 변호사에게 다른 회사가 VCS 2600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발매할 경우 아타리에 허락을 받아야 하고 거기에 추가해서 로열티를 받고 싶다고 했다. 원래 놀란 부쉬넬도 닌텐도와 같은 수익모델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는 소프트웨어회사에게 로열티를 받게 되면 독점법에 걸린다면서 절대로 그런 수익모델은 불가하다고 통보한다. 만약에 아타리가 닌텐도처럼 소프트웨어 회사의 제품을 엄격하게 품질관리하고 로열티까지 받을 수 있었다면 저질 소프트웨어의 범람으로 인해 그렇게 허망하게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회사가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법적인 문제도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아타리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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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9.12.04 09:12

어느덧 2009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네요. 진짜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데요. 이렇게 시간가는건 정말 아쉽지만 IT블로거로써 2010년은 정말 기대되는 한해 인만큼 또 빨리 2010년이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2010년이야 말로 IT 역사에 최대 변혁기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정도로 2010년에는 그야말로 기대 투성이들이네요. 그래서 좀 빠른 감이 있지만 2010년 IT 역사의 패러다임을 제품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번 뽑아 봤습니다.

스마트 폰 경쟁시대

가장 기대가 되는 분야죠. 애플이 이제 휴대폰을 만들기 시작한지 단 2년 6개월 밖에 안됐지만 벌써 3200만대를 넘게 판매했습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나올 때 통신업계 관계자나 하물며 스티브 발머는 아이폰 발매 소식에 아주 큰소리로 비웃었죠... 사실 한국의 업체들도 아이폰은 안무섭고.. 오히려 세계화하려는 일본의 휴대폰이라고 했는데 지금 아이폰은 IT의 판도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애플이 개인용 PC시대를 열었듯이 이제 손안의 컴퓨터 시대를 열었고.. 이제 자극을 받은 전통적인 휴대폰 업체에다가 애플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델과 같은 컴퓨터 업체 그리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업체까지 스마트폰 시장에 달려들고 있습니다. 가장 기대되는건 역시 6월에 새롭게 발표될 아이폰입니다. 그리고 아이폰의 한국 발매 덕분에 SK가 안드로이드폰을 조기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 역시 기대가 됩니다. 또한 윈도우 모바일 7이 등장할테고 삼성의 바다까지 .. 정말 내년에는 다양한 스마트폰이 쏟아질테고 연일 스마트폰에 대한 소식들을 접할수 있겠네요.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이 바꾸어 놓을 무선 인터넷 환경역시 기대가됩니다.

소셜 게임

닌텐도가 뿌린 씨앗이 이제 소셜 게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셜 게임에 대한 정의는 광범위한데 지금으로써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 게임이 결합된 것을 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싸이월드에서 여러 소셜게임을 서비스중이지만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없는데요. 그래도 세상이란게 그런 실패를 반복하다가 성공을 하는거지요.  구글 이전에 수많은 검색회사가 있었고.. 그 검색 회사들이 계속 망하니깐 검색으로는 돈을 못번다는 그런 결론이 났을 때 구글이 빵~ 터트려준겁니다. 세상이 그래요.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 처음 나와서 성공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혁신적인 제품이 나와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게 여러 변신을 거치는 중에서 뻥~ 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거지요. 지금 미국에서 가장 떠오르는 기업들을 보면 소셜 게임회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일본에서 부진을 거듭하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인 믹시가 소셜 게임으로 되살나고 있고.. 또 유럽 같은 경우 웹게임이 점령하다시피 했다는 것을 본다면.. 한국에서도 소셜 게임이 인기있는건 시간 문제 같습니다. 적어도 내년에는 한국에서도 소셜 게임이 된다는 그런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프로젝트 나탈



XBOX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동작 인식기이죠.  사람의 모션뿐만 아니라 음성까지 인식할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게임 컨트롤러가 아니라 컴퓨터도 조종할수 있고 텔레비전의 리모컨으로 이용할수 있는 그야말로 차세대 컨트롤러 입니다. 프로젝트 나탈은 단순히 게임의 새바람이 아니라 컴퓨터와 엔터테인먼트 전체를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프로젝트 나탈이 보여주는 모습은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한 그런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건데요. 그런만큼 그들이 약속한 만큼의 기능과 성능을 보여줄지는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우선 나와봐야 평가를 할수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프로젝트 나탈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의 연합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가 제휴를 했지만 아직 미국 정부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한 상황이죠. 현재 구글이 전체 검색시장을 독점한 관계로 사실 검색부분이 재미가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의 절대 아성을 흔들면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우선 미국정부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의 제휴를 허락받고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이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그모습을 확인하고 싶네요.


애플 아이 타블릿 VS MS 쿠리어

내년에는 애플이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인 아이 타블릿을 발표할것이라는 루머가 계속 돌고 있는데요. 과연 애플의 타블릿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생활을 바꿀수 있을지 역시 기대가 됩니다. 애플이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에서 휴대폰인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이어왔는데요. 컴퓨터와 휴대용 기기의 중간점에 위치하는 타블릿의 모습이 정말 궁금합니다. 과연 스티브 잡스가 3연타석을 치게 될지? 그것 역시 또 한번 지켜보고 싶네요. 또한 MS 역시 애플의 타블릿에 맞서 쿠리어를 준비중인것으로 루머가 돌고 있는데요. 이번 기회에 MS와 애플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MS가 애플보다는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현재 교육용과 전자북 단말기로써 타블릿 컴퓨터가 새로운 수요가 발생할것으로 보입니다. 즉 타블릿 컴퓨터가 미래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것으로 예상되는데 MS가 만약 타블릿에서도 밀린다면..  MS의 미래 역량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수 밖에 없을 듯 하네요.

구글 OS

전 구글의 크롬 OS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점유율을 높일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글이 운영체제 시장에 진출했다는 것 그자체가 대단하죠. 저는 이제 구글, MS, 애플로 이어지는 IT 삼국지를 참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데요. 그런데 구글이 아직까지 운영체제를 만들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뭔가 경쟁에서 맥이 빠지는 느낌인데요. 애플과 MS 결국 따지고 보면 운영체제에서 힘이 나오는 회사거든요. 진정한 IT 삼국지가 될려면 운영체제에서 한바탕 붙어야지요. 그런만큼 구글 OS의 등장은 이제 우리가 십년은 즐겁게 지켜볼 IT 삼국지의 본격적인 개막으로 볼수 있을 듯 싶네요.

닌텐도의 휴대폰?



이전에 소개한 이야기들은 2010년에 확실히 등장할 정보들이라고 할수 있는데 반하여 닌텐도의 휴대폰은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된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저의 예측입니다. 저는 닌텐도가 휴대폰 시장에 진출하리라고 100% 확신합니다. 지금은 닌텐도가 여러가지 이유를 들면서 휴대폰에 관심없다고 하는데요. 사실 기업이란게 그래요. 구글도 OS 절대 안만든다고 그랬고. 브라우저도 안만든다고 했습니다. 기업이란게 뭐 준비하지 않고 미리부터 발표할 이유가 전혀없지요. 그리고 닌텐도는 그동안 말바꾸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를테면 자신들은 게임기에만 관심있다면서 멀티미디어는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닌텐도는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화된 DSi를 만들었지 않습니까? 이건 그동안 닌텐도가 그렇게 강조했던 오직 게임기만 만든다는 자신들의 철학을 전면으로 위배하는것이었습니다. 또한 닌텐도는 애플과 경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제 애플 때문에 힘들어질수 있다면서 경쟁자로 인정하고 있지요. 닌텐도의 입장에서는 게임기만 팔고 싶겠죠. 하지만 애플이 아이폰으로 휴대용 게임시장을 야금야금 쫓아오는데 닌텐도가 어찌 가만있을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아이러니한건 아이폰이 컨트롤러도 없이 오직 터치로 움직이는 조작을 가지고 있음에도 닌텐도 DS의 영향을 받아서 꽤 괜찮은 수작들이 나온다는겁니다. 즉 닌텐도가 뿌려진 씨앗으로 아이폰의 게임들이 만들어지고 있지요.  닌텐도 DS의 인기 게임들 보십시오. 두뇌트레이닝, 닌텐독스같은거 터치만으로도 그 재미가 온전히 전해지죠. 전통적인 인기 게임인 포켓몬스터도 터치로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요즘 일본에서 난리인 토모다치 콜렉션이나 러브플러스 역시 터치가 있으면 재미있게 즐길수 있는 그런 게임입니다. 즉 닌텐도 DS에서 인기 있는 게임들을 보면 궂이 컨트롤러가 없어도 터치만으로도 게임이 되더라 이말입니다.   물리적인 컨트롤러가 없는 아이폰이 휴대용 게임기로는 별거 아니라는 그런 의견을 반박할수도 있게 닌텐도가 도와주고 있는 형국이란 말이죠. 어떤 분은 게임 하고 싶으면 게임기 들고 다니고 음악 들고 싶으면 MP3 들고 다니고 사진 찍고 싶으면 디지털 카메라 들고 다니라는데…  과연 사람들이 그러고 싶을까요? 처음에는 독립된 기계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나중에 보면 하나로 통합되어온게 IT입니다. IT 기술이 발전한다는건 예전에 여러가지 독립된 기계를 이용해야 했지만 나중에는 하나로 통합된다는거고.. 이제 아이폰이 그런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닌텐도는 자신들의 철학이 아닌 시장 의 상황에 의해서 어쩔수 없이 휴대폰을 만들게 될것입니다. 물론 내년에 닌텐도가 휴대폰을 내놓지는 않을겁니다. 하지만 내년을 달굴 매우 훌륭한 떡밥으로 손색없을것으로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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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09.10.28 13:43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로 유명한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가 Digital Contend Expo에서 벌인 인터뷰가 화제입니다.

