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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애플, 구글, MS의 치열한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애플, IBM, MS의 IT 삼국지가 펼쳤졌죠. 그때를 생각하며 1차 IT 삼국지시대의 이야기들을 작성하여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최근 애플 부사장이었던 페이지 마스터가 전격적으로 사임하자 여러 추측들이 쏟아졌다. 아이팟을 개발한 토니 퍼델 후임으로 2년전 IBM과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데려온 페이지 마스터는 애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IBM의 분쟁 때문에 정식 업무를 시작한지 1년 4개월만에 페이지 마스터가 전격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자 이를 두고 아이폰 4의 안테나 게이트에 대한 문책성 인사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페이지 마스터가 애플의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신임을 잃은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애플은 원래부터 기존의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서부 지역 특유의 히피문화를 물려받았기 외부 인사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회사로 알려졌다.  특히 서부 지역과는 반대되는 기업 문화를 가진 동부 지역의 기업 그것도 IBM을 다닌 페이지 마스터는 더더욱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1980년 애플과 IBM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PC 전쟁은 단순히 라이벌 회사간의 경쟁이 아니었다. 애플과 IBM은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의 자존심 싸움과도 같았다. 유럽과 교류하기가 쉬웠던 동부지역은 모든 경제 환경이 서부지역보다 월등히 좋았다.

 그래서 서부지역에서 태어나서 대학까지 다닌 사람도 취직을 위해서 뉴욕 같은 동부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명문사학인 스탠포드 대학교의 프레드릭 터먼교수는 제자들이 대학을 졸업하자 마다 동부지역으로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마침 그가 아꼈던 제자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 후 각각 취직과 진학을 위해 동부지역으로 떠났다가 다시 서부로 돌아오자 그들에게 창업을 권유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회사이름은 동전 던지기를 통해서 결정했다. 동전 던기지는 휴렛의 승리가 되었고 회사이름은 휴렛 & 팩커드 즉 HP가 되었다. 차고에서 두 명의 젊은이가 538달러의 자본으로 시작된 이 회사는 현재 개인용 컴퓨터 세계 1위의 오른 HP이다.

 HP는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시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HP 성공 이후 과수원밭이었던 실리콘밸리 지역은 첨단 벤처 산업의 요람이 되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HP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애플의 청사진을 마련했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정식직원으로 근무했을 정도로 HP와 애플은 여러가지로 인연이 깊다. HP이후 인텔 같은 여러벤처 기업들이 성공했지만 여전히 동부지역의 회사들에 비하면 꼬맹이에 불과했다. 바로 이때 애플이 등장해서 동부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인 IBM에 도전장을 던진다. IBM은 메인프레임 같은 대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컴퓨터 산업의 지배자였다. 70냔대 중반만 해도 컴퓨터는 곧 IBM으로 통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두명의 젊은이가 차고에서 시작된 애플은 창업한지 단 4년만에 주식시장에 상장되었고 포드 자동차 이후 가장 성공한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단숨에 억만장자에 등극하면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애플의 갑작스런 성공에 자극 받은 IBM은 곧 PC를 통해서 반격을 한다.  IBM-PC가 발매되자 이를 구입해서 분해를 해본 스티브 잡스는 성능과 기능면에서 엉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것을 환영하는 광고까지 내보낼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처음에는 애플과 IBM이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고 언론도 이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IBM과 당당히 경쟁하는 애플의 모습은 그 동안 뒤쳐졌던 서부의 반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두회사의 문화를 보면 서부와 동부의 지역차이를 알 수 있다. 유럽과 교류를 하면서 발전한 동부지역은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가 많은 만큼 전통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많았다.