어린시절 인형극을 재미있게 본 그는 인형극 연출가를 꿈꾸지만 나중에 만화에 흥미가 생겨서 중학교때는 만화 클럽을 만들어서 3년간 만화에 빠져 지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는 프로가 될수 없음을 깨닫고 만화가의 꿈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만화가의 꿈을 포기했지만 그림을 잊지 못하고 공업디자인학과에 입학을 하였고 졸업한 후에는 아버지의 소개로 닌텐도에 입사하게 되었답니다.  완구와 트럼프등을 디자인한 그는 맥도날드에서 경품으로 제공하는 장난감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일본에서 성공을 하자 닌텐도 역시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돈키콩을 개발하게 됩니다.

돈키콩은 왜 사람들이 스페이스 침략자에 열중하는지를 철저히 계산해서 만든 게임으로 스테이지 디자인은 고릴라가 여자아이를 데리고 도망칠 경우 어디로 갈지를 고려해서 만들었다는 군요.

또한 마리오는 자신이 재미있게 보았던 인형극의 등장인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경우 앞으로 디스크 시스템의 시대가 온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가장 즐기기 쉬운 게임의 카트리지 게임을 만든다는 각오로 제작을 했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대 히트를 하였답니다.

젤다의 전설은 돈키콩과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는군요. 당시 PC 게임이 유행할 징조가 있었는데 이때 미야모토 시게루는 PC 게임의 영향을 받아서 롤플레잉 게임의 성장이라는 요소를 액션게임에 결합하게 됩니다. 돈키콩과 슈퍼마리오는 게임에 명확한 목표가 있는데 비해서 젤다의 전설은 방대한 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저들이 처음 게임을 어떻게 진행해야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내에서는 이런 게임을 누가 하겠냐며 반발하지만 오히려 미야모토 시게루는 스스로 찾는 것이 즐겁다면서 제작을 강행했다고 합니다.

포켓몬스터와 별의 카비를 들고 해외 진출을 할 때는 캐릭터 디자인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일본의 유저가 재미있는 것은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고치지 않았고 위(Wii)와 관련해서도 이름이 이상하다는 반대에 부딪혔지만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상품들이다.

이렇듯 미야모토 시게루는 새로운 것을 한다면 고민을 하지 않고 도전을 하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주위에 반발이 있다면 그것이 새롭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도전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해도 그것이 다음에 양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인생에 헛된 것이 없다고 보는 그의 인생관이야 말로 제가 보기에는 미야모토 시게루 창조력의 근원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리고 그에게 배울점은 게임을 작품이 아니라 상품으로 보는 자세 같습니다. 게임 개발자에게 주역은 손님이라면서 항상 스탭들에게 작품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상품이라는 말을 쓰도록 한답니다. 또한 닌텐도 위나 닌텐도 DS같은 창조적인 상품들은 앞뒤를 따져가면서 만든게 아니라 오직 눈앞만을 바라보면서 도전한 결과라고 하는군요.

미야모토 시게루는 50대가 넘어서도 창의적인 작품을 내놓는 게임의 신이지만 그도 고민에 빠질때가 있는데 그럴때면 수영을하러 간다고 하는군요. 이를 통해서 취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군요?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고하는데요. 그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 느껴집니다. 또한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상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미야모토 시게루 특유의 철학이 느껴집니다. 이와타 사토루는 언젠가 자신은 서비스형 인간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통해서 기쁨을 느끼는 존재라고 말이죠.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그런 서비스형 인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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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야기2009.10.26 14:01


시장 조사 전문 기관인 DFC 인텔리 전스가 발표한 보고서가 화제입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2014년이 되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가 닌텐도와 소니의 휴대용 게임 사업을 압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014년이 되면 전체 휴대용 게임시장의 규모는 110억 7천만달러에 이르게 되는데 아이폰이 바로 이시장의 승자가 될것이라는데요.  향후 5년가 전체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24%가 될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닌텐도와 소니가 시장을 리드하고 있지만 지금이 정점일뿐 앞으로 아이폰과 아이탓 터치의 영향력이 더 커져갈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보고서에는  모바일 게임에 대한 흥미로운 몇몇 조사결과가 있는데요. 북미에서 54% 그리고 유럽의 69%에 이르는 응답자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북미의 45%가 그리고 유럽의 36%에 이르는 응답자가 휴대폰으로  게임을 직접 산적도 있다고 하는군요.  특히 앱스토어는 이미 응답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게임 구매 서비스라고 합니다.  응답자의 15%는 이미 아이폰이나 아이팟터치를 한대 이상 소유를 했는데 닌텐도 DS는 29%정도 됩니다.

그리고 앱스토어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3%라면서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는  게임말고도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보고서 저는 대략 두가지가 느껴집니다. 첫째 애플은 가정용 게임기시장에 진출할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닌텐도나 소니처럼 게임 전용 콘솔이 아니라 애플 TV를 이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 TV에 앱스토어를 연동하게 되면 아이폰의 예처럼 게임들이 가장 인기있는 컨텐츠가 될것입니다.  그러면서 애플은 애플 TV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계로 포지셔닝을 하는거죠. 원래 아이팟 터치를 휴대용 게임기로 포지셔닝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나중에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게임을 좋아하길래 소니와 닌텐도에 대적하는 게임기로 초점을 맞추었다죠.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에  단일기기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통합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요즘 아이폰이 그걸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데 게임기 역시 그런 과정을 겪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닌텐도가 현재는 게임기 자체에 집중을 하면서 성공을 거두었고 오직 게임기에 충실한 전략이 닌텐도의 성공비결이죠. 하지만 이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실 이미 닌텐도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닌텐도 DSi의 경우 카메라와 인터넷 그리고 MP3 와 같은 부가 기능을 추가한 멀티미디어 기기로 큰 인기를 얻고 있지요. 또한 요즘 닌텐도 위에 이런저런 멀티미디어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낀 두번째는 닌텐도가 언젠가 휴대폰을 만들 것이라는겁니다. 물론 닌텐도는 이런 예측을 거부하고 있겠지만 이는 어쩔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느껴지네요.  올해 초만해도 닌텐도는 애플을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7월의 실적발표에서 애플을 라이벌로 인정하고 아이폰때문에 닌텐도의 실적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까지 밝혔습니다. 아직까지 닌텐도가 휴대폰을 만든다는 증거는 없지만 시장상황이 닌텐도가 게임기를 내놓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점점 더 다가 오고 있습니다.  원래 회사의 변화라는게 내부의 역량을 고려해야하지만 외부의 변화를 절대 무시할수 없죠.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기시장을 진출한 것도 사실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미래의 컴퓨터 시장까지 넘보니깐 이에 대한 선제 공격차원에서 XBOX를 만든것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전략이 당장은 거실을 공략하는 것이지만 나중에는 책상위의 컴퓨터 시장까지 진출할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빌게이츠는 소니 사장에게 플레이스테이션에 들어가는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지만 이를 소니가 거절합니다. 빌게이츠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영역을 나누자는 것이었는데 소니가 이를 거절하자 게임기 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합니다. 빌게이츠는 소니가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에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린겁니다. 
 
가정용 게임기시장의 소니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빌게이츠가 게임기 사업을 시작한것을 보면 그의 사업적 직감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결국 회사라는게 내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외부의 환경에 대해서 빌게이츠처럼 민감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저렇게 파죽지세로 성장해오는데 닌텐도가 가만히 있을수만은 없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수 밖에 없는 그림을 애플이 그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폰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매장에 가서 CD를 샀지만 이제는 MP3 음원을 통해서 듣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게 바로 아이팟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게임도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게임의 유통이 오프라인 매장이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서 다운로드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모바일의 경우 앱스토어는 앞으로 더 훨씬 더 활성화 될겁니다. 앱스토어를 통해서 소프트웨어를 마음껏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게 하려면 단순한 휴대용 기기보다는 휴대폰이 월등히 편합니다.  단순 휴대용 기기라면 무선랜으로만 인터넷으로 접속하지만 휴대폰은 장소에 구애받지를 않죠. 또한 다운로드 받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실행할 수 있는 휴대용 기기의 컴퓨팅 성능을 올리다보면 닌텐도가 만드는 휴대용 게임기의 최종 모습은 아이폰이 될 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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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이야기2009.10.16 08:11



10월 22일 윈도우 7이 발매가 됩니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비스타로 구겨진 자존심이 윈도우 7회복할수 있을 것인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버전은 그동안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였는데 그동안의 패턴대로라면 이번 윈도우 7은 성공할 타이밍이지요. 실제로 윈도우 7에 대한 기대치는 비스타때보다는 확실히 큽니다. 일본의 경우 발매전에 윈도우 7을 회사의 운영체제로 조기에 도입한 법인이 163개사가 넘어섰는데 이는 기존에 발매된 윈도우들보다 월등히 좋은 성적이라고 하는군요. 일본에서만 윈도우 7은 천만개가 넘개 팔려서 매상으로는 2조 3000억엔이 넘을 것이라고 예측될정도입니다.

 세계가 이렇게 윈도우 7을 기대하면서 발매 날짜를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는 이순간 애플의 마케팅 부사장인 필쉴러가 윈도우 7의 발매일에 맞춰서 고춧가루를 뿌리는 발언이 화제입니다. 필쉴러는 윈도우 7의 발매야 말로 매킨토시의 시장 점유율을 높일  좋은 기회가 될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왜냐하면 윈도우 7의 발매에 발맞추어서 컴퓨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해야 하고 여기에 더해서 윈도우 7을 설치하기 위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차라리 매킨토시 한대를 사는게 낫다는게 필실러의 설명입니다. 지난 3년간 윈도우 유저의 20%가 비스타로 이동 했지만 맥은 70%가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 했다면서 애플의 최신 운영체제인 스노우 레퍼드의 업그레이드 비율이 높을 것이지만 윈도우 7은 그렇지 않을것이라고 자신있게 밝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 10년간 윈도우가 발매되는 기간동안 맥의 점유율은 오히려 상승을 해왔다는 겁니다. 윈도우의 발매가 맥의 판매에 있어서 일종의 촉매제가 되었는데요. 위의 그래프를 보면 금새 알수 있을 듯 하네요. 실제로 시장 전문가인 Piper Jaffray는  올겨울 맥의 판매량이 작년 260만대에서 20만대 증가한 280만대가 판매될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겨울동안 아이폰이 700만대 그리고 아이팟이 천만대 팔릴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와있는걸 보면 애플이 올겨울에도 역시 승승장구 할 듯 싶네요.

참고적으로 애플이 미국에서 지난 3개월 동안 판매한 매킨토시는 164만대에 이르는데 이는 지난해 판매량 146만대에 비해서 11. 8%나 상승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시장점유율도 9.4%로 전체 회사중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PC 시장 점유율을 보니 DELL의 PC 판매량이 무려 13.4%나 떨어진데 비해서 에이서의 컴퓨터 판매는 48.3%나 증가하면서 11.1%의 시장점유율로 3위에 올랐네요.

이거 델의 최근 성적이 심상치 않은데 비해서 에이서가 확실히 치고 올라오는 기분이 드는데요. ?? 도시바 역시 판매량이 37.4% 증가하면서 시장점유율 8.1%로 5위에 올랐습니다.

PC시장에서 뭔가 중대한 변화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윈도우 7의 발매가 되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새로운 지각변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네요.

고추가루는 구글도 뿌린다.

구글 크롬 OS의 베타버전이 유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torrent를 통해서 파일이 돌고 있는데요. 버그는 많지만 리눅스에 인스톨 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글 크롬 OS가 유출된것에 대해서 이것이 구글이 의도적인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윈도우 7 발매일에 맞추어서 관심을 딴데로 돌리기 위한  물타기를 위한 것이 아니냐  뭐 그런거죠. 어찌되었든 구글도 화제의 중심에 있는 회사고 그런 회사가 만드는 운영체제의 베타버전이 윈도우 7 발매일에 맞추어서 정식으로 발표된다면 어찌되었든 마이크로소프트를 힘빠지게하는데 한 역할하겠죠? 사실 내년 하반기에나 나온다는 구글 크롬 OS를 7월에 갑자기 발표한것도 사실은 그때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기반의 AZURE에 대한 중대발표를 앞두고 물타기를 위한것이 아니였다는 그런 이야기가 돌았답니다.

구글의 북스토어 2010년에 런칭

구글의 북스토어 계획안이 구체적으로 밝혀졌습니다. 구글은 출판사와 협약을 해서 50만권에 이르는 전자북을 확보한 상태랍니다.  구글은 이렇게 확보한 전자북을 PC와 넷북 그리고 휴대폰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북스토어를 2010년 런칭할 계획인데요. 수익의 67%는 출판업자에게 주고 33%는 구글이 가져가는 수익 분배안까지 마련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북스토어라는게 별로 친숙하지는 않은데요. 미국은 올해까지 전자책 단말기가 300만대 판매될것이라고 예측됩니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에 이어서 반스 노블도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랍니다. 여기에 이미 소니도 이북을 들고 나왔고 사실 아이팟의 중요한 포지셔닝중 하나는 전자책 리더였죠. 참고적으로 앱스토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컨텐츠는 누구나 쉽게 예상하듯 게임이구요. 그다음이 바로 전자책입니다. 애플이 개발하는 타블릿도 전자책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하지요. 이거 아무래도 디지털 컨텐츠 시장이 뮤직스토어에서 앱스토어 그리고 북스토어 진화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앞으로 IT 분야에서 북스토어의 활약 역시 새로운 관전포인트가 될듯합니다. ;


지난주 일본 소프트웨어 판매량

1. [DS] Pokemon HeartGold/SoulSilver – 189,000 / 2,474,000
2. [WII] Wii Fit Plus – 152,000 / 492,000
3. [DS] Shin Megami Tensei: Strange Journey – 97,000 / NEW
4. [DS] Inazuma Eleven 2 Fire/Blizzard – 95,000 / 376,000
5. [DS] Tomodachi Collection – 63,000 / 1,351,000
6.  [PSP] Gran Turismo – 40,000 / 174,000
7. [WII] Wii Sports Resort – 24,000 / 1,277,000
8.  [PSP] Macross Ultimate Frontier – 19,000 / 100,000
9.  [DS] Love Plus – 19,000 / 122,000
10. [DS] Dragon Quest IX – 16,000 / 3,982,000

역시 포켓몬의 파워는 대단하군요. 아참 얼마전부터 닌텐도가 겨울시즌을 맞이해서 대작게임을 낸다는 소문이 파다헀는데 그게 포켓몬이더군요. 12월 4일 닌텐도 위로 등장하는 포켓몬이 과연 시장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네요.

닌텐도의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 내년에 발매되나?

조만간 닌텐도가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를 2010년 내놓는다는 소문입니다. 그런데 Nvidia의 테그라칩이 장착될것으로 알려져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테그라칩은 마이크로소프트의 ZUNE HD에 채택되어있는데요. Nvida에서는 앞으로 수익의 50%를 헨드헬드 시장에서 얻을 것이라고 장담한 상황이기때문에 테크라칩의 활약이 중요합니다. 닌텐도 DS는 1억대가 넘게 판매되었고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사실상 독점을 하는 상황이기때문에 만약 테그라칩이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에 공급된다면 엔비디어에게는 엄청난 이익이 될듯하네요.


오늘의 동영상




이번에 공개된 크라이 3 엔진의 홍보용 동영상입니다. 정말 놀라운 엔진입니다. 몇몇 장면은 실사로도 느껴집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에니메이션을 게임엔진이 대처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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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09.10.09 08:02

미국을 대표하는 여자 가수 비욘세 잘 아시죠? 요즘 한국에서 꿀벅지 열풍이 불면서 새삼스럽게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비욘세이죠. 그리고 그의 남편 제이지는 한국의 연정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비욘세의 결혼을 안타깝게 여기는 남자분들도 많이 있지요.  그런 비욘세가 요즘 닌텐도 위핏 게임에 한창 빠져있답니다. 

위핏을 정말 사랑하게 됐다는 그녀는 댄스를 결합한 게임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평소 그녀는 지루하게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하지 않고 춤과 퍼포먼스를 결합해서  재미있게 운동을 하고 있다며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면 더욱 즐거울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전하는 해외 외신들은 이미 비욘세가 이미 패션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잘알고 있는 만큼 비욘세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냥 넘기지 않네요. 비욘세가 새로운 벤처사업을 고려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네요.
 
하긴 그녀의 파워넘치는 춤과 무대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피트니스 게임을 만든다면 그것도 꽤 괜찮은 게임이 나올것 같기는 합니다. 비욘세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게임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예전에 게임은 게임일뿐 현실세계에 별 영향력도 없고 그냥 게임 그자체로 끝났지만 이제는 게임이 다른 사람의 삶과 일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거죠. 

위핏을 즐겨서 몸의 균형을 찾은 메이저리그 투수가 생애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뽑히지를 않나 슬럼프에 빠진 선수가 게임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을 찾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죠. 안젤리나 졸리가 임신후 불어난 체중을 게임으로 빼기도 하고 말이죠. 그리고 오늘 또 하나 재미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닌텐도 DS로 나온 영어게임을 즐긴 사람이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동경대에도 합격하고 50만엔의 장학금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게임이란 그냥 시간을 보내는 단순한 오락기구였지만 이제는 인간의 삶까지 바꿀수 있는 유익한 도구가 되어가는것 같습니다. 비욘세도 위핏처럼 운동이 되는 게임이었기에 그렇게 빠졌지 과거처럼 단순히 적을 죽이는 액션게임이었다면 저렇게 게임사랑을 표현하지도 않았을테고 자신의 춤과 무대퍼포먼스를 결합한 피트니스 게임은 생각도 못했겠죠. 예전에는 게임개발은 오직 게임 관련산업 종사자들의 전유물인데 이제는 한 분야에서 성공한 전문가들이 게임 개발을 생각할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왔습니다. 