 이에 비해서 서부지역은 기존의 보수적인 문화에 반기를 든 히피 문화의 탄생지 답게 진보적이었다. 이런 차이는 그들의 복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의 회사였다면 IBM은 양복을 입은 신사들의 회사였다. 애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심지어 양복도 없다. 동부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통신회사인 AT&T의 직원들이 애플직원에게 회사의 이사를 만날 때는 예의차원에서 양복을 입어야 한다고 하자 애플은 양복을 입지 않는다면서 애플 직원들은 양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반박할 정도로 양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비해서 IBM은 복장이 엄격해서 무조건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입어야만 한다. 이러한 복장 차이가 기업 문화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IBM은 예의바르고 항상 격식을 차리는 어른의 회사지만 반면에 권위주의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서 애플은 대학생처럼 활기차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대학생들의 회다. 하지만 사려깊지 못하고 즉흥적이며 팀보다는 개인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애플 일본의 지사장이었던 하라다 에이코씨에 의하면 애플직원이 자신의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락앤롤의 밴드멤버라면 IBM은 하모니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향곡 연주가와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에이코에 의하면 팀 플레이를 통해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락앤롤 연주자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쉬운 위험함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애플과 IBM의 문화적 차이가 큰 만큼 IBM에서 일했던 페이지 마스터가 애플에 얼마나 적응하기가 힘들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애플과 IBM의 차이는 스티브 잡스가 주창한 해적정신에 집대성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생각지도 못한 IBM-PC의 돌풍으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매킨토시를 개발한다. 매킨토시 개발자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해군이 되지 말고 해적이 되라고 강조했다. 해군은 기존의 사물과 관습을 지키기에 급급하지만 해적은 이를 과감하게 파괴한다. 해군이 IBM이었다면 해적은 애플이었다. 애플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IBM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자 하였다. 사실 1980년만 해도 IBM의 매출은 애플의 200배에 이르고 연구금액은 100배가 차이나는 거대 기업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큰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성공 방식대로 싸워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기존의 성공 방식은 결국 돈이 많은 회사가 승리하기 마련이다. 그런 회사와 싸워서 이길 려면 결국 더욱 새롭고 창조적인 제품을 내놓야만 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매킨토시는  텍스트기반의 개인용 컴퓨터와는 완전히 다른 그래픽 기반의 컴퓨터였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내놓으면서 IBM과의 경쟁을 더욱 극적이면서도 애플을 구원자로 만들고 싶었다. 이때 제작된 광고가 그 유명한 1984이다. 소설 1984는 절대권력을 가진 빅브라더스가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통제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매킨토시 광고는 소설속 내용을 그대로 담아내었다. 대형 스크린에서 빅브라더가 끊임없이 윽박지르면 넋이 나간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과 의지도 없이 빅브라더에 복종하는 이미지가 그대로 전해진다. 이때 망치를 든 여인이 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을 따돌리고 달려와서는 빅브라더의 모습이 있는 대형스크린에 망치를 던진다. 그리고 자막을 통해서 애플이 1984년 애플이 매킨토시를 소개한다면서 왜 소설의 1984와 현실의 1984가 다른지를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광고는 단 한번 방영했지만 미국에 센세이셔널한 충격파를 선사한다. 1984광고는 엄청난 호평을 들으며 각종 광고상을 휩쓸었고 26년이 지난 지금도 화제가 될정도로 광고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이 광고에서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광고속 빅브라더스가 IBM이고 도끼를 든 여인이 애플이었다. IBM이 지배하는 컴퓨터 세상을 애플이 파괴하겠다는 의도가 이광고에 담겨져 있었다. IBM을 악당으로 만들고 악당과 맞서 싸우는 영웅 애플의 모습은 오늘날 애플에 열광적인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광고 덕분에 매킨토시는 출시되자 마자 5만대 이상이 판매되면서 매진행렬을 이어간다.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매킨토시는 기존의 컴퓨터와는 완전히 달랐고 개인용 컴퓨터를 재발명했다는 극찬을 들었다. 하지만 매킨토시에는 응용 프로그램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판매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실적 부진으로 스티브 잡스와 이사회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결국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고야 만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사무실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고품질의 인쇄를 가능하게 하는 프린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이었는데 그의 이런 노력이 1985년 엘더스사에서 등장한 페이지 메이커이다. 페이지 메이커는 전자출판 혁명을 불러 일으키며 실적악화로 어려움에 빠져있던 매킨토시의 구원자가 된다. 페이지 메이커 덕분에 매킨토시의 판매량도 덩달아 급상승하며 애플은 화려하게 부활한다. IBM-PC는 일반 사람들을 위한 컴퓨터였다면 애플의 매킨토시는 그래픽전문가들을 위한 컴퓨터가 되면서 시장을 양분하게 된다.

정작 애플과 IBM의 치열했던 PC 전쟁의 최후 승리자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PC에 DOS를 납품하면서 극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OS를 개발하는 한편으로 애플의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베낀 윈도우를 만든다. 윈도우를 보고 분노한 애플의 CEO 존 스컬리는 빌게이츠를 직접 만나서 항의를 하였다. 이에 빌게이츠는 매킨토시 독점으로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주는 조건으로 매킨토시 운영체제에 사용된 인터페이스를 라이선스 해줄 것을 요구한다. 터무니 없는 요구였지만 기술에 문외한이었던 존 스컬리는 덜컥 빌게이츠가 원하는데로 계약을 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스티브 잡스가 몇 년간 고생하면서 만든 맥 오에스를 빌 게이츠는 얼마든지 마음껏 쓸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침 IBM에서도 매킨토시 처럼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만들려고 했다. 당시만 해도 IBM이 컴퓨터 업계를 지배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빌게이츠는 무슨일이 있어도 IBM과 끝까지 같이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IBM쪽 사람들을 설득해서 IBM이 준비하는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인 OS/2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IBM은 아무런 의심없이 제휴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OS/2의 개발속도가 너무나 느렸다. 마침 IBM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를 만드는 척하면서 윈도우에 전력을 쏟는다는 것을 눈치챈다. IBM은 이에 분노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이때 빌 게이츠는 OS/2는 고급 컴퓨터들을 위한 운영체제고 윈도우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낮은 저가형 컴퓨터를 위한 운영체제라면서 IBM을 설득한다.

  IBM은 기술에 문외한이었던 존 에이커스였는데 신기하게도 존 스컬리처럼 빌 게이츠의 감언이설에 넘아가고 만다. IBM은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를 잘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그 기대는 얼마 후 산산히 깨져버렸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작인 윈도우 3.0이 시장에 등장하자 돌풍을 일으킨다.  1년동안 무려 4백만개가 판매되었는데 이는 매킨토시가 6년 동안 팔았던 전체 총 누적수보다 많은 숫자였다.  윈도우 3.0이 대성공을 거두자 마이크로소프트가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당장 IBM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바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IBM은 이에 분노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너무나 커버렸다. 윈도우 95가 발매될때는 IBM 역시 눈치를 봐야할정도였다. 윈도우 95의 성공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세는 더욱 커졌고  IBM은 아예 PC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애플 역시 윈도우 95 광풍에 치명타를 입고 추락하기 시작한다. 1997년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 5천만달러 투자를 받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항복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IBM과 애플의 1차 PC 전쟁은 결국 두 회사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한 마이크로소프트를 IT 황제로 등극시키며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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