저기 사진속 비욘세가 닌텐도 DSi로 하고 있는 게임은 리듬세상입니다. 비욘세는 리듬세상의 광고모델로 활동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현정이 광고를 하고 있는데요. 사실 리듬세상이라는 저 게임도 층쿠라고 해서 모닝구무스메의 프로듀서가 만든 게임입니다. 일본인들의 리듬감이 떨어진다면서 게임을 통해서 일본인들의 리듬감을 살리겠다고 개발한게 바로 리듬세상입니다. 이렇듯 최근 게임은 놀이에 학습이나 운동같은 실리적 요소가 결합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게임개발자와 다른 분야의 전문가 사이의 융화가 매우 중요한 시대가 온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약 비욘세가 진짜 게임을 만들고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둔다면  그런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 될것이라 생각되네요.


스티브 발머 최고의 Ebook Reader는 PC다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킨들과 같은 Ebook Reader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이미 자사는 Ebook Reader를 위한 최고의 장치에서 운용되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고의 장치가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스티브 발머는 바로 PC를 지목했네요. 그리고 아마존과 함께 Ebook 에 대한 협력관계를 맺고 싶다고 합니다.  올 겨울 Ebook Reader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애플 역시 ebook을 쉽게 읽을수 있는 타블릿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스티브 발머가 PC이외의 ebook reader기에  관심없다는게 의외네요.

더욱 멀어져가는 엔비디아와 인텔

그래픽카드 업체인 엔비디아와 인텔은 한때 밀월관계라고 느껴질정도로 가까운적이 있었는데요. 엔비디아가 인텔의 핵심사업분야인 칩셉과 CPU 분야에 욕심을 내면서 사이가 크게 벌어지고 갈등관계가 되어버렸죠. 그런데 오늘 또 인텔이 엔비디아를 고소했네요.  인텔은 엔비디아가 두회사간에 맺어진 협약을 벗어난 제품을 개발중이라고 고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시장에 나온 제품이 아니라 엔비디아가 미래에 발표할 메인보드 칩셋이라는 겁니다.  나오지도 않은 제품을 고소하다니 인텔이 엔비디아를 견제하는게 눈에 보이네요. 그나저나 요즘 그래픽 칩셋은 ATI가 엔비디아를 압도하고 있는 실정인데 인텔의 소송이 별로 달갑지 않을듯 싶네요.

플래쉬 아이폰 용으로도 나온다.

얼마전에 플래쉬가 안드로이나 윈도우 모바일 같은 스마트폰 버전으로 등장한다고 했는데요. 애플은 등장하지 않을것 같다는 예측이 있었지만 아이폰으로도 나올것 같답니다. 그런데 애플의 도움없이 개발을 하고 있다는군요. 일설에 의하면 애플은 플래쉬를 좀 못마땅하게 여긴다는것 같더군요. 애플은 HTML 5와 같은 웹표준을 통해서 플래시 기술을 대체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아무래도 스티브 잡스가 어도비에 대한 응어리가 남아 있는것 같습니다. 원래 어도비는 매킨토시용으로 전자출판이나 그래픽 소프트웨어로 성장했지만 나중에 윈도우로 돌아섰고  어도비는 매킨토시보다 윈도우에 더욱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잡스가 돌아와서 한일이 어도비 CEO만나서 매킨토시 지원좀 해달라고 하는것이었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이때 좀 맺힌게 있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정도로 애플이 어도비의 플래시에 대한 지원이 전무하네요. 뭐 이미 스티브 잡스는 플래시가 불필요한 기술이라고 선언한적도 있으니 애플이 나서서 아이폰에 플래시를 지원할것 같지는 않습니다.

안드로이드 파티가 시작됐다.

안드로이드 전성시대가 오는건가요? CNET에서 안드로이드 파티가 시작됐다는 기사를 실었는데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최근 몇달새에 아홉개나 되는 새로운 안드로이드폰 개발 소식이 들렸으며 전통적인 휴대폰 강자인 삼성과 모토로라 여기에 델까지 안드로이드 기반의 새로운 휴대폰들을 개발중입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미국에서 가장 작은 이동통신업체인 T-Mobile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스프린트와 버라이존에도 안드로이드폰이 등장합니다. 안드로이드폰은 이제 단순한 틈새시장이 아니라 메이저에 진입한듯 하군요.


헤일로 ODST

헤일로가 출시된지 2주만에 250만개를 판매했다는 소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체감하기 힘들뿐 숫자를 보면 확실히 미국에서는 대세인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미국에서는 헤일로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것 같군요.  그리고 오늘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 6년안에 헤일로를 바탕으로 한 영화, 비디오, 만화,소설 등을 발표할 것이라고 합니다. 헤일로가 포켓몬스터처럼 게임을 바탕으로한 전방위적인 원소스 멀티유스의 새로운 신화를 그려갈지 기대가 됩니다. 저는 게임의 영향력이 이렇게 현실세계에서 영향력이 커져가는것 자체가 무척 반갑네요.


오늘의 사진 한장



세상에서 가장 과격한 시위로 올라온 사진인데요. 보고서 깜짝 놀랐네요. 요즘 유럽에서 우유값이 폭락해서 난리라던데. 아무래도 항의시위중에 나온 장면같습니다. 우유가 저렇게 강력하게 나올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오늘의 동영상


오늘의 메인스토리가 비욘세인데.. 비욘세 동영상 안보고 갈수는 없죠.  비욘세가 출연한 닌텐도 광고한번 감상해보시죠?




멀티라이터 김정남이 전하는 오늘의 IT와 게임 정보 한덩어리는 여기까지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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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2009.09.16 17:27

닌텐도 위 가격 인하?



닌텐도가 10월에 위의 가격을 199달러로 인하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런 소문이 돌게 된것은 위의 화면처럼 인하된 가격을 광고하는 전단지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9월 26일 닌텐도가 개최하는 이벤트가 하나 있는데 이때 가격인하를 발표하겠다는 예상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닌텐도는 루머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제 닌텐도 위는 인하될떄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발매된 3년동안 가격인하를 하지 않은 게임기는 아마 닌텐도위가 최초가 아닌가 싶군요. 워낙 잘팔리니깐 가격을 깍을 필요가 없는데 최근 플레이스테이션 3가 100달러를 인하한후 아주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무려 1000%가 넘는 판매 증가를 보였고 일본에서는 무려 1444%나 증가했다니 닌텐도 역시 새로운 승부스를 던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ZUNE HD의 게임은 무료

시애틀 타임스에서 준의 마케팅 메니저와 인터뷰 한바에 의하면 앞으로 몇개의 응용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되는데 그중에 게임도 포함된답니다. 그런데 과연 언제까지 무료로 제공할지는 의문이네요. 준의 마켓플레이스를 통해서 무료 프로그램을 공급한다는데 문제는 준의 마켓플레이스는 앱스토어와 다르게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닌 다른 개발자들이 프로그램을 올리는 공간이 없습니다. 현재 보아하니 준 HD 팀과 윈도우 모바일팀이 사업이 중복되는 관계로 사업계획을 제대로 못세우고 있는 기분입니다.  앞으로 이부분에 교통정리가 필요할듯싶네요. 많은 분들이 준 HD를 기다리고 이제품이 애플의 아이팟을 견제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앱스토어처럼 전체 개발자들에게 열린 공간을 만들기 전에는 좀 힘들듯하네요. 우선은 ZUNE HD팀과 윈도우 모바일팀간에 협의해야할것도 많구요. 아참 준 HD 메뉴얼에 의하면 앞으로도 또다른 ZUNE HD들이 나올것 같다는군요.

게임 유저의 44%는 여자다!


시장 조사 전문기관인 NPD에 의하면 게임 유저의 44%가 여성이라고 합니다. 이는 2009년 1월 NPD가 온라인을 통해서 조사한 자료라고 하는데요.  연구에 의하면 게임유저의 24퍼센트는 2살에서 14살사이이고 25세에서 34세 사이는 20% 그리고 35세와 44세의 게임유저역시 전체에서 17%를 차지하다고 합니다. 더 이상 게임은 남자와 아이들의 전유물은 아닌게 확실하네요. 앞으로 여성과 노년층을 위한 게임들이 많이 등장해야할듯합니다. 사실 닌텐도 DS의 성공도 따지고 보면 노년과 여성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아이온 북미에서 호조?

북미에서 아이온의 인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게임 다운로드 서비스인 스팀에서 아이온이 당당히 1위에 등극했습습니다. 1위에는 아이온 특별판과 10위에는 아이온 일반판이 올랐는데 더 대단한것은 아직 정식 발매가 되지 않은 예약판이라는겁니다.  또한 Direct2Drive에서 집계한 순위에 의하면 아이온 특별판이 2위에 오르고 또한 일반판이 5위에 올랐는데 확실히 히트는 따놓은 당상같습니다.  참고적으로 1위에 오른 챔피온스 온라인의 개발에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로 유명한 빌로퍼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Steam's Top Ten (by Revenue) (9/6 - 9/12)

1.Aion Collector's Edition (pre-order) / NCsoft
2.Champions Online / Cryptic
3.Star Wars: Knights of the Old Republic / BioWare
4.Left 4 Dead / Valve
5.Street Fighter IV / Capcom
6.Braid / Number None
7.Counter-Strike: Source / Valve
8.Darkest of Days / 8Monkey Labs
9.Section 8 / TimeGate
10.Aion Standard Edition (pre-order) / NCSoft


Direct2Drive's Top Ten (9/6 - 9/12)
1.Champions Online / Cryptic
2.Aion Collector's Edition (pre-order) / NCSoft
3.Fallen Earth (pre-order) / Fallen Earth, Icarus Studios
4.Star Wars: Knights of the Old Republic / BioWare
5.Aion Standard Edition (pre-order) / NCSoft
6.Section 8 / TimeGate
7.Civilization 4: The Complete Edition / Firaxis
8.Civilization 4 / Firaxis
9.Darkest of Days / 8Monkey Labs
10.The Sims 3 / The Sims Studio


모던 워페어2 XBOX 360의 번들로 제공된다?



모던 워페어 2를 위한 XBOX 360이 발매된답니다. 모던 워페어2가 번들로 제공되고 본체는 모던 워페어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컨트롤러는 두개가 제공되며 하드는 250GB가 장착되어있는데 399달러로 현재 예약중이라는군요. 모던 워페어가 정말 대박났었는데 이번에 따로 라이브 행사까지 펼치는것 보면 올 겨울 최고의 킬러소프트웨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구글 크롬 3.0 공개되다

2주전에 1주년 이었느데  더 빨라지고 HTIMS5를 지원하는 구글 크롬 3.0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나저나 구글도 베타딱지를 떼고나니 버전업하는 속도가 꽤 발라지는 기분입니다? ^^;

애플 타블릿이 AT&T로 나온다.?

내년 2월쯤 발매될 것으로 예상되는 애플의 타블릿이 AT&T의 네트워크로 접속될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네요.  또한 가격은 799달러에서 999달러 사이가 될것이며 화면은 9.6인치가 될텐데 디스플레이는 윈텍에서 공급할 예정이랍니다. 참고적으로 윈텍은 아이폰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배터리는 확실히 강력해질것이며 HSPDA망을 이용해서 인터넷에 접속할 듯 합니다. 애플 타블릿의 존재자체가 루머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루머들을 보면 확실히 애플이 만들고 있는건 확실해 보이네요.

새로운 아이팟 터치 모델이 크리스마스때 발매된다?

4주에서 8주사이에 아이팟터치의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에 발표된 아이팟 터치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였고 특히 카메라 기능이 삭제되어서 이와 관련된 여러 논쟁들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아이팟터치가 등장할듯합니다. 최근 나온 애플 제품중에서 가장 관심없는 제품으로 뽑히는 애플 TV역시 새로운 제품이 발표될것이라는 군요. 애플에서 애플 TV를 포기를 한다 안한다로 또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계속 애플 TV에 투자를 하는 것 같습니다. 참고적으로 애플 TV는 아이팟 터치처럼 나중에는 게임콘솔로 발전하지 않겠냐는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는 제품입니다.

 

오늘의 사진 한장

한눈에 알 수 있는 게임 컨트롤러의 진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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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이야기2009.09.07 16:59

GamesRadar에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일본 게임 광고의 변천사를 소개했는데요.  이것저것 살펴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있어서 함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닌텐도의 첫번째 게임기 GAME 6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하면 패미컴 먼저 떠오르시겠지만 1979년 이미 game 6와 game 9을 발매헀습니다. 지금이야 닌텐도는 독창적인 게임개발로 유명하지만 위의 동영상을 보시면 아타리의 퐁을 많이 베꼈음을 알것입니다.  그런데 1979년만해도 게임화면에다가 해설자가 계속 게임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지루함 그자체의 광고를 내보냈는데요. 1980년대에는 조금 변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2. 세가의 새로운 도전 SG-1000


SG-1000은 패미컴과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었으나 크게 실패한 비운의 게임기입니다. 1979년 닌텐도의 광고에 비해서 화면이 좀더 역동적이고 해설자의 따분한 설명보다는 그래도 더욱 경쾌하게 게임을 설명하네요.


3. 슈퍼마리오와 젤다 광고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 광고인데요. 이제는 광고속에 나름 유머 코드를 넣었네요



4. 젤다가 힙합을 만나다.



1991년에 나온 젤다의 전설 광고인데요. 확실히 예전보다 진보된 모습입니다. 랩도 나오고 화려한 군무(?)와 코스프레도 등장합니다. 약간 어색한 장면이지만 게임광고 치고는 확실히 블록버스터급입니다. ^^;;


5. 게임광고가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다.



세가는 세가탄 산시로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세턴을 광고하는데 이게 꽤 화제가 되었죠. 저도 당시 인터넷으로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정도니깐요.  과거 펩시맨처럼 한때 세가타 산시로는 세가의 상징이 되어서 세가의 많은 광고에 출연하게 됩니다.


6. 음악의 힘을 보여주다.



피크민의 광고인데 게임화면에 인상적인 음악을 덧입힘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CF입니다. 음악도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던걸로 압니다.

7. 데빌 메이 크라이




스타일리쉬 액션의 선구자 데빌메이 크라이의 광고입니다. 이 광고를 보면 이제 더이상 게임은 애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8. 슈퍼스타의 등장


원래 원문에서는 일본인 개그맨이 등장하는 닌텐도 DSi 광고를 소개했는데.. 앞으로도 잘 와닿지 않아서 제가 임의적으로 새로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게임에 슈퍼스타들이 나서서 광고를 한다는거 이게 새로운 의미가 있는듯해서요. 우리나라에서도 송혜교, 장동건, 이나영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닌텐도 DS 광고를 했지요. 이렇게 닌텐도가 거액의 광고비를 들여서 스타들을 광고에 활용한건.. 어두운 게임의 이미지를 파괴하고 밝은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게임 하면 보통 오타쿠를 떠올리기 쉬운데. 게임을 할것 같지 않은 슈퍼스타들이 게임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게임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지요. 위의 광고는 일본의 유명 스타인 나나코 마츠시마의 광고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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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닌텐도 이야기2009.08.26 16:47
 

닌텐도가 이번에 새로운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바로 체감형 럭비 게임입니다.  이미 승마형 게임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고 여기에 자전거 폐달 게임에 대한 카탈로그가 돌아다니고 있는데요. 이걸 보니 닌텐도가 자신들의 미래 전략을 장난감회사로 결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닌텐도는 장난감회사로 시작되었고 비디오 게임을 장난감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때문에 애들만을 상대로 게임을 만든다는 인식이 강해졌고 닌텐도는 아이들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게임을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닌텐도 DS에서는 두뇌트레이닝게임을 내놓고 닌텐도위로는 위핏을 내놓음으로써 육체를 단련한다는 신 개념의 게임을 만들어서 게임기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었죠. 현재는 닌텐도는 게임의 벽 자체를 허물어 버렸고 게임이란 사용자가 무엇인가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이에 대해 반응을 해주는 모든 인터랙티브 행위라고 정의할정도로 게임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의 게임정의대로라면 세상에 게임이 아닌게 없지요.

그리고 닌텐도는 닌텐도 DS교실이나 닌텐도 위 채널등을 통해서 여러가지 시도중입니다. 그런데 그 시도들이 장난감 회사와는 확실히 멀어져가는 길이었는데 최근 그들이 특허를 낸 상품들을 보면 과ㅓ 장난감 회사로 회귀하는 느낌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프로젝트 나탈이라고 해서 카메라를 통해서 모션을 인식하는 최첨단의 IT 기기를 들고 나올때 닌텐도는 어떤 선택을 할까 무척 궁금했는데 결국 닌텐도는 장난감 회사를 선택한듯 합니다.

사실 닌텐도가 장난감 회사의 길을 걷는다는 건 원점회귀를 뜻하기도 합니다.  닌텐도는 사실 유명한 장난감 회사였거든요. 마리오와 슈퍼마리오로 유명한 미야모토 시게루가 닌텐도에 취직한 이유도
닌텐도가 장난감회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정도로 유명했습니다.

여기서 한번 그들의 히트작을 살펴볼까요?


울트라 핸드입니다.  닌텐도는 화투회사로 주식시장에 상장한후 운수업, 숙박업, 식품업에 진출하지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이때 요코이 군페이라는 직원이 자신이 만든 기구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목격하게된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이를 상품화하라고 지시해서 100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합니다. 회사도 역시 기사회생하고 닌텐도는 본격적으로 장난감 회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후 울트라 머쉰과 광선총이 대성공을 거두는데요. 닌텐도가 장난감회사의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회사로써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기도합니다.




닌텐도의 광선총은 패미컴으로도 등장하는데 당시 미국은 비디오 게임시장이 붕괴된 직후라 비디오게임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좋았습니다.  그래서 닌텐도는 패미컴을 장난감으로 포지셔닝을 해서 판매를 하는데 그 판매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게 바로 저 광선검입니다.  재퍼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저 광선총은 닌텐도 위로도 등장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죠.




이런걸 보면 닌텐도의 전략이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닌텐도는 장난감 회사로써 촉감을 중요시 여기는 회사입니다. 그림을 그릴때도 실제 촉감이 느껴질것 같은 그림을 추구하였고 촉감을 중요시 여기기에 닌텐도 위의 모션 컨트롤러가 등장할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나탈이 등장했을때 닌텐도에서는 게임에서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장난감 회사의 영혼을 가진 닌텐도는 단순히 허공에서 움직이는게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지고 움질일수 있는 부가장치 개발에 총력을 쏟는 느낌입니다. 현재 럭비나 자전거 그리고 승마와 같은 체감게임의 등장이 예상되지만 앞으로도 이런 체감게임은 계속 등장할것 같네요. 그리 한편에서는 닌텐도가 너무 많은 부가장치를 내놓는다는 비난을 듣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장난감들이 있고 또 새로운 장난감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지요. 그리고 닌텐도를 장난감회사로써 이런 저런 장난감들을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부가장치들을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문제는 그들이 장난감회사 전략을 통해서 과연 비디오게임에서도 왕좌를 지킬수 있느냐겠죠.  감히 제가 성공과 실패를 함부로 판단할수 는 없지만.. 닌텐도로써는 당연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보다 훨씬 등치가 큰 회사인 동시에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와 또같은 전략을 펼쳐서는 안되죠. 기술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정면승부해서는 결국 언젠가는 패배하게 되어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카메라를 통한 모션 인식 기술인 프로젝트 나탈을 들고 나왔다고 거기에 맞불작적을 펼쳐봐야 패배합니다. 닌텐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기술이 아닌 아이디어경쟁을 펼쳐야 하는데 거기에 자신들의 강점을 극대화해야겠죠.  40여년전부터 장난감을 만든 닌텐도는 부가장치를 만드는데 확실히 강점이 있으며 다른 회사가 쉽게 흉내낼수 없는 게임개발능력을 갖춘 만큼 현재 닌텐도가 걷고 있는 길은 매우 현명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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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게임2008.11.10 16:11



얼마전에 안젤리나 졸리의 몸매 비결이 닌텐도 DS의 Let's Pilates 덕분이라는 글을 포스팅 했는데요. 외신에도 "Jolie Slims Down Using Video Games" , "Angelina Jolie's Fitness Secret? Pilates!", "Angelina Jolie Losing Weight Thanks to the Nintendo DS", "Jolie seeks help to shed babyfat" ,"Shedding post-pregnancy pounds using WiiFit?" ,"Angelina Jolie's fun way of losing weight" 처럼 비슷비슷한 제목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절대 제가 자의적으로 제목을 붙인게 아닙니다. 그런데 또 이번에는 닌텐도 위가 어린이 비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네요.

참고적으로 이글의 제목도 내가 붙인게 아닙니다.

제가 쓰는 이글의 출처인 Video games promoted in fight against childhood obesity 그대로 따온거에요.^^;;

몬트리올에서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는데요.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 교수인 린다 카슨의 연구 연구결과에 의하면

어린이 비만에 게임이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답니다. 우선 그 교수는 운동의 exercise와 game을 합쳐서 exergaming 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데요. 닌텐도 위나 댄스댄스 레볼루션처럼 단순히 손가락으로 게임을 컨트롤하는게 아니라.. 신체행위가 필요한 게임을 exergaming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12주동안 진행된 그녀의 연구는 비만인 아이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쪽 그룹에는 exergame을 하도록하고..

나머지들은 평소하던 대로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12주후에 봤더니 평소 하던대로 지내던 아이들은 몸무게가 늘었지만.. 게임을 했던 아이들은 몸무게가 그대로 유지됐답니다.

또한 게임을 한 아이들은 에이로빅같은 신체적 능력도 같이 발전했답니다.

그녀는 게임때문에 아이들이 전통적인 운동으로부터 멀리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오히려 exergaming을 통해서 운동에 자신감을 가진 아이도 생겼으며.. 또한 다른 운동들이 부상이라던가 귀찮은 것들이 많지만 게임은 안전한 상황에서 게임을 즐기게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그녀는 exergaming이 전통적인 체육과목을 대체할 흥미로운 대체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추세가 가족을 향하면서 동시에 뭔가 운동같은 어떤 부수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시대가 온것 같습니다. 아참 이번에 닌텐도가 경제를 쉽게 알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제 게임이 단순히 재미있기만 하면 그걸로 끝나던 시대가 아닌것 같네요 ^^;;

아참 닌텐도 위핏이 12월 6일 9만 8천원에 정식 발매 된답니다. ^^;;  제가 닌텐도 위를 일부러 과격하게 움직이면서.. 나름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살이 빠지지지는 않지만 ..덕분에 몸무게가 늘지는 않더군요. 이번에 닌텐도 위핏으로 살을 뺄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출처
http://www.canada.com/topics/bodyandhealth/story.html?id=3dfaf40b-0c53-4a89-9b31-306deecbcf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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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8.09.12 08:35

9월 9일 애플의 자체이벤트인 Let's Rock에서 새로운 아이팟 시리즈가 발표되었고.. 이제  광고등의 본격적인 캠페인이 시작되었는데.. 타이틀이 " 가장 재미있는 아이팟" (Funnest Ipod Ever)입니다. 아이팟의 재미를 강조하는 이 전략은 결국 애플이 본격적으로 휴대용 게임기시장에 진출했음을 선언하는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이번 애플의 행사가 실망스럽다는게 대체적인 반응이지만 애플이 본격적으로 게임분야에 진출한것은 꽤 의미있는 변화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이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더군요.


Jobs' iPod Challenge to Sony and Nintendo Examiner.com
잡스의 아이포드가 소니와 닌텐도에 도전하다.

iPod Touch Trying to Battle Sony PSP and Nintendo DS?
아이팟 터치가 소니 PSP와 닌텐도 DS와 경쟁한다.

Apple positions the iPod Touch as a game machine GamesAreFun
애플은 게임머신으로썬 아이팟을 포지셔닝하다.

Will Apple Succeed In Mobile Gaming? ? Inside Mac Games, TN - 2 hours ago
애플은 모마일 게임밍에서 성공할수 있을까?

Apple Declares iPod Touch ‘Best Portable Device For Playing Games’ MTV.com
애플은 아이팟 터치를 게임을 위한 최고의 휴대용기기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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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기사들이 수두룩한데요.

그중에서 popularmechanics와 PC 매거진에서 흥미로 기사를 냈더군요.

파퓰러 메카닉스에서는 애플이 성공할수 있는 이유와 그렇지 않은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요

우선 소니와 닌텐도가 애플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 (Reasons Nintendo and Sony Are Running Scared)로 세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아이폰/아이팟 게임을 애플 스토어를 이용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구입할수 있다.
둘째 닌텐도 DS와 PSP가 25달러선인데 비해 아이폰과 아이팟 게임은 10달러 내외로 싸다.
세째 아이팟 게임은 확장팩을 설치하거나 업데이트 할수 있다.

또한 소니와 닌텐도가 애플을 쉽게 볼수 있는 이유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아이팟의 터치스크린은 게임기에 비해서 컨트롤이 불편하다.
둘째 아이폰은 비싸서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구입하기가 힘들다.
셋째 Grand Theft Auto 처럼 복잡하면서도 볼륨있는 게임이 없다.

이렇게 밝히고 있네요. PC 매거진은 아이팟이 휴대용 게임기로써의 장점을 네가지만 들었습니다.

우선 기술적 장점입니다. 이미 지겨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멀티터치 스크린과 가속센서 기능을 활용하면 닌텐도 위처럼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만들수 있다. 
둘째는 다양한 게임의 지원입니다. EA는 스포어와 니드포 스피드를 내놓은 예정인데 3000개의 프로그램을 판매중인 앱스토어에는 이미 700개의 게임을 판매중이니다.
세째는 앱스토어입니다. 30%의 수수료만 애플에 내놓으면  개발자는 얼마든지 자신의 게임을 앱스토어에 판매할수 있는데 이러한 다운로드 방식의 편리함 역시 애플의 큰 장점이고
네째 이미 PSP와 닌텐도 DS가 많이 판매되고 있으나 아이폰 역시 앞으로 판매가 튼튼하다는 것이죠.

여러 기사를 읽었는데.. 대부분 위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고.. 아직 깊히있는 분석글은 없네요.

여기서 부터 저의 견해를 밝히자면..

스티브 잡스가  직접 아이팟을 게임을 위한 최고의 휴대용 도구라고 한점은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라는겁니다.(물론 지난 1~2년간 쭉 변화를 모색했지만요. 매킨토시에서 게임 개발자들이 애플의 지원이 형편없다고 비난하는게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게 최근에 변화기 시작한겁니다. )

원래 스티브 잡스의 첫번째 정식 직장이 퐁으로 유명한 비디오 게임회사인 아타리이고 여기서 우리에게 잘알려진 벽돌깨기를 개발하죠. 그리고 애플2 개발하게 된 계기 역시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게임에 대한 사랑이 일정부분 영향을 주었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2를 개발할때 컴퓨터로써 얼마나 판매될지는 몰랐지만 게임기기로써 애플2로는 꽤팔려서 실패는 안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게임개발자가 애플2로 게임을 잘만들수 있도록 베이직을 만들었는데 이를 게임 베이직이라고 불리울정도고.. 컬러를 지원하던 애플2는 게임기기로써의 성능이 좋았습니다. 또한 애플2에 들어가는 CPU와 닌텐도의 패미컴에 들어가는 CPU가 똑같은거죠. 그래서 저는 애플과 닌텐도는 컴퓨터기술이 내놓은 쌍둥이라고 까지 생각을 합니다.

애플2의 성능에 분명 "게임"도 큰 역할을 확실히 했는데..

문제는 매킨토시때부터 애플에서 "게임"을 천대(?)합니다. 왜냐하면 처음 매킨토시가 처음 나왔을때 화려한 그래픽기반의 운영체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막상 돌아가는 응용프로그램이 없었고.. 그래서 매킨토시 별명이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이라고 불리었고.. 스티브 잡스는이런 비아냥을 무척 싫어했답니다. 이런 이유로 애플이 게임을 소홀히하는 경향이 있었는데요.이제 본격적으로 애플이 게임에 손대는군요.

하지만 올해초 애플은 미국 특허청에 애플의 사업내용을 추가하면서 게임부분을 추가했죠. 올해안에 게임과 관련된 중요한 발표를 할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최고의 휴대용 게임기기로써 아이팟 터치를 포지셔닝하고 광고까지 하는군요. 아래의 아이팟터치 광고를 보십시오. 저거 아무말 안하면 게임기 광고로 밖에 안보이지 않습니까?



사실상 저는 애플이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진출했다고 봅니다.

이제 저의 예상을 더한다면.. 닌텐도 휴대폰 시장 진출할것이라는 겁니다.
닌텐도는 한우물 파는 기업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닌텐도가 화투회사로 시작해서.. 식품업,운수업,숙박업등등등 안해본게 없지요. 변해야할때는 변할줄 아는 회사이고..  컨버전스 시대에 사업의 고유영역은 없습니다. it업체의 무한 전쟁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이나 브라우저 전쟁처럼 예측가능한 상태에서만 벌어지는게 아니라 애플과 닌텐도 처럼 경쟁관계가 아니었다가 사업영역이 겹쳐버리게 된다는거죠. 노키아가 아이튠스와 경쟁하듯이 말이죠.

애플이 저렇게 치고 올라오는데.. 닌텐도가 오직 게임기능으로만 승부할수는 없다고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슷한 회사로 뽑히는게 애플과 닌텐도인데.. 또한 개인적 바램으로 그둘의 전쟁을 지켜보고싶네요. 어떤 전략과 전술로 서로를 상대할지....  사실 너무 기대가 큽니다. ^^;;;

애플이 가정용 게임기를 만들고 닌텐도가 휴대폰을 만든다??  전 가능한 이야기로 봅니다.
물론 애플은 전용게임기라기 보다는 아이팟터치처럼 멀티미디어기기의 확장판정도가 되리라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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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8.09.0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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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닌텐도의 독주가 매우 놀랍다. 매출도 매분기마다 기대치를 초과하였고 내년에 끝나는 2008년 결산에서도 당초 예상으로는 3250억엔을 전망치로 제시했으나 최근 이보다 26%나 증가시켰고 순익도 33%를 늘려서 6500억엔으로 예상하는등 게임 역사를 새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닌텐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상 최고의 게임 크리에이터로 불리우는 미야모토 시게루 덕분이다. 그는 슈퍼마리오 시리즈와 젤다의 전설을 대히트 시키며 게임을 부활시켰을 뿐만 아니라 게임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고 황금기를 구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미야모토 시게루는 에니메이션의 월트디즈니 영화의 스티븐 스필버그 음악의 비틀즈와 동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야모토 시게루와 동급으로 인정받는 세명의 유명인사와 모두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탄생시킨 마리오는 월트디즈니의 미키마우스와 함께 가장 가치가 있는 마스코트 캐릭터 순위에서 1위와 2위를 다툰다. 그리고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메카트니는 1991년 일본에 방문 했을 때 미야모토 시게루를 콘서트에 초대해서 싸인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미야모토 시게루의 게임을 좋아한다. 그는 세계적인 게임 전시회인 E3에서 특별히 미야모토 시게루가 있는 닌텐도 부스를 방문해서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유명스타처럼 일반 대중에게도 우상 같은 존재이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영국을 방문해서 싸인회를 열었을때는 브리티니 스피어스 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을 정도다.

오늘날 200억달러가 넘는 비디오 게임 시장을 사실상 새롭게 창조해낸 미야모토 시게루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하는 말들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정작 미야모토 시게루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는 조심스러워진다. 게임계에 끼친 영향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할 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의 업적을 세가지 측면에서 잠시 논하여 보도록 하자.

그가 대단한 첫번째 이유는 독창성 때문이다. 그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를 통하여 세계 최초로 횡스크롤 액션 게임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젤다의 전설은 비디오 게임 최초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다. 그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게임장르를 만들어 냄으로써 많은 제작자들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제시하였고 이는 게임을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상업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데뷔작인 동키콩은 시리즈화가 되어서 여러편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까지의 판매량이 4300만장에 이른다. 두번째 게임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는 비디오 게임 역사상 최대 판매량인 1억7400만개가 넘었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 역시 4200만개를 판매하면서 미야모토 시게루는 다른 게임 크리에이터는 도저히 꿈꿀 수도 없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독창성과 상업성으로 미야모토 시게루의 게임을 논했다면 이제 남은건 작품성이다. 그냥 새롭고 그냥 많이 팔렸으니 그 사람이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감동을 주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게임의 작품성이다. 그런데 작품성은 어떤 사람에게는 훌륭한데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경우가 있다. 그래서 작품성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때는 객관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문화 전문가들은 장문의 평론을 남기면서 작품성을 논하지만 이 책은 게임에 관한 전문적인 책이 아님으로 좀더 간단하게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작품성을 이야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관련분야에서 권위가 있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참고하면 된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 종사자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메탈 기어 솔리드로 유명한 코지마 히데오는 일찍이 미야모토 시게루를 구름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스트리트 파이터2의 디렉터였던 오카모토는 미야마토 시게루를 만나러가는건 신을 만나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닉의 아버지 나카유지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으로 도저히 넘을수 없는 분이라고 극찬하였다. 인터랙티브 아츠앤 사이언스에서 시행하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파이널 환타지의 사카구치 히로노부와 버추어파이터의 스즈키 유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미야모토 시게루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한 한결같이 미야모토 시게루가 자신을 게임계로 이끌었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젤다의 전설에서 얻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미야모토 시게루에 대한 이러한 평가가  단지 일본에서만 극한되는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역시 세계적인 게임 크리에이터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블랙앤 화이트의 피터몰리뉴와 심즈의 윌라이트는 가장 좋아하는 게임 기획자로 단연 미야모토 시게루를 첫손에 꼽는다. 현재 3D 엔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둠과 언리얼의 프로그래머들도 역시 미야모토 시게루의 게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보고서 게임계에 입문했다. 둠을 개발한 존카멕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베낀 코맨더 킨으로 게임계에서 유명해졌으며 언리얼을 프로그래밍한 팀 스위니 역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참고한 재즈래빗을 만들었다.

특히 존 카멕은 3D 게임인 둠에서 상자를 부시면 아이템이 나오는 아이디어는 슈퍼마리오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밝히며 미야모토 시게루가 없었다면 둠도 없었을것이라고 말하였다.
그에 대한 업적은 정말 끝이 없다. 하지만 이쯤에서 미야모토 시게루의 업적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로 알려진 게임크리에이터 빌로퍼의 한마디를 인용하고 끝내도록 하겠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사실 그것은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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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2008.08.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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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닌텐도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는 1959년 일본의 삿포루에서 태어난다. 어린시절부터 천식이 있었던 그는 약한몸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자라야 했다. 그랬던 이와타 사토루의 인생전체를 바꾸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휴렛패커드에서 발매한 공학용 전자계산기였다. 휴렛패커드의 전자계산기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발사 됐을 때 승무원들이 이용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첨당의 상징처럼 되버린 기기였다. 애플의 창업자중에 한명인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이 전자 계산기를 몹시 아꼈던걸로 유명하다. 당시 백만원이 넘는 이 전자 계산기를 구입하기 위해서 이와타 사토루는 접시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이와타 사토루가 전자계산기 값의 반정도를  모으자 그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던 아버지가이 돈을 보태줘서 겨우 전자계산기를 구입할 수 있게 된다.

휴렛 패커드의 공학용 전자계산기는 단순히 계산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프로그래밍도 할수 있을 정도의 미니컴퓨터였다. 이와타 사토루는 이 전자계산기를 철저하게 파고들기로 결심했다. 전자 계산기의 사용자 설명서를 읽어가면서 숫자나 텍스트로 표시되는 여러 게임들을 개발했다. 그가 짠 프로그램들을 휴렛팩커드 일본지사에 보내자 이를 본 관계자들은 이와타 사토루의 실력에 깜짝 놀라며 선물을 보내주었다. 친구에게 역시 이와타 사토루가 만들어준 게임을 보여주자 정말 대단한 걸 해내다면서 진심으로 칭찬하고 그를 격려했다. 그는 발리볼이나 미사일 사격게임등을 하였다.이와타 사토루는 자신의 실력으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생겼고 성격도 점차 활발하고 외향적으로 변해가면서 리더쉽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아직도 그때의 칭찬이야 말로 오늘날 자신을 있게 했다고 할정도로 자신의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친구가 있었던건 행운이라고 말할 정도다.

전자계산기에 흠뻑 빠져있던 이와타 사토루는 동경공업대의 컴퓨터 공학과에 지원해서 합격을 한다. 하지만 1978년도만 해도 컴퓨터가 별로 보급되어 있지 않아서 컴퓨터 공학과의 교육수준도 별로 그리 높지 않았다. 학교의 수업자체가 이와타 사토루가 알고 있는 것 보다도 뒤떨어 졌기 때문에 그는 혼자서 컴퓨터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돈을 빌려서 코모도어사의 PET 컴퓨터를 구입한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그런데 혼자서 하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고등 학교시절 친구가 옆에서 응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고 생각하던 이와타 사토루는 그런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도쿄의 대표적인 상업 중심지역중에 하나인 이케부쿠로역에 있는 세이부 백화점의 컴퓨터 판매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곳에서는 전시된 컴퓨터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직접 프로그래밍도 하면서 실력을 자랑하는 하는 고수들이 몰려있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다른 사람들이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앞에 사람들이 뭔가 잘못하면 지적을 해주고 쉽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실력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컴퓨터 판매점의 직원중 한명이 HAL 연구소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이때 이와타 사토루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점원은 회사에서 개발 업무를 맡았달라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였다. 1980년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이와타 사토루는 어차피 학생으로써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HAL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정한다.  HAL 연구소는 아키하바라의 맨션에서 한명의 정직원과 여섯명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하였다. 아르바이트 생이었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개발할 제품의 계획을 세우고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는등 회사 개발팀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이와타 사토루의 첫번째 작품은  당시 텍스트만 표시되었던 컴퓨터에 그래픽이 표현가능하도록 만드는 PCG라는 주변기기를 만들었고 여기에 대응하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였다.

이와타 사토루는 적은 임금을 받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일 자체가 너무나 좋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더욱 빠져 들어갔다. 결국 이와타 사토루는 학교생활보다는 HAL 연구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에 메달렸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이와타 사토루가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지 알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타 사토루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HAL연구소의 개발부장으로 정직원이 되었다. 이와타 사토루 덕분에 HAL 연구소는 기술 하나는 최고인 회사로 명성을드높였다.

덧말: 참고적으로 이와타사토루는 어린시절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해봤기 때문에 약자의 편에서 생각하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와타 사토루는 원래 HAL 연구소의 부장에서 사장까지 되면서 전성기를 이끕니다. 이런과정에서 닌텐도 사장에게 인정을 받고 닌텐도에 스카웃되고현재 사장이 되어서 닌텐도 DS와 닌텐도 위 개발에 참여합니다. 다음에는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인정받은 사건과 그의 행복경영에 대해서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다음시간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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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2008.08.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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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서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평영 100M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거머쥐고 200M에서도 금메달을 딴 .. 일본의 수영 영웅 기타지마 고스케(26)..

그가 닌텐도 위로 훈련을 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화제입니다.

처음에는 코타쿠나 CVG온라인등 게임 전문 웹진에서 이 소식을 전하길래..

왠 코미디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원소스가 바로 요미우리 신문입니다. 제목도 "키타지마 「Wii」로 「금」예행 연습"으로 떡하니 나와있네요.

(출처:http://hochi.yomiuri.co.jp/beijing2008/aquatics/news/20080216-OHT1T00152.htm)

그래서다음 으로 의심한게 최근 기사라면 닌텐도의 홍보기사가 아닌가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2008년 2월 16일자 기사입니다.

가타지마 고스케가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자 뒤늦게 이사실이 화제가 된것이죠.


그가 닌텐도 위로 연습(?)을 한 게임은 마리오와 소닉 베이징 올림픽입니다.

가타지마 고스케는 마리오가 평형을 하는데 이 게임을 하면서 대회의 분위기가 느껴졌고..

지고 싶지않은 기분이 들어서 ..  이미지 트레이닝이 확실이 되었답니다.

참고적으로 마리오와 소닉의 베이징 올림픽에서  마리오가 수영(?)하는 모습을 동영상을 감상해보세요.

뭐 이미지 트레이닝은 몰라도.. 여가시간의 휴식정도는 충분히 될것 같네요.

저는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이고.. 세계 신기록까지 세워서.. 원래부터 당연히 금메달 따야 하는 선수인지 알았더니.. 한때 슬럼프로 성적도 나뻤고 근육 파열이라는 부상으로 인해서 매우 힘든 나날을 보냈고 이번대회후 은퇴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더군요. 그렇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에게 게임이 위안은 줄수 있을듯 싶네요. 게임의 재미에 빠지면 딴것은 다 잊을수 있잖아요.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수영으로 게임을 했으니.. 그의 말처럼 진짜 닌텐도 위가 도움이 될수 있었을 듯 싶네요.^^;;

덧말: 안녕하세요. 작가 김정남입니다. 저의 블로그에서는 게임과 관련된 흥미롭고 재미있는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구독을 결정하시는데 참고 할만한 관련 글들을 링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게임과 관련된 글들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이니 여러분의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2008/07/30 - [게임] - 파이널 판타지 감동 탄생 비화!
2008/07/22 - [게임] - 가슴 찡한 '심즈' 감동 탄생 비화!!
2008/07/15 - [게임] - 너무나 감동적인 '심시티' 탄생 비화!!
2008/07/14 - [게임] - "마리오" 탄생 비화!
2008/05/14 - [게임] - 닌텐도 위핏, 이렇게 만들어졌다!(탄생비화)
2008/04/11 - [게임] - 닌텐도 위(Wii), 이렇게 만들어 졌다! (탄생비화)
2008/07/09 - [게임] - 스타크래프트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2008/07/01 - [게임] -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2008/06/25 - [게임] - 블리자드에게도 암흑시대가 있었다.
2008/06/23 - [IT] - 재미있는 블리자드의 창업스토리
2008/06/20 - [IT] - 기적의 승부사 애플과 닌텐도의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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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2008.08.13 16:33

영국에사는 91세의 할머니 도리스씨가 닌텐도 위에 흠뻑빠졌다는 소식이 타임즈에 보도 되었네요

(출처 :http://women.timesonline.co.uk/tol/life_and_style/women/the_way_we_live/article4508373.ece)

원래 이분은 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한번 플레이방법을 배우고 완전히 빠져버렸다는 겁니다. 특히 볼링처럼 친숙한 게임들로 이루어진 위스포츠를 좋아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닌텐도 위핏이 나오면서 진짜 운동효과를 얻고 있다고 극찬중입니다. 그런데 진짜 닌텐도 위를 좋아하는건.. 바로 사람들을 모아서 관계를 형성하게 해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닌텐도가 영국의 노인들에게만 환영받는건 아니랍니다.

이미 미국의 은퇴자 협회에서는  위볼링 리그, 위 베이스볼 리그 그리고 위 복싱 리그가 진중이랍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50세이상인 분들의 25%가 위를 정기적으로 위를 즐기고 있답니다. 이러한 닌텐도의 활약을 보니...  포켓몬스터로 전세계의 어린이들을 일본편으로 만들더니.. 이제는 노인들도 일본에 친화적으로 만드는것이 아닌가 싶어서..

이제 너무나 놀라운 닌텐도의 전방위적인 활약에 무섭기도 하고 조금씩 배가 아프네요.^^;;

제가 닌텐도를 좋아하고 ... 그들을 찬양(?)하는 글을 많이 올리지만..

저는 "내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 앤서니 로빈스의 말..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성공한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찾아 낸후 그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여 똑같이 하는 것이다."

이 말을 추종하는 사람으로써 닌텐도를 열심히 벤치마킹을 하는겁니다. ^^;;

근데 우리나라가 삼성으로 전세계에 인지도를 쌓았는데.. 이제는 애플과 닌텐도 처럼 열광적인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에서 포켓몬스터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 게임이 정말 단순히 많이 팔린 게임이 아니라.. 오늘날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새롭게 만든 상품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포켓몬스터의 성공과정을 추적한 책인 Pikachu Grobal Adventure에 보면..

미국사람이 일본에 가지는 감정변화가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포켓몬스터 이전만 해도 일본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철두철미한 경제적 동물로만 봤던거죠. 그런데 포켓몬스터에 빠진 미국어린이들의 생각이 확달라집니다. 피카추처럼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절대로 나쁜 사람도 아니고.. 아이디어 넘치고 쿨한 존재들일꺼라면서.. 일본에 호의적으로 변하는거죠.

그리고 일본에 대한 애정이 단순히 게임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일본문화 전체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일본 문화를 전달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조사해봤더니.. 그 사람들 대부분이 포켓몬스터를 하고 자랐다는거죠.

80년대만해도 일본 상품을 좋아했지만 일본 사람을 좋아했던 사람이..90년대 포켓몬스터라는 문화상품때문에 일본사람을 좋아하게 됐다는 건데요. 근데 포켓몬스터를 통해서 젊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는데..

지금 닌텐도 위와 닌텐도 위핏은 나이든 실버세대들까지 일본편으로 만드는 기분입니다.

(사실 미국의 이미지에 디즈니와 미키마우스도 큰 역할을 했다고 볼수 있죠.)

이러니.. 조금씩 바짝 긴장이 됩니다.

우리도 한국사람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역시 문화상품이 아닐런지요?좀 우리나라도 국가적으로 사람의 감성을 흔들어 놓을수 있는 그런 문화상품들이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닌텐도 처럼 IT 기술과 창조적인 문화가 결합되면 금상첨화겠죠.

그러기 때문에 더욱 닌텐도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덧말: 안녕하세요. 작가 김정남입니다. 저의 블로그에서는 게임과 관련된 흥미롭고 재미있는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구독을 결정하시는데 참고 할만한 관련 글들을 링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게임과 관련된 글들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이니 여러분의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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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